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 - 동네책방 역곡동 용서점 이야기
박용희 지음 / 꿈꾸는인생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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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그만두고 까페나 하나 하면서 살고 싶다. 매일 커피향을 맡으면서.”

“회사 그만두고 동네에서 책방이나 하고 싶다. 여유롭게 책이나 읽으면서 지낼 수 있잖아.”
 



직장생활이 힘들다며 회사 동료들과 푸념을 나누다 보면 종종 들을 수 있는 말들입니다. 그런데 까페 사장, 책방 사장이 이 말들을 들으면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요. 회사에 매여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까페나 책방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책을 읽는 사람들 숫자가 점점 적어지는 한국에서 책방을, 그것도 자그마한 동네책방을 하겠다는 건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왠지 책방 주인이 된다고 생각하면 여전히 자유, 여유, 낭만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마도 책방을 꿈꾸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일과를 상상하기 때문 아닐까요?

‘오전 9시에 출근해 매장을 간단히 청소한 후 주문 받은 책을 택배 발송합니다. 오전에 손님 몇 분이 다녀갑니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동네 뒷산을 산책합니다. 2시까지 이런 저런 일을 처리하고 30분 정도 낮잠을 잡니다. 오후 손님이 있으면 접대하고 손님이 없으면 출판사와 서점, 독자를 잇는 일을 구상하다 6시에 퇴근합니다. 업무나 사람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도 없고, 읽고 싶은 책도 맘껏 보며 여유롭게 시간을 누립니다.’
 


실제로 이런 모습으로 동네 책방을 운영한 책방 주인이 있습니다.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라는 책에 자신의 동네책방 이야기를 담아낸 역곡동 용서점 주인 박용희씨입니다. 그는 책을 좋아하는 마음과 서점에서 일했던 경험을 자산으로 자신의 책방을 열었습니다. 목표는 “1년 중 12월 한 달은 무조건 문 닫고 여행, 6년 일하고 나면 7년차에는 1년 동안 여행.” 이보다 더 매력적인 책방 운영 목표가 있을까 싶습니다.
 

“서점을 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일상을 상상한다. 무언가에 쫓기는 일 없고, 좋아하는 책 실컷 읽고,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하는 여유로운 일상. (중략) 그러나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지인이 서점을 차린다고 하면 마냥 달콤한 이야기만 할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책을 팔아 먹고 사는 게 꿈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해 보니 정말 그렇다. 하지만 책방 주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서점은, 이미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나는 안다. 가끔은 꿈 자체가 살아가는 힘이 되니 말이다. 현실과 조금은 동떨어진다 해도 서점에 대한 이같은 로망마저 없다면 대체 누가 서점을 시작할 수 있을까?”(44-45쪽)


동네책방 용서점 주인인 저자는 4년 여 동안 책방을 운영하면서 얻은 동네책방 운영 노하우에서부터 동네책방의 자산이 된 동네 손님들과의 에피소드, 동네책방에 대한 철학에 이르기까지를 담담하면서도 유쾌하게 전해줍니다. 에세이 집이긴 하지만 마냥 책이 좋은 사람, 동네책방에 관심 있는 사람, 책방을 꾸릴 계획이 있는 사람, 집에 있는 책을 정리하고 싶은 사람 등 다양한 유형의 독자들에게 유용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나 실제로 책방을, 작은 동네책방을 꾸려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먼저 길을 간 선배의 훌륭한 조언이 될 수 있겠습니다. 박용희씨는 온라인 판매를 기본으로 하고 각종 SNS 채널에 홍보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통해 동네책방을 운영해 왔습니다. 여기에는 자신만의 관점이 묻어나는 책 큐레이팅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온라인 고객만을 가진 동네책방이라면 굳이 동네책방일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책들이 너무 어렵네. 나 같은 사람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책도 좀 있으면 좋을텐데요.”라는 한 60대 아주머니의 말을 통해 저자는 서점의 존재 이유, 동네책방의 고객은 누구일까에 대해 고민하고 자기 서점의 정체성을 재확인합니다. “독자가 와서 이용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동네책방의 토대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작가 행사는 동네책방의 기초체력이 아니었다. 기초체력 없이 약발로 버티는 건, 위험하고 무모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서점의 기초체력은 뭘까? 내가 찾은 답은, 동네 손님들 그리고 독자들과 함께하는, 그들이 주축이 되는 ‘모임’이었다.”(122쪽)

 



저자가 생각한 동네책방의 강점은 ‘이웃들과 모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손님 중 한 분이 제안한 글쓰기 모임을 시작으로 필사 모임, 읽기 모임도 운영하게 됩니다. 이 모임들을 통해 저자는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합니다. 술, 밥, 여행 등에 ‘혼’이 붙는 것이 매력으로 불리는 시대에 저자의 서점엔 사람들이 자꾸 모이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이것을 ‘운김(여럿이 함께 일할 때 우러나오는 힘 또는 사람들이 있는 곳의 따뜻한 기운) 때문이다’ 라고 합니다.

