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한참 후에 우돌 영감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단이 총을 나누어준 이후부터 온 대륙은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용 사냥꾼들은 용을 점점 더 많이 잡기 시작했지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니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늘 보아오던 하늘을 아름답게 날아다니던 수십만 마리의 용의 무리들이 이제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용을 잡았던 용 사냥꾼들도 하나둘씩 사라졌어요.”

“용 사냥꾼들도요?”

“네, 그래요. 그 모든 것이 나단의 계획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나단은 사냥꾼들에게서 여의주를 빼앗고 그들을 죽여 버린 거예요.”

“여의주의 힘을 이용하려고 한 것이군요?”

 한결이는 미르의 푸른색 여의주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게 좀 이상했지요. 용이 아닌 인간은 여의주를 이용할 수 없어요. 용 사냥꾼들에겐 여의주는 그저 용과의 대결에서 이겼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표일 뿐이거든요. 그런데 나단은 이상하게도 온 대륙 전체의 여의주를 다 모으기 시작한 거였어요.”

“그럼, 왜 여의주를 모은 거죠?”

“그 해 겨울, 온 대륙에 있던 수십만 마리의 용들이 자취를 감추자 용 대신 날개가 달린 검은 용들이 세상에 나타났어요. 검은 용들은 온 대륙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잡아먹었어요. 그 용들은 진짜 용이 아니었지요. 나단이 자기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괴물이었던 거예요. 살아남은 용 사냥꾼들과 온 대륙 사람들은 검은 용들과 대항했지만 역부족이었어요. 그 괴물들이 모두 여의주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고 순식간에 아름다웠던 온 대륙은 나단이 지배하는 검은 용들의 세상이 되었지요.”

 우돌 영감은 생각만 해도 분한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결국, 온 대륙에서 살아남은 마지막용은 미르와 부루뿐이었어요. 하지만, 나단의 병사들과 검은 용들이 온 대륙 전체에서 살아남은 용들을 이 잡듯 찾았기 때문에  부루와 미르를 더 이상 온 대륙에서 숨겨둘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결 군이 살고 있는 이 세계로 오게 된 거랍니다“

“잠깐만요. 그런데 미르 말고 부루라고 불리는 용은요? 그 용은 지금 여기 있나요?”

“그게 말이죠……. 온 대륙과 이 세계를 연결하는 문을 통과하는 도중에 사고가 났어요. 검은 용들의 습격을 받게 되었거든요. 간신히 이 세계로 빠져 나왔을 때 보니 미르만이 보이고 부루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이 세계에 와서 1년이 넘도록 계속 부루를 찾아다녔지만 부루를 발견할 수 없었지요. 용들은 자석처럼 서로 끌어당기기 때문에 부루가 살아있다면 벌서 우리를 찾았겠죠. 그렇게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부루는 그때 죽은 게 아닌가 싶어요.”

 우돌 영감은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최근 ‘그리’들로부터 옛 친구 가온이 보낸 편지를 한 통 받게 되었어요. 가온은 나에게 온 대륙 소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친구죠. 참, 한결군은 ‘그리’라는 녀석들에 대해 알고 있나요?

“네, 그 이상한 것들 때문에 낮에 얼마나 고생 했다고요”

 한결이는 낮에 겪은 일에 대해 우돌 영감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하하,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리’들이 좀 장난을 잘 치긴 하지만, 그렇게 떼로 공격하는 경우는 없는데 이상하군요. 아무튼 ‘그리’란 말은 그네라는 뜻이에요. 이 세계에서 저 세계를 그네처럼 왔다 갔다 할 수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죠. 온 대륙과 이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많지 않은 존재 중에 하나가 바로 ‘그리’에요. 그리’들은 온 대륙과 이 세계 사이에서 우편배달부 역할을 하지요. ‘그리’들은 약속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편지를 정확히 전달하거든요. 뭐 ‘용들의 간식이 되기도 하고요. 여러모로 쓸모 있는 녀석들에요. "

"그래도 기분 나쁜 녀석들인 건 분명해요.”

한결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혀를 쏙 내밀었다.

“뭐 기분 나쁜 모습인 건 사실이지만 ‘그리’들이 쓸모 있는 건 단지 그것만이 아니에요. ‘그리’들의 대왕”은 세상의 모든 비밀들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대왕을 찾아가 궁금한 것은  물어보면 모든 것에 대해 대답해 주지요. 단 그 대답이 아주 어려운 수수깨끼로 되어 있어서 문제이지만요. “

“수수깨끼요?”

