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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약국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1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3월
평점 :
밤의 약국에 있으면 세상이 무슨 인지 알게 된다.그러니까 세계는 사실 검푸른 색이거나 짙은 남보라색이고 낮의 온갖 다채로운 빛깔은 그 어둠을 덮기 위한 위장에 불과하다는 생각? 어디에 있었는지도 알 수 없던 존재들이 밤이 되면 여기저기서 나타났고, 환한 대낮을 걷듯 거리를 활보했다. 언젠가 내소설 <무한의 책>에서 난 편의점이 밤이라는 바다를 밝히는 등대라고 썼지만 오래전엔 (왜냐하면 그땐 지금처럼 편의점이 많지 않았으니까) 약국이 그 등대였다 (p.96)
춘천에서 태어나고 원주에서 소설가의 일과 약사 일을 병행하고 있는 작가의 글을 에세이로 처음 접한다. 분명 에세이라고 했는데 읽다보니 소설 같았다가 에세이 같았다가 하는 것이 묘한 매력이 있다 .운영하고 있는 약국에서 짧다면 짧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는 세상에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사물의 이름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평범한 약국 문을 열었을 뿐인데 그 문을 아마도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끌어줄 또 다른 문이 있을 것만 같다, 자신의 튼튼한 등으로 세상을 받치고 있는 거북과 형형색색의 버섯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곳,요양원을 지키고 있는 앵무새, 하늘을 나는 문어,원숭이에게 책정리를 시키는 중국의 어느 도서관,인생의 뒤안 길에 있는 할머니들과의 일화, 늦은밤 약국이라는 등을 켜두고 사람들에게 등대가 되던 오래 된 약국, 분열된 너구리 세상을 하나로 단결시킨 영웅 너구리 시모가모가 인간에게 잡혀 한낱 냄비요리가 되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너구리 요리에 대한 이야기등... 어디선가 이야기 보따리가 풀려 손을 넣으면 하나씩 한줌의 이야기를 들고 나오는 듯 하다.
에세이 같기도 가벼운 SF 소설 같기도 한 그녀의 이야기엔 따듯함이 있다. 현대문학 핀시리즈의 소설과 시와 구분하자면 크기는 같고 양장은 아니며 한손에 쏘옥 쥐어지고 가방에 쏙 들어가는 부담없는 매력을 끌고가는 에세이 시리즈인 핀터레스트의 첫 번째 도서이다, 어쩌면 눈뜨고 마주하는 세상이 비슷할 건데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귤 하나로도 할머니들이 잘못 말하는 약 이름만으로도,TV 프로에 나오는 동물을 보는것만으로도 약국을 스쳐가는 많은 이들과의 만남에도 이런 이야기를 쓸수 있다는 것,남다른 시선과 상상력, 사람에 대한 이해를 가진 작가의 시선이 만들어낸 오묘하고 독특하고 따뜻한 이야기들 속에서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