이 모임들을 서점의 고정 손님을 늘리는 전략으로만 보지 않고 저자 자신도 독자의 한 사람이 되어 다양한 독자를 만나는 장으로 여기며 즐거이 임하는 저자의 관점이 참 마음에 듭니다.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기반도 결국엔 다양한 모임들을 통해 저자가 만났던 손님들의 결코 시시하지 않은 인생의 이야기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는 동네 사람들에게 이런 유익을 함께 누리자고 권합니다. “역곡 사람들이여, 부디 겁내지 마시기를. 일단 와 보시지요.”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를 경험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대면하지 않는 삶을 일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함께 하던 삶에 대한 그리움이 더 자라나게 될 것 같습니다. 적절한 보호조치를 취한다면 용서점에서와 같은 소규모 모임들은 감염의 위험이 그리 크지 않을 것입니다. 비대면의 시대에 모여서 서로의 삶에 교감하던 즐거움을 다시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용서점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서로의 다름을 알고, 그 다름으로 인한 거리를 굳이 좁히려 하지 않는다. 함께 뭔가 이뤄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지도 않는다. 글은 쓰지만, 이 글로 무엇을 하겠다는 목적은 없다. 좋은 글들을 베껴 쓰고 또 낭독하지만, 그렇게 필사한 것들이 후에 무엇이 되리란 기대를 갖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이 좋아서 사람들은 모인다.”(148-149쪽)


저자는 이 ‘운김’을 모임의 동력으로 보았는데 참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서점이기를 원하는 저자에게 딱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먹고 사는 일에 온 힘을 쏟느라 인생에게 허락된 또 다른 유익을 놓치고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고,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경험과 놀이의 장’을 제공하고 싶다는 동네책방 사장님. 우리 동네에도 용서점 2호점을 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이웃과 함께하는 서점이길 원한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동네 사람들을 위해서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고, 좋은 것을 누리는 건 삶의 아주 중요한 요소다. 많은 이들이 먹고 사는 일에 온 힘을 쏟느라 인생에게 허락된 또 다른 유익을 놓치고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힘과 기회가 닿는 대로 동네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놀이의 장을 제공하고 싶다. 또 하나는, 도서관 ‘뜰안에작은나무’와의 협업처럼 이웃 상가들과의 연대를 희망해서다. 가진 것이 각기 다르기에 서로의 필요를 채울 때 할 수 있는 일은 확장된다. 그리고 이는 결국 서로를 자라게 한다. 더불어 자라 가야 서로 누릴 수 있는 유익은 커진다.”(159쪽)


"서점을 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일상을 상상한다. 무언가에 쫓기는 일 없고, 좋아하는 책 실컷 읽고,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하는 여유로운 일상. (중략) 그러나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지인이 서점을 차린다고 하면 마냥 달콤한 이야기만 할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책을 팔아 먹고 사는 게 꿈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해 보니 정말 그렇다. 하지만 책방 주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서점은, 이미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나는 안다. 가끔은 꿈 자체가 살아가는 힘이 되니 말이다. 현실과 조금은 동떨어진다 해도 서점에 대한 이같은 로망마저 없다면 대체 누가 서점을 시작할 수 있을까?"(44-45쪽) - P44

"작가 행사는 동네책방의 기초체력이 아니었다. 기초체력 없이 약발로 버티는 건, 위험하고 무모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서점의 기초체력은 뭘까? 내가 찾은 답은, 동네 손님들 그리고 독자들과 함께하는, 그들이 주축이 되는 ‘모임’이었다."(122쪽) - P122

"용서점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서로의 다름을 알고, 그 다름으로 인한 거리를 굳이 좁히려 하지 않는다. 함께 뭔가 이뤄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지도 않는다. 글은 쓰지만, 이 글로 무엇을 하겠다는 목적은 없다. 좋은 글들을 베껴 쓰고 또 낭독하지만, 그렇게 필사한 것들이 후에 무엇이 되리란 기대를 갖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이 좋아서 사람들은 모인다."(148-149쪽) - P148

"이웃과 함께하는 서점이길 원한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동네 사람들을 위해서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고, 좋은 것을 누리는 건 삶의 아주 중요한 요소다. 많은 이들이 먹고 사는 일에 온 힘을 쏟느라 인생에게 허락된 또 다른 유익을 놓치고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힘과 기회가 닿는 대로 동네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놀이의 장을 제공하고 싶다. 또 하나는, 도서관 ‘뜰안에작은나무’와의 협업처럼 이웃 상가들과의 연대를 희망해서다. 가진 것이 각기 다르기에 서로의 필요를 채울 때 할 수 있는 일은 확장된다. 그리고 이는 결국 서로를 자라게 한다. 더불어 자라 가야 서로 누릴 수 있는 유익은 커진다."(159쪽)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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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수업 -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행복사회 시리즈
마르쿠스 베른센 지음, 오연호 편역 / 오마이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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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후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평생 농부로 고생하며 살았다고 하시는 제 부모님은 자식들은 공부해서 대학교에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아주 단순한 공식이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구해 자식들이 본인들보다는 덜 고생하며 사는 것. 부모님은 열심히 공부하면 조금은 더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셨습니다.

