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Confession 1
가와구치 가이지 그림, 후쿠모토 노부유키 글 / 삼양출판사(만화)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눈보라가 몰아치고, 다리가 부러졌다. 시계 제로. 더이상 살아남을 가망은 없다. 이런 상황에 빠진 사람이 5년간이나 마음 속에 담아온 것을 입밖으로 내놓는 것이 무어 벌받을 일이랴. 그것이 살인의 고백일지라도, 우리는 여기서 죽는 것을. 그런데 그 순간 눈보라가 걷히고 바로 코앞에 산막이 보인다면, 이야기는 틀려진다. 고백한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백을 들어버린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작품은 [도박묵시록 카이지]로 유명한 후쿠모토 노부유키가 이야기를 만들고 [지팡구]의 가와구치 카이지가 그림을 그린 만화다. 그리고, 이 만화는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만화다. 그림체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다. 아무리 만화가 그림을 핵심으로 하는 엔터테이먼트라도 진짜는 스토리라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 전체에서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느낌이 흘러넘친다.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작풍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심장에 상당히 안 좋은 만화”가 정답 되겠다. [은과 금]도, [도박묵시록 타이지]도, [아카기]도 하나같이 보고 있자면 그 엉망진창인 그림체 너머에서 차가운 손을 뻗어 심장을 쥐어짜는 느낌이다. 책을 뽑아들면 몇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심장이 거칠게 폭주하고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 뭐라고 말을 꺼내면 그 벌어진 입으로 그 ‘공포’가 홍수처럼, 폭포처럼 넘쳐들어와 호흡을 끊는 그 감각은, 경험한 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쾌감에 가까운 절망이다.
장소는 고립된 산장, 한 남자는 살인을 고백했고, 한 남자는 그것을 들었다. 한 남자는 다리가 망가졌고, 한 남자는 눈이 망가졌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산 아래로 내려간다 해도 그들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까. 언젠가 신고하지 않으리라고 안심할 수 있을까, 언젠가 입을 막으로 오지 않으리라고 안심할 수 있을까.
그래, 내 고백을 들어버린 그 녀석이 잘못한 거야... 나에게 고백한 그 녀석이 잘못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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