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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3
문재인.김인회 지음 / 오월의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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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과의 유착관계를 통해 정치의 뒷마당에서 마음껏 권력을 누려왔던 검찰이 윤석열이라는 검사출신 정치 새내기를 중심으로 정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때 법무부와 갈등을 이어가다 총장직을 사퇴한 윤석열은 과거 검찰을 유용하게 활용하던 정당의 제안을 받아 급기야는 대통령 후보까지 되었다. 이 기회를 놓칠새라 검사 출신 정치인들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며 검사출신의 꿈동산인양 윤석열 대선캠프로 모여들고 있다.


윤석열 후보에 대한 의혹을 투명하게 밝혀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을 검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의 윤석열을 만든 대한민국 검찰이라는 조직의 본질을 모든 국민들이 다시 살펴보는 일이다. 이와 함께 검찰이라는 조직이 민주정부들에서 왜 개혁 대상이 되었는지, 개혁 시도의 결과는 어떠했는지 되짚어봐야만 한다. 이를 위해 2011년 당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김인회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함께 쓴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를 다시 펼쳤다.


참여정부 시절 검찰 및 사법개혁의 많은 부분에 직접 관여하고 경험했던 당사자인 문재인. 참여정부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김인회. 두 저자는 대한민국 검찰의 역사, 권한, 이론 등을 설명하며 검찰조직의 실체를 살펴본 후 참여정부의 검찰개혁 성과와 한계를 알기 쉽게 정리했다. 이 책을 통해 민주정부에서는 왜 검찰이 개혁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지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동시에 근본적인 검찰 개혁이 왜 실패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검찰의 실체와 검찰개혁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


“검사들만큼 헌신적이고 유능하고 책임 있게 일하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열심히 하는 만큼 또 본인들이 대한민국을 끌고 가고 있고, 검찰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이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검찰은 국민의 공복이다. 어떻게 하면 국민들을 잘 섬기고, 국민의 명령을 잘 따를까 하는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지 않단 말이에요. 그리고 자기들 잘되는 게 검찰과 나라가 잘되는 것이다, 그 말을 거꾸로 하면 우리를 공격하면 마치 나라를 공격하는 국사범이 되는 것처럼 생각해요. 이런 생각들이 딱 똬리를 틀고 있단 말이에요.”(264-265쪽_천정배 전 장관의 말)


체제와 정권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검찰은 대한민국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유례없는 권한을 누려왔다. 해방 후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자체가 일재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국가주의와 전체주의 유지를 위한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 내에서 검찰 권한은 비정상적으로 강화되었고 대체로 정치적 반대파(대표적으로 조봉암, 김대중)를 제거하는 데 이용되어 왔다. 검찰이 수사지휘권으로 경찰을 지배하고 수사결과를 통해 재판을 지배하는 일제 강점기 검찰 중심 형사사법시스템이 여전하다.


검찰은 본질적으로 행정부에 속하기에 사법기관이 아니다. 검찰이 준사법기관이라는 이론이 받아들여져 왔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때문에 검찰에게 필요한 것은 독립이 아니라 정치적 중립이고 국민과 정치권력, 법원에 의한 견제와 감시이다. 저자들은 1987년 6월 항쟁 이래로 쟁취해 온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이 과거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정부의 종말을 고했음을 말한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검찰 역시 새로워져야만 한다.


공권력의 폭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은 대한민국의 폭력적 법치주의의 중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왔던 검찰은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의 흐름에서 그 권한과 역할이 조정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와 같은 철학 아래 노무현 참여정부가 검찰 개혁을 시도했지만 검찰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쉽게 내려놓지 않았다. 몇 가지 제도의 개혁을 이뤄냈으나 검찰 권한의 민주적 통제(검찰권한 견제와 감시) 시스템 구축에는 실패했다.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주면 검찰이 저절로 민주화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이었다. 검찰은 한국 사회에서 이미 기득권 세력 중 가장 강력하기 때문이다.”(369쪽)


참여정부의 제도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결국 검찰은 이후 정치권력과 유착관계로 돌아가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복수와 같은 수사, 한명숙 전 총리 사건(표적/강압 수소, 피의사실공표, 플리바게닝 동원 수사, 수사 기록 누락, 수사권 남용 등), PD수첩/정연주 사장 사건, 미네르바 구속/기소 등으로 퇴행했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떡값 검사라는 비리는 지속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자신이 몸담았던 참여정부 검찰개혁의 실수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던 책의 저자 문재인은 부당한 권력에 투쟁했던 국민들 덕택에 대통령이 되어 민주 정부를 다시 한번 이끌게 되었다. 선거에서부터 검찰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고 이후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정부 출범 후에는 대표 국정과제로 추진해 왔다. 2021년 6월에 참여연대에서 발간한 검찰보고서를 보면 문재인 정부 4년 동안의 검찰개혁 이행 현황이 정리되어 있다. 



