<14회>  

“15일 동안은 미르도 몸집을 작게 해서 다닌다고 약속했으니까 한결군이 불편하진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좀 부탁할게요. 한결군.”

“하지만, 저 그러니까…….”

“영감이 20년 만에  친구를 만나러 자기 혼자 간다잖아 그냥 좀 들어줘!”

미르가 어느새 나타나서 찬 기운을 훅훅 내뿜었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너 냉장고에 냉기를 잘 불어 넣은 거야? 15일 동안 음식 상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넣어야 해!”

“쳇 알고 있다고요. 지금 하고 있잖아요.”

 미르가 투덜대며 냉장고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미르가 멀찍이 사라지자 우돌 영감은 귓속말로 한결이에게 말했다.

“미르에게는 그냥 친구를 만난다고만 이야기 했어요. 그래서 지금 자기를 안 데려간다고 살짝 삐쳐있어요. 하지만, 부루를 찾으러 간다고 하면 자기도 간다고 펄쩍 뛸게 분명해요.”

우돌 영감은 멀찍이 덜어져 있는 미르를 한번 쳐다보며 말했다.

“자 이제 보름달이 뜨려면 한 시간도 안 남았어요. 한결군이 도움을 주지 않으면 나는 온 대륙에 갈수 없어요. 하루빨리 가지 않으면 부루가 놈들에게 잡힐 수도 있고요. 그러니 제발 부탁이에요 한결군.”

 한결이는 우돌 영감의 부탁을 차마 거절 할 수 없었다. 한결이도 부루가 아직 살아있어서 미르와 함께 만나는 장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결이는 정말 자신이 없었다.

“후우, 알, 알겠어요.”

“좋아요 나는 처음부터 한결군이 도와줄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자 그럼, 이제 한결군이 어떤 능력을 갖게 됐는지 알고 싶군요.”

우돌 영감은 기분이 좋은지 손바닥을 짝짝 마주치며 말했다.

“능력이요? 전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데요? 그냥 눈에 미르가 보이게 됐고 그리고 ‘그리’같은 괴물들이 보이는 걸 빼면 말이에요.”

“음……. 그거 이상하군요. 보통 용의 비늘을 삼킨 사람은 12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의 특징에 따라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되거든요 예를 들면 하늘을 날수 있다거나 숨을 참지 않고도 물속을 여행할 수 있다거나 뭐 그런 특이한 능력 말이에요.”

한결이는 팔을 벌려 자기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뭔가 특별한 것이 있나 찾아보았다. 하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발견할 수 없었다.

“보시다시피 전 아무 능력도 없는데요.”

“젠, 용을 보고 웃는 능력이 생겼어요.”

어느새 미르가 나타나서는 약간 비꼬듯 말했다.

“뭐 사람마다 능력이 나타나는데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니까 내일이면 달라질 거예요. 나중에 제가 돌아왔을 때 한결군은 무슨 능력이 생겼는지 알려 주세요. 용의 비늘을 삼킨 사람이 가지는 능력은 아주 다양해서 온 대륙에 있던 어떤 사람은 거대한 초코파이가 되는 능력이 생겼답니다. 생각해 보세요. 초코파이라니 하하하! 그걸 어디다 쓰겠어요.”

 우돌 영감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영감, 이제 달이 뜨기 시작한다고요 서둘러요.”

미르가 핀잔하듯 말했어요.

“이런 내 정신 좀 봐 그럼 미르도 한결군이 돌봐주기로 했고 보름달도 떠올랐으니 두 세계의 통로를 여는 두꺼비 열쇠를 가져와야겠군요.”

 우돌 영감은 콧노래를 부르며 커다랗고 낡은 나무 서랍장으로 다가 갔다.

“쳇, 저렇게 좋을까 ?”

 미르는 영감의 뒷모습을 흘겨보며 말했다.

“너 같이 가지 못해서 좀 섭섭하지?”

“아, 아니야. 우돌 영감이 없는 15일간 마음대로 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은 걸”

미르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한결이는 미르의 등을 톡톡 두드리며 위로해 주었다.

“사실, 영감과 헤어져 있는 게 이 번이 처음이라 기분이 좀 이상해. 혹시 영감이 날 버리고 멀리 가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

 미르는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 할아버진 분명히 15일 후에 돌아와서 다시 너에게 잔소리를 해대실 테니까.”

“우 그건 정말 싫은데.”

“하하하!”

 미르와 한결이는 한바탕 웃었다.

“아, 여기 있네. 서랍장 뒤 쪽에 넣어 놓은 걸 깜박하고 쓸데없는 곳을 뒤졌군요.”

