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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물건의 역사 - 돌칼에서 AI까지, 물건들이 만들어온 330만 년 인류의 대장정
칩 콜웰 지음, 김병화 옮김 / 부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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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 콜웰의 <거의 모든 물건의 역사>(원제 So Much Stuff)는 사실 제목만 본다면, 인류에 영향을 준 특정한 물건을 중심으로 발명사를 나열한 것처럼 오해를 할 수 있지만, 실제 포함된 중심 질문은 훨씬 더 거대하다.


인간은 어떻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던 영장류에서, 수많은 물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는가?

저자는 자신의 연구가 누나의 집에서 나누던 대화 도중에 누나가 남긴 간단하고 가벼운 짧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누나가 "우린 왜 이렇게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는거야?" 라고 물었는데, 저자는 그 답변을 듣고 '너무나도 복잡해서 머리가 얼어붙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안에는 330만 년의 역사를 담은 심오하고도 거대한 답변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 대해

저자인 칩 콜웰은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로써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한 경력이 있다. 각종 유물들과 전시품들을 최대한 모으고 보호하고자 하는 일반적인 큐레이터들과는 다르게, 자기 자신을 유물의 주인을 찾아주고자 오히려 박물관에서 물건을 빼버리는 '이상한 큐레이터'라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큐레이터로써의 직업윤리와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로써의 직업윤리가 충돌했으나, 후자가 이긴 것으로 보여진다. '더 많은 물건을 원하지 않는 박물관 큐레이터'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보여주고, 고고학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진심을 드러낸다. 그는 누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고민하면서 어째서 인류가 헐벗은 유인원에서 멈추지 않는 쇼핑객으로 나아가게 되었는지 이해하고 싶었으며 바로 그것이 저자가 책을 쓰려고 마음을 먹은 이유이기도 하다.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원주민 친구와 '화물cargo'에 대해 논의를 주고 받으며 <총, 균, 쇠>라는 역작을 썼던 것처럼 저자인 칩 콜웰도 비슷한 계기로 이 책을 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책의 구조와 핵심

<거의 모든 물건의 역사>는 '3의 구조'를 따라간다. 물건을 통한 '도약'이라는 큰 틀을 주제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도약으로 나누고 그 안에 또 다시 3개의 소주제를 나누어 설명하는 방식이다. 아득히 머나먼 호미닌 시절 과거부터 산업 혁명 이후의 현대 문명에 이르기까지 수 백만년의 역사를 특정한 중심 사건들과 연구(석기의 사용, 루시, 아이스맨 외치 등)를 조명하며 기술한다.

이 책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정의해본다면, '인간이 물건을 만든 것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물건이 다시 인간의 신체·정신·문화·사회를 만들어왔다.' 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을 극단적으로 Homo stuffensis, 즉 '물건에 의해 규정되고 만들어지는 인간'으로 묘사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책의 전체적인 논리는,


인간이 물건을 만든다 → 물건이 인간을 바꾼다 → 바뀐 인간이 물건에 의미를 부여한다. → 물건이 정체성과 사회관계를 구성한다 →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할 능력이 생긴다 → 소비와 생산이 서로를 증폭한다 → 물건이 너무 많아져 인간을 위협한다


으로 압축할 수 있다. 즉 저자는 인간이 물건을 만들 뿐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물건에 의해 영향을 받고, 그 물건에 의해 다시금 정체성이 정의되는 존재라는 점을 핵심적인 논리로써 대범하게 이끌어 나간다.


첫 번째 도약 - 도구 만들기

우리는 언제부터 '있는 것을 사용하는 동물'에서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동물'이 되었는가?

저자는 제인 구달의 연구를 예시로 든다. 제인 구달이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라 이름 붙인 유인원은 얇은 나뭇가지를 흰개미 굴에 넣어 마치 흰개미들을 '채집'하듯, 모은 뒤 그것을 한 번에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저자는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만의 특징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침팬지를 비롯한 여러 동물들도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지만 인간의 조상에게서 다른 동물들과는 차이점을 보이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350만 년 전 처음으로 돌 2개를 마주 때려 석기를 만든 이후 우리는 신체 한계를 넘어서게 되었고, 원래는 먹지 못하던 것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빌 신들러 (진화적 전환점)


그것은 물건을 단지 사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 필요한 물건을 상상하고 재료를 가공해서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도구는 단지 인간이 만든 수동적인 물건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만든 그 도구가 인간을 다시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일종의 '기술-유기체적 진화'로 설명한다. 기술이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 환경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날카로운 뗀석기와 같은 도구를 이용하면, 음식을 잘게 자르고 가공할 수 있다. 그러면 먹는 음식이 달라지고, 소화 방식이 달라지며, 신체 조건이 달라진다. 그러면서 도구 사용에 적합하도록 뇌와 손의 작동 방식 역시 변화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 → 도구' 라는 일방향 관계가 아니라 '인간 → 도구 → 새로운 인간 → 더 발전한 도구 → 또 다른 인간' 이라는 피드백 루프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Homo faber, 즉 '만드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 책에서 설명하는 중요한 핵심이다.


