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ays 4Girls - 이틀동안 4명의 여자와 섹스하는 방법
무라카미 류 지음, 권남희 옮김 / 이가서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무라카미 류의 작품을 고를 때면 도박을 하는 기분이 든다. 거창하게 작품성이니 뭐니 할 것 없이 '재미' 마저 극과 극을 달리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여자와 상처받은 남자, 수많은 문인들이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사랑타령도 아닌 무너진 정신과 육체를 추스르기위한 사도마도히즘적 관계라는 똑같은 재료로 요리를 만들건만, 식사마다 이렇게 맛이 갈린다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한 일이다. 어차피 맛있는 요리도 쓰디쓰고 맵고 아리다는 점에서는 맛없는 접시와 별 차이 없으니 큰 문제가 아니기는 하다. 최소한 싱거운 건 없다.
이번 작품 [2days 4girls]는 굳이 따지자면 지독하게 씁쓸한 축에 속한다(맛있다 없다 평가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자). 쪽지 하나를 남기고 사라진 여자를 찾아 무한한 정원을 헤메이는 남자가 떠올리는 옛 기억들을 차근차근 되짚어가는 내용인 이번 작품은 '무너진 여자들을 오버홀하는 일을 했다'는 주인공의 독백으로만 평가되기에 문득 진심이겠거니 하게 되지만, 점차 깊은 곳에서는 오버홀되는 것이 여자들이 아닌 남자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확실하게 망가져 있는 것이 보이는 여자들과 달리 돈 있고 지위 있고 인맥 풍부한 남자는 그 안이 드러나보이지 않아서 쉽게 알아볼 수는 없지만, 이야기가 전개되어 갈수록 작가는 망가진 여자들의 행동을 통해 무너져버린 남자의 내면을 묘사한다. 현대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여 완벽하게 성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현대 사회에 존재하기에 매몰되고 무너져 있다. 이 부분만은 탁월한 필력을 인정해 줄 수 있다.
무라카미 류는 일본 현대문학의 일탈아, 일본 신세대의 저항정신과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상장하는 인물, 일본 근대문학에 사형선고를 내린 작가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근대문학을 '살해'한 뒤 새로운 사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왕창 야하게 쓰고 거기다 대안 제시 없는 사회비판을 우겨넣는 거야 간단하지만, 그것은 글자 장난이 문학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부터 존재하던 기법이 아니었던가? [2days 4girls]를 포함하여 그의 작품에서는 아직 새로운 사조의 탄생이 보이지 않는다.
[2days 4girls]는 고야 크레이프다. 씁쓸한 맛이 일품이긴 하지만, 배는 부르지 않다. 살찔 걱정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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