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보트 비밀일기
제프리 마이클 브룩스 지음, 문근식 옮김 / 들녘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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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밀리터리 매니아이며, 해군 중에서는 잠수함 매니아다. 작고, 가볍고, 강력하며, 저렴하고도 효율적이라는 점에 완전히 '꽂혀' 있기 때문이다. 작고, 가볍고, 강력하다는 점에서는 현대에 들어 발달한 미사일고속정이나 대함공격기도 있지만, 이것들은 방어무기라는 점에서 잠수함의 공격적인 성격을 따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잠수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2차대전 당시 독일 해군의 U보트다. 전쟁사나 밀리터리에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잠수함' 하면 'U보트'를 떠올릴 만큼 널리 알려지기도 했거니와, 원자력 엔진을 제외하면 현대 잠수함의 거의 모든 것을 완성시킨 것이 U보트인 만큼 전쟁사의 기술적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으로서 절대 경시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U보트에 대한 자료는 상당히 찾아보기가 힘들다. 정부 차원의 공식 기록이야 독일이 독일이고 미국이 미국인 만큼 나름대로 충분히 찾아볼 수 있지만(일본 쪽 기록이 대난동인 것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확연하다) 이것만으로는 정말 중요한 것 - 잠수함 안에서의 이야기를 조사할 수 없다. 2차대전 당시 선전반을 탑승시켜 촬영한 선전용 자료라면 있지만 그런 건 애초에 도움이 안 되고. 공식 기록 속에서 숨겨지고 채색되고 찬미되는 틀을 넘어 역사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다면, 그 사람의 일기를 찾아보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일기에마저 거짓을 적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기에까지 거짓을 적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애초에 위인이 될 수도 없겠지(그런 의미로 나는 실격). 이러한 자료부족의 가장 큰 이유는 U보트 안에서의 사적인 기록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인데(원래 해군은 다 그렇다), 역시, 수천 명의 잠수함 승조원 중 한 명쯤 없으랴 했던 것이 나타났다. 슬그머니 기록해서 다른 서류 사이에 숨겨 두었었다는 일기장, 처음에는 그 전과에 관심을 보이다, 그 제원과 성능에 관심을 가지다, 전술과 운용에 빠지다 결국은 U보트 승조원의 생활까지 관심을 가진 시점에서 나타난 이 책은 정말이지 눈물날 만큼 고맙고 반가운 책이었다.

그리하여 할렐루야를 외치고 펴든 뒤부터는… 웃음바다. 역시 나도 영웅전기나 다름없는 그동안의 공식적인 기록들에 알음알음 취해 있었던 모양이다. 킬에서 출발했더니 육군이 프랑스를 점령해, 연료가 다 떨어질 때까지 뺑뺑 돌아도 적함 하나 발견하지 못하고, 남의 연료까지 얻어다 한바퀴 더 돌아 기껏 발견한 적함에 있는대로 퍼붓고 보니 독일 선박이라던지, 대전중 최소 배수량 격침기록이라거나(노리고 쏜 거라면 기록이었을 것을…), 최단거리 불명중 기록, 적 수송선단 공격을 즐기는 U보트로서는 비효율적인 호위임무건만 도대체 적을 만나지 못하니 제법 쓸만했었다는 농담… 한번 작전에 나섰다 하면 22발의 어뢰를 있는대로 퍼부어 1개 기갑사단 수준의 병력을 수장시키고 조용히 사라지는 냉혹한 U보트의 기록에 익숙해 있던 나로서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사를 공부하다 보면 그 안에서 점차 인간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스탈린이 그랬던가?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가 된다. 이 책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 바다의 늑대, U보트 역시 인간들이 타고 싸우던 물건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 주었다. 2차대전 당시 독일 해군에서 잠수함 내부에서의 사적인 기록은 금지되어 있었다. 만약 이 기록이 전쟁 중에 발각되었었다면 볼프강 히르쉬펠트는 처벌받았을 것이고, 나는 이 책을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하늘에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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