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보내온 편지 1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5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현진 옮김 / 한길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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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씨의 글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역사가들이 선호, 아니 숭배하는 냉정침착하고 객관적인 시선이 아니라, 이것이 좋아 못 견디겠다는 그런 글이다. 간혹은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간혹은 미워 죽겠다는 감정일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애정의 대상은 결국 ‘남자’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마초이즘이나 남녀차별 따위가 아니다. 남자라면 이쯤은 해 달라는, 도리어 더 힘들고 부담되는 애정이다. 젤라토라는 고유명사에 흠칫하게 만들었던 장 ‘시칠리아의 아이스크림’에서 어떤 젤라토 광 일본인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스크림뿐 아냐. 여자들 생각으로 만든 요리는 겉은 번지르르해도 그뿐이야. 정말로 먹는 것에 정열을 느끼는 것은 남자뿐이라구.” 여기까지라면 그것으로 끝이었겠지만, 꼭 한 마디를 덧붙이고야 만다. ‘덧붙이자면, 이 가게를 칭찬한 것은 모두 남자였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디 그뿐인가. 영원의 도시 로마를 당당하게도 ‘불멸의 고급 창부’로 묘사한다. 스스로는 무엇 하나 생산할 줄 모르지만 돈주고 뒷바라지해주는 남자가 부족해본 적 없는 아름다운 창부. 지금 와서는 나이가 좀 들었지만 아직도 장래를 생각해서 저축을 한다거나 하는 것과는 무관한 여자. 오다가다 객사한다 한들 그게 무슨 한이 되느냐고 여기는 타고난 낙천가... 라고 멋지게 묘사하지만, 그 뒤에 오는 것은 ‘그런 멋진 여자의 진정한 매력을 이해하는 진짜 전위적인 시골뜨기의 소박한 정열과 호기심’이다. 마치 남자들을 향해 ‘이런 남자 어디 없나요?’하고 묻는 것처럼. ‘카이로에서 온 남자’ 역시 남자가 보더라도 반할 수밖에 없는, ‘이렇게 되고 싶은 남자’ 앙케이트에서 수위권을 차지할만한 남자이며, ‘어느 군의 후보생의 수기’에 등장한 것은 유머를 아는 젊은 군상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피렌체의 M백작’ 이나 ‘시칠리아의 돈 키호테’ 같은 사람들이 등장할 때쯤 되면 어떤 의미에서는 에세이집 [남자들에게] 보다도 노골적이고 요구사항이 높달까...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진다고 한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 로마 제국 흥망성쇠의 원인과 로마인들의 이야기를 정리한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그리고 [남자들에게] [사일런트 마이너리티] 등 그 특유의 냄새가 묻어 나오는 감성적 에세이류가 그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분류에 동의할 수 없다. 시오노 씨의 작품은 결국 한 가닥으로 이어진다. 어떤 작품이라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짙게 가미되어 있으며, 그러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것 아닐까. 물론 싫어하는 사람들은 학을 떼지만서도. 조금 삐딱한 사람들의 평가대로라면 ‘역사가가 아니라 작가’ 라거나(소설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작가라는 점이 또 재미있다) 심지어는 ‘로마 동인녀’ 라고까지 불리는데, 언젠가 그런 평가들을 듣고는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이탈리아에서 보내온 편지]는 그것을 확실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30년도 이전에 잡지에 연재했던 에세이의 모음이건만, 그것이 지금의 시오노 작품과도 전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녀의 저작이 한 가닥 관능을 중심으로 휘감겨 자라난다는 것을 증명하는 큰 증거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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