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여우 - 숫자로 만든 스릴러 그림책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66
케이트 리드 지음, 이루리 옮김 / 북극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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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thriller)’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접하는 곳은 영화관이죠. 액션스릴러, 범죄 스릴러, 호러 스릴러 영화 등등.... 여름철 극장가 포스터나 예고편에서 자주 보게 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스릴러의 정확한 뜻을 물어보면 자신 있게 대답하는 분은 얼마 없을 것 같아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관객이나 독자에게 공포감이나 흥취를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만든 연극․영화나 소설 따위’로 풀이하고 있고, 영어사전에는 thriller가 스릴러물, 범죄·스파이 활동 등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은 책·연극·영화라고 나와 있습니다.

긴장감을 일으키게 하는 이야기에 빠져들며 사건을 추리하여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과정에 초점을 둔 스릴러. 뭔가 ‘19금’ 같은 관람제한 표시가 붙을 법한 스릴러라는 장르가 아이들도 볼 수 있는 그림책에 등장했어요. ‘숫자로 만든 스릴러 그림책’이란 부제가 붙은 <한 마리 여우>라는 책입니다.



표지가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오죠. 청록색 바탕에 선명한 주황빛의 한 마리 여우가 앞표지를 채우고 있어요. 고개를 치켜들고 고고하게 자신의 옆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여우는 눈동자만은 표지를 보는있는 독자를 향하고 있어요. 마치 ‘따라 올 테면 따라와 봐,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을 걸!’이라고 이야기 하듯, 여유롭고 자신감에 찬 표정이에요.

뒷표지에는 여우의 꼬리가 보이고, "한 마리 배고픈 여우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먹이를 찾습니다. 세 마리 통통한 암탉들이 위험합니다!" 라며 이 책 내용에 대한 단서를 던져두었네요. ‘특별한 숫자 그림책을 보는 내내 독자들이 꼼짝달싹 못 할’ 것이라는 문구도 보입니다.



앞표지를 넘기면 색색깔로 찍힌 여우 발자국 사이로 느긋하게 어디론가 향하는 미소를 띤 여우 한 한 마리가 보이고, 그 여우를 따라 앞면지를 넘기면 속표지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되죠.

온라인 서점 분류에 보면, 주제별 책읽기에서 ‘수학 동화’로 나뉘어졌는데, 다른 유아 수학 그림책이 그러하듯 각 페이지에 제시된 숫자와 이야기, 일러스트는 정확히 매칭됩니다. 숫자 1과 한 마리의 여우, 2와 두 개의 눈, 3과 세 마리 암탉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이 책은 ‘스릴러’라고 명시했듯 암탉을 노리는 배고픈 여우와 암탉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달빛이 비치는 농장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한 사건! 그들 사이에 흐르던 긴장감은 어떤 식으로 해소될까요? 배고픈 여우는 과연 암탉들을 잡아먹었을까요?


그림책을 보는 내내 숫자를 세며 이야기에 빠져들고, 다음 상황이 궁금해지는 스릴러의 정석을 보여주는 그림책 <한 마리 여우>는 북극곰 출판사에서 2021년 1월에 출간된 무지개그림책 66번째 책이고, 이 그림책을 탄생시킨 작가 케이트 리드의 첫 번째 그림책이라고 해요.

케이트 리드는 영국 잉글랜드 동부에 있는 노퍽 (Norfolk)에 거주하며 아동책 작가로 일러스트레이터 활동하고 있는데요, 그림책계의 거장 에릭 칼 느낌의 콜라주 기법부터, 프린팅과 다양한 드로잉과 컬러링 기법을 사용해 다채로운 질감으로 캐릭터들을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해 냈습니다.



케이트 리드는 첫 번째 그림책인 <한 마리 여우>로 에즈라 잭 키츠 신인 작가상, 수학과학 연구소 선정 올해의 수학책, 페어런트 초이스 황금상, 시빌즈 픽션 그림책상, 캐피톨 초이스 주목할 만한 그림책 상 등을 수상했어요.

