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왔지? - 2015년 볼로냐 라가치상 스페셜 멘션 수상작 온그림책 2
아드리앵 파를랑주 지음, 이경혜 옮김 / 봄볕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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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앵 파를랑주(Adrien Parlange) .

단번에 입에 붙지 않는 이 어려운 이름의 소유자는 프랑스 출신의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처음 그의 이름을 접한 건, 그림책 관련 수업에서 <리본>(Le Ruban)이란 책을 만나면서였어요. 2018년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분 스페셜 멘션 수상작인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죠. 양장본 책에 흔히 볼 수 있는 가름끈으로 독자가 직접 참여해 그림책 이미지가 완성되거든요.



2020년 국내 번역 출간된 <내가 여기에 있어>(Le grand serpent) 역시 ‘아드리앵 파를랑주’라는 작가 이름을 보고 거침없이 집어 들었던 책이었어요. 한 소년과 거대한 뱀의 만남. 이야기를 따라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다시 책장을 앞으로 넘겨 그림을 다시 되짚어보게 되는, 그림 속 이야기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어요.


매 작품마다 새롭고 독특한 그래픽 세계를 완성해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 아드리앵 파를랑주. 그래서 그의 또 다른 작품인 <La chambre du lion>도 꼭 만나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국내에서 2015년 출간됐던 이 책은 절판되어 더 이상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중고책으로 구할 수 있을까 중고책방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원서를 찾아보기도 했는데, 저처럼 애타는 독자들의 마음을 읽은 봄볕 출판사에서 <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왔지?>라는 제목으로 2021년 1월에 복간했습니다.



책등을 보시면 ‘온’이란 글자가 보이실 텐데요, 봄볕 출판사에서 나오는 “온그림책” 시리즈 마크입니다. ‘전부’, ‘모두의’라는 ‘온’의 뜻을 살려 1세부터 100세까지 모두가 볼 수 있는 그림책을 지향하고 온의 또 다른 뜻인 ‘꽉 찬’, ‘완전한’ 그림책을 꿈꾸는 책이라고 해요. 모든 연령대가 보고 즐길 수 있고, 일러스트 자체의 매력으로 완전히 꽉 찬, <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왔어?>와 딱 맞아 떨어져요.

(참고로 온그림책1은 <우리가 잠든 사이에>랍니다.)

기존의 절판된 책의 제목은 <곧 이 방으로 사자가 들어올 거야>였고, 이번에 복간된 책은 <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왔지?>인데요, 복간된 이번 제목이 원서 <La chambre du lion>(사자의 방)에 더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책 표지만 보고서는 도무지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가늠이 안 됩니다. 앞표지 좌측 상단에 트라이앵글 채 모양의 선이 그어져있고, 레이스 문양같이 꼬여있는 선도 중앙 상단에 있어요. 그리고 표지 하단에 자리 잡은 아이들... 한 아이는 작은 상자 아래에 누워있고 다른 아이도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어요. 뒤표지의 아이도 몸을 최대한 작게 구부리고 고개는 살짝 들고 있어요. 모두들 자세가 편안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언가에 집중한 모습이에요. 도대체 뭘까요??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주인이 없는 방에 아이가 몰래 들어왔는데, 그 방의 주인은 동물의 왕이라 불리는 ‘사자’이고, 아이가 ‘몰래’ 들어온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절대 열어보지 말아야 했던 상자를 호기심으로 열었던 판도라처럼,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호기심에 ‘사자의 방’에 발을 들인 것이죠. 하지만!!! 용기백배했던 그 마음은 ‘작은 소리’에 금세 사그라지고, 이들은 방 어딘가에 숨게 됩니다. 단순화 된 선으로 표현된 침대, 샹들리에, 양탄자, 거울, 커튼 등 자신을 가릴 수 있는 작은 공간 속으로 숨바꼭질하듯 숨어들어요.

왼쪽에는 글이, 오른쪽에는 이미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데, 이 형식은 독자들이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무대에 세팅된 소품들은 변화가 없어요. 그 위치도 크기도 그대로예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화면에 자리잡은 평범한 선들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단순한 선으로 표현됐지만 무대 위에서 모두 중요한 소품들이죠. 비슷한 사건이 몇번 씩 반복되지만, 이는 점층적으로 쌓이면서 독자들의 긴장감을 높이고,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사자가 방에 돌아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상상하게 만들죠.



드디어, 씩씩하게 등장하는 사자!!! 네 다리를 이용한 사족보행 사자가 아니라 잠옷(?)을 입고 두발로걸어 들어오는 사자의 모습에서 뭔가 반전이 예상되지요?!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사자는 편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을까요? 사자 의 방에서 가장 편안할 수 있었던 건 누구일까요??

매 페이지마다 조금씩 바뀌는 ‘사자방의 변화’를 등장하는 이들은 눈치 채지 못합니다. 모두 사자를 피해 숨어 있으니까요. 오로지 무대 밖에서 지켜보는 독자만 전체 상황을 인지합니다. 또한, 각각의 캐릭터들은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숨어 있는 아이들도, 날아든 새도, 커다란 개도 작은 날벌레와 거미까지도 말이죠!!! 그림책 안에서 펼쳐지는 완벽한 연극 무대라 할 수 있는데요, 단순하고 명확한 구성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을 찾을 수 있어서 정말 놀라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초록의 굵은 선으로 도장 찍힌 듯 표현된 기법이 궁금했어요. 선명하게 그어진 선이 아니라 잉크가 잘 묻은 곳은 진하게 덜 묻은 곳은 연하게 찍힌 듯 표현되어 있는데, 단순하면서도 고전적인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다가 작가 아드리앵 파를랑주의 페이스북까지 닿게 되었어요.

초등학교 때, 조각칼 들고 찍어냈던 고무판화랑 비슷해 보이죠? 리노컷(Linocut)이라 불리는 판화기법인데요, 네이버 “세계미술용어사전”에 따르면 두꺼운 리놀륨 판을 조각도와 끌로 깎아내는 볼록판으로서 목판화에서 발전한 형태랍니다. 인쇄 방법은 목판화와 같지만 리놀륨판 재질이 무르고 연해서 목판화보다 작업이 편리하고 선이 굵고 단순화된 형태의 표현에 적합하다고 해요. 작가 아드리앵 파를랑주는 <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갔지?>에 등장하는 모든 구성 요소들을 리놀륨에 조각하고 찍어내 스캔한 다음, 퍼즐을 맞추듯 요소들을 재배치한 것이었어요. 2015년 이 책으로 볼로냐 라가치상 스페셜 멘션상을 수상할 때의 심사평대로 “우아하면서도 간결한 그림은 개성이 넘치며 신선”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구성과 짜임, 마지막 반전까지!! 이렇게 좋은 책이 하마터면 절판되어 국내 독자들을 만날 수 없을 뻔 했다고 하니, 다시 복간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고 아름다운 이 책을 우리말로 누릴 수 있어 그림책 애독자로서 무척 기쁩니다. 복간되면서 새롭게 번역되어 운율과 입말도 한층 살아났다고 하니까요, 기존 이 책을 읽었던 분들도 새롭게 탄생한 <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왔지?>를 다시 찾아 보셨으면 좋겠어요. 편집과 번역의 중요성을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본 서평글은 네이버카페 제이그림책포럼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봄볕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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