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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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듯이 글을 써야 자연스럽게 읽혀서 좋다고들 하지만, 여기서 '말하듯이'는 구어체로 쓰라는 뜻이지 말로 내뱉는 대로 쓰라는 건 아니다." 85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쓴 글을 스스로 고쳐야 한다. 논문, 과제, 취미, 이메일 등,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종류의 글을 쓰고 고친다. 교정 교열 작업은 참으로 번거롭다. 어떤 면에서는 글을 처음 쓸 때보다도 고통스럽다. 완벽한 글을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글을 되풀이 해 읽을 때는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데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보면 왜 이런 문장을 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과거의 자신을 때리고 싶어질 때도 있다. 나는 이것을 오타 질량의 법칙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아무리 고쳐도 모두가 행복할 수 없을 것만 같아 슬퍼질 때도 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한국어 어문 규범 11항이다. 소리대로 적는 건 간단해보여도 언제나 어법이 문제다. 띄어쓰기, 용언 활용형, 동사의 명사형 등,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선 신경조차 쓰지 않던 것들이 글로 쓰면 이상해보일 때가 있다. 맞춤법에 맞는 표현이라 하더라도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어색해보여 곤란할 때도 있다. 글을 쓰는 모두는 제대로 된 문장을 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문장이란 대체 무엇일까? 맞춤법을 다루는 책을 읽어보아도 어렵고 복잡한 규칙들과 수많은 예외들이 머릿속을 점령하기만 하지 내 글에 딱 맞는 문장은 알려주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이 책은 막막해하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16년에 나온 이 책은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이라는 카피를 배신하지 않는 실용적인 교정교열 책이라 입소문을 탔고 꾸준히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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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문장에 '있다'가 거의 중독 수준으로 남용된다는 걸 말해 주는 문장들이다." 60

 

이 책은 교정교열 전문가가 쓴 책이다. 그래서인지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교정교열시 주의해야하는 표현, 사람들이 자주 틀리는 표현을 비롯해 고치면 더욱 나아질 수 있는 문장들을 모은 잘못된 예시와 수정된 예시를 비교하는 구성을 하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습관처럼 사용하는 표현, 필요 없는데 어딘가 허전해서 덧붙이는 표현, 구체적인 표현 대신 선택하는 있어 보이는표현. 수정한 문장을 보고 나서야 처음 문장이 어색한 문장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스스로의 언어생활을 되짚게 된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문법 개념들을 쉽게 풀어내었고 길어지면 지루해질 수 있는 내용을 짧게 쪼개 소화하기 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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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장은 다 이상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한 것처럼 말이죠." 102

 

맞춤법을 다루는 꼭지가 끝날 때마다 문장에 대한 고찰이 담긴 짧은 흥미로운 소설 꼭지가 배치되어있다. 교정교열 작업의 실무와 전문가가 원고를 보는 시각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소설은 주인공-저자의 이메일로 과거에 교정교열 작업을 한 책의 저자인 함인주 작가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의문을 제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주인공은 함인주 작가가 이미 책으로 출판된 자신의 문장에 대해 이상했나요?’가 아닌, ‘이상한가요?’라고 현재형으로 질문했다는 것에 의문을 제시하며 올바른 문장’, ‘문장을 보는 시각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 소설에서 교정교열에 대한 저자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글쓰기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라고. 저자와 독자가 합의한 이 기본 원칙만 지킨다면 교정교열에 절대적인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럼에도 우리가 문장을 다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장을 다듬는 글은 보통 저자만의 세계에서 벗어난 타인, 독자가 있는 글이다. 독자가 없다면 문장을 고칠 필요는 없다. 독자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저자가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를 독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모두가 고심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교정교열은 저자의 세계에 이입하지 않은 독자의 입장에서 저자의 글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저자가 독자를 향해 놓은 다리를 보수하는, 잘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작업이다. ‘완벽한 문장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교정교열 일은 AI에게 맡기면 될 뿐이다. 저자와 독자 사이를 이어주는 딱 알맞은 문장을 찾는 작업. 이 작업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디까지 진행해야하는지 모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올해 '파주 북소리 축제'에서 진행된 저자와의 만남강연에서 김정선 저자를 만날 수 있었다. 매우 좋은 강연이었다. 사인도 받았다 (뿌듯)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지음, 유유

 


말하듯이 글을 써야 자연스럽게 읽혀서 좋다고들 하지만, 여기서 ‘말하듯이‘는 구어체로 쓰라는 뜻이지 말로 내뱉는 대로 쓰라는 건 아니다.
- P85

한국어 문장에 ‘있다‘가 거의 중독 수준으로 남용된다는 걸 말해 주는 문장들이다.