이미지 출처: 의 홈페이지((이밎이https://www.kateread.co.uk/에 자신은 항상 종이를 이용해 노는 것을 좋아했고 이제 그림책을 설명하기 위한 질감을 만들기 위해 그림 자르기, 염색, 인쇄, 그리고 그림 그리기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림책에 대한 사랑도 각별한 그녀는 자신이 “세계 최고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림책 작가로서의 자부심도 표현하고 있어요.


그림책에 대한 사랑도 각별한 그녀는 자신이 “세계 최고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다"며 그림책 작가로서의 자부심도 표현하고 있어요.




1에서 10까지 세는 것이 이렇게 스릴 넘치는 것이었다니!!! 잡아 먹으려는 여우와 잡아 먹히는 암탉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면서 마지막까지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는 <한 마리 여우>. 숫자 세기를 시작한 어린 아이도, 곁에서 함께 그림책을 읽어주는 부모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장르의 숫자 그림책이랍니다. 추천 꾹~


* 본 서평글은 네이버 카페 제이그림책포럼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북극곰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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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위한 노래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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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기 전, 나는 시.알.못.(시를 알지 못하는 사람)임을 밝힌다. 시는 학창시절 입시용 문학작품을 읽었던 것이 대부분이고, 시보다는 유행가 가사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렇게 시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내가 올 초, 작은 책방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매일 시 한편 읽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매일 읽은 시 중에서의 인상에 남은 시구를 인증하고 있는데, 덕분에 자발적으로 시를 찾아 읽고 있다. 시험 점수를 얻기 위해 시어의 뜻과 의미하는 바를 외우고 정답을 찾아야 했던 과거와 달리, 내 마음을 울리는 시를 찾아 읽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성취감도 있고 사물을 색다른 각도로 보는 즐거움도 누리고 있으니까.

‘메리 올리버’도 그 덕에 새롭게 알게 된 시인이다. 소설가 김연수가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기러기>라는 시를 인용하면서 국내에 널리 알려졌고, 지금은 대통령이 된 조 바이든이 2009년 부통령 시절, 9.11테러 희생자 추모식에서 이 시를 낭독했다고 하는데, 이 시의 첫 부분은 내 마음에 깊게 와서 박혔다.



메리 올리버(Mary Oliver)는 14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등을 받았고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시인’으로 이름을 올린 꽤 유명한 시인이다. 2019년 여든 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연에서 찾은 영감을 빛나는 언어로 노래해 '자연주의 작가'라 불렸던 그녀는 자신의 반려견 이야기를 시집으로 남겼다. 원서인 <DOG SONGS>은 2013년에 발표되었고 국내에는 2021년 <개를 위한 노래>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서른 다섯 편의 시와 한편의 산문이 실린 <개를 위한 노래>는 메리 올리비 곁을 함께 한 ‘새하얀 눈을 즐기던 베어, 페차장에서 태어난 루크, 빗자루와 불쏘시개를 보면 과거의 삶을 떠올리며 도망가는 벤저민, 조그만 검정개 바주기, 시인의 이름을 딴 퍼시, 퍼시의 친구 리키’ 등 여러 반려견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레 내 곁을 지키고 있는 나의 반려동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메리 올리버의 시 속에 등장하는 그녀의 반려견들은 단순히 집을 지키는 '개'가 아니다. 그들은 인생을 함께 한 친구이자 자연을 함께 누리는 동반자이고 찰나의 교훈에 눈 뜰 수 있게 도와준 안내자들이었다.



<개를 위한 노래> 속 제이미 올리버의 시어들은 현실적이고 담백하다. 과한 미사어구 대신 그녀가 반려견들과 주고 받은 대화, 교감를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를 노래함으로써 반려견과 함께 하는 ‘평범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메리 올리버의 시와 함께 <개를 위한 노래> 속 일러스트에도 눈길이 간다. 뒤돌아 앉아 "난 언제나 당신을 생각한다”고 수줍은 고백을 하는 개가 표지를 차지하고 있는데, 일러스트레이터 존 버고인(John Burgoyne)이 가느다란 펜 선으로 세밀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 털 한올 한올을 섬세히 표현한 사실적인 개들의 모습은 메리 올리버의 <개를 위한 노래>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한다.



