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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젊은 층으로 퍼져나가는 소소함, 보통의 것, 일상, 오늘에 대한 긍정 같은 것인데, 이것을 단순히 '극심한 경쟁'과 '팍팍한 현실', '불안정한 미래'로 인한 도피적 성향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302
SNS에 대한 대중문화 비평 에세이 같은 제목을 하고 있는 이 책은 밀레니얼 세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밀레니얼 세대인 저자가 쓴 사회비평 에세이이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 당사자의 입장에서 사회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투명하게 기술한다.
무수한 짧은 꼭지들로 이루어진 에세이들은 근 몇 년간 이슈가 된 대부분의 키워드를 다룬다. 환각/젠더/공동체 의 세 챕터로 나누어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의 시각을 냉철하게 통찰하고 적절하게 비판하며 논의거리를 내어준다.
SNS | 연애 | 욜로 | 청년문제 | 하락하는 독서율 | 포기 트렌드 | 가치관 | 여성혐오 | 미투운동 | 낙태 | 맘충 | 노키즈존 | 아동혐오 | 적폐 | 분노 | 편견 | 가부장제 | 소수자 차별 | 노인 문제 | 정의란 무엇인가 | 세월호 | 폭력 | 갑질 | 건강한 공동체
등의, 최근 화제가 된 키워드들에 대한 증언을 기술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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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낭만주의와 현실주의의 분열, 즉 현재를 위해 나머지 현실을 불태워버리는 욜로적 세계관과 나의 모든 경험은 취업을 위한 스펙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자기계발적 세계관의 분열과 같았다.” 29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깨끗하고 행복한 건물에서 감성 가득한 빛깔의 사진들로 가득한 플랫폼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소비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그럴듯한’ 이미지를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이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단해지면서, 플랫폼의 이미지와 현실의 이미지는 점점 분열되고 있다. 이 분열에서 오는 가치관의 붕괴,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불안은 가중되고 상처는 깊어져만 간다.
불안정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청년문제가 만연한 현실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상에 배반당하는 것은 밀레니얼 세대에겐 익숙한 일이다. 기성세대들이 지닌 정형화되고 수치화된 미래의 청사진은 허상일 뿐이니 조금의 수고만 들이면 바로 손에 들어오는 보여지는 이미지에 우리는 집착하게 된다. 이것 자체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단지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북스타그램, 운동스타그램 등, 건강한 습관의 유지를 위해 전시효과를 이용하는 장치는 현실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다만 이미지를 위해 현생의 일부를 포기하는, ‘포기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위험하다. 포기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며, 책임에는 노력이 따른다. ‘평범하게 행복해지고 싶다’는 소소한 이상을 위해 정말로 챙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다시 돌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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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는 존재한다. 그것은 내 몸에 새겨진 기억이고, 내 삶 전체를 통해서 경험한 현실이다.” 189
놀랍게도 저자는 남성이다. 그것도 남고를 나왔다. 평생의 경험을 통해 지켜본 현상을 진솔하게 고백하며 여성 문제는 곧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문제라는 것을 저자는 단정 짓는다. 여성을 물건으로 바라보는 시각,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박탈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관은 가부장적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폐단이며, 이는 명백한 문제이다. 저자는 이 시대를 지배하는 문화, 정신구조 등이 남성에게 여성을 약자로 바라보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가능하게 하며, 나아가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미투 운동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작 고질적인 ‘수직적 권력에 의한 폭력’을 뿌리 뽑을 수 있는 방법이며, 인간이 인간의 권리를 지키는 것을 돕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가부장제의 완벽한 아버지상이 불가능해진 현실에서 자식들에게 기억되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결국 젠더문제 또한 모두의 문제이므로, 과열되어가는 성별간의 갈등 속에서 서로를 무조건 적시하는 시각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결국은 감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하지만 과녁을 엉뚱한 곳에 향하고 있으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마치 남성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고 매도하는 극단적인 일로 여겨질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 현실적이고 실재하는 싸움의 중요성에 비하면 부차적인 기분의 문제일 뿐이다.”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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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대한 이해 자체를 거부하는 형식의 담론은 결코 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284
사회는 점점 복잡해진다. 살 냄새 느껴지는 마을이 파괴되고 깨끗하고 정돈된 도시들이 들어선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권리를 찾는다. 이 ‘권리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인식이 과열되고 있다.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 안에 갇히면 남의 권리를 짓밟는 것을 합리화하게 된다. 순수한 선의는 사라져간다. 사람들은 하이에나처럼 증오를 퍼부을 대상이 나타나기만을 벼른다. 그리고 이 대상은 대부분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다. 폭력에는 합리화가 따라다니며, 증오에는 권리라는 명분이 붙는다. 저자는 사회를 아군과 적군으로 재단하는 이런 단순한 시각을 경계하며 ‘이해’와 ‘용납’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용납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소수자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같은 인간으로 공동체 안에서 어떠한 불평등을 겪지 않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해가 되더라도 용납하면 안 되는 일이 있다. 정치가가 비리를 저지를만한 마땅한 상황을 겪고 있어 연민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그들이 타당한 벌을 받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
인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사회 구조에 대한 적절한 고찰은 꼭 필요하다. 긍정적인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타인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실제로 순수한 선의가 사회에 없어지는 경향은 사회에 부정의를 퍼뜨리기만 한다. 하지만 사회에는 선의의 이름으로 남의 사적인 공간에 진흙발로 들어와 헤집고 나가는 과한 오지랖에 지친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간섭은 더더욱 심하다. 결국 진정한 선의 또한 개인주의와 평등이 실현되어야 가능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개인의 선의가 모여 가치가 눈에 보이고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114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정지우 지음, 한겨레출판
대표적인 것이 젊은 층으로 퍼져나가는 소소함, 보통의 것, 일상, 오늘에 대한 긍정 같은 것인데, 이것을 단순히 ‘극심한 경쟁‘과 ‘팍팍한 현실‘, ‘불안정한 미래‘로 인한 도피적 성향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 P302
그것은 낭만주의와 현실주의의 분열, 즉 현재를 위해 나머지 현실을 불태워버리는 욜로적 세계관과 나의 모든 경험은 취업을 위한 스펙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자기계발적 세계관의 분열과 같았다. - P29
여성혐오는 존재한다. 그것은 내 몸에 새겨진 기억이고, 내 삶 전체를 통해서 경험한 현실이다. - P189
그것이 마치 남성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고 매도하는 극단적인 일로 여겨질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 현실적이고 실재하는 싸움의 중요성에 비하면 부차적인 기분의 문제일 뿐이다. - P162
무언가에 대한 이해 자체를 거부하는 형식의 담론은 결코 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 P284
결국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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