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지음 / 다락원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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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창조라는 꿈은 역사가 깊다. 탈로스의 청동거인, 황금의 신부, 카발라의 고렘, 연금술사의 호문클루스를 거쳐 현대의 인조인간과 로봇과 복제인간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창조신화에 뒤이은, 신성의 획득을 위한 것일런지도 모른다.


창조물의 반란이라는 공포 역시 그 역사가 깊다.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오늘 우리나 논의할 대상, ‘프랑켄슈타인’. 시체를 끌어모아 만들어낸 추악한 생물이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섬찟할 따름이다. 그 섬찟함 안에는 자신보다 강인하고 지혜로우며 심지어는 고결하기까지 한 존재를 창조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감추어져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인간이 야생동물을 몰아내 경작지를 만들고 모기를 몰아내 운하를 판 것처럼, 더 위대한 생물에게 ‘몰아내어질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 공포의 원점이라는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에는 논의의 대상이 될 만한 많은 관점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과학소설이나 미래소설이 아닌 공포물이기에 그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으나, 반대로 공포물이기에 사람들이 직시하지 않는-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공포를 눈 앞에 끄집어내는 것이다.


현대의 과학은 생명 혹은 지성의 창조를 눈 앞에 두고 있다. 복제인간이 옳은가 그른가의 논쟁은 이미 식상할 지경이고,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공포는 사회적인 힘까지 지니고 있으며, 일부 미래학자들은 인간처럼 대화하고 인간처럼 사고하는 기계가 곧 등장하리라고 단언한다. 이런 시대에 있어 인간이 생명을 창조한다는 것에 대한 공포- ‘프랑켄슈타인’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논점은 이 ‘생명’을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특별한 목적도 계획도 없이 생명을 창조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하며, 문제가 발생하자 자신이 창조한 생명을 살해하는 것으로 뚜껑을 덮으려 한다. 그 오만함! 자만! 자기기만! 그 무책임한 약속과 신의 없는 파기 속에는 스스로 발전하여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를 미연에 제거하여 언제까지나 지상의 지배자이고자 하는 인간이 지닌 추악함의 정수가 꿈틀거리고 있지 않은가. 과연 인간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생명의 창조라는 것에 손을 대야 할까? 생명의 창조에 손을 대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여 아이를 낳는 것은, 이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아이에게 시대를 넘겨주는 것이야말로 부모의 의무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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