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자키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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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듣게, 내가 어느날 작은 마을에 갔는데, 아흔 살쯤 되는 할아버지가 끙끙대며 아몬드 나무를 심고 있었네! ‘아니 할아버지, 뭐하시는 겁니까!’ 내가 소리쳤네, ‘아몬드 나무를 심으시다니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꼬부라진 허리를 돌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젊은이, 나는 내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네그래서 내가 뭐라고 한줄 아는가? ‘저는 지금 당장 죽을 것처럼 사는뎁쇼둘중에 누가 옳은가 보스? (p.54)

 

아마도 이 소설을 관통하는 문장이 아니려나 싶었다. 초반에 나왔던 이 문구가 계속 나를 따라 다녔고 읽는 조르바의 쪼르바 같은 삶속에서도 당장 죽을 것처럼 사는 모습을 엿보았다고 해야 할까.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닷가의 어느 카페에서 만나는 화자인 나는 책에 파묻혀 산다. 위험에 처해있는 수많은 그리스인들을 돕기 위해 길을 떠나는 친구에게서 설교에 소질있는 책벌레 라는 소리를 듣고 화자는 자신의 삶이 부끄러워져서 고민하다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기 위해 과감히 길을 떠나는 길에 바닷가 카페에서 조르바를 만나고 그가 가고자 하는 탄광에서 같이 일하기로 한다.

 

지금까지 자기가 만나온 이들과는 전혀 다른 조르바. 화자만 조르바에게 놀란 것은 아닐 터 화자와 독자인 나는 조르바를 보며, 패이지를 넘길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츤데레라고 보기엔 입이 너무 거친 듯하고, 손도 매너스럽지 못한,입으로 한없이 여인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이 사람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가 아니라 조르바의 여자 탐험기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을 만큼, 그를 스쳐간 많은 여인들과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마녀사냥에 가까운 마을 사람들의 폭력앞에서 여자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이가 조르바임을 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 만이 전부는 아니겟지

 

전체적인 흐름을 본다면 화자가 조르바를 만나 크레타라는 마을에서 탄광일을 하면서 겪어가는 이야기들, 그 이야기 속에는 조르바의 연애사, 사업의 굴곡등으로 흘러가지만 다른 면으로는 앞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조르바의 행동과 입을 통해서 작가가 하고픈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갚은 이야기들이 있다. 태어난 나라가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애국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만행들과 종교라는 감옥에 갇혀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는 이들의 믿음에 대해 신랄한 비판들은 때론 사이다를 마신 듯 후련하기도 하다. 작품이 가톨릭교회에서 금서 목록에 이르기도 했다는데 많은 부분이 문제가 됐을 듯 하다.

 

믿음이 있나? 그렇다면 낡은 문에서 떼어낸 나뭇조각도 성스러운 유물이 되지. 믿음이 없다면 ? 성스러운 십자가를 통째로 갖다 준대도 벌레먹은 문설주만도 못할걸세 (p.320)

 

여자만 쫓고 아무렇게나 말을 던지는 듯한 조르바의 삶속을 조금더 들여다 보면 어쩌면 이렇게 사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곳곳에 그가 남긴 많은 말들이 현재의 내맘속에 스며드는 걸 보면 지금 나의 상황들에 따라 이야기들은 다르게 읽힐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평소 어렵고 딱딱할 것같아서 읽고 싶었지만 미루고 있던 책이었다. 다른 버전으로 읽어보지 않아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문장들이 읽기가 부담스럽지 않았고 작가의 블랙코미디 같은 송곳같은 익살스러움도 살아있어 매력있는 책이었다


출판사의 지원도서이며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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