우리는 건물을 만든다 그런 다음에는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

윈스턴 처칠


책의 중요한 통찰 가운데 하나는, 어떤 물건 하나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연쇄적인 발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어떤 최종적인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을 만들기 위한 도구가 필요하고, 그 도구를 만들기 위한 또 다른 도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물질문화는 연쇄적으로 증가한다.


저자는 이러한 '발명의 사슬'을 두고 "모든 새로운 기술은 모든 갓난아기처럼 부모의 물질적 산물이지만 근본적으로 고유하다."라 표현한다. 그러면서 아이스맨 외치(Ötzi)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물건을 통해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정착생활과 농업이 시작되면서 인간은 이동할 때 짊어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물건을 축적할 수 있게 되었고, 도구들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개선되었다. 여기에서 현대 기술문명의 기본 원리가 등장한다. 그것은 '발명은 또 다른 발명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명은 도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착생활은 물건이 대폭 늘어나는 결과를 낳음과 동시에, 협동, 사회조직, 전문화(분업화), 교역, 종교 생활, 계층, 정부, 법률, 문자 등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모든 새로운 활동과 물건들은 돌 2개를 마주 때려 석기를 만들었던 바로 그 순간 시작되었다.



두 번째 도약 - 물건에 의미를 만들다

첫 번째 도약에서 물건의 핵심은 '쓸모'였다. 날카로운 석기는 자르기 위해 존재했지만, 어느 순간 인간은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물건에 기능을 넘어선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물건은 단순한 도구에서 상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물건이 단지 우리의 생물학적 필요에 부응하는 것을 넘어, 메시지를 전달하고 물건 자체 이상의 뭔가를 뜻하게 된 시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 이것은 우리를 새로운 차원으로, 새로운 미래로 이동시켰다.

p.133


인간은 물건을 단지 유용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아름답게 만들기 시작한다. 장식이나 그림, 조각 등이 등장한다. 저자는 초기 미술의 등장에 아름다움에 끌리는 인간의 본능,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망, 상징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등이 결합했다고 섦여한다. 즉, 물건이 처음으로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뿐만이 아니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질문의 대상이 된다.


그다음 물건은 종교와 결합한다. 이른바 신상, 성물, 제단, 부적과 같은 '믿음의 물건'이다. 저자는 괴페클리 테페와 같은 고대 의례 공간에서부터 홍콩의 관음보살상과 여러 종교 전통을 살펴보며, 인간이 보이지 않는 신념이나 믿음 등을 보이는 사물에 담기 시작한 과정을 설명한다.


신은 보이지 않지만, 신상은 보이며

기억은 보이지 않지만, 유품은 보이고

사랑은 보이지 않지만, 반지는 보인다.


즉 물건은 추상적인 인간의 정신을 외부 세계에 고정시키는 매체가 된다. 저자는 아구스틴 푸엔테스의 말을 빌려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순간 중 하나는 우리 조상들이 물질과 눈에 보이는 것의 경계를 허물어 순수한 상상의 영역을 유형적인 것이 될 수 있게 한 순간이었다."고 강조한다.


물건은 아름다움과 믿음을 넘어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것은 인간들의 정체성과 사회 관계까지 정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건은 곧 옷, 돈, 선물, 가보, 장신구 등으로 만들어져서 사람들이 어떤 옷, 자동차, 집, 물건 등을 소유하는지에 따라 계급이나 직업, 집단, 취향, 기억, 권력, 정체성 등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인간은 좋든 나쁘든 오랜 세월 동안 물건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능력, 기억하고 잊는 능력, 정체성을 만드는 능력, 그리고 때로는 정체성을 말살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법을 배워왔다.

p.189


저자는 북미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서구식 옷을 강제로 입힌 사례를 통해 물건이 단순히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정체성을 만들거나 파괴하는 수간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인으로써는 '조선어 말살정책'이나 '창씨개명' 등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례들로 하여금 물건이 단순히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정체성을 만들거나 파괴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 순간부터 인간이 물건을 원하는 이유는 사실상 무한해진다. 뗀석기는 튼튼한 것 두어개 정도면 충분하지만, 아름다움 그리고 신분, 사랑, 기억, 취향, 소속감, 성공을 표현하는 물건에는 명확한 상한선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인간의 마음에는 메워지지 않는 구멍이 생겼다.


인간은 물건을 우리 자신의 일부로 만든다. 자아와 물건은 통합되고 확장된다. 벨크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들의 총합이다.'



세 번째 도약 - 더 많이 만들다

앞의 두 단계가 수백만 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됐다면, 세 번째 변화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그것은 현재 인류도 경험 하고 있는 '산업혁명'이다.


인간은 원래 물건을 원했지만, 대부분의 역사에서 생산 능력이 제한되어 있었다. 장인이 수공업으로 한땀한땀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그 제한을 깨뜨렸다.