부모님에게 ‘성공’은 경제적인 안정이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좋은 직장’이란 높은 급여를 받는 안정적인 직업이었고 공부는 이 목표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제가 공부했던 이유도 상위권 대학에 가기 위해 높은 수능 점수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상위 몇%에 들기만 하면 이후의 삶이 어느정도 보장될 것이라는 기대는 서열화된 구조를 점점 더 강화시켰고 학교에는 끊없는 경쟁만이 남았습니다.

초중고등학교 교육도 자녀들을 소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수험과정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같은 교육구조의 폐해를 개선하고자 수십 년에 걸쳐 교육당국과 의식있는 교사, 학부모들이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변화를 체감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요즘 대한민국의 입시는 유아기 때부터 시작된다고 할 정도로 학생들 뿐만 아니라 부모들에게까지 경쟁이 확장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 구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의 암담한 교육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요? 입시 위주 교육의 원인이 되는 대학 서열화 구조를 없애자, 학벌을 타파하자, 입시제도를 개혁하자, 획일적인 공교육 체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학교, 혁신학교를 만들자 등 다양한 해법과 주장들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가 가진 욕망을 다시 들여다봐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자녀들의 삶에 대한 그림이 기존과 달라지지 않는다면 어떤 장치와 방법으로도 지금의 교육현실은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교육을 바라보는 철학이 바뀌어야 변화도 가능합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는 덴마크에서 훌륭한 교사라 평가받는 이들의 교육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책 <삶을 위한 수업>을 기획,편역해 출간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바라는 자녀들의 삶과 교육을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부모가 정말 걱정해야 할 것

“덴마크의 부모들은 자식의 연봉이나 직장의 안정성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걸 걱정합니다. ‘내 아이가 열정을 가지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과연 스스로 찾을 수 있을까?”(244쪽)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삶을 관장하는 힘이죠. (중략) 진짜 무서운 것이 뭘까요?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어느 날 아침에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스스로 선택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경우가 아닐까요?”(100쪽)


자녀들이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기보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고 할 때 기꺼이 그러라고 할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만약 중학생인 자녀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할때 부모들은 걱정이 앞설 것입니다. 실제로 아직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미숙한 판단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부모는 아이들이 직접 부닥쳐 경험하도록 지켜보며 안내하는 조력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국내 한 대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던 한 지인이 자식들 학점관리를 위해 부모들이 학교에 전화를 해대서 너무 힘들다고 푸념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대학생이 된 자식들까지 쫓아다니는 한국 부모들의 자식걱정과 덴마크 부모들의 자식 걱정은 너무나도 대비됩니다. 자녀들이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관장할 수 있는 힘을 갖도록 가르치는 것이 진정 자식을 위하는 길이 아닐까요

왜 공부해야 하지?

“교사가 반 학생들 모두에게 똑같이 높은 기준을 정해준다면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아이들이 패배자로 남지 않겠어요? 그 패배감이 아이들의 의욕을 빼앗을 거에요. (중략) 모두가 도달해야 하는 하나의 정해진 목적지는 없어야 합니다.”(84-85쪽)

“한국의 교육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부를 잘하는 소수의 학생들만 좋은 교육을 받고 원하는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며 나머지 다수는 뒤처진다. (중략) 무언가를 달성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그들의 능력 밖에 있다. 결국 지쳐 절망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16-17쪽)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입시라는 정해진 목적지와 그것에 부합하는 소수의 학생을 위한 교육.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합니다. 덴마크 뇌뢰 귐나시움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헤닝 아프셀리우스 선생님은 수학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우리는 지금 왜 여기에 앉아 있을까?”라고 물으며 왜 스스로 배워야 하는지 알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지’ 혹은 ‘좋은 대학 가야지’라는 이유 이외에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목적은 단 하나 좋은 점수를 받아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같은 학생들 일부만이 큰 고민 없이 이 목표를 향해 성실하게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왜 배워야 하는지 스스로 묻지도 않은 채로...

제대로 된 동기부여를 위한 이 물음은 비단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학생들과 교실에 함께 있는 교사들도 다시 물어야 하는 질문입니다. 왜 교사가 되었는지, 교사의 역할은 무엇인지, 무엇을 목적으로 가르칠 것인지 말입니다. 학생들이 사회로 나가 책임있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라는 덴마크를 벤치마킹할 수 있겠습니다.