한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1 한국반려동물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반려가구는 604만 가구로 한국인 4명 중 1명 이상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나타났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양육가구 가운데 반려견을 키우는 양육가구는 80.7%를 라고 한다.

반려가구가 꾸준히 늘고,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휴가철마다 물건처럼 버려지고 있는 반려동물들도 여전히 많다. 그래서 동물을 키우는 모든 반려가구에서 이 책 <개를 위한 노래>를 '필독서로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에게 끝없는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는 반려견들의 이야기를 읽고 공감하다보면 우리 인간들도 더 이상의 '배신'은 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시인와 반려견의 이야기가 담긴 <개를 위한 노래>를 읽으며, 당신도 당신의 반려동물과 함께 더 깊이, 더 오래 교감하는 그런 일상을 누리길 바란다.

* 본 서평글은 미디어창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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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세계 - 2023 북스타트 선정도서 보림 창작 그림책
이미나 지음 / 보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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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TV 애니메이션 함께 동생과 꼭 챙겨보던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지금은 폐지됐지만 목도리 도마뱀이 달리던 오프닝 장면과 ♬우와~ 우와~지구는 숨을 쉰다♬ 라는 가사의 오프닝 음악, 손범수 아나운서의 실감나는 목소리 연기는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또 다른 강렬한 기억은 칠흑같이 밤에 사냥을 나서는 육식 동물들의 번뜩이는 눈빛이다. 적외선 카메라에 잡힌 매서운 눈빛 하나가 긴 시간 노렸던 초식동물에게 달려드는 사냥의 순간! 초식동물이 살아남기를 간절히 빌었지만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순리를 화면 밖의 내가 바꿀 수는 없었고, 어린 나는 ‘육식동물은 나빠’라는 애먼 소리만 해댔다.

먹잇감을 향한 날카로운 눈빛, 순간의 공격, 쓰러지는 초식동물... 그 원초적인 자연의 세계를 이미나 작가가 세 번째 그림책 <조용한 세계> 속에 담아냈다.



판권면에 남겨진 작가의 말이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조용한 세계를 상상했다’고 하는데, 이 상상의 단초는 작은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어느 날 하얀 풍산개를 산에서 산책시키다가 고라니를 마주하게 됐고, 고라니를 향해 뛰쳐나가려는 풍산개의 목줄을 부여잡으며 문득 우리가 서로 속한 세계가 다르다는걸 느꼈다고 한다. 인간에게 길들여지기 이전, 그들의 본능 속에 잠재된 늑대의 야성과 본능을 그림책으로 옮겨오고 싶었다고 한다.


Youtube채널 [보림TV]에 소개된 이미나 작가의 작업 브이로그를 보면, 늑대의 본능을 그림책 한권에 담아내기 위해 얼마나 시간과 노고가 들었는지 알 수 있다.  

(https://youtu.be/pM7_tVRCYBM)



독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앞표지 제목 <조용한 세계>에는 파란박이 입혀져 있다. 각도에 따라서 검정 또는 반짝이는 파랑으로 보이는데,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듯 하다. 우리 눈에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지만, 허기진 늑대에게는 움직이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보름밤이다. 숲 속은 고요하지만 사냥의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 긴박하고 숨가쁘다.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반짝이는 ‘박’의 쓰임에는 그런 이중적인 의미가 숨어 있는건 아닐까?




표지그림은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있지 않다. 텔레비전 화면처럼, 액자 속 그림처럼 하얀 틀 안에 조용한 세계가 담겨 있다. 표지를 마주하는 독자를 액자 밖의 관찰자로 확실하게 선을 긋고 출발하는 느낌이랄까? 그 덕에 표지 그림을 더 찬찬히 바라보게 된다. 보름달이 뜬 밤, 늑대들의 눈빛이 숲 속 어딘가를 향하고 있고, 나무 가지 위에 하얀 눈이 쌓인 숲 속 풍경은 거친 붓 터치로 살아 꿈틀댄다.

뒷표지에는 그림책 작가 류재수 선생님의 추천사가 담겨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고맙고 아름다운 그림책'이란 류재수 선생님의 추천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살아있는 날것 그대로의 느낌을 나타내려는 듯, 모든 페이지에는 이미나 작가의 고민이 깃든 붓 자국이 가득하다. 예술 작품을 모은 도감을 만난 느낌이다.



