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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 삶의 완성으로서의 좋은 죽음을 말하는 죽음학 수업
박중철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2년 4월
평점 :

오래 전 할머니께서 독감으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온 가족은 비상 체제였다. 할머니 연세가 있으시니 혹시나 하는 걱정에 할머니의 건강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1인실에 입원해 계셨는데, 병원의 구조가 1인실로 가는 복도에 6인실 병실이 있었다. 병실문이 열려 있어서 지나가면서 병실에 계신 분들을 뵙곤 했는데, 문가에 누워 계셨던 어떤 할아버지가 늘 눈에 띄었다. 아마도 할머니 연배로 보였기에 마음이 쓰였던것 같다. 병원에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주워듣게된 그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다. 병원에 입원하신지 오래되셨고 코에 산소줄을 매고 계셨으며 의식이 있으실때가 거의 없으셨던 분이다. 처음에는 가족들도 자주 면회를 왔으나 긴병에는 장사가 없다고 시간과 함께 가족들도 지쳤던것 같다. 몇번의 고비는 있으셨다는데, 그때마다 좋은 의료 기술로 위기를 넘기셨고, 지금은 돌아가실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상이었다.
그 때 병원 복도를 오갈때 마다 스쳐지나가면서도 별별 생각이 다 들었던것 같다. 병원에서는 당연히 생명을 살려야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런데, 누가봐도 마지막이시라는걸 알 수 있는 상황에서도 생명을 연장 시키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의식도 없이,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하면서 생명만을 연장시킨다는 건 누구를 위한 것일까? 무엇이 옳다는 생각보단 만약에 내가 저런 상황이 된다면 저렇게 살고 싶지는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먼 훗날의 일이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니까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책에 실린 여러 사건들을 보면서 연명의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요즘은 미리 위급 상황시 생명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쓴다고 한다. 병원에서도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때 도움이 되겠고, 가족들도 마음 아프지만 본인의 의지를 따르는데 도움이 될 듯 하다.
잘 사는게 중요한 만큼 잘 죽는다는것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