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지정학 - 5000년 문명사를 통해 보는 세계질서의 대전환 ㅣ 그레이트 하모니 3
아미타브 아차리아 지음, 최준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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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상과 기대

아미타브 아차리아의 『21세기 지정학(The Once and Future World Order)』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은 레이 달리오의 『변화하는 세계질서』였다. 두 책 모두 ‘세계질서’라는 거대한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유사해 보였다. 그러나 읽어보니 접근 방식은 상당히 달랐다. 달리오가 금융과 경제사의 흐름, 통화 체제와 부채 구조, 패권국의 경제적 흥망을 중심으로 질서의 변화를 설명하려 했다면, 아차리아는 세계질서를 구성해온 사상과 문명, 그리고 역사적 인식 틀 자체를 문제 삼는다.


즉, 이 책은 세계질서를 “누가 지배했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세계질서를 어떻게 정의해왔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점에서 아차리아의 서술은 정치경제학적 분석이라기보다 일종의 사상사적·구성주의적 재해석에 가깝다. 특히 서론은 강한 어조로 시작한다. 서구 지배가 만들어낸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보편적 진보의 서사로 받아들이는 통념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도발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문제 제기는 독자를 곧바로 ‘탈서구’적 관점의 논쟁 속으로 끌어들인다.


덧붙여서 출판사에서 제목을 왜 21세기 지정학으로 했는지 궁금하다. 딱히 21세기 지정학을 다루는 내용이 아닌데 원서 제목도 '과거와 미래의 세계질서'에 가까운 의미이므로 저자들에게 혼동을 주는 번역이라 생각이든다. 아마 현대를 살아가기 바쁜 한국인들의 흥미를 이끌 제목으로 선택된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의 전반적 주장과 내용

아차리아의 핵심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세계질서는 사실상 서구 중심의 역사 서술과 개념 정의에 의해 구성되어 왔으며, 이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반서구 정서가 아니라, 세계질서 개념 자체를 둘러싼 인식론적 전환의 요구에 가깝다.


그는 특히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라는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중심의 질서가 인권,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규범을 기반으로 확산되었고, 이는 보편적 모델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아차리아는 이 질서가 결코 전 지구적 합의의 산물이 아니며, 많은 비서구 문명과 국가들은 이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거나 변형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지, 필연적 종착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책은 탈식민주의적 문제의식과 맞닿는다. 세계질서의 형성 과정에서 서구 지배가 물리적·제도적 차원뿐 아니라 인식의 차원에서도 강하게 작동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국제정치의 이론과 개념, ‘문명’의 정의, 발전의 기준까지도 서구적 틀 속에서 정립되었다는 것이다. 아차리아는 이러한 서술을 해체하고, 비서구 문명들이 세계질서의 형성과 유지에 기여해온 연결성을 복원하려 한다.


그는 세계사의 흐름을 수메르, 이집트, 페르시아, 그리스, 헬레니즘 제국, 인도, 중국, 로마 등으로 확장해 제시하며, 세계질서의 기원을 근대 유럽 체제에 한정하지 않는다. 특히 고대 근동과 아시아 문명권에서 나타난 외교 관행, 조공 체계, 상호 승인 구조 등을 초기 국제질서의 사례로 제시한다. 아마르나 외교는 그 대표적 예다. 이는 단순한 지역 외교가 아니라, 상호 규범과 위계, 협상의 구조를 갖춘 체계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는 세계질서를 단일 패권 중심의 보편 제국 모델로 이해하는 관점을 거부하는 데로 이어진다. 로마 제국, 중국의 천하관, 근대 유럽 제국주의, 미국 중심 질서 모두 보편 제국의 이상을 추구했지만, 실제 세계는 언제나 다수의 권력 중심이 공존하는 다극질서에 가까웠다고 본다. 따라서 21세기 역시 하나의 초강대국이 전 세계를 통합하는 체제가 아니라, 다양한 지역 질서가 병존하는 구조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문화적 다원주의를 세계질서의 핵심 조건으로 제시한다. 세계는 단일 문명권의 확장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과 정치적 전통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질서 역시 단일 규범에 의해 통합되기보다, 상호 인정과 조정 속에서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같은 단순한 패권 충돌 도식 역시 비판 대상이 된다. 세계질서는 단지 부상국과 기존 패권국의 군사적 충돌 여부로 설명될 수 없으며, 경제적 상호의존과 문화적 연결성, 제도적 네트워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구조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점에서 아차리아의 접근은 국제정치를 힘의 분포만이 아니라 규범과 인식, 상호 구성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구성주의적 시각과 맞닿아 있다.


소감과 비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질서를 단선적 진보의 서사에서 분리해내려는 시도에 있다. 특히 서구 지배를 세계사 발전의 중심축으로 간주하는 관점에 균열을 내는 작업은 의미 있다. 세계질서는 본질적으로 연결성 속에서 형성되어 왔으며, 어느 한 문명권의 독점적 성취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은 설득력이 있다.


또한 다극질서에 대한 전망 역시 현실적인 분석으로 보인다. 정보기술의 발달과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통합은 제한적이며 지역적 자율성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미래 세계가 단일 보편 제국으로 수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판단에는 공감이 간다.

그러나 몇 가지 비판적 지점도 존재한다.


첫째, 탈서구적 관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비서구 문명의 기여를 상대적으로 더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느껴진다. 균형을 회복하려는 시도는 이해되지만, 서구 제도의 영향력과 제도적 유산이 다소 축소되어 설명되는 듯한 인상도 있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완전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전 세계 정치 구조에 미친 심대한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고대 외교 체계를 현대적 의미의 세계질서와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이 개념적으로 얼마나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아차리아는 정치 전근대의 제국들 가리켜 "사상과 통치 방식에 있어 창조적 공간으로 상당 기간 유지된 독립적 실체였다. 따라서 그들을 세계질서로 간주해야 한다. - p.16"라고 주장했으나, 이는 상당히 비판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다. 지역 강대국 체계와 전지구적 질서를 동일 범주로 묶을 경우, ‘세계’라는 개념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장될 위험이 있다. 물리적 한계에 따라 '당대인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제한적 공간이 세계나 다름없다.'라고 주장할 수 있을 지언정, 현대인이 받아들이는 세계질서와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팍스는 환상이다’에 대한 비판적 주장 역시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힘에 의한 안정이 국제정치에서 수행해온 기능적 측면은 보다 정교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강제적 평화가 반드시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일정 수준의 질서를 제공해온 것도 실증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론

『21세기 지정학』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해체하고, 세계질서를 다원적·탈서구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이 책은 세계를 하나의 중심에서 설명하려는 습관에 의문을 제기하며, 문화적 다원주의와 다극질서, 그리고 문명 간 연결성을 강조한다. 서구의 오만과 편협함이 현재의 세계질서에 변화를 몰고 왔지만, 서구가 퇴각하고 다극질서가 된다고 해서 세계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차리아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일부는 논쟁적이며, 일부는 더 많은 실증적 보강이 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세계질서는 과연 서구가 설계한 단일한 체제였는가, 아니면 다양한 문명이 상호작용하며 구성해온 복합적 산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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