눈이 쌓여 광대한 바다를 닮아 있는 숲 속에,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늑대 한 마리가 등장하고 그 늑대의 독백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혼자 나서는 사냥은 번번이 실패하고, 하루, 이틀이 지나 빈 속으로 닷새가 지났다. 허기가 턱밑까지 찬 늑대는 달빛을 조명삼아, 친구들의 목소리를 환청으로 들으며 사슴 사냥에 나선다. 과연 늑대는 고픈 배를 채울 수 있을까? 조용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야기는 길지 않다. 각각의 페이지에는 최소한의 글자만 담겨 있다. 하지만 리듬이 있고, 긴박함이 전해진다. 배경음악이나 효과음 없이 단지 거친 붓질로 나타난 질감과 다양한 구도의 화면 구성으로 원초적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이미나 작가의 소재를 대하는 독특한 시선과 압도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회화적 특징은 전작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익숙한 장소인 ‘터널’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데뷔작 <터널의 날들>(2016)이나 어릴적 살던 동네를 떠올리며 친구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이야기를 출어낸 <나의 동네> (2019) 역시 평범한 일상을 회화적 터치로 살려낸 작품들이다.

자신만의 세계를 확실하게 구축하고 있는 이미나 작가에 대한 평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림책계의 두 거장의 말로 대신할 수 있다.


이미나 작가표 생명력과 생동력이 담긴 <조용한 세계>. 첫 장면을 마주하는 그 순간부터,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는 듯 강렬하게 그림 속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고, 우리는 무리에서 떨어진 외로운 늑대처럼 사력을 다해 뛰고 있다. 처음 맞이하는 낯선 환경 속에서 사냥에 서툰 늑대처럼 얼음물에 빠지기도 하고, 사슴 발굽에 맞아 상처가 남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버텨내야한다. 내일 드넓은 숲 속을 뛰어다니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다시 이 숲을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 내야한다. 이미나 작가가 오랜기간 공을 들여 작품을 완성해낸 것은, 절망하고 포기하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건 아닐까??

지쳐버린 당신이 호흡을 고르고 다시 한 번 달려주길 바라며, 이 아름다운 그림책 <조용한 세계>를 조심스레 들이밀어 본다.


* 본 서평글은 보림수피아23기로 선정되어, 보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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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같은 안녕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76
아멜리 자보·코린느 위크·오로르 푸메·샤를린 왁스웨일레 지음, 아니크 마송 그림, 명혜권 / 북극곰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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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사이에서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인사말로 사용하는 ‘안녕’이라는 말. 영어는 만날 때 hi, 헤어질 때는 bye로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단어가 따로 존재하지만, 우리말은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모두 ‘안녕’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 <햇살 같은 안녕>은 제목만 보고는 어떤 내용인지 예측할 수가 없었어요.



표지 그림은 굉장히 평화롭습니다. 미색 바탕에 어른 새와 파란 아기새가 ♪나처럼 해봐요 이렇게~♬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듯 서로 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어요. 즐거운 한 때를 포근하게 담아냈는데, 뒤표지에 소개글을 보면 제목에 쓰인 ‘안녕’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이별을 경험한 모든 이에게’라는 설명과 침대 위에 누워 서로를 애틋하게 안고 있는 어른 새와 아기 새의 모습에서 어떤 이별을 이야기하는지 어렴풋이 예상할 수 있습니다. <햇살 같은 안녕>은 단순히 Hi, Hello 같이 안녕(安寧)을 묻는 인사가 아니라 할머니와 아기새의 영원한 안녕(bye)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왜 슬픈 이별을 뜻하는 ‘안녕’ 앞에 ‘햇살 같은’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을까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면, 표지에 등장한 어른 새는 ‘이제도’ 할머니이고 작은 새의 이름은 ‘파랑이’ 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농장에서 이제도 할머니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특히 할머니와 함께 한 추억이 많은 파랑이는 할머니와의 사이가 더 돈독하죠. 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옵니다. 이제도 할머니의 병이 심해져서 의사선생님이 더는 고칠 수 없어졌고, 할머니의 아픔을 줄이는 방법만 남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고칠 수 없는 병이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는 파랑이는 자신과 가족들에게 닥친 ‘안녕의 슬픔’을 어떤 식으로 극복할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꼭 뒷이야기를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햇살 같은 안녕>의 판권면을 보면 인용글이 하나 남겨져 있습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널리 알려진 덴마크 작가 카렌 블릭센의 편지 모음집 <아프리카의 편지> 속 “어떤 슬픔도 이야기로 나누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라는 글인데요, 벨기에 리에주에 있는 병원에서 일하며 죽음 가까이에 있는 아이들을 돌보는 4명의 심리학자- 아멜리 자보, 코린느 위크, 오로르 푸메, 샤를린 왁스웨일레는 병원에서 만나는 ‘죽음 가까이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보통의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다가온 죽음을 숨기거나 슬퍼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 하는데, 어린 아이와 가족이 ‘따뜻하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자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고 해요.



