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트기 힘든 긴 밤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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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보다는 결말이 큰 울림을 준다.
초반의 허우구이핑 이야기는 몰입감을 높여주며 사건이 과연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하게 했다.
그러다 거대권력이 사건의 진실을 말살하는 과정이 나오며 내용의 흥미가 떨어졌다. 무소불위의 권력자들에게 주인공이 끝까지 대항할 때 이런 주인공을 향한 협박이나 일련의 사건들이 긴장감을 주기 마련인데, 주요 사건이 이미 과거에 발생했으며 이 과거의 진실을 추적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과거가 아닌 현재의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이었다면 훨씬 더 긴장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으로 인해 여운이 남았던 점은 후반부로 갈수록 나타나는 인물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이었다.
장양은 처음에는 사건의 배후가 권력자라는 것을 알고 수사의 지속 여부를 고민하지만, 계속 증거를 찾아가며 피해자들이 당한 고통, 올바르지 못해 썩은거나 마찬가지인 권력의 부당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점차 진심으로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한다.
그러면서 결말에서 그가 보여준 숭고한 희생은 결국 사건을 추적하는 추리소설에서의 주인공의 비극적 결말이라기보다는, 10년 동안 범죄권력에 처절하게 싸워온 한 인물의 삶이 다수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자 작가의 본래 의도가 아닐까 싶다.
물론 현실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으로 끝맺었으니 이 또한 마음에 와 닿았다. 결국 호랑이는 낙마했지만.
게다가, 장양의 뒤를 이을 선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탄생할 것이라는 실마리도 있다. 옌랑, 자오톄민, 우 부검찰장 등등. 부당한 것에 대한 침묵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쉬울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걸고 그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것은 어렵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다는 판단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과 올바른 것에 대한 열망에서 시작된다면, 어느 무엇보다 그 일을 계속 할 원동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적자지심, 깊은 울림을 주는 좋은 단어를 오랜만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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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전말
죄왼 벌 2. p. 71

"이걸로 영영 끝이야. 나에게 절대 아무것도 묻지 마. 대답해 줄 것이 전혀 없어……. 나한테 오지도 마. 내가 이리로 올테니까……. 나를 좀 내버려 두고, 저들은 …… 내버려 두지 마.
내 말 알아듣겠어?"
 복도는 어두웠다. 그들은 램프 옆에 서 있었다. 잠깐 동안그들은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라주미힌은 평생을 두고그 순간을 기억했다. 라스콜니코프의 불타오르는 듯 집요한 시선이 순간순간 강렬해지는가 싶더니 그의 영혼을, 의식을 꿰뚫어 버렸다. 라주미힌은 갑자기 몸서리를 쳤다. 뭔가 이상 한 것이 그들 사이를 지나간 것 같았다..….…어떤 생각이 암시 처럼 스쳐 갔다, 뭔가 끔찍하고 흉악한 것이, 갑자기 둘 다 이갈 수 있을 법한 것이...... 라주미힌의 얼굴이 망자처럼 창 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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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4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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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쿵쿵 뛴다.
손에 땀이 맺히고 글자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살인을 저지르기까지의 혼란스러운 생각, 그 나름의 논리가 생의 마지막인듯 휘몰아친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점은 완전히 정신나간 사람의 이성적인 통찰력을 보았다는 점이다.
라스콜니코프는 그 자신을 비범한 사람에 위치시켜 노파를 죽이는 살인을 저질렀다. 후반부에 나오는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의 분류, 인류의 역사에서 사상과 관념이 죽고 죽임을 당하는, 그래서 결국 신념과 생의 학살로 이루어지는 범죄는 라스콜니코프의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그도 인지했듯이 피를 뛰어넘지 못함을 알고서도 섣불리 비범한 사람인줄 착각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초반에 그의 살인 동기를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다 읽고보니 왜 살인을 했는지 이해가 간다. 결국 그 자신의 신념에 대한 과대망상적인 선에 대한 믿음이었다.
통찰력과 광기는 서로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주인공의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통해 인간 깊은 곳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이 둘은 서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비범한 사람은 탄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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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전환, 궤변 혹은 논리
놀라울 정도의 통찰력
죄와 벌 1. p. 468~ 470