- P60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한 것처럼 말이죠.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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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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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열심이었던 모양이다. 그만두길 잘했다.“

 

2018년의 에세이시장은 괜찮아로 도배되었다. 과도한 노력을 숭상하고 강요하는 사회 풍토를 견뎌내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남의 기준에 맞추려 하지 말라는, 스스로의 인생을 찾으라는 위로를 담은 에세이가 많이 출간되었다. 퇴사붐, 스스로 휴식을 챙기는 자휴붐이 함께 일었고 안정과 규칙을 강요하는 이들에게 반항하는 통쾌한(?) 일화들이 사이다썰로 떠돌았다. 17년 중후반부터 18년을 통틀어 퍼진 욜로에 대한 로망은 현실에 지친 이들에게 도피처를 제공했다.

 

이 책도 그 시절 트렌드에 잘 맞았다. 40대에 퇴사를 한 저자가 돈이 줄 막연한 행복만을 따르던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며 다시는 아등바등 살지 않겠다는 홀가분한 다짐을 외치는 그림에세이. 모든 걸 벗어던진 남성의 늘어진 모습이 담긴 표지, ‘야매 득도 에세이라는 카피처럼 가볍고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브런치 글을 모은 이 책은 퇴사 후, 사회의 기준에 따르지 않으며 느긋하고 느린 일상을 보내는 저자의 소소한 깨달음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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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내 시간을 원했던 이유는 무엇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안하고 싶어서였다.“

 

책을 통해 저자의 가치관을 알 수 있다. ‘욜로가 별건가라는 제목의 꼭지를 봐도 알 수 있듯 저자는 돈도 생활도 모두 중요하지만 지금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안할 시간과 자유가 필요하며, 그것을 챙기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메시지를 외친다. 조금은 막막하고 조금은 춥지만 얽매이지 않는 자유에서 오는 행복을 만끽하는 가치관이 돋보인다.

 

휴식 없이 경주하듯 달려가는 인생을 살다가도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사회구조에 어쩔 수 없이 소확행과 사토리로 빠져나가는 요즘 세대의 젊은이들의 선택을 저자는 비난하지 않는다. 결국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다. 그것을 찾는 방법은 개인이 선택할 문제이다. 경쟁에 매몰되는 생활은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채로 앞으로만 나아가다 결국 불행해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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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특별한 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꿔본다.

 

우리는 남과 자신을 습관적으로 비교하며 패배감을 느낀다. 절망을 소비하는 사회. 불행이 세대를 타고 내려오는 사회. 젊은이들이 아무리 애써봐야 사회는 바뀌지 않으며, 사회를 바꾸기 위해선 세대를 막론한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자신의 소중한 꿈과 열정을 값싸게 사회에 내바치지 말라고 한다. 유한한 에너지는 정말로 중요한, 자신의 행복을 찾는 곳에 써야 한다. 열정과 꿈은 스펙이 아니며, 강요받는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인생은 어차피 대부분이 지루하다. 이런 지루한 인생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책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본다. 40대 남성, 10년 동안 사귄 여자 친구가 있으며, 1년 동안 놀고먹을 돈을 비축한 후 감행한 퇴사. 저자가 다시 일해야 할 때가 오면 그 때 돈을 벌면 돼라고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건 지난 세월동안 쌓아온 경력을 기반으로 한 발언이 아닐까. 저자와 비슷한 나이 대에 가정과 인생의 고민 사이에 치이며 노후 걱정에 일상 속 행복을 찾지 못하는 독자들에게는 공감을 이끌 수 있을까, 나는 당사자가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젊은이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냉소적인 태도가 된다.

