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리아의 핵심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세계질서는 사실상 서구 중심의 역사 서술과 개념 정의에 의해 구성되어 왔으며, 이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반서구 정서가 아니라, 세계질서 개념 자체를 둘러싼 인식론적 전환의 요구에 가깝다.
그는 특히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라는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중심의 질서가 인권,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규범을 기반으로 확산되었고, 이는 보편적 모델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아차리아는 이 질서가 결코 전 지구적 합의의 산물이 아니며, 많은 비서구 문명과 국가들은 이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거나 변형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지, 필연적 종착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책은 탈식민주의적 문제의식과 맞닿는다. 세계질서의 형성 과정에서 서구 지배가 물리적·제도적 차원뿐 아니라 인식의 차원에서도 강하게 작동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국제정치의 이론과 개념, ‘문명’의 정의, 발전의 기준까지도 서구적 틀 속에서 정립되었다는 것이다. 아차리아는 이러한 서술을 해체하고, 비서구 문명들이 세계질서의 형성과 유지에 기여해온 연결성을 복원하려 한다.
그는 세계사의 흐름을 수메르, 이집트, 페르시아, 그리스, 헬레니즘 제국, 인도, 중국, 로마 등으로 확장해 제시하며, 세계질서의 기원을 근대 유럽 체제에 한정하지 않는다. 특히 고대 근동과 아시아 문명권에서 나타난 외교 관행, 조공 체계, 상호 승인 구조 등을 초기 국제질서의 사례로 제시한다. 아마르나 외교는 그 대표적 예다. 이는 단순한 지역 외교가 아니라, 상호 규범과 위계, 협상의 구조를 갖춘 체계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는 세계질서를 단일 패권 중심의 보편 제국 모델로 이해하는 관점을 거부하는 데로 이어진다. 로마 제국, 중국의 천하관, 근대 유럽 제국주의, 미국 중심 질서 모두 보편 제국의 이상을 추구했지만, 실제 세계는 언제나 다수의 권력 중심이 공존하는 다극질서에 가까웠다고 본다. 따라서 21세기 역시 하나의 초강대국이 전 세계를 통합하는 체제가 아니라, 다양한 지역 질서가 병존하는 구조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문화적 다원주의를 세계질서의 핵심 조건으로 제시한다. 세계는 단일 문명권의 확장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과 정치적 전통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질서 역시 단일 규범에 의해 통합되기보다, 상호 인정과 조정 속에서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같은 단순한 패권 충돌 도식 역시 비판 대상이 된다. 세계질서는 단지 부상국과 기존 패권국의 군사적 충돌 여부로 설명될 수 없으며, 경제적 상호의존과 문화적 연결성, 제도적 네트워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구조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점에서 아차리아의 접근은 국제정치를 힘의 분포만이 아니라 규범과 인식, 상호 구성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구성주의적 시각과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