서랍을 이리저리 뒤지던 우돌 영감은 마치 크리스털로 만든 것 같이 속이 비치는 투명하고 커다란 열쇠를 꺼내 들었어요.

“와 저 열쇠, 보석 같이 반짝거려요.”

“그렇죠? 이 열쇠는 달 두꺼비의 뼈로 만든 열쇠에요.”

“달 두꺼비의 뼈요?”

한결이는 두꺼비 뼈로 이렇게 예쁜 열쇠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어요.

“옛 부터 달 두꺼비는 달나라와 지상세계를 오고 갈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이 열쇠는 달 두꺼비의 뼈로 만들었기 때문에 온 대륙으로 갈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답니다.”

“와! 그럼 이 열쇠로 달나라도 갈수 있겠네요?”

“물론이죠. ‘그리’들의 수수깨끼 대왕이 낸 문제를 풀고 간신히 이 열쇠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원래 열쇠가 두 개였는데 그만 온 대륙에서 이곳으로 넘어올 때 부루와 함께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이제 이 열쇠가 온 대륙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 된 거죠.”

“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잡동사니 넣는 서랍에 아무렇게나 나둬요?”

 미르가 핀잔을 주었지만 우돌 영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자 이제 준비가 다 되었군요. 미르야 잔소리 그만하고 부엌에 불을 모두 끄렴.”

“쳇 내가 무슨 하녀인줄 아나봐?”

 미르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미르가 커다란 운동장 같은 분식집 부엌을 미끄러지듯 날면서 부엌 구석구석을 비추던 횃불들을 입김으로 끄기 시작했다. 순간 부엌 안은 깜깜해 졌다.

“와 아무것도 안보여요.”

“조금만 기다려 봐 이제 달이 더 높이 떠오를 테니까 .”

미르의 말대로 어느새 달빛이 부엌 창문턱을 은빛으로 물들더니 이내 창문 가득 비추기 시작했다. 부엌 창문을 따라 비추기 시작한 달빛은 마치 푸른 빛 광선처럼 부엌 한가운데 모이기 시작했다.

“자! 지금이야.”

우돌 영감이 서둘러 부엌 중앙으로 달려갔다. 푸른 달빛이 우돌 영감을 비추니 마치 산신령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돌 영감은 씩 미소를 지으며 뼈로 만든 열쇠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달빛은 열쇠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순간 투명한 열쇠 안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작은 별들도 가득 찼다. 한결이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우돌 영감은 별들을 품은 열쇠로 공중을 가리키며 크게 원을 그렸다. 그러자 열쇠에서 쏟아져 나온 은빛 별 가루들이 마치 수레바퀴가 돌듯이 큰 원을 따라 돌기 시작했다. 

“이제 곧 온 대륙으로 가는 세상의 문이 열릴 거예요”

이 말을 마치고 나자 우돌 영감은 그 원 안에 다시 일곱 개의 작은 원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은 원들은 모두 은빛 빛 가루가 되어 서로 겹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자, 이제 갈 때가 되었어요. 한결군 우리 미르를 잘 부탁해요. 미르도 얌전히 있어야 한다.”

“쳇 알겠으니까 걱정 말아요.”

미르가 투덜대었다. 한결이는 아름다운 광경에 놀라 말은 못하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은빛 원들이 서로 겹치면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순간 은빛 빛 가루들이 마치 커튼처럼 쏟아져 내렸다.

“우와!”

“자 그럼 나는 온 대륙으로 갑니다.”

우돌 영감은 빛 가루 커튼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달 두꺼비의 뼈로 만든 열쇠를 높이 쳐들었다.

“리디롱다! 리디롱다!”

우돌 영감이 큰소리로 주문을 외자 뼈로 만든 열쇠가 푸른빛을 내며 별처럼 반짝였다. 그와 동시에 빛 가루들과 우돌 영감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빛 가루들이 우돌 영감의 주위를 더욱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하자 우돌 영감의 몸도 다리부터 천천히 빛 가루로 변하였다, 이윽고 빛 가루들은 푸른빛을 내며 점점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저것 봐! 빛 가루들이 모여서 별이 됐어.”

한결이는 놀라서 손가락으로 빛나는 별을 가리켰다. 한결이의 목소리가 신호가 된 양 별빛은 점점 작아지더니 휙 사라져 버렸다.

“정말로……. 영감이 갔어.”

미르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결이는 미르의 슬픈 눈을 바라보다 등을 꼭 껴안았다.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지만 이상하게 미르를 꼭 껴안고 싶어졌다.

‘우돌 할아버지 제가 미르를 잘 돌볼게요. 걱정 마세요.’

“자, 우리 집으로 가자”

어두운 부엌 안을 비추고 있는 고요한 달빛만 아무 말 없이 두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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