 

코로나 시국에 권고사직당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앞길이 막막한 요즘 시류의 트랜드와는 잘 맞지 않는 느낌이다. 확실하고 안정적인 자금, 미래를 향한 계획, 확실한 결과를 내어주는 성장을 원하는 독자, 특히 젊은 독자층에게 욜로를 권장하는 말은 미래를 포기하라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다만 불행에 매몰되지 않는 마음의 여유, 다른 것은 포기해도 자기 자신만은 포기하지 말라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싶은 이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하완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아무튼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열심이었던 모양이다. 그만두길 잘했다.

그토록 내 시간을 원했던 이유는 무엇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안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별한 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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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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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 165


누구나 이 책을 알고 있다.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페미니즘에 관심이 적은 사람이라도 이 책의 제목은 알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지극히 평범한 여성의 일생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책은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자극하여 인기를 끌었다.


페미니즘 담론이 거세지면서 공격을 위한 공격이 SNS상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던 시기였다. 여성 연예인들이 독서인증글을 올리기라도 하면 온갖 악성 덧글이 달려 여성 연예인들의 입을 막았다. ‘여자 연예인의 불온서적이라는 호칭까지 붙을 정도로 이 책에 대한 많은 논의가 온라인/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오갔다. 하지만 정작 커뮤니티에 산재하는 리뷰나 의견들을 살펴보면 소설을 읽지도 않고 비난하는 비난을 위한 비난’, 혹은 픽션인 소설이 현실 담론에 끼어드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을 핑계 삼아 관련 목소리를 믿고 거르는경향도 있었다. 너무 유명하니까 나도 읽었지하고 한마디 거들어야 할 것만 같은데 여러 이유로 읽지는 못하고 동영상 컨텐츠나 리뷰글로 돌아다니는 요약 컨텐츠를 찾아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누구나 이 책을 알고 있지만, 의외로 이 책의 내용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은 드문 이상한 책. 인터넷상에 빈번히 인용글이 올라와 책을 읽지 않아도 내용을 알 것만 같은 책. 불편한 내용일까봐, 커뮤니티에서 공격받을까봐, 혹은 너무 큰 정신적 소모가 올까봐 책을 읽기를 미루고 있는 독자들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명성이 너무 높아지면 오히려 굳이 읽게 되지 않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이 그런 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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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지는데, 20~29세 여성의 63.8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 - 146


이 책에는 현실이 그대로 담겨있다. 의사의 시점으로 담담히 기술해가는 김지영씨의 일대기는 질척한 감정묘사도, 극적인 반전도 존재하지 않지만 여성이라면, 여성의 현실을 지켜봐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장면들이라 그만큼 파괴적이다. 현실을 직면하는 건 누구나 힘들다. 픽션인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사실적인 에피소드 사이사이에 이 일은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하듯 통계수치가 삽입되어있어 마치 르포를 읽는 것 같다.


너무나 평범하게 살아온 김지영씨. 어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운이 좋다고도 말할 수 있는 김지영씨.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을 타고났는데도 그녀가 괴로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녀는 괴로워야할까. 김지영씨의 가정환경은 불우하지 않았고 취업도 하였으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그럼에도 정신병이 생겼다는 것에서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몰아세웠는지에 대해 우리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녀의 병은 그녀가 심약했기 때문에 발병한 것이 아니다. 그 원인을 우리는 김지영씨 개인에게서 찾으면 안 된다. 이 소설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구조, 이렇게 좋은 사람이 주변에 있음에도 극복할 수 없는 가부장제의 한계를 그린다. 김지영씨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내뱉는 목소리와 행동에서는 그녀뿐 아닌 다른 여성들의 비명이 섞여있다. 뼛속까지 여성혐오에 물들어버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목소리를 죽이고 노력했으나 좌절한 절망의 목소리이다. 김지영씨가 선택한 연애, 결혼, 출산은 그녀의 삶에 짐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선택했으니 그것에 따른 희생을 스스로 치러야 한다는 것은 여성을 사회의 공동체에서 내치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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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 175


