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제왕의 생애
쑤퉁 지음, 김택규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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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무상
주인공 단백은 섭국이라는 국가의 왕이지만 잔인하고 포악하며 이기적이다. 왕일 때 나라를 진심으로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왕으로서의 결정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무거워야 하는 것인지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왕의 자질을 타고나지 않았음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왕의 자질을 타고난것처럼 보이는 그의 이복형제 단문을 두려워하고 죽이고 싶어했다.
하지만 단문이 왕이 되어서 나라가 부강해지고 태평성대를 이루었는가?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팽국의 속국이 되고 만다. 단문이 단백을 폐위시키고 왕이 되며 단백에게 내렸던 벌은 죽음이 아니라 그를 궁 밖으로 쫓아내 서민으로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을 섭국의 진정한 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무능한 단백이 낮은 자리에서 자신의 훌륭한 통치를 우러러 바라보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궁 안에서 고귀하게 길러진 탓에 서민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단백은 어릴적 보았던,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줄타기를 하러 머나먼 여정을 떠나면서 세상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고 결국 곡예단을 직접 꾸리기에 이른다. 그의 곁을 충실히 지키는 연랑을 잃고도 승려가 되어 줄타기를 계속한다. 파란 하늘로 몇번이고 높이 뛰어오르며 세상의 모든것이 덧없음을 온 마음으로 되새긴다. 결국 진정으로 살아남는 자가 된다.
높은 자리에 앉아만 있었던 어린 왕. 그의 포악함과 무능함이 섭국의 재난을 초래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섭국의 재난은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탐욕이 서로 겹치며 벌어진 불행이었다. 황보부인의 욕심, 맹부인의 탐욕, 단백 자신의 무능함, 여인들의 시기와 질투, 단문의 오만함 등등이 역사의 흐름 아래 섭국을 몰락으로 이끌었다.
단백은 줄을 타며 하늘에 좀 더 가까워지고자 했고 하늘을 높이,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새들을 동경했다. 왕으로 있었을 때의 불안감, 공포, 무력감, 불신 등을 모두 다 떨쳐버리고 자신의 발로 온전하게 하늘을 걸었을 때, 그 밧줄 위에서 오히려 더 자신을 왕이라고 생각했다.
무소불위의 권력도 날아가는 새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버리는 것, 내 발이 나아가는 곳을 직접 정하는 것과 같이 자유를 향한 갈망 외에는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진다. 그야말로 인생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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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시장 1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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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간 군상이 만들어낸 허영의 시장
레베카와 아멜리아가 기숙학교에서 세상으로 나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둘은 기본적으로 성격이 매우 다른데 레베카는 신분이 낮은 고아로서 사람들을 조종하고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자신의 이득에 따라 움직인다. 그에 반해 아멜리아는 부잣집 딸로 태어나 주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어느 누구에게든 사랑이 넘치며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한다.
가난하게 자란 레베카는 신분상승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한다. 풍요롭게 자란 아멜리아는 사람들의 보호에 둘러싸여 순수하게만 자란다. 만약 작가가 둘의 성격을 바꿨다면 레베카는 가난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캔디형 캐릭터가 됐을 것이고, 아멜리아는 본인의 환경을 이용하여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이용하는 캐릭터가 됐을 것이다.
아멜리아는 너무 순진하고 사랑만을 갈구해서 문제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좋은 남자가 아님에도 그가 조금만 눈길이나 관심을 주면 영웅이니 관대한 남자니 온갖 찬사를 늘어놓는데 참 안타깝다. 자신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도빈이 아니라 틈만 나면 그녀를 버리고 자신의 유흥을 찾으러 나가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해도, 그녀가 레베카의 성격을 조금만 닮았더라면 온종일 자기를 괴롭히는 불안감이나 우울함은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었을 것이다.
레베카는 도빈의 말처럼 요부다. 타인에게 관심받는걸 즐기고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는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이득에 따라 사람을 이용한다. 머릿속에 신분상승밖에 없는 인물이며 순진한 아멜리아를 이용하고 그녀의 불행을 즐기는 모습은 교활하고 인간적이지 않다. 그녀는 로던을 사랑해서라기보다 본인이 손쉽게 다룰 수 있고 어느정도의 신분 상승도 가능하기 때문에 결혼했을 것이다.
이는 나폴레옹과의 전쟁에 나간 조지와 로던을 대하는 아멜리아와 레베카의 모습에서도 아주 잘 알 수 있다. 아멜리아는 진심으로 조지가 살아오길 기도한다. 레베카는 그가 돌아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 본인의 재산을 가늠해보고 전쟁을 한몫 챙기기용으로 이용하기에 바쁘다. 사랑을 대하는 두 여자의 모습이 너무 달라 재밌다.
이러한 인물들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허영의 시장은 사람들의 탐욕과 이기심에 의해 만들어졌고 지금까지도 닫히는 일이 없었다. 읽다보며 든 생각은 돈, 즉 자본이 생기는 순간부터 이 시장도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너무 결정론적인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의 탐욕이 돈과 결합하는 순간, 허영의 시장은 계속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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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시장 p. 315

그러니 젊은 여성들이여, 부디 조심할지어다. 섣불리 약혼을해서는 안 되며 솔직하게 사랑을 고백하기를 삼갈 일이다. 결코느끼는 바를 그대로 다 말하지 말 것이며 혹은(이편이 훨씬 더나은 방법인데) 너무 사랑하지 말 일이다. 너무 서둘러 마음을다 털어놓은 이가 어떤 운명에 처하는지를 보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부디 자신을 포함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신뢰하지 말 것을 권고코자 한다. 프랑스인들이 하는 대로 변호사를 신부 들러리 삼아, 그들을 가장 믿을 만한 친구로 의지하여 결혼식을 올리도록 하라.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불편하게 할 수 있을 감정을 품지 말 것이며 마음 내키는 대로 집행할 수도 있고 취소할수도 있는 약속 이외에는 섣불리 다른 약속을 하지 말지어다.
