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피니아 전기 10-18권 박스 세트
카야타 스나코 지음, 오키 마미야 그림, 김소형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카야타 스나코는 개성적이다. 작가에 따라서 작품군에 특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혀 세계관이 다른 [키리하라가의 사람들], [스칼렛 위저드], [델피니아 전기] 모두 캐릭터성의 구현에 있어 지독하리만큼 자신의 개성을 유지한다. "나는 이런 여자가, 이런 남자가, 이런 사람이 좋아. 인기가 있건 없건 다른 사람은 만들기 싫어!" 라고 외치는 느낌이랄까. [델피니아 전기]는 그런 캐릭터들의 총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18권이나 되는 양을 총동원해서 '멋있는' 캐릭터를 그려내는 그 막무가내는 결과적으로 정통 판타지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작품으로 남았다. 리와 월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물론이고 적국의 왕과 신하들까지, 그들은 하나같이 '강하다'. 힘이 아니라, 정신이 강하다. 주변에서 무어라 말하건 개의치 않고 자신의 길을 걸으며, 자신에게 지워진 짐을 한 마디 불평도 없이 어깨에 걸머지고 오만하게 걸음을 내디딘다. 심지어는 '스스로 죽을 용기조차 없어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라티나조차도 역시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 나젝크 예외. 이놈은 밉지도 않다(비참하군…).
카야타 스나코가 '자신의 의지',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는 그것을 갖지 못한 파로트 일족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에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 강인함, 그 전투력, 능력, 지식, 재능, 임무를 수행하는 기력, 심지어는 명령을 수행하겠다는 '의지'까지 가지고 있음에도 그들은 '스스로의 길'을 걷지 못하기에 파로트 일족에 대한 평가는 '구역질이 날 것만 같은' '살아있는 시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면, 한두 명 뽑아서 소개할까 했는데 골라낼 수가 없을 정도다. 하나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가 없다. 그 정도로 강력하고 개성적인 캐릭터들을 가지고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흐트러지지 않는 것만도 굉장하며, 무엇보다 만담이 엄청 재미있다! 번역상 문제인지 원래 그런 건지 문체 자체는 조금 흐트러지는 느낌이지만(특히 전투 묘사가 심하다) 리와 월이, 발로와 나시아스가, 이븐과 질이, 셰라에 루퍼스까지 모여 떠들어대는 모습은 진정으로 놓치기 아깝다. 남편의 상처를 핥고 팔을 무는 '알콩달콩한' 분위기에서 시녀 보고 '너도 낄래?' 같은 소리나 하는 어느나라 왕비님 때문에 피눈물 흘리는 독자들은 신경 끄고 자기들끼리 놀아나는 캐릭터들. 조금 억지스러운 방법으로 끝을 맺으며 이 멋진 캐릭터들과 몽땅 작별해버리게 된 것이 정말 아쉽다.

근데, 국가 대 국가 대규모 전쟁씬보다 부부싸움이 더 박력있는 건 좀 문제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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