국가와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입시제도 개혁, 대학평준화, 학벌우대 사회 해체 등 교육을 바꾸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교육, 특히 공교육에 과감히 투자해 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학생, 교사, 부모 등 사회구성원의 교육에 대한 의식변화와 함께 일부에서 주장해오던 대학교까지의 무상교육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국가가 되면 좋겠습니다.

“덴마크는 초중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비가 무료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600개가 넘죠.”(181쪽)


우리 사회는 교육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을까요.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만 해도 약 19조 5천억원이라고 합니다.(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조사 결과, 통계청) 대학교까지의 무상교육은 재원문제보다는 사회 전체의 의지 문제라 생각합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별로 투자하는 교육비 지출만 기금으로 운용할 수 있어도 무상교육이 불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

정답을 맞히는 법을 배우기 위해 다녀야 하는 학교가 아니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방법으로 지식을 얻는 과정을 배우고, 스스로 질문하고 선택하며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이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관장’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삶을 위한 수업>이 이뤄지는 학교를 만들 수 있다면 고통스런 교육 현실에 있는 학생, 부모, 교사 모두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덴마크의 부모들은 자식의 연봉이나 직장의 안정성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걸 걱정합니다. ‘내 아이가 열정을 가지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과연 스스로 찾을 수 있을까?"(244쪽) - P244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삶을 관장하는 힘이죠. (중략) 진짜 무서운 것이 뭘까요?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어느 날 아침에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스스로 선택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경우가 아닐까요?"(100쪽) - P100

"교사가 반 학생들 모두에게 똑같이 높은 기준을 정해준다면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아이들이 패배자로 남지 않겠어요? 그 패배감이 아이들의 의욕을 빼앗을 거에요. (중략) 모두가 도달해야 하는 하나의 정해진 목적지는 없어야 합니다."(84-85쪽)
- P84

"한국의 교육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부를 잘하는 소수의 학생들만 좋은 교육을 받고 원하는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며 나머지 다수는 뒤처진다. (중략) 무언가를 달성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그들의 능력 밖에 있다. 결국 지쳐 절망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16-17쪽) - P16

"덴마크는 초중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비가 무료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600개가 넘죠."(181쪽)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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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 용감하게 성교육, 완벽하지 않아도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심에스더.최은경 지음 / 오마이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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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책과 ‘성’을 좋아했다고 말하던 아내가 ‘성 이야기’를 다룬 책을 썼습니다. 아내가 생애 첫 책을 썼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죠. 평소 친하게 지내던 후배에게 책을 소개하고 읽어보라 권했습니다. 얼마 후 회사에서 만난 후배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수님 책을 주문해서 받았어요. 집에 가져가진 못하고 회사 사무실에서 쉬는 시간에 몰래 몰래 읽고 있어요.”

아내가 쓴 책이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기에 30대 중반, 한국인 남성인 후배는 군부 독재시절 금서를 가진 것처럼 책을 집에도 가져가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몰래 몰래 읽고 있었을까요? 남자 후배에게 물어보니 ‘섹스’, ‘성기’, ‘노브라’, ‘생리’, ‘성 경험’, ‘야동’ 등의 단어가 책에 직접 언급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후배의 이런 반응은 우리 사회가 ‘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성과 관련있는 다양한 이슈와 궁금증을 두 저자가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쓴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라는 성교육 교양서를 들고 읽는 것조차 부끄럽게 느끼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아내의 책을 대하는 남성 후배의 모습과 ‘우리는 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편견 없는 뉘앙스로 들어본 적도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는 책 속 저자의 말이 겹쳐집니다.
 

“성기를 우리 몸의 일부로, 성을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영역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성’과 ‘성기’를 대상화해서 우리와는 아주 거리가 먼,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큰일나는, 관심을 가져선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솔직한 성교육의 경험이 부족한 어른들의 편견과 수치심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242쪽)


‘성’하면 가장 먼저 선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고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원인이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성을 대하는 교육을 받지 못한 어른들의 편견과 수치심에 있다는 저자의 의견에 깊이 동감합니다. 성교육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내로부터 기회가 되는대로 ‘성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저 역시 ‘성’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는 왠지 부끄럽습니다. 우리 삶의 일부인 성을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대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한참 갈 길 먼 우리 사회의 ‘성’ 인식 수준

최근 텔레그램 메신저 대화방에서 행해진 성착취 범죄가 드러나고 이 사건을 대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반응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성’인식 수준을 확인하게 됩니다. n번방 사건으로 알려진 이 범죄는 기존에 자주 있어왔던 불법 촬영과 유포의 수준을 넘어 여성들을 노리개로 삼은 중범죄입니다. 그럼에도 각종 기사 및 SNS 채널 등에서 피해자인 여성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말을 여전히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가해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피해자(대부분이 여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사회 분위기가 여전히 팽배합니다. 심지어 나이 어린 여성 피해자들에게까지도 책임을 운운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다른 범죄와는 다르게 유독 성범죄 피해자들에게만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속에 깊이 새겨진 ‘성’과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작동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불법 촬영과 유포, 성폭력, 성착취 등의 성범죄 기저에는 ‘사람, 특히 여성을, 여성의 몸을, 여성의 성을 자신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가질 수 있고,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물건 혹은 도구’로 여기는 태도가 놓여 있다고 <이런 질문, 해도 될까요?>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한 성범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성’을 ‘도구’로 취급하는 태도가 사라져야만 합니다. 