우리는 어떤 태도로 이 소설을 읽어야 할까.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가부장제가 만연한 대한민국 사회에 정녕 희망이 있을지 묻는다. 김지영씨는 우리의 주변에서 있을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이런 김지영씨가 나의 아내, 나의 언니, 나의 동생이라고 생각하면 경각심이 높아진다. 하지만 남의 일이라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일이라면? 아마 우리는 습관적으로 안타깝지만 나에게만 피해가 가지 않으면 돼하는 마음으로 눈을 돌려버릴 것이다. 사람은 습관적으로 나의 시선으로만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결말에는 현실의 씁쓸함이 그대로 담겨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여성이 아니면 여성문제를 그들의 문제로 생각하게 되고 마는 확장되지 못한 사고의 안타까움이라고 해야 할까. 이 소설 한 권을 통해 김지영이라는 인물에 대해, 그녀의 현실과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구조의 문제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고 자각했어도, 독자의 누군가는 소설을 덮고 나서 출산휴가를 사용하는 동료 때문에 자신의 일이 늘어난 것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팀원들과 맞장구를 칠지 모른다.


우리 모두가 이 문제의 당사자이다. 그것을 잊으면 안 된다. 소설이 바라보는 결말에는 황폐한 미래뿐이지만, 이 시각을 보기 좋게 배신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독자들이다.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6배나 더 빠르게 퍼지는 세상이다.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아이린이 이렇게나 욕을 먹는건지 모르겠다는 트윗에 주인공이 메갈임이라는 덧글이 달린 것을 보았다. 그저 소설일 뿐인데 읽지도 않은 채로 무조건적인 비판을 끼얹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아마 그들도 이 소설에 적힌 일화들이, 이 소설에 공감하는 수많은 현실 속 김지영의 목소리들이 허구만은 아니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눈치 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회구조는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것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당연시하게 누려왔던 것들이 뺏길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들의 발작적인 불편함은 그곳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변화는 시작된다. 누군가는 고집을 멈추고 남에게 귀를 열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보이는 시야가 달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더욱 불편해져야 한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지음, 민음사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 P165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지는데, 20~29세 여성의 63.8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 - P146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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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100만 부 기념 클래식 에디션)
김수현 지음 / 마음의숲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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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절실한 건, 우리를 증명할 명함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 없는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 p.95

 

이 책이 처음 나온 16년도에만 해도 공론장에 나오는 개인(특히 소수자)의 목소리는 힘을 가질 수 없었다.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되어 이를 기반으로 한 페미니즘의 물결이 생기기 시작하고, 편견과 부조리로 가득한 사회구조에 지친 사람들이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조금씩 자각하기 시작했다. 이미 일상적으로 갈려나가는 청춘들에게 더 많은 노력을 강요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효과는 없어졌고,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해지지 않아 많은 청춘들은 그 원인을 스스로에게 찾으며 고통스러워하곤 했다.

 

이 책은 이들에게 타인이 당신을 공격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며, 행복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메시지를 알기 쉽게 전달한다. 감정에 치우친 공감을 내세운 에세이가 아닌, 저자가 읽은 책 구절을 인용하며 논리를 전개하는 이 책은 저자의 말에도 적혀있다시피 사회 심리학을 알기 쉽게 풀어냈기 때문에 더욱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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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과거에 붙잡혀 살고 싶지 않다면 과거의 연약했던 나에게 위로를 미성숙했던 그 모든 존재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한다.” - p.263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크게

 

* 나에게 상처를 주는 타인에 대한 일침과 대응방법

* 나에게 상처를 주는 나 자신에 대한 충고

* 개인의 행복을 방해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주장만을 나열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는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행동해야 타인의 언동과 거친 사회에 스스로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지에 따른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남이 정해주는 길을 따르는 것이 모범적이라고 교육받아온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 사회가 정해놓은 바람직한 어른의 모습과 사회 구조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절망을 유쾌한 일러스트와 알기 쉬운 설명으로 기술하며 답답한 사회초년생들의 마음을 뻥 뚫어준다.

 

아마 그렇기에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끈 게 아닐까싶다. 겸손과 배려, 협조와 침묵이 미덕인 일본 사회는 어느 면에서 한국 사회와 닮았기 때문이다.

