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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평점 :

저자의 두번째 소설집. 이미 아는 단편도 있었고, 새로 접하는 이야기도 있어 알면 아는데로, 모르면 또 새삼 반갑게 10편의 단편을 읽었다. 책 제목과 어울리는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들. 근래에 핫했던 SF장르와는 동떨어진 손원평만의 현실감 꾹꾹 눌러담은 서사. 인물들이나 각각의 장소 또한 내가 사는 세상과 이질감 없이 맞붙어있는 느낌이라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나 또한 이러한 말들을 심심찮게 뱉어낸 적은 없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해치려 한 것은 아니었으나 끝내는 누군가를 밀어내고 상처 입히게 되는 세계라 말한다. 악인은 없지만 누구도 온전히 결백할 수 없는 세계. 악의는 없다 하지만 호의까지 베풀며 살진 못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호의가 계속되면 호구가 된다는 말이 속담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다. 선함이 습관이 되면 타인들은 다들 웃는 낯을 앞세워 짓밟고 올라가려는 성향이 다반사였기에 책속의 인물들과 같은 습관을 버릴 수 없음을 보여주고있다.
생존과 자아의 실현, 이야기 속 주체가 아이를 마주 할 때 느끼는 이입감. 뭣 모를거라 생각하지만 다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어린 마음. 내가 너만 했을 때엔 그리 생각하며 살았는데, 적어도 너만은 그러지 않길 바라는 측은한 시선. 과거엔 어쩔 수 없었겠다만 적어도 너희가 살 미래에선 그러지 않아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가득한 모습이 남겨져있다.
때로는 내가 살고 봐야지 너까지 신경써야 겠냐는 듯한 '당신의 손끝'속 효원과 화실 상가 주인 할아버지 손자와의 관계, 그녀가 신경쓰지 않고 알고도 외면하는게 이유가 있었던 거구나를 이야기 말미에서 얻어낸 '태양 아래 반짝이는'의 이야기속 준이의 상황과 그걸 마주한 나. 관용도 포용도 모든게 풍족해에 할 수 있음을 느끼지만 나까지 외면해서야 되겠나 싶어하며 또 다시 공부방으로 아이를 불러오는 '피아노'의 혜심과 마지막 제자가 될 준용. 이유야 어찌 되었든 부모가 아닌 곳에 마음을 놓아두는걸 택하는 '조망'속 과거 어린시절의 수하와 현재 축제 주최 측 관계자 아이.
현실, 정의, 의무에 대한 건 중요치 않고 일단 어떻게 살 것인가를 두고 상대방을(이야기속 아이를) 밀어내느냐 당겨오느냐로 갈리는 4개의 단편.
가까이 들이밀면 비극 같아 보이지만 현실에선 심심찮게 들려오는 삶의 순응을 빙자한 개선하려 하지 않을 심상들. 금지 된 것+떳떳하지 못함을 그늘삼아 숨어 더욱 더 깔깔한 즐거움을 찾는 '태양 아래 반짝이는' 단편 속 호텔에 숨겨진 여인. 누군가는 필요에 의해 시간을 돈으로 샀고, 누군가는 수고로움을 대신해서 돈을 얻는다. 오픈런 전부터 대기하며 시간을 썼을테고, 추위든 더위든 견디며 꿋꿋하게 기다릴 몸을 썼으니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얻었다 봐야 하나 싶은 관계성. 수고로움을 대신했을 비용이니 어쩌면 정당했고, 또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그 아이'를 모셔온 정민과 의뢰자의 거래. SNS에 온전한 자신의 삶을 다 드러내는 이가 몇 있을까 싶은 꾸며진 세상에 살고있는 우리. 다들 비슷하지 않아? 라는 듯 동조를 구하고있다. 프레임 속에는 감성 낭낭한 것들로 배열되어있고, 프레임 밖에는 개어지지 않은 빨래, 쌓여있는 설거지, 어질러진 신발장. 사진과 영상을 통해 보여주지 않을 뿐 아니라곤 하지 않았으니 완전히 속였다고 할 수 없으니 거짓의 삶이라 하기도 애매하지. 각색하기 나름이니 원본 훼손은 아니었다. 그러니 SNS에서 좋아요 하트를 누르고 영상에 엄지척을 흔들지 않을까. '모자이크'를 했지만 원본은 존재하니까.
📖당신의 손끝_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의 미래를 빼앗아버린 현실이 참혹했다.