‘여성을 같은 인간이 아니라 사냥감’으로 여기는 현실, ‘남자라면 여성을 성적 도구로 즐기고 소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왜곡된 남성다움에 대한 압박 등도 우리가 성을 왜곡해 받아들이게 하는 요소임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성’과 ‘여성’에 대한 인식 수준의 현재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을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대하도록 도와주는 문답 연습

아이들이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바르게 인식하려는 변화는 어른들에게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책에 따르면 2009년 유네스코에서 발간한 <조기성교육 지침서>에는 사춘기가 되지 전에 아이들이 자신의 성적 욕구와 충동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게 돕기 위해 5세 때 자위에 대해 알려줘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 어른들은 과연 자신의 성적 욕구과 충동을 이해하고 잘 다룰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별을 떠나 오히려 지금 어른들이 성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겪어오는 ‘성’관련 문제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 아닐까요. 성교육 전문가와 오마이뉴스 기자인 두 저자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에 정리한 스무가지 질문과 대답을 통해 성과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이슈에 대해 어른들이 먼저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 섹스, 성기, 생리, 노브라, 성 경험 등의 단어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고 나의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 아이들이 갑작스레 물을 수 있는 질문들에 당황해하며 얼버무리지 않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언어로 건강하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성에 대한 이야기도 담담하게 편견 없는 뉘앙스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성 이야기’로 소통하는 장이 많아지기를

성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아이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다”고 저자는 썼습니다. 이 말은 어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저자가 책에서 강조했듯이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고 정보도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올바른 성 가치관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시작으로 성과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 중에는 생소하고 어려운 것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화 형식으로 쓰여 있어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부족함이 느껴진다면 책 끝부분에 있는 추천 도서들도 함께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을 은밀하게만 다루면 점점 드러내기가 어려워지고, 드러났을 때 느끼는 수치심도 클 수 밖에 없어요. 아이들이 지나치게 야동에 빠지거나,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거나, 준비 없이 섹스를 하게 되었을 때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우리 몸에 대해,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우리 몸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솔직하게 알려주고 표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243-244쪽)


"성기를 우리 몸의 일부로, 성을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영역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성’과 ‘성기’를 대상화해서 우리와는 아주 거리가 먼,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큰일나는, 관심을 가져선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솔직한 성교육의 경험이 부족한 어른들의 편견과 수치심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242쪽) - P242

"성을 은밀하게만 다루면 점점 드러내기가 어려워지고, 드러났을 때 느끼는 수치심도 클 수 밖에 없어요. 아이들이 지나치게 야동에 빠지거나,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거나, 준비 없이 섹스를 하게 되었을 때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우리 몸에 대해,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우리 몸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솔직하게 알려주고 표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243-244쪽)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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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은 끝! - 일을 통해 자아실현 한다는 거짓말
폴커 키츠 지음, 신동화 옮김 / 판미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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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회사 꼭 가야해?”

내일은 일하러 가야해서 놀아줄 수 없다는 말에 초등학생 딸이 제게 종종 묻곤 합니다. 딸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너 장난감도 사주고 용돈도 주려면 돈 벌어와야지!” 라고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회사에 다니는 혹은 일하는 첫번째 목적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입니다. 그래도 딸은 이제 제법 커서 아빠가 회사에 가는 목적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눈치입니다. 

“아빠! 난 뭔가를 연구해서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 아빠는 꿈이 뭐였어?”

하아...이건 난이도가 좀 있는 질문입니다. 어릴 때 장래 희망란에 과학자라고 적었던 것을 희미하게 기억합니다. 어린 시절 로봇 만화를 좋아했었으니까 아마도 지금으로치면 제 꿈은 로봇 공학자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뭐 딱 맞는 분야는 아니지만 명함에 리서치 엔지니어라고 새기고 다니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얼추 어릴 적 꿈을 이뤘다고 우길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소망하던 꿈에 대충은 비슷하게 다가가 생활하고 있으니 저는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몇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어릴 때 바라던 직업을 가지면 자아실현을 한 것일까요? 자아실현을 한 저는 왜 돈벌러 회사에 간다고 대답할까요? 내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준 일터인데 왜 출근하기는 싫을까요? 
 

  
현대인들에게 일이란?