이 허영의 시장에서는 그래야만 덕 있는 인물로서 칭송을 받으면서 존경받고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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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강연 p. 157-158

첫째, 고전이 되는 좋은 책은 인간과 삶에 대한 깊고 정직한 이해를 보여 준다. 좋은 책, 특히 좋은 문학 작품들은 인간의 모순됨과 허약함 그리고 욕망의 파국적 힘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드러낸다. 삶의우여곡절에 작용하는 힘에서 도덕이나 가치 또는 합리성에 의해 제어되는 부분이 의외로 작다는 것도 잘 보여 준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삶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태도에 대해서 그리고 그 속에서 꽃피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알게 해 준다. 이러한 인간과 삶에 대한이해는 연역적 지식이나 이해의 그릇에는 잘 담기지 않는다. 그것들은 풍부한 구체적 세부들에 대한 체험을 통해 귀납적으로 습득될 수있다. 고전의 목록 가운데에서 문학의 비중이 큰 까닭은 바로 이러한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좋은 자질을 고전이 지닌 형성의 힘이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
 둘째, 고전이 되는 좋은 책은 삶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던지고 그에 대한 사유의 힘을 보여 준다. 대개의 경우 삶과 세계에대한 근원적인 물음은 되풀이해서 물어야 하고 또 되풀이해서 새롭게 사유되어야 한다. 고전은 이런 물음과 사유를 자극하고 도와주고발판이 되어 준다. 가령 근원적인 물음을 높은 산에 오르는 등정에 비유한다면, 고전은 과거에 그 산을 등정했던 자의 등정기와 같다고 할수 있다. 우리는 그 등정기에 의존해서 거기에 큰 산이 있음을 알고또 보다 적은 위험과 수고로 산에 오를 수 있다. 이는 고전이 지닌 탐구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셋째, 고전이 되는 좋은 책은 존재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지니고 그에 따라 새로운 통찰을 보여 준다.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통찰은 존재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 지평을 넓혀 준다.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었지만 인식의 그물에 잡히지 않았던 존재와 세계의 모습,혹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나타난 존재와 세계의 모습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책이 그러한 책이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아예 이러한 자질을 소설의 유일한 존재 이유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제껏알려지지 않은 존재의 부분을 찾아내려 하지 않는 소설은 부도덕한소설이다."라고, "유럽 소설의 역사를 이루는 것은 발견의 계승"이라고 말한다.쿤데라의 말을 빌려서 이러한 고전의 자질을 발견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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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렇게 길지 않은 글이지만 글 자체가 하나의 문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었는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책은 주인공의 일생과 고통스러웠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주인공의 사랑이 부차적으로 전개됐는데 영화는 남자와의 사랑에 더 집중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도 책도 모두 만족한다.
사랑 자체가 정상, 비정상으로 나눌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하지만 둘의 사랑이 그렇게 정상적이진 않다. 다만 주인공의 의식과 생각은 매우 성숙해서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정상이라는 기준을 맞춘다.
나에게 성숙함이라는 기준은 어떤 일을 벌였을 때 자신의 의도를 인정하고 결과까지 책임질 줄 아는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주인공은 열여섯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하다. 외부에서 남자와의 사랑을 어떻게 보는지, 자신의 이미지가 어떤지 등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적어도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는 솔직하다. 외부의 시선이나 가족 공동체 내에서의 압박은 그녀의 본모습을 숨기게 하지만 그녀는 이런 자신의 상황과 감정의 괴리감을 알고 있다.
주인공은 남자를 사랑했을까? 그녀가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공간에서 뒤늦게 흘리는 눈물은 그녀가 남자를 사랑했다는 증거다. 이별의 순간 북받쳐오르는 감정마저 억눌러야 했지만 쇼팽의 음악 속에서 확신할 수 없었던 감정을 사랑이라 정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그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순간에서만 그녀를 짓누르는 우울감과 혼란을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독재자처럼 행동하는 큰오빠와 이를 방관하는 엄마, 고통받는 작은오빠. 조각난 거울이 일그러뜨린 모양으로 서로를 비추는 것처럼 그렇게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불행과 외로움이 그녀의 영혼을 좀먹어갈 때 나타난 탈출구를 그녀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억압돼 있던 감정들이 중국인 남자와 사랑을 나누면서 배출될 수 있었고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시간과 공간은 그 때가 유일했다. 그래서 그 남자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국인 남자는 개인, 가정, 사회로서 분명한 역할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첫눈에 반한 백인 소녀에게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결국 그녀와는 절대로 사랑을 이룰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 가문에 종속된 삶 속에서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평생 옆에 두고 싶은 사람과 마음껏 사랑하지 못하는 아픔이 체념이 되고 어느 순간 잊힐듯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랑이라는 형태로 남아 있다.
사랑은 무엇일까. 내 나름대로 답을 내려본다면 사랑은 절박한 서로를 찾아 위로하는 짧고도 긴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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