기계화와 공장제 생산을 통해 처음으로 물질적인 풍요가 가능해지고, 생산자와 소비자로 구성된 새로운 경제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제 문제는 "필요한 물건을 어떻게 만들까?"가 아니라, "이렇게 많이 만든 물건을 누구에게 팔까?"가 된다.


바로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욕망의 산업화'가 시작된다.


20세기 이후, 대량생산과 기술 그리고 세계화는 물건의 가격을 급격히 낮추었다. 그리고 기업은 새로운 기술 하나를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마케팅'.


사람들에게 이미 필요한 것을 파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는다.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물건은 점점 편리함, 청결, 행복, 성공, 젊음, 매력, 사회적 지위 등과 같은 가치와 긴밀하게 연결되기 시작한다. 여기에 '계획적 진부화'와 일회용 문화가 결합한다. 사람들은 이제 물건을 사고, 쓰고, 버리고, 다시 산다. 망가질 때까지 두는 것이 아니라, 진부해지므로 그것을 버리고 더 좋은 무언가를 사게 된다.


저자가 흥미롭게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이런 생활방식이 원래 인간에게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풍요로운 소비생활은 사람들이 후천적으로 학습한 문화이며, 기업의 마케팅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이끌었다고 본다. 현대문명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이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스마트폰이 나오면, 기존의 것을 잘 쓰고 있다가도 중고로 팔아버린 후 새로운 것을 사곤한다. 이는 스마트폰 뿐만이 아니라, 자동차나 심지어는 집도 포함이 될 수 있다.


마침내 도착한 곳: 너무 많은 물건(So Much Stuff)

이렇게 세 번의 도약을 연결하면 현대 소비사회의 모습이 설명된다. 첫 번째 도약을 통해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두 번째 도약을 통해 물건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도약을 통해 그 물건을 사실상 무한히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의 욕망과 상징, 대량생산이 결합하여 역사상 전례 없는 양의 물건들이 만들어졌다.

저자는 인간이 왜 물건을 계속 붙잡아두려는지 그 소유욕이나 저장, 수집에 대한 문제까지를 다룬다. 그래서 책의 영제인 <So Much Stuff>의 의미가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가 물건을 너무 많이 산다."가 아니라, 수백만 년 동안 이어진 인간과 물건의 '공진화'가 현대의 산업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너무 많은 물건'이라는 상황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네 번째 도약'

앞 선 세 번이 '만들기 → 의미 부여하기 → 더 많이 만들기' 였다면, 앞으로 필요한 것은 '더 잘 선택해서 만들고, 덜 소비하면서도 물건과 제대로 관계를 맺기' 이다.


저자는 '진짜 러다이트'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기술 자체를 무조건 거부하자는 뜻이 아니라, 사회적 그리고 환경적 가치에서 분리되어 인간을 소외시키는 기술을 문제 삼았던 원래 러다이트의 태도를 되살려야 한다며, 작금의 문제들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주장한다.


이 책은 미니멀리즘을 예찬하지는 않는다. 다만, 물질문화에 대한 우리의 자각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수많은 물건들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 깨닫고, 앞으로 벌어질 새로운 도약을 어떻게 맞이하면 좋을지 하나의 길을 제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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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정학 - 5000년 문명사를 통해 보는 세계질서의 대전환 ㅣ 그레이트 하모니 3
아미타브 아차리아 지음, 최준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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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상과 기대

아미타브 아차리아의 『21세기 지정학(The Once and Future World Order)』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은 레이 달리오의 『변화하는 세계질서』였다. 두 책 모두 ‘세계질서’라는 거대한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유사해 보였다. 그러나 읽어보니 접근 방식은 상당히 달랐다. 달리오가 금융과 경제사의 흐름, 통화 체제와 부채 구조, 패권국의 경제적 흥망을 중심으로 질서의 변화를 설명하려 했다면, 아차리아는 세계질서를 구성해온 사상과 문명, 그리고 역사적 인식 틀 자체를 문제 삼는다.


즉, 이 책은 세계질서를 “누가 지배했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세계질서를 어떻게 정의해왔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점에서 아차리아의 서술은 정치경제학적 분석이라기보다 일종의 사상사적·구성주의적 재해석에 가깝다. 특히 서론은 강한 어조로 시작한다. 서구 지배가 만들어낸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보편적 진보의 서사로 받아들이는 통념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도발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문제 제기는 독자를 곧바로 ‘탈서구’적 관점의 논쟁 속으로 끌어들인다.


덧붙여서 출판사에서 제목을 왜 21세기 지정학으로 했는지 궁금하다. 딱히 21세기 지정학을 다루는 내용이 아닌데 원서 제목도 '과거와 미래의 세계질서'에 가까운 의미이므로 저자들에게 혼동을 주는 번역이라 생각이든다. 아마 현대를 살아가기 바쁜 한국인들의 흥미를 이끌 제목으로 선택된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의 전반적 주장과 내용

아차리아의 핵심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세계질서는 사실상 서구 중심의 역사 서술과 개념 정의에 의해 구성되어 왔으며, 이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반서구 정서가 아니라, 세계질서 개념 자체를 둘러싼 인식론적 전환의 요구에 가깝다.