폴커 키츠라는 작가도 <오늘 일은 끝!>이라는 책에서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쓴 말인지 알겠지만 단어를 바꿔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직업 혹은 직장생활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로 고치는 것이 보다 명확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일, 노동, 직업을 구분해 사용해야 할 것 같아 사전(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일: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
노동: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직업: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일’은 중립적 혹은 긍정적인 느낌인 반면 ‘노동’과 ‘직업’은 생계와 연결되어 고달플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일은 노동이나 직업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폴커 키츠는 현대 사회에서 ‘직업’이 ‘일’과 동일한 지위를 얻게 되었기에 ‘일로 자아실현을 한다는 건 거짓말이다’라고 썼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대의 일(직업)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일은 사회에서 우리의 자리를 지정해 주고, 사회는 우리를 이용해 무언가를 한다. 일은 우리에게 일과를 부여하고, 우리를 집에서 나와 타인과 접촉하게 한다. 일을 원하지만 일이 없는 자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심각한 병에 걸릴 수도 있다. 일을 잃는다는 것은 파트너를 잃는 것처럼 삶을 파괴하는 트라우마적 사건이다.”(19-20쪽)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즐거워하기도 하고 재미있어 하기도 합니다. 어떤 일은 스릴 넘치기도 하고 세상을 더 멋진 곳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성취감을 느끼게도 하고 일터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물론 자아를 실현하게도 합니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바는 이것이 예외적인 사례라는 것입니다.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이런 말은 다른 세상 이야기입니다.

직장생활에 대한 환상 걷어내기

폴커 키츠는 몇몇 예외적인 사례들로 포장되어 온 직장생활의 환상들을 걷어내고 ‘일’에 대해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하자고 말합니다. 아마도 많은 직장인들이 직장생활에 대한 환상과 현실의 불일치를 경험하고 있을 것입니다. 직장생활을 말할 때 포장된 환상들을 저자는 아래 일곱가지로 정리했습니다. 평소 제가 접하던 말들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직장에 있으면서 열정이 솟아날 때가 얼마나 있었는가 생각해 봅니다. 열정에 대한 과장된 환상으로 인해 저 역시 일하면서 열정을 느끼지 못하면 내가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에 동감합니다. 사실 열정이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꿈꾸는 직업은 실현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꿈의 직업’이란 것이 전혀 없다. 요술 지팡이를 든 요정이 찾아온다 해도 그들은 어떤 일을 소원으로 말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사회가 기대하듯, 열정을 불태울 일 말이다. 그들은 일에서 열정을 발견한다고는 상상할 수 없고, 일에서 열정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삶의 여러 영역에서 만족감을 이끌어 낸다. 일은 그 여러 영역 중 하나에 불과하다. (중략) 원래는 ‘인생’과 ‘직장생활’이 동의어인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야 마땅하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 대신 머릿속에 ‘꿈의 직업’이라곤 절대 없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40-41쪽)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로 의미를 너무 높은 곳에 두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로 인해 다른 대부분의 일들은 의미 있다고 하기엔 너무 사소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을 거창하게 바꾸지’ 않으면 의미를 부여하기가 너무 어려운 세상입니다. 직업으로 자아실현을 한다는 말 또한 아주 예외적인 소수에게만 맞는 말입니다. 이 구도에서 벗어나 일과 직업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솔직해지기

‘우리는 돈 때문에 일한다’는 걸 인정하고 시작하자고 저자는 말합니다. 또 저자는 ‘적절한 보수’를 언급합니다. 전일제로 일한다면 가족의 주거와 양식을 해결할 수 있는 정도를 적절하다 말하지만 부동산 투기로 주거비용이 한껏 부풀려진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선 왠만한 전일제 노동으로는 적절한 보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구조적 한계는 있지만 일에 대한 환상을 걷어 낸 세상을 상상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저자가 비판하는 점은 사회에서 설정된 일과 직업에 대한 높은 기준으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이 좌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에서 혹은 직장에서 성취감을 느끼지 않아도, 일할 때 열정을 느끼지 못해도, 자신의 일이 자신의 정체성이 아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인생에는 직업 이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듯 “일(직업)은 하나의 모자이크 조각”일 뿐입니다.

폴커 키츠는 다수가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만족이라는 상태를 재발견”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자가 말한 ‘적절한 보수’만큼이나 애매하고 상대적인 표현이지만 자기 자신에게 ‘만족’이란 무엇인지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작은 책이 인생 행복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직장생활을 솔직하게 대하는 것만으로도 예기치 않은 만족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저자가 솔직하게 그려본 이런 회사 어디 없을까요?
 

“이 회사는 여러분이 일하며 행복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한 제품 혹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그럼으로써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생계를 경제적으로 유지하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은 사회에 의미를 가집니다. 일의 역할은 여러분 인생에 의미를 불어넣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인생의 의미는 여러분 스스로가 책임지면 됩니다. 우리 회사는 요란스럽게 부산을 피우거나 뭐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양 뭔가 있어 보이게 연출하지 않고, 매일 맡은 바 일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다수의 보통 사람들을 높이 평가합니다. 일은 시간과 돈의 교환입니다. 동일한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보수를 지급받으며, 우리 회사는 한 사람 몫의 임금을 받는 한 사람이 세 사람 몫의 일을 처리하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회사가 여러분에게 인생의 의미를 주지 않듯, 여러분은 회사에 인생을 바칠 필요가 없습니다.”