원서 제목은 조금 더 직접적입니다. <Lisette : La fin de vie racontée aux petits et aus grands> 직역하면, <리제트: 젊은이와 노인에게 말하는 삶의 끝>입니다. 그리고 조금 놀라웠던 사실은 이 책의 원래 기획이 아이들에게 안락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에요. 이 책의 또 다른 제목인 <Paulette : L'euthanasie racontée aux petits et aux grands>(<폴레뜨: 젊은이와 노인에게 말하는 안락사> :Cancer & Psychology협회와 협업하여 만든 출판물 )는 제목에 직접적으로 ‘안락사(프랑스어/euthanasie)’라는 단어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같은 책이 왜 다른 제목으로 출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찾지를 못했어요. 확실한건 국내에서 번역한 원서는 좌측 표지의 <Lisette>라는 사실입니다.)

사회적으로도 굉장히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에 다루기 조심스러운 주제이지만, 벨기에는 2002년부터 안락사를 합법화했고(가톨릭 국가 중 네덜란드에 이어 두 번째) 2014년부터는 모든 연령에 안락사를 허용했다고 합니다. 특히 난치병을 앓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질환자의 경우에는 미성년자도 안락사를 허용한다고 법에 명시하고 있는데요, 이 책 <햇살 같은 안녕>은 ‘안락사’라는 또 다른 삶의 끝을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소책자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자료를 찾아보기 전까지는 <햇살 같은 안녕>을 단순히 죽음을 앞둔 이제도 할머니와 파랑이 가족이 겪는 이별의 과정으로 받아들였는데, 자료를 보니 놓쳤던 부분들이 보이네요. 명확하게 ‘안락사’라는 단어를 적어놓지는 않았지만 의사 선생님도 최선을 다해 치료했지만 더는 고칠 수 없고, 아픔을 줄이는 방법만 남았다고 하는 부분들, 가족과 주변 친구들이 할머니를 대하는 태도들, 할머니가 아프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하는 점 등은 예민한 주제를 순화해서 표현한듯 합니다.



<햇살 같은 안녕>의 주제가 묵직해서 그림책의 분위기도 어두울거라 생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벨기에 출신 일러스트레이터인 아니크 마송의 그림 덕분에 이 책은 아이들에게도 다정하고 포근하게 다가갑니다. 그녀는 페이지 곳곳에 그림으로 풀 수 있는 작은 이야기들을 남겨놓았는데요, 이제도 할머니와 파랑이의 추억이 깃든 ‘팽이’나 할머니 침대 옆에 놓인 해바라기 화분 같은 작은 소품들이 그것들이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캐릭터들 또한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예전에 그림책 소모임을 통해 ‘죽음’을 다룬 그림책들을 모아 본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선생님이 “죽음을 다룬 책들을 굳이 어린 아이들에게 읽어줘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어린 아이가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될까 두렵기도 하고 상실로 인한 슬픔을 일찍 알게 하고 싶지 않다고 의견을 주셨습니다. 만약 그 때 <햇살 같은 안녕>을 읽었었다면 주저없이 이렇게 답을 드렸을거예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아픔으로 다가오지만, 그 감정을 제대로 마주하고 풀어내지 못한다면 남은 이들은 해소되지 못한 감정으로 힘들어 할거라구요. 가족과의 이별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슬퍼할 수 있게, 그 과정과 감정을 마주할 수 있게 아이들에게도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며칠 전 만났던 뉴스를 보고 <햇살 같은 안녕> 같은 책이 왜 필요한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가족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고 전화통화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해아 했던 유가족의 인터뷰...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상처와 상실감’이 제게도 전해졌습니다. 죽음이라는 이별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을 때, 남은 이들의 아픔은 날이 가면 갈수록 커지고 짙어진다는 것 까지도 말이죠.