참여 정부의 검찰개혁 한계로 분석했던 중수부 폐지,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과제들이 이행되어 왔으나 여전히 검찰개혁에는 실패한 것 같다. 거칠게 말하면 참여정부 검찰개혁의 실패는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복수와 함께 과거 검찰로의 회귀로 나타났고,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실패는 윤석열이라는 검사출신 대통령 후보를 만든 것 아닐까.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책을 들고서 10년 전 자신의 검찰개혁 평가를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10년 전 책을 읽으면서 참여정부의 검찰개혁 실패가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실패와 상당히 겹쳐진다는 생각을 했다. 참여정부 시절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인한 검찰개혁 동력 상실, 문재인 정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와 탄핵에서의 공로로 인한 검찰의 본질에 대한 착각, 법무부 장관의 빈번한 교체, 법무부와 검찰 사이의 갈등, 제도는 바꿨으나 검찰 조직의 본질은 그대로인 상황 등 여러모로 참여정부 시절 개혁 실패의 데자뷔를 보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더 이상의 검찰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검찰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2003년 고 노무현 대통령과 대화를 하던 검사들의 태도와 수준이 과연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평생을 검사로 살아오다 검찰 조직의 정점에서 정치로 옮겨탄 윤석열 후보는 어떨까?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정부를 이어가게 될 다음 대통령은 책에서 인용한 이 말을 잊지 말기를.


“루쉰의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는 글에서처럼 물에 빠진 개가 주인을 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패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208쪽)


“정치가 스스로 개혁되지 못하면 그 역할을 검찰이 담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치는 검찰에 종속된다.”(28쪽)

"검사들만큼 헌신적이고 유능하고 책임 있게 일하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열심히 하는 만큼 또 본인들이 대한민국을 끌고 가고 있고, 검찰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이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검찰은 국민의 공복이다. 어떻게 하면 국민들을 잘 섬기고, 국민의 명령을 잘 따를까 하는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지 않단 말이에요. 그리고 자기들 잘되는 게 검찰과 나라가 잘되는 것이다, 그 말을 거꾸로 하면 우리를 공격하면 마치 나라를 공격하는 국사범이 되는 것처럼 생각해요. 이런 생각들이 딱 똬리를 틀고 있단 말이에요."(264-265쪽_천정배 전 장관의 말) - P265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주면 검찰이 저절로 민주화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이었다. 검찰은 한국 사회에서 이미 기득권 세력 중 가장 강력하기 때문이다."(369쪽) - P369

"루쉰의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는 글에서처럼 물에 빠진 개가 주인을 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패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208쪽) - P208

"정치가 스스로 개혁되지 못하면 그 역할을 검찰이 담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치는 검찰에 종속된다."(28쪽)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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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설계자들 - 어떻게 함정을 피하고 탁월한 결정을 내릴 것인가
올리비에 시보니 지음, 안종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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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의사결정 분야 권위자 올리비에 시보니 지음 '선택 설계자들'


부패하고 무능했던 대통령을 탄핵하고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을 선출한 지 4년 반. 대한민국은 또 한번 나라의 리더를 선택해야 하는 때를 맞이하고 있다. 시민의 투쟁으로 희망과 기대를 받으며 만들어졌던 정부였건만 참 얄궂게도 지금은 시민들의 원망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촛불 정부라고까지 불리던 시민의 정부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시민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만드는 반복된 정책 실패들 때문이라 생각한다. 대표적인 반복된 실패를 꼽는다면 양극화 심화와 노동의욕 상실을 초래한 부동산 정책일 것이다.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엘리트들이 어째서 반복되는 실책을 저지르는 걸까.
 

나쁜 리더가 나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쁜 결정은 매우 성공하고 신중하게 선택된, 존경 받는 개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런 리더들은 유능한 동료와 조언자들로부터 조언을 얻고, 모든 정보를 이용하며, 일반적으로 건전하고 적절한 동기를 갖고 있다.(22쪽)

전략적 의사결정 분야 권위자인 올리비에 시보니가 자신의 저서 <선택 설계자들>에서 말한 것처럼 현 정부의 정책입안자들과 실행자들 역시 건전하고 적절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동기가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했다.

올리비에 시보니는 여러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실패하는 의사결정의 이유 9가지를 추려내 책에 소개했는데 대선을 준비하는 리더와 그 팀이 반드시 들었으면 하는 조언들이 있다.

현 정부와 여당이 빠진 편향의 함정들

다양한 인지적 편향이 결합되어 판단의 오류를 반복하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실패로 이어진다고 말하는 저자는 합리적 결정을 가로막는 함정을 9가지로 정리했다. 스토리텔링, 모방, 직관, 자기과신, 관성, 위험인지, 기간, 집단사고, 이해충돌이라는 함정인데 이들 중 현 정부와 여당의 주요 결정권자들이 빠졌을 법한 함정들이 눈에 들어온다. 