"일은 사회에서 우리의 자리를 지정해 주고, 사회는 우리를 이용해 무언가를 한다. 일은 우리에게 일과를 부여하고, 우리를 집에서 나와 타인과 접촉하게 한다. 일을 원하지만 일이 없는 자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심각한 병에 걸릴 수도 있다. 일을 잃는다는 것은 파트너를 잃는 것처럼 삶을 파괴하는 트라우마적 사건이다."(19-20쪽) - P19

"그들에게는 ‘꿈의 직업’이란 것이 전혀 없다. 요술 지팡이를 든 요정이 찾아온다 해도 그들은 어떤 일을 소원으로 말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사회가 기대하듯, 열정을 불태울 일 말이다. 그들은 일에서 열정을 발견한다고는 상상할 수 없고, 일에서 열정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삶의 여러 영역에서 만족감을 이끌어 낸다. 일은 그 여러 영역 중 하나에 불과하다. (중략) 원래는 ‘인생’과 ‘직장생활’이 동의어인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야 마땅하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 대신 머릿속에 ‘꿈의 직업’이라곤 절대 없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40-41쪽) - P40

"이 회사는 여러분이 일하며 행복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한 제품 혹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그럼으로써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생계를 경제적으로 유지하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은 사회에 의미를 가집니다. 일의 역할은 여러분 인생에 의미를 불어넣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인생의 의미는 여러분 스스로가 책임지면 됩니다. 우리 회사는 요란스럽게 부산을 피우거나 뭐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양 뭔가 있어 보이게 연출하지 않고, 매일 맡은 바 일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다수의 보통 사람들을 높이 평가합니다. 일은 시간과 돈의 교환입니다. 동일한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보수를 지급받으며, 우리 회사는 한 사람 몫의 임금을 받는 한 사람이 세 사람 몫의 일을 처리하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회사가 여러분에게 인생의 의미를 주지 않듯, 여러분은 회사에 인생을 바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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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권리 선언 - 페미니즘을 위한 역사적 명언들
올랭프 드 구주 외 지음 / 동글디자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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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날입니다. 회사가 매년 여성의 날 행사에 참석하는 여성조합원들에게 근무일수 하루를 빼주는 걸 보면서 ‘여성들은 좋겠네’ 하고 부러워하기만 했을 뿐입니다. 어떤 남성조합원은 왜 남성의 날은 없냐며 볼멘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남성들이 이처럼 생각없이 내뱉는 말들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남성의 날은 왜 없냐고?

여성의 날을 따로 정해서 기념한다는 건 그만큼 여성이 소외되어 왔기 때문임을 굳이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최근 몇년 동안 많은 남성들이 ‘이제는 성평등이 이루어졌다’ 혹은 ‘역차별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렇지 않다 생각합니다. 남성으로 태어나 살면서 집과 회사에서 느끼는 건 역시 아직도 매일 매일은 ‘남성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웃들에게 일등 남편이 되는 건 아주 쉽습니다.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내다버리는 제 모습을 옆집에서 보면 됩니다. 어느 주말 아이들을 데리고 노는 사진을 SNS에 올리면 됩니다.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 행사가 있을 때 하루 휴가를 내 엄마들 틈에 앉아 있으면 됩니다. 회사에선 여성 직원들에 비해 그냥 신뢰를 받습니다. 남성위주 사회에서 남성은 아무런 장치 없이 숨쉴 수 있지만 여성은 우주복에 산소통을 짊어져야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들은 산소통 없이 숨쉬기 위해 투쟁해야 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쟁취하지 않으면 저절로 권리가 주어지는 일은 없었으니까요. 근대적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올랭프 드 구주도 프랑스 혁명 시기에 <여성의 권리 선언>을 발표하며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한 대가로 처형당해야 했습니다. 여성들은 인간이라면 누릴 권리를 얻기 위해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투쟁의 역사를 알면 어이없는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성도 인간임을 선언하다
 

“프랑스 혁명의 시기, 드 구주는 프랑스 혁명을 지지했으나 혁명이 내건 자유와 평등이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을 비판하며 글로써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 결과 ‘성별에 적합한 덕성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처벌받았던 것이다. 그녀는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당연히 의정 연설 연단 위에 오를 권리도 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8-9쪽)


