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밤이 깊었만 마을 여기저기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침에만 해도 여행객을 지렁이 괴물에게 먹이로 주었던 마을이라고 볼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기운이 가득했다. 아이들과 구미호들은 이 마을에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모두들 큰 모험을 겪어.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석우와 찬이도 벌써 잠이 들었지만 미호는 잠이 오지 않았다.

 미호는 강둑에 앉아 피어오르는 밤안개를 바라보며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미호야, 이 상자를 부탁한다. 알겠니?”

지금 이 순간에도 할머니가 옆에서 미호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예언의 꿈을 만드는 것은 구미호에게는 숙명적인 임무였다. 하지만 나단이 세상을 지배하고 나선 별들은 숨을 죽였고 더 이상 구미호들은 예언의 꿈을 만들지 못했다. 예언의 꿈을 만들지 못한다면 구미호들은 살아 잇을 이유가 없다. 그것을 잘 알고 있던 할머니는 온힘을 다해 여우구슬을 만들었다.

“이 여우구슬이 예언하는대로 넌 예언의 아이들을 찾아야 한단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찾으면 이 상자 속의 물건을 그 아이들에게 전해 주렴. 이 물건은 이 세상을 바로 잡을 소중한 보물이다. 절대로 예언의 아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이 상자를 열어서는 안 된다. 알겠니?”

“네 할머니 꼭 이 상자를 예언의 아이들에게 전할게요. 그러니 기운네세요 할머니!”

“미호야, 잊지마라, 절대로 희망을 잃지 마라. 네 자신을 믿어라 알겠니...”

 할머니는 여우구슬과 작은 상자를 미호에게 남기고 숨을 거두셨다.

 미호는 할머니가 주신 여우구슬을 만지작 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용서해 주세요. 할머니. 전...”

갑자기 미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몇 년전 구미호들이 살던 숲이 파괴되었던 때가 생각났다. 예언의 아이들은 백년이 다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단이 만든 강철 인형들이 숲을 파괴해도 구미호들은 저항할 힘이 없었다. 피눈물을 흘리던 미호는 할머니가 주신 상자에 생각이 미쳤다.

“세상을 바로잡을 소중한 보물... 지금 우리에겐 이게 필요해.”

 미호는 할머니의 당부가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 때 당시엔  달리 다른 해결책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미호는 할머니와의 약속을 어기고 그 상자를 열었다. 그런데...




“미호야, 아직 안자고 있었던 거야?”

 노아의 목소리에 미호는 서둘러 눈물을 훔치고 여우구슬을 품에 집어 넣었다.

“응, 이제 잘 거야, 넌 왜 깼어?”

“헤헤, 옆 방에서 자는 석우 녀석이 잠꼬대를 얼마나 심하게 하든지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더라고.”

노아가 어깨를 으쓱 하며 미소를 지었다.  미호도 살짝 미소를 흘렸다. 노아는 그런 미호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울쩍해 졋다. 예전에 미호는 그렇게 심각한 아이가 아니엇다. 언제나 자신을 자상하게 보살펴주고 미소가 얼굴에 더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미호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져갔다. 이게 다 나단이 세상을 지배하고 미호가 예언의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임무를 맡게 된 이후 부터였다.

“미호야.”

“응?”

“저 아이들... 아무래도 진짜 예언의 아이들이 맞는 거 같아. 겁도 많고 먹는 것도 밝히지만 확실히...”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할머니의 유품... 그 아이들에게 넘겨 줄 거야?”

노아의 질문에 미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미호는 한 참 머뭇거리다가 노아에게 말했다.

“세상의 예언은 모두 세상 중심에 있는 가온 나무에서 시작된다는 거 너도 알고 있지?”

“응, 알고 있어.”

“우리 구미호들의 구슬 예언도 그리고 마누크마누크가 알고 있던 샛별의 예언도 모두 가온 나무에서 만들어진 예언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우리들의 예언은 항상 불완전 한 거야. 진짜 예언과 완전히 다르게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이야. 저 아이들 정말 예언의 아이들일까? 아닐까? 가온 나무에서 확인할 때까지 아무도 알 수 없어. 그런데 만약 우리가 함부로 할머니의 유품을 전해준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세상은 어둠을 없앨 마지막 힘을 잃게 될 수도 있어.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고 싶진 않아.”

“그렇구나, 그럼 빨리 가온 나무까지 가는 게 중요한 거네. 거기서 확인 해 보면 되잖아. 난 빨리 예언으ㅢ 아이들이 누군지 알고 싶단 말이야. 그 녀석들이 누군지 확실해져야. 할머니의 유품을 가지고 있는 미호 너도 예전처럼 밝아질것 같거든”

“....”

 미호는 미소를 짓는 노아를 바라보며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마음속에 무언가 울컥하는 걸 간신히 참았다.

“하암, 졸린다 나 먼저 잘게 너무 오래 있진 마,”

노아가 손을 흔들고 숙소로 사라졌다. 미호는 사라져가는 노아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언제나 자신을 걱정해주는 오랜 친구 노아...

“고마워 노아야, 하지만 난 앞으로도 예전처럼 웃지 못 할 거야.”

 미호는 다시 몇 년전 그날이 떠올랐다. 나단의 강철 인형에 맞서던 구미호들이 쓰러져 가던 그날... 미호가 굳은 결심을 하고 할머니의 유품 상자를 열었을 때였다.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는 미호의 마음을 후벼팠다. 없다... 아무것도... 아니 사라진 거다 소중한 유품이...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단 하나의 물건이.... 그때 한번 더 참았더라면 상자를 열지 않았더라면...

“미안해요 할머니.... 나는 그때 이미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어요.”

 미호는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풍요의 강의 물소리만이 들리는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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