책 서두에 남겨진 "죽음, 상실, 슬픔 같은 감정도 이야기로 나누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처럼, <햇살 같은 안녕>을 통해 이별과 애도의 방법을 배우고 이야기 나누며 이별의 무게를 덜어보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이별에 따뜻한 위로가 될거예요.




*본 서평글은 북극곰 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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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왔지? - 2015년 볼로냐 라가치상 스페셜 멘션 수상작 온그림책 2
아드리앵 파를랑주 지음, 이경혜 옮김 / 봄볕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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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앵 파를랑주(Adrien Parlange) .

단번에 입에 붙지 않는 이 어려운 이름의 소유자는 프랑스 출신의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처음 그의 이름을 접한 건, 그림책 관련 수업에서 <리본>(Le Ruban)이란 책을 만나면서였어요. 2018년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분 스페셜 멘션 수상작인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죠. 양장본 책에 흔히 볼 수 있는 가름끈으로 독자가 직접 참여해 그림책 이미지가 완성되거든요.



2020년 국내 번역 출간된 <내가 여기에 있어>(Le grand serpent) 역시 ‘아드리앵 파를랑주’라는 작가 이름을 보고 거침없이 집어 들었던 책이었어요. 한 소년과 거대한 뱀의 만남. 이야기를 따라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다시 책장을 앞으로 넘겨 그림을 다시 되짚어보게 되는, 그림 속 이야기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어요.


매 작품마다 새롭고 독특한 그래픽 세계를 완성해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 아드리앵 파를랑주. 그래서 그의 또 다른 작품인 <La chambre du lion>도 꼭 만나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국내에서 2015년 출간됐던 이 책은 절판되어 더 이상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중고책으로 구할 수 있을까 중고책방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원서를 찾아보기도 했는데, 저처럼 애타는 독자들의 마음을 읽은 봄볕 출판사에서 <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왔지?>라는 제목으로 2021년 1월에 복간했습니다.



책등을 보시면 ‘온’이란 글자가 보이실 텐데요, 봄볕 출판사에서 나오는 “온그림책” 시리즈 마크입니다. ‘전부’, ‘모두의’라는 ‘온’의 뜻을 살려 1세부터 100세까지 모두가 볼 수 있는 그림책을 지향하고 온의 또 다른 뜻인 ‘꽉 찬’, ‘완전한’ 그림책을 꿈꾸는 책이라고 해요. 모든 연령대가 보고 즐길 수 있고, 일러스트 자체의 매력으로 완전히 꽉 찬, <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왔어?>와 딱 맞아 떨어져요.

(참고로 온그림책1은 <우리가 잠든 사이에>랍니다.)

기존의 절판된 책의 제목은 <곧 이 방으로 사자가 들어올 거야>였고, 이번에 복간된 책은 <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왔지?>인데요, 복간된 이번 제목이 원서 <La chambre du lion>(사자의 방)에 더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책 표지만 보고서는 도무지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가늠이 안 됩니다. 앞표지 좌측 상단에 트라이앵글 채 모양의 선이 그어져있고, 레이스 문양같이 꼬여있는 선도 중앙 상단에 있어요. 그리고 표지 하단에 자리 잡은 아이들... 한 아이는 작은 상자 아래에 누워있고 다른 아이도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어요. 뒤표지의 아이도 몸을 최대한 작게 구부리고 고개는 살짝 들고 있어요. 모두들 자세가 편안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언가에 집중한 모습이에요. 도대체 뭘까요??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주인이 없는 방에 아이가 몰래 들어왔는데, 그 방의 주인은 동물의 왕이라 불리는 ‘사자’이고, 아이가 ‘몰래’ 들어온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절대 열어보지 말아야 했던 상자를 호기심으로 열었던 판도라처럼,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호기심에 ‘사자의 방’에 발을 들인 것이죠. 하지만!!! 용기백배했던 그 마음은 ‘작은 소리’에 금세 사그라지고, 이들은 방 어딘가에 숨게 됩니다. 단순화 된 선으로 표현된 침대, 샹들리에, 양탄자, 거울, 커튼 등 자신을 가릴 수 있는 작은 공간 속으로 숨바꼭질하듯 숨어들어요.