이 조그만 책에는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국제연합 여성 차별 철폐 선언’, 짧은 말로 긴 울림을 주는 페미니즘 명언록’이 실려 있습니다. 1789년 출판된 올랭프 드 구주의 주장과 이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1967년 유엔의 선언문을 읽어보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세계가 얼마나 진보했고 또 동시에 얼마나 정체되어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부분을 현대의 소수자 권리 문제에 적용할 것인가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올랭프 드 구주의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17개 조항에 ‘여성’ 대신 지금 우리 사회에서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넣어 읽으면 되겠습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엔 ‘여성’이 온전한 인간으로서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우리 사회에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범주가 꽤 세분화되었습니다. 성소수자, 난민, 대책없이 죽음에 내몰리는 노동자들 등을 ‘여성’ 대신 넣어 읽으면 됩니다.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가져야 할 자유, 소유, 안전, 그리고 억압에 저항할 권리. 기본적인 것을 얻어내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투쟁이 있어왔는지를 이해한다면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기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입니다. ‘역지사지’만큼 뻔하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말도 없습니다. ‘내가 저 입장이라면’이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되뇌어야 혐오와 차별을 넘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200년이 흘렀어도 또 선언이 필요했다
 

“국제연합 헌장, 세계 인권 선언, 국제 인권 규약, 국제연합과 전문 기구의 여타 규범이 존재하며, 인권의 동등함과 관련하여 진보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여성에 대한 심각한 차별이 자행되고 있다고 인정됨을 고려하고,”(54쪽)


올랭프 드 구주가 참정권을 주장하고 죽임을 당한 이래로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여성은 여전히 차별당해 왔음을 유엔 총회 결의안에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차별적인 기존의 법, 관습, 규제, 관행을 폐지하고 남녀의 동등한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법적 장치”가 필요함을 선언한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에 적절한 강제 장치가 필요합니다.

투표권, 피선거권, 공직에서 일할 권리, 국적 취득 권리, 재산권, 이동권, 교육받을 권리, 노동에 대한 동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 결혼이나 임신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누렸어야 하는 조건들이 1960년대까지도 여성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도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에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성평등한 세상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독서를 통해 좁디좁은 가정생활을 생각과 상상과 지식으로 이루어진 끝없는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여자들은 위험해진다. 독서를 하면서 여자들은 사회가 미리 정해두지 않았던 지식과 경험을 흡수한다.”(90쪽, 슈테판 볼만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인용)


투쟁 혹은 혁명은 언제나 한계를 가집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함께 움직여가야 합니다. 슈테판 볼만이 쓴 것처럼 보편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그룹의 깨달음과 투쟁을 통해서 공고하게 이어져 오던 관습에 작은 균열은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험해지는 책 읽는 여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남자들이, 기존의 지위를 누리는 이들의 깨달음도 함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성도 남성도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되는 것이다. 사회에서 인간 여성이 취하는 모습을 정하는 것은 그 어떤 생물학적, 정신적 또는 경제적 운명도 아니다. 여성이라고 하는, 이 남자와 고자 사이에 있는 중간의 존재를 만들어낸 것은 문명 전체이다. 어떤 개인을 타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개인의 중재가 필요하다. 만약 아이들이 홀로 존재한다면, 자신들의 성별이 다른지조차 알지 못할 것이다.”(75쪽,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인용)


여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남성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 속에서 남성이라는 범주 안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살아왔기에 여성들이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차별적 구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공감력의 부족은 성평등 문제 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약자 그룹에도 동일하게 작동하게 될 것이기에 두렵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올해 세계 여성의 날 행사는 예년 만큼 진행되지 못할 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면 좋겠습니다. 올 해 제한된 상황에서 제가 선택한 것은 책을 읽고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내년에는 여성의 날 행사에 직접 참석해 기념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프랑스 혁명의 시기, 드 구주는 프랑스 혁명을 지지했으나 혁명이 내건 자유와 평등이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을 비판하며 글로써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 결과 ‘성별에 적합한 덕성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처벌받았던 것이다. 그녀는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당연히 의정 연설 연단 위에 오를 권리도 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8-9쪽) - P8

"국제연합 헌장, 세계 인권 선언, 국제 인권 규약, 국제연합과 전문 기구의 여타 규범이 존재하며, 인권의 동등함과 관련하여 진보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여성에 대한 심각한 차별이 자행되고 있다고 인정됨을 고려하고,"(54쪽) - P54

"독서를 통해 좁디좁은 가정생활을 생각과 상상과 지식으로 이루어진 끝없는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여자들은 위험해진다. 독서를 하면서 여자들은 사회가 미리 정해두지 않았던 지식과 경험을 흡수한다."(90쪽, 슈테판 볼만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인용) - P90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되는 것이다. 사회에서 인간 여성이 취하는 모습을 정하는 것은 그 어떤 생물학적, 정신적 또는 경제적 운명도 아니다. 여성이라고 하는, 이 남자와 고자 사이에 있는 중간의 존재를 만들어낸 것은 문명 전체이다. 어떤 개인을 타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개인의 중재가 필요하다. 만약 아이들이 홀로 존재한다면, 자신들의 성별이 다른지조차 알지 못할 것이다."(75쪽,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인용)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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