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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메모 -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ㅣ 아무튼 시리즈 28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그때의 노트들은 이제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메모들은 지금의 내 삶과 관련이 깊다."
모든 사람들은 잊는다. 절대로 잊지 않을거라 결심하는 순간이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세세하고 구체적일 수록 빠르게 잊혀지고, 결국에는 두루뭉술한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메모를 한다. 메모를 하는 행위는 망각을 두려워한 지혜의 산물일까. 역사가 기록 없이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처럼 말이다. 한국인을 '기록의 민족'이라고도 하는데. 선조들에게서 내려온 메모DNA가 어딘가에는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메모'라는 행위를 참 좋아한다. 언제나 작은 수첩과 펜을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기록하는 것에는 설명할 수 없는 낭만이 느껴진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는 메모를 하지 않으면 무언가를 이어가기 힘든 사람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 해가 시작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다이어리를 산다. 서점에 흔한 팬시 문구 메모장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이렇게 많이 사 놓았지만 들고 다니지를 않아서 정작 메모할 때에는 서투르게 긁어모은 문장들이 휴대폰 메모장에 두서없이 들어갈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나는 쌓아두는 것은 좋아하지만 모아 정리하는 것은 못하는 팔자인가보다. 겨울을 대비해 도토리를 수시로 묻어두지만 정작 찾지 못하는 다람쥐처럼 말이다.
이번 독서도 마찬가지였다.
메모를 했는데 없어졌다.
제목이 《아무튼, 메모》이니 기왕이면 나도 메모를 하면서 읽어볼까 하고 생각을 했는데, 리뷰를 쓰려고 찾아보니 써놨던 메모를 몇 가지밖에 찾을 수 없었다.
메모 장소를 통일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밀리의 서재 인용문 메모, 휴대폰 메모장, 테이블 위에 굴러다니던 포스트잇, 때마침 가지고 있던 노트. 나중에 옮겨 놓아야지 하고 영수증 뒤에 적어놓았던 것도 같은데 모르는 사이에 버려버렸다.
메모를 했는데 나중에 찾을 수 없다면 아무 의미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 적었던 기억은 확실히 기억에 남았기에, 나는 이 리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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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손에 들고 있는 메모지가 자신의 삶이다. 그리고 글자가 보인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눠져있다. 1부는 메모에 대한 다양한 고찰, 2부는 저자의 과거 메모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소위 '메모의 화신'이었다는 저자의 메모장을 들춰보는 기분으로 읽었다.
왜 이 문장을 메모한 걸까, 이 메모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었던 걸까. 모든 사람의 메모에는 개인적인 취향, 가치관, 당시의 상황이 함께 작용한다. 메모일 뿐인데 마치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았다. 일방적이지만 조금 저자에 대해 잘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메모의 종류는 다양하다. 일기일 수도 있고 일정 기록일 수도 있고 장보기 리스트일 수도 있고, 책문구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한마디 일 수도 있고 망상이나 뒷담화일 수도 있다. 이런 메모들을 모두 모으면 한 사람이 보인다. 메모는 곧 삶이다. 삶에 필수적인 요소는 아닐지 몰라도 지나가고 나서 다시 돌아보면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메모의 목적은 상관이 없다. 그저 남기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때의 노트들은 이제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메모들은 지금의 내 삶과 관련이 깊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메모지가 자신의 삶이다. 그리고 글자가 보인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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