그는 특히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라는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중심의 질서가 인권,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규범을 기반으로 확산되었고, 이는 보편적 모델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아차리아는 이 질서가 결코 전 지구적 합의의 산물이 아니며, 많은 비서구 문명과 국가들은 이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거나 변형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지, 필연적 종착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책은 탈식민주의적 문제의식과 맞닿는다. 세계질서의 형성 과정에서 서구 지배가 물리적·제도적 차원뿐 아니라 인식의 차원에서도 강하게 작동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국제정치의 이론과 개념, ‘문명’의 정의, 발전의 기준까지도 서구적 틀 속에서 정립되었다는 것이다. 아차리아는 이러한 서술을 해체하고, 비서구 문명들이 세계질서의 형성과 유지에 기여해온 연결성을 복원하려 한다.


그는 세계사의 흐름을 수메르, 이집트, 페르시아, 그리스, 헬레니즘 제국, 인도, 중국, 로마 등으로 확장해 제시하며, 세계질서의 기원을 근대 유럽 체제에 한정하지 않는다. 특히 고대 근동과 아시아 문명권에서 나타난 외교 관행, 조공 체계, 상호 승인 구조 등을 초기 국제질서의 사례로 제시한다. 아마르나 외교는 그 대표적 예다. 이는 단순한 지역 외교가 아니라, 상호 규범과 위계, 협상의 구조를 갖춘 체계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는 세계질서를 단일 패권 중심의 보편 제국 모델로 이해하는 관점을 거부하는 데로 이어진다. 로마 제국, 중국의 천하관, 근대 유럽 제국주의, 미국 중심 질서 모두 보편 제국의 이상을 추구했지만, 실제 세계는 언제나 다수의 권력 중심이 공존하는 다극질서에 가까웠다고 본다. 따라서 21세기 역시 하나의 초강대국이 전 세계를 통합하는 체제가 아니라, 다양한 지역 질서가 병존하는 구조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문화적 다원주의를 세계질서의 핵심 조건으로 제시한다. 세계는 단일 문명권의 확장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과 정치적 전통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질서 역시 단일 규범에 의해 통합되기보다, 상호 인정과 조정 속에서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같은 단순한 패권 충돌 도식 역시 비판 대상이 된다. 세계질서는 단지 부상국과 기존 패권국의 군사적 충돌 여부로 설명될 수 없으며, 경제적 상호의존과 문화적 연결성, 제도적 네트워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구조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점에서 아차리아의 접근은 국제정치를 힘의 분포만이 아니라 규범과 인식, 상호 구성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구성주의적 시각과 맞닿아 있다.


소감과 비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질서를 단선적 진보의 서사에서 분리해내려는 시도에 있다. 특히 서구 지배를 세계사 발전의 중심축으로 간주하는 관점에 균열을 내는 작업은 의미 있다. 세계질서는 본질적으로 연결성 속에서 형성되어 왔으며, 어느 한 문명권의 독점적 성취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은 설득력이 있다.


또한 다극질서에 대한 전망 역시 현실적인 분석으로 보인다. 정보기술의 발달과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통합은 제한적이며 지역적 자율성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미래 세계가 단일 보편 제국으로 수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판단에는 공감이 간다.

그러나 몇 가지 비판적 지점도 존재한다.


첫째, 탈서구적 관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비서구 문명의 기여를 상대적으로 더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느껴진다. 균형을 회복하려는 시도는 이해되지만, 서구 제도의 영향력과 제도적 유산이 다소 축소되어 설명되는 듯한 인상도 있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완전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전 세계 정치 구조에 미친 심대한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고대 외교 체계를 현대적 의미의 세계질서와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이 개념적으로 얼마나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아차리아는 정치 전근대의 제국들 가리켜 "사상과 통치 방식에 있어 창조적 공간으로 상당 기간 유지된 독립적 실체였다. 따라서 그들을 세계질서로 간주해야 한다. - p.16"라고 주장했으나, 이는 상당히 비판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다. 지역 강대국 체계와 전지구적 질서를 동일 범주로 묶을 경우, ‘세계’라는 개념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장될 위험이 있다. 물리적 한계에 따라 '당대인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제한적 공간이 세계나 다름없다.'라고 주장할 수 있을 지언정, 현대인이 받아들이는 세계질서와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팍스는 환상이다’에 대한 비판적 주장 역시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힘에 의한 안정이 국제정치에서 수행해온 기능적 측면은 보다 정교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강제적 평화가 반드시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일정 수준의 질서를 제공해온 것도 실증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론