첫 번째는 자신들의 생각에 부합하는 것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시하려는 확증 편향이다. 자신들이 추진하고자 하는 방향에 부합하는 근거, 정황, 시민들의 반응을 찾아내고 그것이 사실이라 생각했던 경우가 잦았던 것 같다. 때로는 통계 숫자들을 근거로 들면서 자신들이 그래도 선전하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지만 숫자 조차도 자신들의 편향에 맞춰 해석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 예측에 대한 과신, 그리고 자신 있어 보여야 한다는 조직의 압력은 경쟁자에 대한 과소평가라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과소평가'는 실은 절제된 표현이다. 대개 우리는 경쟁자들을 그냥 무시하면서 그들의 행동과 반응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100쪽)


자기과신이 두 번째로 떠오른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어떤 정책이든 성공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선 여러 가지 우호적인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하나의 작은 문제만으로도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했다. 발목잡기만을 일삼는 야당은 제쳐두고라도 장관들 인사, 주택정책,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해 제기되는 건강한 비판을 불편하게만 여기고 외면했던 부분들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상대편 정당의 수준이 형편없이 낮았던 점과 국민들이 집권 여당에 과반이 넘는 의석수를 허락한 것도 현 정부와 여당의 자기과신을 부채질하지 않았을까 싶다. 경쟁자보다는 자신들이 도덕적이고 덜 나쁘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대표성을 가진 상징적 인물들이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다는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더 커졌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여당은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집단이었다. 올리비에 시보니가 '정말 큰 실수는 팀 활동의 결과로 나타난다'고도 했듯 민주정부라는 타이틀 아래 모여 정당과 행정부가 나름 강력한 원팀을 이뤘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기 힘든 구조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대선을 준비하면서도 건설적인 비판과 다양한 시각이 존중받는 '원팀'이 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겠다.

동일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동일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음 번 대통령 후보자와 그 팀의 리더들은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올리비에 시보니가 다양한 사례에서 확인한 건 '자신의 편견을 깨달을 수 없고, 따라서 편향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스스로가 어떤 편향에 빠졌는지, 그것을 피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를 찾으려하기보다는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을 개선'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저자는 제안한다.
 

어떤 편향을 미리 알고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편향에서 자유로운 의사결정자가 될 수 있다고 해도 득보다 실이 많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편향을 없앨 수 없다. 따라서 자기계발은 편향을 극복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아니다.(226쪽)


저자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과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프로세스화' 하라고 조언한다.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은 품질을 높이기 위한 프로세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정치적 의사결정에도 이와 같은 방법을 도입하면 어떨까? 정책을 설계할 때도 점검표를 가지고 제품 품질을 확인하는 것처럼 좀 더 세밀하게 정책의 영향을 검토하는 과정을 충분히 가진다면 이전과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프로세스와 점검표에 다음 4가지 질문은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저자는 기업의 투자결정에 대한 질문을 제시했지만 이를 정치적 의사결정 혹은 정책 설계와 실행에 적용한다고 생각하고 질문을 조금씩 바꿔보았다.

1) 실행하려는 정책 제안과 관련된 위험(부작용)과 불활실성을 확실히 논의했는가?
2) 실행하려는 정책 제안에 대해 토론할 때 대표자 혹은 의사결정권자의 의견과 배치되는 관점이 제시되었는가?
3) 정책 제안을 지지하는 자료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와 상반되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찾아보았는가?
4) 정책 제안 승인 기준이 사전에 설정되었는가? 그리고 그 기준이 논의하는 참석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었는가?

프로세스란 의사결정 전에 반드시 수행해야 할 미리 정해진 업무와 분석에 대한 지시 사항이다. 시간이 흐르면 이것은 점검표를 확인하는 절차가 된다. 이 절차의 최종 결과물을 확인하고 논의하는 것이 좋은 프로세스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하고 상반된 관점들이 부딪치는 활발한 논쟁이 필수적임을 기억하고, 리더는 다양한 관점의 충돌을 촉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나마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의도를 가진 팀이 부디 좋은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마련함으로써 향후 5년의 대한민국을 더 나은 방향으로 빚어갈 수 있는 성공적인 정책들을 마련하고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소수 정당의 제안이라도 정책과 효과분석이 훌륭하다면 기꺼이 수용하고 협력할 수 있는 열린 팀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나쁜 리더가 나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쁜 결정은 매우 성공하고 신중하게 선택된, 존경 받는 개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런 리더들은 유능한 동료와 조언자들로부터 조언을 얻고, 모든 정보를 이용하며, 일반적으로 건전하고 적절한 동기를 갖고 있다. - P22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 예측에 대한 과신, 그리고 자신 있어 보여야 한다는 조직의 압력은 경쟁자에 대한 과소평가라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과소평가‘는 실은 절제된 표현이다. 대개 우리는 경쟁자들을 그냥 무시하면서 그들의 행동과 반응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 P100

어떤 편향을 미리 알고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편향에서 자유로운 의사결정자가 될 수 있다고 해도 득보다 실이 많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편향을 없앨 수 없다. 따라서 자기계발은 편향을 극복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아니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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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역사
발터 샤이델 지음, 조미현 옮김 / 에코리브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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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민주노총은 각 지역 본부들을 중심으로 “불평등 타파”를 구호로 내걸고 집회를 열었다. 코로나19 감염확산 우려에도 불구하고 총파업대회를 진행했던 이유는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에게 불평등이 그만큼 절박한 문제라 생각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총파업대회를 통해 불평등이 문제인 이유와 평등이 왜 중요한지 시민들의 광범위한 공감을 얻어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는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을 받는 소위 ‘능력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과정이 공정하다면 그 결과로 오는 불평등은 수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학력, 시험 등의 결과로 인한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한국식 능력주의가 공고한 사회에서 불평등을 타파하자는 구호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혹은 노력이 부족한 패배자들의 외침으로 들릴 가능성이 높다.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을 논할 때 불평등이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먼저 세심하게 논의함으로써 공감을 얻어낼 필요가 있다.