돈은 누군가의 꿈이었다. 효원이 그토록 바라던 개인 화실의 밑천이었고, 주영이 일상 속 행복을 찾고자 만든 하루 중 2시간의 자유였다. 할아버지의 유일한 손주녀석의 미래이기도 했다. 각자의 바라던 희망의 값어치였다. 잃은건 효원이 깎아먹은 화실 임대료와 집기류 구입 비용인데 실타래처럼 엮인 이들에게도 기대하던 앞날이 어그러진다. 이러한 원망의 말들도 연대책임처럼 다 같이 나누면 좋겠다만 가장 많은 손해를 본 사람에게 화살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냥 각자가 제일 손해 본 사람이라 여기겠지.

📖유령의 집_ 다 좋은데 볕이 잘 안 들어. 그건 은유가 아니었다. 볕은 우리가 어떻게 해도 누릴 수 없는 무언가였다. 태생이나 운명 같은 것. 그리고 우리는 뒤늦게 깨달았다. 해가 들지 않는 곳엔 행운도 드나들지 않는다.
모두에게 공평하다고 느꼈을 자연환경이었다. 당장 건물 밖으로만 나가도 온전히 내 몸을 적시고도 남을 햇살이라 여겼으나 이러한 볕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했다. 이를테면 자외선을 차단한 선팅된 창문속 스미는 따뜻한 햇살이라던가, 휴양지의 루프탑 수영장에 반사되는 강렬한 빛이라던가, 사위가 환해서 낮인거 같긴 하지만 거리를 거니는 이들의 발목만 보이는 반지하의 희끄므리한 먼지와 같이 부유하는 빛이 될 수도 있다. 분명 시작점은 같았을 지라도 이리저리 굴절하고 닿기까지의 과정에 따라 변화되는 것. 눈을 감아도 희끄므리하게 비치기도 하는 것이 자신이 기대하는 앞날의 조도와도 닮아있다. 그래서 슬프다. 모두에게 공평하리라 굳게 믿었던 자연들 마저도 배신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모자이크_ 제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잘되긴 그른 팔자였다니까요. 그다음부터 제가 한 건 별로 없어요. 사람들이 알아서 달려들어 그 사람들을 가죽까지 벗겨냈죠. 생각보다 너무 쉽고 빨라서 깜짝 놀랐어요.
마녀사냥으로 봐야 할까, 인과 응보라 해야 할까. 실재하는 이름과 얼굴이 아닌 블러처리되거나 아이콘 화 된 이미지를 앞세웠고, 이름이 아닌 허상의 닉네임으로 자신은 철저히 가려둔 채 물어 뜯었다. 내가 뜯기면 그 상처를 메우기 위해서라도 다른 이를 물어뜯어야했다. 나만 죽을 수 없다는 듯 자폭의 심정이자 남 잘 되는 꼴 못보는 놀부의 심보가 엮여있다. 나중엔 이렇게 말하겠지. '저도 그렇게 나쁜 의도는 아니었어요.'를 말하며 피해자인척 억울함을 호소하겠지. 누가 알려주는 가이드라인이라도 되는 것 같은 구차함의 끝이다.
📖딸과 깍 사이_ 그런데 누군가 내 친절의 고단함을 알아준다는 게 신기했어요. 내가 아주 헛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 편히 짐을 쌀 수 있었구요.
사회생활을 위한 방패이자 가면과도 같은 것.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과 접대용 상냥함. 다들 그렇게 애쓰고 산다지만 그걸 알아주고 있다는 걸 느낄 때 일말의 진심은 전해졌구나 싶은 안도감이 든다. 미련 없이 살고자 마음은 먹지만 다들 하나같이 이렇게 열심히 산다. 나쁜 의도가 없다 노래처럼 흥얼거렸지만, 마지막 단편에서는 그래도 좋은 의도로 했습니다로 연결 짓고 싶은 독자만의 욕망가득한 해석이다.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는 타인에게 양해를 구하는 말이 아니다. 사과를 하기 위해 말문을 트이는 대화의 시작도 아니다. 상황이 그러했고, 조직 내 시스템이 그러했으며,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해오지 않았냐는 듯한 뉘앙스를 내비치며 나의 잘못은 없는데 어쩌겠냐는 식의 '나도 좀 봐주세요.'를 보이고있다. 되려 자신을 이해해 달라는 듯한 동조를 구하는 과정.
나는 오늘 얼마나 많은 핑계의 말을 뱉어냈고, 얼마나 많은 동의를 구했을까. 내 주변에 부유하고있는 말 중 진심이 있긴 했었나는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