“네, 그래서 수수깨끼 대왕이라고도 불리지요. 나도 간신히 그 대왕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온 대륙에서 이 세계로 올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답니다.”

 한결이는 우돌 영감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리’들이 참 이상한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얘기가 다른 길로 샜군요. 어쨌든 편지 내용은 가온이 부루와 비슷하게 생긴 용 한 마리를 봤다는 거였어요.”

“정말요? 그럼 부루가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가서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지요. 가온 말이 요새는 검은 용들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나단의 병사들도 경비가 소홀해졌다고 하니 온 대륙으로 돌아가서 그 용이 진짜 부루가 틀림없다면 데리고 와야겠지요. 그래서 한결 군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 거예요.”

“예? 제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요?”

“온 대륙으로 가는 문은 보름달이 뜨는 날마다 열려요. 그러니까 오늘 온 대륙으로 가게 되면 다음 보름달이 될 때 까지는 이세계로 돌아 올수 없어요. 그 15일 동안까지 미르 녀석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 한 거죠. 아직 위험한 온 대륙에 미르를 데려갈 수는 없거든요.”

 한결이는 미르를 처음 만났을 때 미르가 했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예? 그럼 저보고 미르하고 15일간 같이 있으란 말이에요?”

“맞아요. 다음 보름날 내가 돌아와서 한결군이 삼킨 용의 비늘을 다시 토하게 하면 한결군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은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그럼 한결군은 다시 평범한 초등학생으로 돌아가는 거지요 아주 간단하죠? 우리 가게에서 용 튀김 메뉴가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에요.”

“그럼 그 메뉴는 미르를 돌봐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 만든 거였어요?”

“네, 용 튀김을 먹어볼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15일간 용과 생활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요. 그런데 웬일인지 아무도 용 튀김을 주문하지 않더라고요.”

 한결이는 우돌영감에게 ‘당연하죠. 할아버지 얼굴을 보면 누구라도 그걸 시키고 싶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런데 바보같이 우리 삼총사가 와서 덜컥 주문을 한 거였군요.”

“하하, 그래요. 시간이 없는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그리고 그 중에 한결군이 선택된 거예요.”

“하지만, 왜 저죠? 전, 애완동물도 키워 본 적이 없다고요.”

 한결이는 제멋대로인대다 커다란 용을 하루도 아니고 15일간 책임지고 맡을 자신이 없었다.

“너무 걱정 말아요. 미르는 좀 개구쟁인걸 빼면 아주 착한 녀석이니까. 게다가 15일간은 미르 녀석도 한결군 말을 고분고분 따르겠다고 약속했답니다. 그리고 한결군을 고른 건 바로 미르에요.”

“네? 미르가요?”

“한결군이 처음 우리 분식집에서 용 튀김을 시켰을 때 재료가 없다고 한건 사실 미르가 주방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다음번에 우리 분식집에 왔을 땐 미르가 자기 비늘을 주도록 허락했던 거지요.”

“처음엔 반대 했는데 왜 어젠 허락한 거죠?”

“그건 네가 세상일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야. 날 보고도 별로 놀랄 것 같지 않고 말이야.”

미르가 어느새 잠에서 깼는지 하품을 하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겁이  많은 줄 알았다면 애시 당초 비늘을 주지도 않았다고.”

미르에 말에 한결이는 처음 미르를 만날 때가 떠올라 얼굴이 빨개졌다.

“이 녀석! 깨어났으면 냉장고에 냉기나 불어넣어. 쓸데없이 한결군 괴롭히지 말고.”

우돌 영감은 미르에게 호통을 쳤지만 얼굴엔 미소가 그려졌다.

“쳇 알았다고요.”

미르는 아직 졸린 지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어슬렁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사실 저 녀석, 한결군이 어제 한 아이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지켜보고 한결군을 선택한 거예요. 말은 좀 싹수없이 하지만, 속은 깊은 녀석이니까 너무 맘 상해하진 말아요.”

 우돌 영감이 웃음을 띠며 말했다. 하지만, 한결이는 15일이라는 시간동안 미르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미르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도 재미있고 미르의 어리광도 웃으며 봐 줄만 했지만 덩치 큰 미르와 함께 생활할 것을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섰다. 만약 분식집 주방 천정처럼 학교건물이 무너져 내린다면 그건 정말 최악일 테니까 말이다. 한결이의 걱정을 알아차렸는지 우돌 영감은 다음 말을 덧붙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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