불평등, 왜 문제지?

영국의 세계적 석학 리처드 윌킨슨은 <평등이 답이다>에서 한 사회의 신뢰 수준, 범죄율, 사회 계층 이동성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이 불평등에 있음을 일깨웠다. 이후 <불평등 트라우마>에서 불평등이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탐구했다. 리처드 윌킨슨은 불평등한 경험과 환경이 사회에 속한 인간의 사고, 행동양식, 그리고 정신건강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들을 보여주었다.

우리 나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도 연구보고서(자산가격 변화가 경제적 불평등과 대외경제 변수에 미치는 영향 분석, 2019.12.30)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불평등이 인간과 그 구성원들이 속한 사회에 광범위한 문제를 일으키는 유해한 요소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불평등은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그러면 우리는 불평등을 ‘타파’할 수 있을까? 발터 샤이델이 쓴 <불평등의 역사>를 보면 한국을 포함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평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을 하게 된다. 발터 샤이델은 원시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를 톺아보며 불평등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고, 불평등을 크게 허물었던 네 가지 요인을 제시했다.

불평등의 역사와 평준화의 네 기사

책에 따르면 기술(도구) 발전, 농경시대 토지와 가축의 소유, 다음세대로 부를 전달하게 한 제도, 정치적/군사적 권력, 제국의 형성, 현대 사회의 경제발전과 도시 성장 등으로 인해 불평등은 크게 증가해 왔다. 그러나 불평등 수준은 영속적으로 커지기만 하지는 않았다. 인류 역사의 몇몇 지점에서는 불평등이 크게 완화되는 ‘대압착’을 경험했다. 발터 샤이델은 이를 ‘평준화의 네 기사’라고 이름을 붙였다.

대중 동원 전쟁, 변혁적 혁명, 국가 실패, 치명적 대유행병. 이들 ‘평준화의 네 기사’는 발터 샤이델이 인류 역사에서 뽑아낸 평등화 메커니즘이다. 책을 읽기 전에 막연히 가지고 있었던 진보적 분배/복지정책, 노동 운동, 민주화 등이 인류에게 평등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는 매우 다른 결론이었다. 게다가 저자는 책의 시작부터 불평등 해소에 대해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세계대전은 비교적 짧았고, 그 여파는 시간이 지나면서 잠잠해졌다. 최고 세율과 노조 조직률은 떨어지고, 세계화가 부상하고, 공산주의는 자취를 감추고, 냉전 시대는 끝나고, 제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은 희미해졌다. 이 모든 게 최근 불평등이 부활한 이유를 더 이해하기 쉽게끔 만든다. 전통적인 격렬한 평준화 동력은 현재 휴면기에 들었고, 가까운 미래에 귀환할 가능성은 낮다.”(28쪽)

발터 샤이델은 기술적/경제적 발전과 국가 형성의 상호작용으로 불평등이 증가했고 불평등 수준이 정점에 이르는 시점에서 이를 약화시키는 격렬한 충격이 필요했다는 자신의 핵심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책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세계 대전에서부터 근대 이전에 있었던 대규모 전쟁, 그리고 혁명 중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이 인류에게 일시적으로나마 평등을 가져다 주었다.

중국 당나라 귀족의 종말, 서로마 제국의 붕괴와 같은 국가 실패 혹은 체제의 붕괴 역시 불평등을 무너뜨리고 평준화를 가져왔다. 마지막으로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으로 인해 인류의 상당수가 죽음에 이름으로써 비로서 불평등의 정도가 완화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이처럼 잔혹한 네 가지 범주에 속하지 않는 평준화 동력은 없었던 것일까?

저자는 전쟁이나 혁명이 없는 상태에서 추진되었던 토지개혁, 채무 면제, 노예 해방 등도 불평등을 줄이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심각한 충격을 가져왔던 경제 위기들도 잠시 나마 불평등을 주춤하게는 했지만 이내 회복되는 과정에서 평준화를 유지하지 못하고 불평등을 더욱 가속화했다. 또 한가지 놀라웠던 점은 민주화 조차 그 자체로 소득 불균형을 초래하는 경제 발전을 가져온다는 사실이었다. 

“역사는 우리에게 평준화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준다. 하나는 위기 시에 급진적인 정책적 개입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갖가지 공산주의 혁명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대전과 대공황의 충격은 많은 부분을 이런 특정한 맥락에 빚진, 다른 상황 아래서라면 실현 가능하지 않았을 평준화 정책 방안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 교훈은 한층 간단하다. 요컨대 정책 입안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거듭해서 국가 내 물질적 불균형의 압착을 이끌어낸 것은 인간의 통제 영역 밖에 있거나 당대에 실행 가능한 모든 정치적 의제의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있는 폭력적 힘이었다. 평준화의 가장 효과적인 메커니즘 중 어느 것도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565쪽)

불평등을 깨뜨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 평등을 이룬다는 것은 유토피아 같은 이상적 환상인걸까? 계속되는 경제 발전, 경쟁 시장, 교육, 기술 발전으로 인한 자동화, 세계화, 노조의 영향력 약화 등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요소들로 가득한 현 시대엔 불평등 타파의 희망은 내려놓는 것이 좋을까? 

