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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9년 4월
평점 :
결국 답은 사랑인걸까
지금 출간된다고 해도 굉장히 파격적인 이야기다. 남자배우를 납치하여 여성해방을 위한 자신의 뜻을 대중들에게 펼치고 그들의 무지를 일깨운다는 것은 정말 소설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인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 그것은 하늘의 자식인 자신에게 매우 당연한 사명 같은 것이고, 자신의 삶을 바칠만한 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인 강민주는 지독히도 자신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이성적이고 냉정하며 합리적인지 끝없이 말한다. 그에 비해 다른 사람들의 상황이나 심리에는 별로 공감을 하지 못하며 불행을 겪는 여자들에 대해서도 왜 스스로 그런 고리를 끊지 않는지 한심하게 여긴다. 공감보다는 해결책을 내놓는 사람이고 문제가 생기면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며, 계획을 세울 때는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비하는 철저한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강민주는 어린 시절부터 범상치 않았다. 그녀는 지독하게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멈추기 위해 장독대의 뚜껑을 아버지에게 떨어뜨렸다. 이 때가 불과 그녀의 나이 여섯 살이었다. 보통의 여섯 살 아이를 생각해보면 본능적으로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그녀의 행동이 매우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을 통해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과 그 부당함이 이미 어릴 때부터 그녀의 의식수준에 매우 깊게 새겨졌다. 그리고 그녀는 여성상담소에서 일하면서 불행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며 여성을 억압하는 주체는 바로 남자라는 생각을 확고히 한다.
그리고 폭력을 당하면서도 다음날이면 용서를 구하는 남자에게 마음이 약해져 결국은 용서해주고 마는 많은 여성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하나의 계획을 세운다. 사실 그것은 계획이 아니라 범죄였다. 자신이 하늘의 자식이며 자신의 빛나는 지성으로 사람들을 계몽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강민주는 전혀 죄의식 없이 무고한 한 남자를 납치하기로 한다. 그 남자는 최고의 영화배우 백승하였다.
그녀가 백승하를 지목한 이유는 굉장히 단순하다. 그가 잘생겼고, 많은 여성들에게 호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그의 독특한 분위기와 미소를 유난히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백승하가 강민주가 사랑하고 싶은 남자의 유형이 아니었나 싶다. 왜냐하면 그를 납치한 후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던 강민주의 심리에 매우 큰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강민주의 심복인 황남기는 강민주에게 철저하게 복종하며 그녀가 마치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여기서 매우 이질적인 점은 황남기와 강민주는 동갑이지만 황남기는 강민주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게다가 황남기는 뒷세계에서 꽤나 주먹을 날렸던 덩치 큰 사내이지만 강민주가 화나서 그를 때릴 때면 벌벌 떨면서 맞기만 한다. 둘의 체구만 보더라도 엄청나게 차이 나고 심지어 동갑이지만, 그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정해진 서열을 굳이 거부하지 않은 채 서로를 대한다. 문제는 강민주에 대한 황남기의 충성심이 단순히 복종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강민주는 백승하를 납치하는데 성공하고 그를 방에 가둔 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여러 가지 계획을 실행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본능적으로 백승하에게 끌리게 된다. 처음에는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진심으로 즐겼으나 그와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눈치를 보고 그의 감정변화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강민주는 처음에도 백승하의 모든 것에 대해 황남기에게 보고를 받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백승하의 인간성과 진실성을 느끼며 강민주는 서서히 변하게 된다. 그녀는 황남기의 말처럼 백승하와의 연극 연습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게 되고, 그의 기분에 따라 그녀의 기분도 달라질 정도로 그에게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황남기는 강민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강민주가 그와 같이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한다. 그는 강민주에게 처음으로 반항도 해보고 말려도 보지만 강민주가 전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그만두게 할 수 없었고 결국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녀를 멈추고 만다.
화자가 강민주이므로 강민주의 시선에서 사건과 그에 따른 감정변화를 목격할 수 밖에 없지만 이토록 주인공의 입장에 공감하면서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먼저 나는 강민주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여성에 대한 상당수의 폭력은 남자로부터 비롯됐다는 다소 과격한 명제에도 공감한다. 당장 내 어머니 세대만을 생각해보더라도 그렇다. 강민주가 여성상담소에 들었던 내용이 과연 허구에 지나지 않으며 오직 한 가정 만의 일일까? 남성과 여성은 물리적인 힘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여성이 아무리 용을 써도 남성이 휘두르는 주먹 하나에 나자빠질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이 있을 수 없다. 바람을 피면서도 뻔뻔하게 아내에게 위자료는 줄 수 없다는 남자가 자신의 힘을 여성에게 가하는 순간, 여성의 삶은 지옥으로 바뀐다. 단순한 힘의 차이가 남녀의 삶을 그렇게 만든다. 지금도 남성에 의한 데이트폭력으로 열흘에 한 명의 여자가 죽는다고 한다.