왼쪽에는 글이, 오른쪽에는 이미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데, 이 형식은 독자들이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무대에 세팅된 소품들은 변화가 없어요. 그 위치도 크기도 그대로예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화면에 자리잡은 평범한 선들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단순한 선으로 표현됐지만 무대 위에서 모두 중요한 소품들이죠. 비슷한 사건이 몇번 씩 반복되지만, 이는 점층적으로 쌓이면서 독자들의 긴장감을 높이고,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사자가 방에 돌아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상상하게 만들죠.



드디어, 씩씩하게 등장하는 사자!!! 네 다리를 이용한 사족보행 사자가 아니라 잠옷(?)을 입고 두발로걸어 들어오는 사자의 모습에서 뭔가 반전이 예상되지요?!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사자는 편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을까요? 사자 의 방에서 가장 편안할 수 있었던 건 누구일까요??

매 페이지마다 조금씩 바뀌는 ‘사자방의 변화’를 등장하는 이들은 눈치 채지 못합니다. 모두 사자를 피해 숨어 있으니까요. 오로지 무대 밖에서 지켜보는 독자만 전체 상황을 인지합니다. 또한, 각각의 캐릭터들은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숨어 있는 아이들도, 날아든 새도, 커다란 개도 작은 날벌레와 거미까지도 말이죠!!! 그림책 안에서 펼쳐지는 완벽한 연극 무대라 할 수 있는데요, 단순하고 명확한 구성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을 찾을 수 있어서 정말 놀라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초록의 굵은 선으로 도장 찍힌 듯 표현된 기법이 궁금했어요. 선명하게 그어진 선이 아니라 잉크가 잘 묻은 곳은 진하게 덜 묻은 곳은 연하게 찍힌 듯 표현되어 있는데, 단순하면서도 고전적인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다가 작가 아드리앵 파를랑주의 페이스북까지 닿게 되었어요.

초등학교 때, 조각칼 들고 찍어냈던 고무판화랑 비슷해 보이죠? 리노컷(Linocut)이라 불리는 판화기법인데요, 네이버 “세계미술용어사전”에 따르면 두꺼운 리놀륨 판을 조각도와 끌로 깎아내는 볼록판으로서 목판화에서 발전한 형태랍니다. 인쇄 방법은 목판화와 같지만 리놀륨판 재질이 무르고 연해서 목판화보다 작업이 편리하고 선이 굵고 단순화된 형태의 표현에 적합하다고 해요. 작가 아드리앵 파를랑주는 <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갔지?>에 등장하는 모든 구성 요소들을 리놀륨에 조각하고 찍어내 스캔한 다음, 퍼즐을 맞추듯 요소들을 재배치한 것이었어요. 2015년 이 책으로 볼로냐 라가치상 스페셜 멘션상을 수상할 때의 심사평대로 “우아하면서도 간결한 그림은 개성이 넘치며 신선”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구성과 짜임, 마지막 반전까지!! 이렇게 좋은 책이 하마터면 절판되어 국내 독자들을 만날 수 없을 뻔 했다고 하니, 다시 복간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고 아름다운 이 책을 우리말로 누릴 수 있어 그림책 애독자로서 무척 기쁩니다. 복간되면서 새롭게 번역되어 운율과 입말도 한층 살아났다고 하니까요, 기존 이 책을 읽었던 분들도 새롭게 탄생한 <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왔지?>를 다시 찾아 보셨으면 좋겠어요. 편집과 번역의 중요성을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본 서평글은 네이버카페 제이그림책포럼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봄볕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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