 

소제목과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다시피, to do list의 컨셉을 잡고 있어 신선하다. 에세이이지만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라는 결심이 담긴 제목과 잘 어울리며,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찾기 위해 알아두어야 하고 행동해야 할 목표들을 목차삼아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도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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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 대신 어떤 도움도 주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 p.224

 

저자의 행복철학은 철저한 개인주의이다. 하지만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자신과 상대방을 하나의 인간으로 인식하면서 처음으로 순수한 선의가 가능해진다. 다른 사람도 자신과 동등한 개체로 인식해야 공감할 수 있고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꽤 흔한 논리이지만 출간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주장이었을 것이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순종적이고 눈치 있는 사원의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의 시간과 정신력을 깎아내며 남과 맞추지만 미처 풀지 못한 스트레스와 상처들에 지쳐가고, 결국 자신의 멘탈을 관리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게 되는 일은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사회에서 갈려나가는 것은 개인이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권리를 현명하게 챙기지 않는, 스스로 비굴해지는 개인이다. 저자는 이들에게 팩트폭행을 한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건 스스로 뿐이며, ‘스스로의 인생은 스스로 꾸밀 수밖에 없다.

 

이 단단한 위로와 조언은 누군가에게는 뻔한 말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앞길을 비춰주는 손전등이 될 것이다. 사회는 냉담하지만 비관적으로 바라볼 정도는 아니다. 개인은 개인에게 친절할 수 있고, 스스로의 행복을 찾을 능력이 있으니까.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김수현 지음, 마음의숲

 


우리에게 절실한 건, 우리를 증명할 명함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 없는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 P95

더 이상 과거에 붙잡혀 살고 싶지 않다면 과거의 연약했던 나에게 위로를 미성숙했던 그 모든 존재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한다
- P263

나는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 대신 어떤 도움도 주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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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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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젊은 층으로 퍼져나가는 소소함, 보통의 것, 일상, 오늘에 대한 긍정 같은 것인데, 이것을 단순히 '극심한 경쟁''팍팍한 현실', '불안정한 미래'로 인한 도피적 성향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302

 

SNS에 대한 대중문화 비평 에세이 같은 제목을 하고 있는 이 책은 밀레니얼 세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밀레니얼 세대인 저자가 쓴 사회비평 에세이이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 당사자의 입장에서 사회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투명하게 기술한다.

 

무수한 짧은 꼭지들로 이루어진 에세이들은 근 몇 년간 이슈가 된 대부분의 키워드를 다룬다. 환각/젠더/공동체 의 세 챕터로 나누어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의 시각을 냉철하게 통찰하고 적절하게 비판하며 논의거리를 내어준다.

 

SNS | 연애 | 욜로 | 청년문제 | 하락하는 독서율 | 포기 트렌드 | 가치관 | 여성혐오 | 미투운동 | 낙태 | 맘충 | 노키즈존 | 아동혐오 | 적폐 | 분노 | 편견 | 가부장제 | 소수자 차별 | 노인 문제 | 정의란 무엇인가 | 세월호 | 폭력 | 갑질 | 건강한 공동체

 

등의, 최근 화제가 된 키워드들에 대한 증언을 기술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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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낭만주의와 현실주의의 분열, 즉 현재를 위해 나머지 현실을 불태워버리는 욜로적 세계관과 나의 모든 경험은 취업을 위한 스펙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자기계발적 세계관의 분열과 같았다.” 29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깨끗하고 행복한 건물에서 감성 가득한 빛깔의 사진들로 가득한 플랫폼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소비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그럴듯한이미지를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이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단해지면서, 플랫폼의 이미지와 현실의 이미지는 점점 분열되고 있다. 이 분열에서 오는 가치관의 붕괴, ‘이상현실의 간극에서 불안은 가중되고 상처는 깊어져만 간다.