역사에서 경험한 대압착과 같은 불평등 ‘타파’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평등의 해악을 인정하면서도 피흘리는 희생이 따라야 평등이 온다는 겁박 같은 주장에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대압착까지는 아니어도 불평등의 ‘수준’을 충분히 좁히는 노력을 해 나가야 한다. 책의 말미에 발터 샤이델은 “더 커다란 경제적 평등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 모두는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그것이 항상 비명과 울음 속에서 탄생했음을 기억하는 게 좋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협박처럼 들리는 이 말 중 ‘극소수의 예외’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대중 동원 전쟁의 결과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도시국가의 강력한 시민 계급 체제와 폴리스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재산 축적을 방지했던 고대 그리스의 사례가 있었고, 세계 대전 후 누진 세제 및 노조의 활성화로 인해 불평등의 회복 속도가 상당히 늦어졌던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도 저자는 전쟁의 결과라고 해석했지만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저자는 세제 개혁, 보편적 의료서비스, 독과점 해소 등 다양한 평화적 불평등 해소 방안들에 대해 정치적 실행 가능성이 매우 낮고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정치적 실행 의지가 강력하고 구성원들이 이 의지를 지지한다면 불평등의 수준이 좁혀지는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 시대는 불평등의 역사를 새로 쓰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세계대전은 비교적 짧았고, 그 여파는 시간이 지나면서 잠잠해졌다. 최고 세율과 노조 조직률은 떨어지고, 세계화가 부상하고, 공산주의는 자취를 감추고, 냉전 시대는 끝나고, 제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은 희미해졌다. 이 모든 게 최근 불평등이 부활한 이유를 더 이해하기 쉽게끔 만든다. 전통적인 격렬한 평준화 동력은 현재 휴면기에 들었고, 가까운 미래에 귀환할 가능성은 낮다. - P28

역사는 우리에게 평준화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준다. 하나는 위기 시에 급진적인 정책적 개입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갖가지 공산주의 혁명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대전과 대공황의 충격은 많은 부분을 이런 특정한 맥락에 빚진, 다른 상황 아래서라면 실현 가능하지 않았을 평준화 정책 방안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 교훈은 한층 간단하다. 요컨대 정책 입안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거듭해서 국가 내 물질적 불균형의 압착을 이끌어낸 것은 인간의 통제 영역 밖에 있거나 당대에 실행 가능한 모든 정치적 의제의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있는 폭력적 힘이었다. 평준화의 가장 효과적인 메커니즘 중 어느 것도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 P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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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기본소득 - 자유로운 사회, 합리적인 경제를 향한 거대한 전환
필리프 판 파레이스.야니크 판데르보흐트 지음, 홍기빈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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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영화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는 영화 자체의 스토리도 재미있지만 영화에서 상상한 30년 후 미래의 모습(2015년)을 현실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영화에서 주된 도구가 되는 타임머신은 실현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다른 다양한 기술이나 제품들은 현실에서 이뤄진 것들이 꽤 많습니다. 지문결제, 드론, 무인상점, 스마트 TV 등 상상이 이미 현실이 된 기술들을 보면 신기하기만 합니다.

호버보드, 하늘을 나는 자동차, 쓰레기를 이용한 에너지 변환 시스템 등도 아직 대중화되지는 않았지만 기술을 구현한 제품이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미래를 상상하고 그것을 향해 집요하게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 참 놀랍습니다. 호모 이마기쿠스(Homo imagicus)라는 별명이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지금도 끊임없이 다양한 모습의 미래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상상하는 미래는 기술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인류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인간 사회 모든 부분에 대해 상상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계속 노력해왔습니다. 그 중에서 “만인의 실질적 자유”를 꿈꾸며 기존의 통념을 거스르는 ‘기본소득’이라는 미래를 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재난은 소수의 꿈이었던 기본소득을 공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기본소득의 교과서

하지만 기본소득이라는 경험해 본 적 없는 미래는 우리를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습니다.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본소득이 “일, 노동, 여가, 소득, 가족, 사회, 국가 등등에 대해서 지난 몇천 년간 인류가 생각하고 믿어왔던 거의 모든 윤리적 과학적 통념에 근본적으로 모순”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본소득이 정치공간에서도 논의되고 있는 요즘 <21세기 기본소득>을 읽으면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이 정말로 바라는 것은, ‘무조건적 기본소득’이라는 주제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 그리고 이해를 돕는 명쾌한 혜안들을 모아놓은 모종의 기록 보관소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에서 기본적인 사실과 개념에 대해 자주 오류와 혼동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이를 바로잡는 데 양쪽 진영 모두에게 유용할 것이다.”(16-17쪽)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인공지능, 자동화 등 기술 발전으로 인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과 기술 발전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전망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플랫폼 노동 현실을 보면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해도 일자리의 질이 예전처럼 좋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기술 발전이 소득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기본소득이라는 상상으로 인류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조건없이 현금을 지급한다’는 기본소득의 철학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게으름을 조장할 것이다’,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하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등의 반론들이 나오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21세기 기본소득>에는 이와 같은 반론들에 대한 합리적인 대답들이 담겨 있습니다.