제 생각에, 케플러나 뉴턴의 발견이 어떤 복잡한 요인 때문에 그 발견에 방해가 되거나 그 여정에 장애물처럼 서 있는 사람, 한 명이든 열 명이든 백 명이든 하여간 그 사람들의 목숨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없는 것이라면, 뉴턴은 자신의 발견을 전 인류에게 알리기 위해이 열 명 혹은 백 명을……… 제거할 권리가 있으며 심지어 그럴 의무마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뉴턴이 이놈 저놈 아무나 내키는 대로 죽이거나 시장에서 매일 도둑질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나아가, 제 기억으로, 제가 그 논문에서 개진하는 바에 따르면, 모든…… 뭐, 예컨대, 아주 고대부터 리쿠르고스, 솔론,
마호메트, 나폴레옹 등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입법자나 제정자라 할지라도 모두가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범죄자였다, 새로운 법률을 내놓고 그럼으로써 사회에서 신성시되고 자자손손 대대로 전해져 온 오랜 법률을 파괴하고, 유혈 사태가(때로는 오랜 법률을 지키기 위해 그야말로 아무 죄 없이, 떳떳하게 행해신 유혈 사태도 있지만) 자기들에게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물론 그 피 앞에서도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범죄자였다, 라는 겁니다. 이런 인류의 은인과 제정자들 대부분이유달리 소름끼치는 살인마였다는 사실은 실로 주목할 만하죠. 한마디로, 저의 결론인즉, 위대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궤도

에서 조금이라도 일탈한할 능력이 조금이라도자가 될 수밖에 없다, 물렇다, 라는 겁니다. 그들은 다른금이라도 일탈한 사람들, 즉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말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그 본성상 반드시 범죄수밖에 없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어쨌거나 그다는 겁니다.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는 궤도에서 일탈하르고, 그렇다고 궤도에 머물러 있는 것도 그 본성상 동의할 수 없고, 제 생각으로 동의하지 않을 의무마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보시다시피, 지금까지는 여기에 특별히 새로운 건 전혀 없습니다. 이런 내용은 천 번은 족히 쓰였고 또 읽혔지요. 사람들을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분류한 것에 관한 한, 다소간 자의적이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사실 제가 정확한 수치에 근거하여 주장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저는 다만 저의 주된 사상을 믿을 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급 부류(평범한 사람들), 즉 오로지 자신과 비슷한 자들을 생산하는 데만 기여하는, 말하자면 재료이며, 다른 하나.
는 본질적으로 사람들, 즉 자신이 속한 무리에서 새로운 말을할 수 있는 천부적 재능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세분하자면 물론 끝도 없겠지만, 두 부류를 구분 짓는 특징은 상당히 명확합니다. 첫 번째 부류, 즉 재료는, 대체적으로말해, 그 본성상 보수적이고 점잖은 데다가 순종하며 살고 또한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들은 순종할 의무가 있는데, 그것이 그들의 사명이며 그런다고 굴욕감을 느유도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전부 법률을기는 자들, 그 능력에 따라 파괴자이거나 그런 경향이 있넘어서는 자들, 그 능력

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범죄는 물론 상대적이며 그 조류도 다양합니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극히 다양한 성명을 토해 보다 더 나은 것의 이름으로 현재의 것을 파괴하길 요구하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념을 위해 시체라도, 피라도 뛰어넘어야 한다면 그는, 제 생각으로는, 내면의 양심에 따라 스스로에게 피를 뛰어넘는 것을 허용할 수 있으되 그건 어디까지나 이념과 그것의 규모에 따른 것이라는 점 ㅡ 이 점을 유념하십시오. 오직 이런 의미로 저는 제 논문에서 범죄에 대한 그들의권리를 논하는 겁니다.(기어 하시겠지만, 우리의 논의는 법률적인 문제에서 시작됐잖습니까.) 그래도 많이 불안해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대중은 그들의 이러한 권리를 거의 절대로 인정하지 않은 채 그들을 처형하고 목매달고(정도의 차이는 있지만요.) 그로써, 완전히 옳은 일인데, 자신의 보수적인 사명을 이행하는 반면, 다음 세대에 가서는 바로 그 대중이 처형된 자들을 단상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경배하는 겁니다.(정도의 차이는 있지만요.) 첫 번째 부류는 항상 현재의 주인이며 두 번째 부류는 미래의 주인입니다. 전자는 세계를 보존하고 수적으로증대시킵니다. 후자는 세계를 움직이고 목표를 향해 이끌고갑니다. 이쪽저쪽 다 존재할 권리를 완전히 똑같이 갖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제 논문에서는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것이며 vive la guerre éternelle(영원한 투쟁 만세)라고 할 만하죠, 물론 새 예루살렘* 이 도래할 때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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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1. p. 28

아까만 해도 어떻게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순간적으로 들었지만 정작 상대방이 말을 걸어오자마자 갑자기 불쾌하고 짜증스러운 감정을느꼈는데, 자신의 개인적인 부분을 건드리거나 혹은 그냥 그러려고 하는 낯선 사람에 대해 곧잘 맛보는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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