이런 물리적인 것에서부터 의식적인 것까지 여성의 권리는 끊임없이 공격을 받았다. 결혼하면 알지도 못하는 남편의 조상을 위한 제사상을 차리고,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대기업이 아닌 이상 회사에서는 임신한 여성에게 눈초리를 보낸다.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영상이 유포되면 그 영상을 보고 싶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댓글이 달리는데 난 그들이 여자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을 그렇게 당한 여성들만의 피해라고 한정하는 것은 너무 좁은 의식수준이다. 그 여성들이 겪은 권리의 침해가 내게 발생할 가능성은 높다. 요즘은 SNS를 비롯한 소통이 활성화되어 이런 일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이 발생하고 있고, 그로 인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의식수준까지 변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의 의식과 제도적인 부분까지 모두 많이 변화해야 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강민주의 방식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백승하는 남성이라는 성을 떠나서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강민주의 폭력적인 방식에도 그녀의 뜻을 존중해줬고, 강민주에 대해 세상이 조롱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줄도 알았다. 게다가 강민주가 자신의 아이를 납치해서 선물이랍시고 데려왔을 때도 그런 강민주의 비합리적인 행동을 받아들였다. 내가 만약 백승하와 같은 일을 당한다면 난 황남기 대신 강민주를 권총으로 쏴버렸을 것이다. 그만큼 백승하는 강민주가 생각하는, 타도해야 하는 전형적인 남성상이 아니었고, 좋은 남자이자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강민주라는 여성에 의해 성차별에 대항하는 성대결로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백승하라는 남성에 의해 사람간의 화합이 중요하다는 결말로 끝나는 것이다. 불합리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강민주 같은 극단적인 행동가들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하여 해결책을 같이 강구하고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화합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사랑이다. 강민주가 과연 백승하를 사랑한 것인가에 대해서 나에게 자문해봤는데 결론은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강민주는 조지 윈스턴의 앨범을 즐겨 들었는데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사람도 사랑할 줄 알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민주가 들었던 조지 윈스턴의 12월 앨범을 듣고 나자 내 생각에 확신이 생겼다. 두 번째로 이것이 제일 결정적인데, 후반부로 갈수록 강민주는 백승하를 만지고 싶어하고 안고 싶어하며 백승하가 자신의 아이 때문에 슬퍼하자 그의 아이를 납치하여 하룻밤 같이 있게도 해준다. 물론 일반적인 통념으로는 절대 허용될 수 없는 행동이지만 강민주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를 아끼고 종국에는 그를 뺏기고 싶어하지 않아한다.
강민주가 그렇게 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백승하를 사랑하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외모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강민주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 그의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온다. 얼굴에 점이 어디 있고, 미소는 어떠하며 그 사람의 감정이 얼굴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는지 속속들이 파악하기 시작한다. 강민주가 황남기의 기분을 느낄 때와 백승하의 기분을 느낄 때는 묘사부터가 매우 다르다. 황남기의 경우에는 단순한 감정 등으로 설명하지만 백승하를 바라볼 때는 눈가의 주름부터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 얼굴 표정까지 세세하게 느끼고 설명한다.
강민주와 백승하는 연극연습을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했다. 강민주는 백승하를 무의식적으로 사랑했고, 백승하 또한 강민주를 진정으로 존중했다. 만약 강민주가 죽지 않았다면, 나는 강민주의 의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좋은 남성이 많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것이고, 폭력의 주체는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을 것이다.
백승하의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야반도주를 하며 백승하와 그의 형제들을 버렸고, 그의 아버지는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고된 노동으로 힘든 나날들을 보냈다. 그의 어머니는 백승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이는 백승하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는 정신적인 폭력이었다. 강민주가 생각했던 고정적인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백승하에게는 달리 적용된 것이다.
또한 강민주가 백승하를 납치하여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한 것은 자신의 목적에 대한 정당성을 오히려 약화시킬 뿐이다. 백승하는 가정폭력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오히려 가족을 매우 사랑하며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뜻만 높다고 할 수 있는 강민주의 무모한 행동에도 그녀의 논리를 충분히 존중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자신이 겪었던 경험적인 논리만을 적용시켜 고정적인 역할을 부여했던 것은 잘못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경험과 인식은 어떤 현상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것에 있어 매우 중요하지만 올바른 목적과 대상, 방법이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그녀가 백승하를 다루는 방식도 폭력적이었다. 백승하를 자신의 뜻대로 길들이기 위해 그녀는 폭력을 사용하고 그를 만지기도 하는데 나는 이 부분이 너무 불쾌했다. 다른 사람의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의 신체를 만지는 것은 엄연한 폭력이다. 여기서도 강민주의 논리처럼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 아닌, 강민주 자신이 백승하의 허락 없이 백승하의 얼굴을 만지는 폭력을 가했던 것처럼, 누군가에 대한 억압과 폭력은 성에 고정되지 않는다. 그런 폭력의 주체가 많은 시간 남성에 의해서 이뤄져 왔다 해도, 여성이 남성에게 그런 짓을 똑같이 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않는다.
강민주는 스스로를 신의 자식이라고 생각할 만큼 자의식이 강했다. 자신이 선택됐다고 생각했고,하늘의 사자로서 사람들을 계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거부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았다. 그런 그녀의 계획은 오랫동안 핍박 받아온 여성의 역사와 그녀의 지성이 결합된, 무고한 남성에 대한 테러로 변질돼 버렸다. 나는 그녀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그녀의 방식에는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다. 강민주가 자신의 지성으로 다른 해결방법을 모색했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성의 권리를 높일 수 있는 활동을 했다면 강민주가 그토록 원했던 여성해방에 오히려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나는 여성이 사회 진출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이 새로운 힘의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과도기가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힘은 물리성, 권력 등과 동일시 되며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해 남성과 여성은 많은 부분에서 그런 힘을 나누고 다시 합쳐야 하는 시기가 됐다. 강민주가 결국 백승하와 화합했듯이, 좋은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여성과 남성은 화합할 수 있다고 본다. 작가도 결국은 그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