오래된 개념 기본소득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장부터 4장까지는 기본소득에 담긴 주요한 논리부터, 기본소득과 유사한 사회복지 제도, 기본소득 이전의 공공부조와 사회보험, 기본소득의 제안과 여러 나라에서 있었던 찬반논란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오래 전에 제안되었습니다. 1796년에 토머스 페인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든 부유한 사람이든 모든 이에게 돈을 지급하자는 것이 나의 제안이다.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차별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최상이다. (중략) 내가 제안하는 계획의 재원은 만인의 것인 자연적 상속물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는 인간 스스로가 창출한 혹은 상속받은 그 어떤 소유물보다도 상위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또한 만인에게 똑같이 지급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을 받지 않기로 선택한 이들은 그 돈을 공동 기금에 다시 쾌척하면 될 일이다.”(180쪽)


무려 200여년 전부터 제안되었던 이 개념은 그때부터 지속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자선에 기대는 구호에서 벗어나 제도적으로 최소소득을 보장하자는 합의는 이뤄졌지만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가 항상 논란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오고가는 갑론을박은 기본소득과 복지제도의 역사를 훑어보고 나면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는 소모적 논쟁들로 보입니다.

기본소득, 정말 가능할까?

책의 후반부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해 제기되는 핵심적인 물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5장부터 7장까지는  기본소득이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기본소득을 ‘경제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가?’와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한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합니다.

기본소득의 무조건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게으름에 빠질 것이라는 오래된 반론에 대해 저자들은 정의와 권리의 관점에서 바라보자고 제안합니다. 자유를 모두에게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 정의라면 자유의 수준을 가장 덜 가진 이들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입니다. 또한,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면 교육, 돌봄, 공동체와 마을 활동 등 보다 폭넓은 의미의 생산적 활동이 확장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게으른 자들에게 과도하게 지급함으로써 발생하는 부당함의 크기가 아무런 돈도 받지 못한 채 아이들, 노인들,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함의 크기를 초과하지 않는 수준에서 기본소득이 필요한 것이다.”(250쪽)


기본소득의 경제적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들이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제약사항이 있는 실험들로는 기본소득이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가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점을 저자들은 지적합니다. 저자들 역시 명확하게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리지 못합니다. 다만 다양한 재원마련 방법들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이 세금부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본소득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주려면 당연히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저자들은 후한 수준의 기본소득을 실행하려 할 것이 아니라 낮은 수준의 단계적 경험을 통해 혜택을 경험하게 해 증세에 대한 반감을 감소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나라에서 지급했던 국가긴급재난지원금의 경험이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생각합니다.

인류는 존재하지 않던 유토피아를 실현해왔다

노동자와 경영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과 남성, 다양한 시민단체와 정당들. 이들은 기본소득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요? 사회구성원들 모두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실현되어 본 적이 없는 제도이기 때문에 의심과 우려가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대중과 정치지도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기 위해선 분명한 비전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책의 저자들이 제시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할 의지를 가진 상상하는 이들이 마련해야 할 그림입니다.
 

“이는 그냥 백일몽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매력을 가진 사회 모델이어야 하며, 공정성에 있어서나 지속가능성에 있어서나 응당 철저함 검증을 거친 것이어야만 한다. 이러한 모델은 명징한 언어와 뚜렷한 형태로 제시되어야 하며,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안에 존재하는 공론장에서 논쟁을 거쳐야만 한다. 더 공정한 사회에 대한 희망이 현실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숙의민주주의가 충분히 효과적으로 작동하여 그것으로 현실의 권력 관계들을 길들일 수 있을 때뿐이다.”(472쪽)


만인에게 실질적 자유를 부여하자는 철학을 담고 있는 기본소득. 인류가 한 번도 실현해 본 적이 없는 어찌보면 유토피아적 상상인 제도를 우리 사회의 정치 공간에서 논하고 있다는 사실이 일견 놀랍습니다. 이 책을 통해 기본소득에 대해 제대로 알게되고,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정치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확장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책에서 우리가 내놓은 주장은 과연 유토피아적인 것일까? 분명히 그렇다. 무엇보다 우리가 제안한 것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의미한 수준으로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사람들이 그 것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중략) 우리 사회의 제도적 틀이 가진 역사를 돌아보면, 오늘날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요소들 중 대부분이 불과 얼마 전까지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더 나은 세계에 대한 비전이라는 의미에서 유토피아적이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노예제 폐지, 개인 소득에 대한 과세, 보편적 참정권, 무상의 보편 교육, 유럽 연합의 존재 등 그 예는 무수히 많다. 기본소득이라는 유토피아가 다른 어떤 유토피아보다 더 두드러진 특징도 있다. 즉, 그것을 시행하게 되면 수많은 다른 유토피아적 변화들이 촉진된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지구적으로나, 시장이 강요하는 경쟁력의 압력 아래에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는 많은 아이디어들이 실현되는 것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560-561쪽)