『21세기 지정학』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해체하고, 세계질서를 다원적·탈서구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이 책은 세계를 하나의 중심에서 설명하려는 습관에 의문을 제기하며, 문화적 다원주의와 다극질서, 그리고 문명 간 연결성을 강조한다. 서구의 오만과 편협함이 현재의 세계질서에 변화를 몰고 왔지만, 서구가 퇴각하고 다극질서가 된다고 해서 세계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차리아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일부는 논쟁적이며, 일부는 더 많은 실증적 보강이 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세계질서는 과연 서구가 설계한 단일한 체제였는가, 아니면 다양한 문명이 상호작용하며 구성해온 복합적 산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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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전략 - 외교 역사와 이론으로 살펴보는 국제정치 속 오판의 메커니즘 ㅣ 그레이트 하모니 4
비어트리스 호이저 지음, 이혜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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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저자인 비어트리스 호이저는 책의 서문에서부터 모든 행위자가 합리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좇아 행동한다는 ‘합리적 행위자’로 전제하고, 국제관계라는 복잡계를 한 두가지 요소로 단순화시켜 설명하고자 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국제정치, 전쟁과 전략은 단일한 원인, 독립적인 하나의 변수를 통해 연구하거나 예측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향과 휴리스틱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특히 국제관계에서 여러 오판을 내렸던 역사적 지도자들(표지의 네빌 체임벌린이나 히틀러 등)을 통해서 이러한 편향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잘못된 전략’은 대니얼 카너먼의 저서인 ‘생각에 관한 생각’을 많이 떠올리게 된다.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비판 그리고 비합리적 편향(bias), 휴리스틱 전반을 다루는 책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도 책 말미에 있는 주석에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소개한 많은 내용들이 언급되어 있다. 잘못된 전략을 읽고자 하는 이라면 함께 읽으면 틀림없이 좋을 책일 것이다.

또한 저자는 미국 해병대전쟁대학에서 발행한 ‘전략지침서(Strategy Primer)’에서 큰 도움을 얻었다고 명시하였는데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번역이 되지 않았다. 미 해병대 공식 웹사이트에서 PDF를 공짜(!)로 배포하고 있으니 이것도 함께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이 책을 전체적으로 훑어보진 않았지만, 전략 수립의 인지적 방법론을 소개하고, 전략 수립 시에 빠지는 인지적 편향(Cognitive Biases)를 식별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세우는 책이니 만큼, 잘못된 전략 또한 결을 함께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클라우제비츠의 정의처럼 자신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관철 시키기 위한 상호 행위, 즉 ‘전쟁’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짤 때 상대방의 관점과 생각을 엿보기 위한 방법을 심각한 오판을 내렸던 역사적인 지도자들의 사례 및 사건의 패턴에 빗대어 설명한다. 그와 동시에 경험적 사고 판단, 즉 가용성 휴리스틱을 오판을 일으키는 핵심 편향으로 소개한다.

합리적/비합리적 행위자 오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행위자 이론(모든 개인은 주어진 정보와 제약 안에서 자기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이성적으로 선택한다) 은 많은 연구에 폭넓은 기반을 가져와주었지만, 정치학과 국제관계학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문제가 발생한다. 저자는 모든 행위자가 ‘자기이익’을 우선해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가정 자체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며, 자기이익의 정의 자체도 사람마다 분분할 것이라 비판한다.

사람의 합리성이란 본디 논리적으로 일관적인 행동에서 나타나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심지어는 골수 시카고 학파일지라도 편향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비용편익을 추구하고,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결과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불완전한 인지적 편향과 사고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합리적 행위자 이론을 통해 복잡다단한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합리적인 행위를 통해 상대방의 행동을 유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신념이 합리적인지 비합리적인지 따지지 말고, 그들이 그 신념(또는 가치관)에 따라 논리적으로(인과에 맞게끔) 행동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합리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기인하므로, 상대방에서의 합리를 ‘신념’으로 표현한 것이 재밌는 부분이다(스스로의 행위를 합리라 믿는 것도 사람의 편향이리라). 전반적으로 종합하자면 국제관계와 전쟁은 ‘합리’와 ‘합리’가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쪽에서의 신념(가치관)과 상대쪽에서의 신념(가치관)이 부딪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합리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상대의 결정이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게 되므로 상대의 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행동예측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더불어 사후 관점에서 판단하지 않아야 하는 점도 강조되었다. 저자는 트루먼의 재군비 프로젝트를 조망하면서, 사후 관점에서 볼 때 명백하게 치명적인 오류로 보이는 것이 실은, 자신들이 가진 정보를 근거로 ‘내릴 수 있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심심치 않게 알 수 있다.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의 역사를 바라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편향

사람은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것은 위대한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과학적 연구방법론을 따르는 고도로 훈련된 학자들일지라도 그렇다. 수십, 수백 만년에 걸친 진화의 소산이니만큼 한 개인이 이를 극복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모두 편향에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를 통해 상대방의 전략을 예측하고 그들이 오판을 왜 했는지, 또 나의 오판은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알 수 있다. 저자가 서술한 몇 가지 편향 가운데를 소개하자면,

