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렇게 길지 않은 글이지만 글 자체가 하나의 문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었는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책은 주인공의 일생과 고통스러웠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주인공의 사랑이 부차적으로 전개됐는데 영화는 남자와의 사랑에 더 집중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도 책도 모두 만족한다.
사랑 자체가 정상, 비정상으로 나눌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하지만 둘의 사랑이 그렇게 정상적이진 않다. 다만 주인공의 의식과 생각은 매우 성숙해서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정상이라는 기준을 맞춘다.
나에게 성숙함이라는 기준은 어떤 일을 벌였을 때 자신의 의도를 인정하고 결과까지 책임질 줄 아는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주인공은 열여섯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하다. 외부에서 남자와의 사랑을 어떻게 보는지, 자신의 이미지가 어떤지 등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적어도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는 솔직하다. 외부의 시선이나 가족 공동체 내에서의 압박은 그녀의 본모습을 숨기게 하지만 그녀는 이런 자신의 상황과 감정의 괴리감을 알고 있다.
주인공은 남자를 사랑했을까? 그녀가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공간에서 뒤늦게 흘리는 눈물은 그녀가 남자를 사랑했다는 증거다. 이별의 순간 북받쳐오르는 감정마저 억눌러야 했지만 쇼팽의 음악 속에서 확신할 수 없었던 감정을 사랑이라 정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그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순간에서만 그녀를 짓누르는 우울감과 혼란을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독재자처럼 행동하는 큰오빠와 이를 방관하는 엄마, 고통받는 작은오빠. 조각난 거울이 일그러뜨린 모양으로 서로를 비추는 것처럼 그렇게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불행과 외로움이 그녀의 영혼을 좀먹어갈 때 나타난 탈출구를 그녀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억압돼 있던 감정들이 중국인 남자와 사랑을 나누면서 배출될 수 있었고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시간과 공간은 그 때가 유일했다. 그래서 그 남자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국인 남자는 개인, 가정, 사회로서 분명한 역할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첫눈에 반한 백인 소녀에게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결국 그녀와는 절대로 사랑을 이룰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 가문에 종속된 삶 속에서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평생 옆에 두고 싶은 사람과 마음껏 사랑하지 못하는 아픔이 체념이 되고 어느 순간 잊힐듯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랑이라는 형태로 남아 있다.
사랑은 무엇일까. 내 나름대로 답을 내려본다면 사랑은 절박한 서로를 찾아 위로하는 짧고도 긴 여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