"이 책이 정말로 바라는 것은, ‘무조건적 기본소득’이라는 주제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 그리고 이해를 돕는 명쾌한 혜안들을 모아놓은 모종의 기록 보관소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에서 기본적인 사실과 개념에 대해 자주 오류와 혼동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이를 바로잡는 데 양쪽 진영 모두에게 유용할 것이다."(16-17쪽) - P16

"가난한 사람이든 부유한 사람이든 모든 이에게 돈을 지급하자는 것이 나의 제안이다.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차별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최상이다. (중략) 내가 제안하는 계획의 재원은 만인의 것인 자연적 상속물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는 인간 스스로가 창출한 혹은 상속받은 그 어떤 소유물보다도 상위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또한 만인에게 똑같이 지급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을 받지 않기로 선택한 이들은 그 돈을 공동 기금에 다시 쾌척하면 될 일이다."(180쪽) - P180

"게으른 자들에게 과도하게 지급함으로써 발생하는 부당함의 크기가 아무런 돈도 받지 못한 채 아이들, 노인들,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함의 크기를 초과하지 않는 수준에서 기본소득이 필요한 것이다."(250쪽) - P250

"이는 그냥 백일몽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매력을 가진 사회 모델이어야 하며, 공정성에 있어서나 지속가능성에 있어서나 응당 철저함 검증을 거친 것이어야만 한다. 이러한 모델은 명징한 언어와 뚜렷한 형태로 제시되어야 하며,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안에 존재하는 공론장에서 논쟁을 거쳐야만 한다. 더 공정한 사회에 대한 희망이 현실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숙의민주주의가 충분히 효과적으로 작동하여 그것으로 현실의 권력 관계들을 길들일 수 있을 때뿐이다."(472쪽) - P472

이 책에서 우리가 내놓은 주장은 과연 유토피아적인 것일까? 분명히 그렇다. 무엇보다 우리가 제안한 것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의미한 수준으로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사람들이 그 것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중략) 우리 사회의 제도적 틀이 가진 역사를 돌아보면, 오늘날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요소들 중 대부분이 불과 얼마 전까지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더 나은 세계에 대한 비전이라는 의미에서 유토피아적이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노예제 폐지, 개인 소득에 대한 과세, 보편적 참정권, 무상의 보편 교육, 유럽 연합의 존재 등 그 예는 무수히 많다. - P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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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김규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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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새로 만나서 나를 소개해야 할 때 보통은 이름, 하는 일, 취미생활, 가족관계 등을 말하곤 합니다. 말하다 보면 그것들이 ‘나’라는 존재를 충분히 정의하지 못하는 것 같아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하는 일, 관심사, 가정과 사회에서의 위치와 역할, 정치적 입장 등에 대해 더 말한다 해도 그것들이 ‘나’라는 존재를 제대로 정의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하지만 정체성에 대해 그리 큰 고민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남들에게 나란 존재를 충분히 정의하고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도 살아가는데 큰 불편함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체성을 말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 중 한가지일 뿐인 성적 정체성 때문에 불편을, 불편을 넘어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소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성적 정체성이, 성적 지향이 사회에서 주류인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억압과 차별, 심지어 혐오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 ‘이상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죄악시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정도는 다를지 몰라도 저 역시 성소수자를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봤었습니다.

성적 지향이 나와는 다른 사람을 볼 때 ‘정상’이 아니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성 정체성과 성소수자에 대해 기사나 책 등을 통해 조금씩 알아갈수록 내가 가졌던 생각과 시선이 얼마나 큰 편견이었나 확인하게 됩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사회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당당하게 말하고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책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김규진 지음)를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또 한꺼풀 벗겨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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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터 이성애자였지?

“나는 대체 언제부터 레즈비언이었던 걸까? 처음으로 여자에게 호감을 느꼈을 때?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칭하기 시작했을 때? 첫 연애를 시작했을 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그 질문을 한 주체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이성애자는 자신이 언제부터 이성애자였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걸까?”(18-19쪽)


저도 성소수자들에 대해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되었는지?’ 궁금해하곤 했었습니다. 뭐 궁금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성애자들에게는 이런 질문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런 물음을 하는 제 생각의 바탕에는 성소수자가 나와는 다른 자연스럽지 않은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동성애에 따라 붙는 문란한 이미지로 인해 동성간의 사랑은 뭔가 다를 것이라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레즈비언인 저자가 상대를 생각하며 “언니를 보면 설레었다. 핸드폰 알림이 울리면 언니일까 기대가 됐고, 보고 싶어서 어른 주말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마음은 이성애자인 제가 사랑하는 상대를 생각하던 마음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비혼이 대세인데 결혼을 원하지만

동성애자들은 서로 마음이 맞으면 결혼보다는 대체로 편하게 동거를 하겠거니 단순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이 또한 이성애자의 결혼은 보통 혹은 정상이고 동성애자의 결혼은 특별한 무엇인가 혹은 비정상이라는 편견에서 나온 생각이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저자의 주변 동성애자들이 전체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비혼이 대세인 시대에 오히려 동성애자들은 결혼을 원한다니 새로웠습니다.