저자가 가장 첫 번째로 소개하는 편향은 ‘거울 이미지’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을 거라고 해서 다른 사람도 그것을 똑같이 따를 것이라 가정하는 것이다. 전쟁사를 공부하다보면 무수히 나오는 대표적인 오판인데. 흔히 “내 수준에서 판단하면 안 된다”라는 격언으로 나타나는 행위이다. 바르바로사 작전을 예상하지 못했던 스탈린의 사례를 보여주면서. 내가 그렇게 행동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저자는 국제정치와 외교, 국방을 막론하고 일상에서도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편향인 확증편향과 기준점 효과를 소개하면서 이 두 가지의 편향에서 나타나는 여러 하위 카테고리들을 예시와 묶어 설명해준다. 저자는 오판에 이를 수 있는 편향들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패턴 분석법을 제안한다. 이는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경험적 분석법, 잘못 적용되면 많은 해를 끼칠 수 있는 통계적 분석법보다 당면한 문제 해결에 더욱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를 분석에 적용한다는 것인데, 필자는 저자의 주장에 완벽하게 동의하지는 않지만 어떤 이유일지는 모를 특정한 상황들이 지속적으로 장기지속하여 반복된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패턴 분석법의 약점을 지적하며, ‘가용성 휴리스틱’ 즉, 특정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것이 다른 사건과 동일시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일러두었다. 발생한 사건의 본질만을 좇으라는 경고였다. 그러면서 특정한 상황이 반복된다고 이것이 또 똑같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이것 또한 편향으로 ‘뜨거운 손 효과’에 빠져버린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사고체계 안에 겹치고 겹쳐있는 많은 편향들 덕분에 얼마나 오판을 피하기 힘든지 이 챕터에서 가감없이 알 수 있었다.


감상

책을 읽으면서 신기했던 부분 중 하나는 계속 임용한 박사님의 방송이나 책에서 하셨던 격언들이 떠오른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전쟁사 및 국제관계를 다루는 학자라 그렇게 느끼는 것일수도 있겠다) ‘내 수준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사람은 삼킬 수 있는 것만 삼킨다.’,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반드시 패한다’ 등은 책에서 소개하는 ‘우리의 편향’ 챕터에서 모두 소주제로 분류되었던 것이다.

책에서는 다소 결과론적인 해석이 다분하며, 왜 그때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언급이 안 되었던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좀 더 심리적인 요소에 매몰되어 있지 않았는가 싶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귀중한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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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를 꿰뚫는 질문 25 - 제국의 문화, 열림과 닫힘 ㅣ 꿰뚫는 질문 1
조영헌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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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중국사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으나, 비교적 최근에서야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된 입장이므로 전반적으로 훑기 좋은 개론서에 가까운 책을 원하고 있었다. 책의 이름인 '중국사를 꿰뚫는 질문 25'를 보았을 때에는 확실히 최근 역사책의 서술 구조를 많이 따라가고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저자가 질문을 스스로 하여 방대한 역사라는 범주를 작게 좁히고, 이를 자답하며 따라가는 구조가 그것이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 대중들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에 흥미 위주로 빠르게 읽어내는 트렌드에 맞추어 책이 쓰여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로 머리말에서도 저자가 소개하듯이, 그러한 트렌드를 반영한 책이었다. '2000년 전후로 한국에 태어난 '신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서술 방식'이라는 문구가 그것을 보여준다. 또한 '꿰뚫는 질문'이라는 책의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대중들이 궁금해할 법한 여러 질문들을 시대순으로 나열하고, 전공 교수님들이 각각의 질문들을 맡아 서술하는 구조를 따라간다. 서두에서도 소개했듯이 질문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독자가 그 질문의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게 적절한 바운더리를 만들어내는 구조는 핵심 주제를 너무 넓히지 않으면서도 흥미 위주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구조이다. 필요한 핵심 주제로 범주를 좁혀놓았고, 깊이는 그 주제에만 할애하면 된다. 그래서 비전공자가 읽었을 때 얕다는 느낌도 받지 않았다. 최대한 질문의 맥락을 잘 따라가면서도 충분한 설명이 되어 있다.


중간중간 독자친화적인 배경 설명과 각주들도 돋보였다. 일반적인 역사책이라고 한다면 사실설명 위주의 딱딱한 문체와 무지막지한 각주가 붙어 읽기가 꺼려지는 측면이 있는데 확실히 독자를 배려해서 쉽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들이 돋보였다. 독서량이 많지 않은 중고등학생이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중국사를 조명하면서도 우리가 잘 아는 세계사적인 사건들을 끌어와서 이해를 돕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들도 엿보였다. 예컨대 만리장성을 설명하면서 마지노선이나 베를린 장벽, 한반도의 휴전선을 함께 이야기하기도 하는 등. 큰 틀에서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맥락들을 가져오며 설명하기도 한다. 이는 이해를 돕기 위해 주제를 일시적으로 넓혀 설명하는 집필진의 배려라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도 좀 신기하기도 하고 의아했던 점은, 매 챕터마다 중국사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현재 우리 관점에서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결론을 짓는 것이다. 물론 머리말에서도 그러한 의도가 엿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사건을 통해 현대의 우리가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말미에 강조하는 것은 잘 와닿지 않았다. 특히 진시황의 출현을 갑작스레 자기계발서인 아웃라이어와 엮어내기도 하고, 또 진시황을 잣대로 현대 지도자들을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도 물음표를 띄우는 지점들이었다. 물론 현존하는 권위주의 지도자들을 지칭하여 비교하고자 한 것이었지만 정치체와 국제질서, 상황 등이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있으므로 그런 비교는 부적절하다 생각했다.