 

불안정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청년문제가 만연한 현실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상에 배반당하는 것은 밀레니얼 세대에겐 익숙한 일이다. 기성세대들이 지닌 정형화되고 수치화된 미래의 청사진은 허상일 뿐이니 조금의 수고만 들이면 바로 손에 들어오는 보여지는 이미지에 우리는 집착하게 된다. 이것 자체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단지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북스타그램, 운동스타그램 등, 건강한 습관의 유지를 위해 전시효과를 이용하는 장치는 현실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다만 이미지를 위해 현생의 일부를 포기하는, ‘포기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위험하다. 포기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며, 책임에는 노력이 따른다. ‘평범하게 행복해지고 싶다는 소소한 이상을 위해 정말로 챙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다시 돌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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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는 존재한다. 그것은 내 몸에 새겨진 기억이고, 내 삶 전체를 통해서 경험한 현실이다.” 189

 

놀랍게도 저자는 남성이다. 그것도 남고를 나왔다. 평생의 경험을 통해 지켜본 현상을 진솔하게 고백하며 여성 문제는 곧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문제라는 것을 저자는 단정 짓는다. 여성을 물건으로 바라보는 시각,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박탈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관은 가부장적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폐단이며, 이는 명백한 문제이다. 저자는 이 시대를 지배하는 문화, 정신구조 등이 남성에게 여성을 약자로 바라보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가능하게 하며, 나아가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미투 운동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작 고질적인 수직적 권력에 의한 폭력을 뿌리 뽑을 수 있는 방법이며, 인간이 인간의 권리를 지키는 것을 돕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가부장제의 완벽한 아버지상이 불가능해진 현실에서 자식들에게 기억되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결국 젠더문제 또한 모두의 문제이므로, 과열되어가는 성별간의 갈등 속에서 서로를 무조건 적시하는 시각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결국은 감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하지만 과녁을 엉뚱한 곳에 향하고 있으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마치 남성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고 매도하는 극단적인 일로 여겨질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 현실적이고 실재하는 싸움의 중요성에 비하면 부차적인 기분의 문제일 뿐이다.”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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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대한 이해 자체를 거부하는 형식의 담론은 결코 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284

 

사회는 점점 복잡해진다. 살 냄새 느껴지는 마을이 파괴되고 깨끗하고 정돈된 도시들이 들어선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권리를 찾는다. 권리를 찾는과정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인식이 과열되고 있다.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 안에 갇히면 남의 권리를 짓밟는 것을 합리화하게 된다. 순수한 선의는 사라져간다. 사람들은 하이에나처럼 증오를 퍼부을 대상이 나타나기만을 벼른다. 그리고 이 대상은 대부분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다. 폭력에는 합리화가 따라다니며, 증오에는 권리라는 명분이 붙는다. 저자는 사회를 아군과 적군으로 재단하는 이런 단순한 시각을 경계하며 이해용납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용납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소수자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같은 인간으로 공동체 안에서 어떠한 불평등을 겪지 않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해가 되더라도 용납하면 안 되는 일이 있다. 정치가가 비리를 저지를만한 마땅한 상황을 겪고 있어 연민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그들이 타당한 벌을 받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

 

인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사회 구조에 대한 적절한 고찰은 꼭 필요하다. 긍정적인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타인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실제로 순수한 선의가 사회에 없어지는 경향은 사회에 부정의를 퍼뜨리기만 한다. 하지만 사회에는 선의의 이름으로 남의 사적인 공간에 진흙발로 들어와 헤집고 나가는 과한 오지랖에 지친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간섭은 더더욱 심하다. 결국 진정한 선의 또한 개인주의와 평등이 실현되어야 가능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개인의 선의가 모여 가치가 눈에 보이고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114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정지우 지음, 한겨레출판

 


대표적인 것이 젊은 층으로 퍼져나가는 소소함, 보통의 것, 일상, 오늘에 대한 긍정 같은 것인데, 이것을 단순히 ‘극심한 경쟁‘과 ‘팍팍한 현실‘, ‘불안정한 미래‘로 인한 도피적 성향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 P302

그것은 낭만주의와 현실주의의 분열, 즉 현재를 위해 나머지 현실을 불태워버리는 욜로적 세계관과 나의 모든 경험은 취업을 위한 스펙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자기계발적 세계관의 분열과 같았다. - P29

여성혐오는 존재한다. 그것은 내 몸에 새겨진 기억이고, 내 삶 전체를 통해서 경험한 현실이다. - P189

그것이 마치 남성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고 매도하는 극단적인 일로 여겨질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 현실적이고 실재하는 싸움의 중요성에 비하면 부차적인 기분의 문제일 뿐이다. - P162

무언가에 대한 이해 자체를 거부하는 형식의 담론은 결코 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 P284

결국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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