“이렇듯 변화하는 세상에 남은 마지막 혼인 수호자들은 바로 동성애자들이다. 미혼으로 남을 완벽한 핑계를 버리고 한 사람과 살고 싶어 하다니, 세간이 생각하는 문란한 이미지와는 조금 괴리가 있다. 적어도 내 주변의 동성애자들은 변화하는 시대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결혼에 집착했다.”(67쪽)


우리 나라는 동성간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동성애자들은 신혼부부 특별공급 주택 청약, 부부간의 재산 문제, 대출, 세금공제, 건강보험료, 수술동의서 등 보장받아야 할 권리 및 생활에 필요한 혜택을 제공받지 못합니다. 저자는 이런 현실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례를 남겨보고자, 그리고 행복해지고 싶어서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어쩌다 보니 시끄럽게 일을 벌이게 되었다. 실명과 사진을 걸고 레즈비언의 삶과 결혼에 대한 얘기를 블로그에 연재하고, 회사에서 신혼여행 휴가를 받은 일 가지고 요란 벅적하게 인터뷰를 해 포털사이트 메인에 올리고, 공중파 뉴스에 출연하여 동성혼 법제화에 대한 의견을 내기도 했다. 사명감이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런 활동들을 이어간 동력은 대의보다는 나 개인의 편의였다. 그냥 내가 좀 편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175쪽)

“가끔 도무지 세상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중략) 하지만 두려움을 무릅쓰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례들을 믿는다. 서울 한복판에서 축제도 벌여보고, 친구들을 불러 결혼식도 열어보고, 마일리지 가족합산도 신청하고, 회사에 돈이랑 휴가도 달라고 해보고. 그렇게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사회는 변한다. 앞으로도 조금 더 나를 믿고 미지의 영역으로 뛰어야겠다.”(184-185쪽)


그들은 생각보다 많고 같은 인간이다

커밍아웃했던 몇몇 유명 연예인들과 미디어에 이따금씩 노출되는 사례들로 인해 성소수자가 말 그대로 정말 ‘소수’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뭔가 더 특별한 사연이나 계기가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생각보다 많았고,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차별하고 억압하고 혐오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정체를 밝히기 어려울 뿐입니다.

“사회에 퀴어는 많아요. 동성애자가 전체 인구의 2~5% 정도라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굉장히 많은 숫자거든요. 한국에만 100만명에서 250만명 쯤 되니까요. 그들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당연히 사회의 일부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앗, 방금 지나친 그 사람! 동성애자일 수 있습니다.”(200쪽)


저자는 비장한 톤으로 동성애자 혹은 성소수자 차별을 철폐하자 주장하기보다는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커밍아웃 팁, 프러포즈 방법 등 자신의 평범한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특히 회사에서 저자가 신혼여행에 대한 경조금과 휴가를 신청했을 때 “동성애자라고 해서 남들 이상으로 증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라는 말이 우리 사회 전체의 당연한 반응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류가 아닌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견고한 장벽을 두르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저자와 같이 새로운 선례를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점은 사회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희망적 신호로 보입니다. “미정부의 승인을 받고, 결혼식도 공개적으로 하고, 언론에 알려져도” 여전히 법적으로 미혼 여성인 저자와 저자의 와이프가 우리 나라에서도 똑같은 인간으로, 부부로 받아들여지는 날을 맞이하기를...

"나는 대체 언제부터 레즈비언이었던 걸까? 처음으로 여자에게 호감을 느꼈을 때?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칭하기 시작했을 때? 첫 연애를 시작했을 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그 질문을 한 주체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이성애자는 자신이 언제부터 이성애자였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걸까?"(18-19쪽) - P18

"이렇듯 변화하는 세상에 남은 마지막 혼인 수호자들은 바로 동성애자들이다. 미혼으로 남을 완벽한 핑계를 버리고 한 사람과 살고 싶어 하다니, 세간이 생각하는 문란한 이미지와는 조금 괴리가 있다. 적어도 내 주변의 동성애자들은 변화하는 시대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결혼에 집착했다."(67쪽) - P67

"어쩌다 보니 시끄럽게 일을 벌이게 되었다. 실명과 사진을 걸고 레즈비언의 삶과 결혼에 대한 얘기를 블로그에 연재하고, 회사에서 신혼여행 휴가를 받은 일 가지고 요란 벅적하게 인터뷰를 해 포털사이트 메인에 올리고, 공중파 뉴스에 출연하여 동성혼 법제화에 대한 의견을 내기도 했다. 사명감이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런 활동들을 이어간 동력은 대의보다는 나 개인의 편의였다. 그냥 내가 좀 편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175쪽) - P175

"가끔 도무지 세상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중략) 하지만 두려움을 무릅쓰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례들을 믿는다. 서울 한복판에서 축제도 벌여보고, 친구들을 불러 결혼식도 열어보고, 마일리지 가족합산도 신청하고, 회사에 돈이랑 휴가도 달라고 해보고. 그렇게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사회는 변한다. 앞으로도 조금 더 나를 믿고 미지의 영역으로 뛰어야겠다."(184-185쪽) - P184

"사회에 퀴어는 많아요. 동성애자가 전체 인구의 2~5% 정도라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굉장히 많은 숫자거든요. 한국에만 100만명에서 250만명 쯤 되니까요. 그들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당연히 사회의 일부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앗, 방금 지나친 그 사람! 동성애자일 수 있습니다."(200쪽)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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