그 외에도 현대의 정치상황을 간접적으로 은유하거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서술되는 부분들에서는 오히려 그렇게 생각을 안하게 되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래서 오히려 '현대 관점에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하는 부분은 아예 빼버려도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의 생각과 판단에 맡기도록 유도함이 바람직한 서술이지, 정말 집필자의 견해를 그대로 써놓는 것은 '올바른 질문을 던진다'는 책의 의도에도 맞지 않다. 머리말에서도 이미 질문을 잘하는 것이 앞으로의 시대에 중요하다고 강조를 해두었는데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그대로 따르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단점들은 차치하고, 각 챕터에서 던지는 질문들은 너무나도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다. 궁금하다고 평소에 생각도 않은 질문들인데, 질문을 보자마자 "어 진짜 궁금해지네" 하는 인상을 받았다. 또 질문에 큰 흥미가 없어도 소주제에서 던지는 또 다른 하위 질문들이 다른 흥미를 이끌기도 했다. 확실히 '질문'을 어떻게 던져야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집필진들이 고민한게 엿보였다. 질문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책들이 소주제에서 많이 그르치곤 하는데, 이 책에서는 오히려 소주제에서 더 흥미를 이끌어내곤 하였다. 21번째 챕터인 '조선과 베트남은 청의 속국이었나?'는 질문만으로 흥미를 이끌어낼 뿐 아니라, 다양한 소주제로 독자들을 자극한다.


책의 말미인 부록은 25가지 질문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주제에 대한 집필진들의 견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한 자리에 모여 대담이나 토론을 한 것을 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인데 오히려 부록에서 더 좋은 내용들이 많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인구에 관련한 내용은 핵심 질문에 포함되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따분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어서 뺐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부제라고도 볼 수 있는 '제국의 문화, 열림과 닫힘'은 이 책을 잘 설명해주는 문구라고 생각이 든다. 제국의 문화와 중국 특유의 개혁·개방-폐쇄·쇄국을 흥미로운 질문들로 조명하고 이를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게 탐구하고 있다. 비전공자인 필자가 보았을 때 개론서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일단 다양한 질문들도 호기심과 탐구심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읽기에 더할나위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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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삼킨 세계사 - 12척 난파선에서 발견한 3500년 세계사 대항해
데이비드 기빈스 지음, 이승훈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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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세계사는 다루는 시기와 범위가 너무 넓어서, 항상 특정한 관점이나 명확한 사건 혹은 시대를 정해두어야 정확하게 맥락을 짚어가며 탐구할 수 있다. 이미 출간된 다양한 세계사 도서를 통해서, 세계사를 경제사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지리, 세금, 지정학, 인구, 건축, 제국 심지어는 경영이나 조직관리 측면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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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관점을 가진 세계사 도서가 있지만, 「바다가 삼킨 세계사」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듣기에도 생소한 '수중고고학'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특기할만한 점은 저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12가지의 난파선 가운데 절반 정도는 저자인 데이비드 기빈스가 직접 발굴해내거나, 발굴에 기여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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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고고학으로 바라보는 세계사는 특별하다. 어떠한 이유를 통해 교류에 나선 난파선이, 어떤 모종의 이유로 침몰하고 그것이 수 백에서 수 천년 동안 묻혀있다가 발견되는 것은 그 자체로써 드라마틱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도버 보트, 울루부룬 난파선, 텍타쉬 난파선, 플렘미리오 난파선, 마르자메미 난파선, 벨리통 난파선, 바이킹 롱쉽, 메리 로즈호, 산토 크리스토 디 카스텔로호, 로열 앤 갤리호, HMS 테러호, SS 게어소파호 등 각각의 난파선은 각각의 시대상, 생활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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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전반적인 서술 구조는, 역사시대의 특정한 연대순으로 선사시대, 청동기, 철기, 로마제국의 고전시대, 이슬람의 황금기, 중세 바이킹 시대, 대항해시대, 계몽주의 시대, 산업혁명기, 2차 세계대전기를 모두 아우른다. 난파선을 서술 중심으로 두고, 이 난파선이 언제, 누군가에 의해,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조사와 발굴이 진행되었는지, 발견된 난파선은 어떤 방식으로 건조되었고 왜 침몰했는지, 어떤 물건을 싣고 항해했으며, 누가 배를 몰았는지 그리고 당시의 세계사적인 배경과 맥락은 어떠하였는지를 짚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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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 구조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은 수중에 묻혀있던 유물들을 방대한 문헌 기록과 함께 대조하여,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상을 당대의 항해자들의 이야기와 엮어 전개한다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관점에서 이러한 이야기들은 일종의 과거의 존재를 탐구하는 모험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저자의 머리말에서도 가장 첫 번째로 소개된 페르낭 브로델의 "바다는 과거 존재를 기록한 가장 위대한 문서"라는 말처럼, 가늠하기 어려울정도로 오랜 세월 바다 속 깊이 묻혀있었던, 과거의 존재를 이 책 한 권으로 들춰볼 수 있다는 것은 역사를 탐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놀라운 경험이자 체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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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고고학 자체를 모르던 상태에서 책을 봤기 때문에, 한 가지 또 관심이 갔던 부분들은 "어떻게 나무로 된 난파선들이 그 오랜 세월을 견뎌내고 현대인의 손에 온전하게 발견될 수 있었던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책에서도 몇 가지가 소개되지만 그 이유는 바다 깊은 곳 특유의 '무산소 환경' 덕분이다. 나무가 부패하기 위해서는 부패균과 박테리아들이 있어야 하는데, 해저나 진흙 속에는 산소가 거의 없어 미생물 활동이 억제되어서 난파선이 오랜 세월동안 견뎌낼 수 있다. 또한 북해나 발트해, 지중해 일부 지역은 수온이 무척 낮아서 유기물의 분해가 극도로 느려지고, 깊은 심해의 수압과 깊이 덕분에 물속 생물들의 접근을 방지할 수 있다. 난파선은 대단히 발견하기 어렵지만, 퇴적물이 잘 쌓여만있다면 그만큼 원형 그대로의 보존된 난파선을 인양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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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적물 속에서 원형이 보존되어있다는 것은 연대측정을 통해 매우 정확하게 그 시기를 특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이는 또한 당대의 문헌 기록들과 대조하여 역사적 신빙성을 높여주는 일이 된다. 난파선을 몰았던 과거의 항해자들이 사용했던 여러 물건들을 통해 우리는 특별한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 청동기 시대 도버 보트를 통해서는 고대에서도 정착지간 장거리 해상교류가 충분하게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사례가 된다. 현대인은 막연하게 고대에는 해상 교류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지만 그러한 편견을 깨주는 것이다. 그 외에도 대항해시대에 침몰한 여러 배들은 항해 일지와 보고서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난파한 위치를 추적 뿐 아니라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항해자 혹은 승무원의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메리 로즈호에 탑승했던 궁수들의 뼈와 치아를 통해서 연대측정을 하고 궁수들 가운데 한 명은 영국 출신이 아닌, 이국에서 온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것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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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웠던 것과 더 알아보고 싶은 것들

한 편으로 아쉬웠던 점은 아시아권에서 침몰한 난파선들의 사례가 매우 적다는 점이다. 아시아권에서는 서양에 비해 확실히 난파선 발견이 적다. 이것은 아시아에서는 난파선이 적게 침몰했다거나, 해상교류가 적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여러 환경적 요인과, 역사 기록의 부재 및 단절, 수중고고학을 위한 전문 인력의 부족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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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로즈호는 1545년에 침몰했는데, 영국에서는 이미 난파선 발굴 위원회를 조직해서 수십 년에 걸쳐 조사와 발굴을 체계적으로 진행하여 정말 방대한 역사적 자료들을 남겨주었다. 승무원의 유골, 청동포 철제 대포, 아르케부스, 플린트락, 장궁, 화살, 갑옷과 헬멧, 여러 항해와 선박 관련된 물품들, 식기와 식량들, 의료 및 위생 관련 물품들, 승무원들의 개인장비는 물론이고 악기나 보드게임인 백게먼도 발견되었다.메리 로즈호가 침몰한 후 한 세대쯤 지나면, 동아시아에서는 한중일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된다. 군선들이 모여 일대해전을 벌였던 것이 최소한 20회 이상인데, 단 한 척의 판옥선이나 거북선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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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선의 조운선이나 군선들이 근해나 강을 통해 항해해서 만일 침몰하거나 난파해도 자재를 수거하기 위해 금방 건져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 척도 발견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흔적조차 없다는 것은 수중고고학을 이제는 알게 된 사람의 입장으로써 의아하기도 하고 관련해서 왜 그런 것인지 더 찾아보고싶게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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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및 감상

책이 전달해주는 여러 귀중한 역사적인 사실도 흥미롭고 놀라운 부분이지만, 그보다 더 감명 깊게 생각되어지는 것은 난파선 발굴을 향한 저자, 데이비드 기빈스의 열정이다. 수중고고학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책에 그대로 투영된다. 대학 학부생이 되기도 이전에 난파선과 잠수에 흥미를 가졌고, 어릴 적에 직접 장비를 만들어 잠수를 하기도 한다. 나중에 잠수 자격증 얻었을 때에는 온갖 위험한 수역을 넘나들며 유물을 발굴하며, 잠수병의 위험과 수중동굴에서의 조난에서도 살아남기도 하고. 실제로 동료를 수중사고로 잃기도 하는 등 갖은 일들을 겪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열정과 탐구심 잃지 않으며 난파선을 좇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이게 역사책인지 에세이인지 헷갈릴 정도라 나 또한 정말 신기한 경험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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