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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날들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2월
평점 :
작년 가을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며 느꼈던 희열에 가까운, 책 속의 말들이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으로 읽었던 기억이 또렷이 남아 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그녀의 책이 처음이라 언제고 그녀의 책을 하나씩 몰아서 읽어야지 하던 참이었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2013년에 <숲의 대화> 출간 10주년 개정판 리커버다.너무도 반가웠던 책이다
총 11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퇴근길에 각각 한편씩 읽기에 적당히 좋았고 술술 잘 읽혔다. 술술 잘 읽혔다고 해서 내용이 쉬이 가볍게 읽히는 것은 아니다. 삶의 잔혹함에 때론 짠하기도 하고 어찌할수 없는 삶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서글플만도 한 이야기들을 그녀만의 맛깔난 문장들로 따듯하게 보듬었다.그래서 좋았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작가의 개인적인 삶이 어느정도 투영된 이야기라면 이 책은 조금은 비슷하지만 다른 결이다. 등장인물들의 사투리는 내겐 너무 정겹다. 접할 경험이 적은 분들에겐 사투리가 책을 읽는 속도를 더디게 하는 요인이 될수도 있을 듯하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재미지게 읽었다면 문제될것 없지 싶다. 평소에도 책을 읽으며 이미지를 만들어내곤 하는 내겐 오디오까지 지원이 되는 상황이라 모든 문장이 육성으로 누군가 들려주는 듯하다. 어색하지는 않은지 소리내어 읽어도 입에 딱 달라 붙는 이 느낌은 아는 사람은 안다.
자신의 아이를 가진 사랑하는 여인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빨치산의 대열에 합류하다 총 맞아 죽은 도련님 혁재,도련님만을 마음에 담은채로 운학에게 향하는 순심, 그런 그녀를 사랑하고 아내로 맞아들인 운학, 60년을 같이 살다 먼저간 아내를 뿌린 숲, 살아남은 운학과 60년전에 죽은 도련님 혁재의 그숲에서 만남과 대화가 아련하게 이어지는 <숲의 대화>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는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와 같이 산다. 나이든 노인과 장애를 가진 중년이 아들, 그의 장애가 문제가 되지 않은 그만을 위한 공간 헛개나무 농장, 어느 누구에게도 그곳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그만의 천국이다 베트남 여인인 호아는 옆집에 산다. 남편의 술과 폭력으로 인해 집밖으로 나와 오갈데 없는 호아를 도와 헛개나무 원두막에 피신시키고 그녀에게 열쇠를 주는 <천국의 열쇠>
너무나도 귀하고 부모를 위하던 아들, 교통사고로 인해 식물 인간이 되고.그로부터 23년, 몸은 움직일수 없으나 정신은 온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이 죄송한 아들과 아들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아도 아깝지 않으나 이 아들을 위한 시간들은 다른 자녀들에게 상처가 되는, 긴병에 효자 없고 긴병에 형제 없는 삶의 잔혹함에도 포기하지 않는 부모와 자식의 갈등을 묘사한 <브라보, 럭키 라이프>
농촌에 총각들이 결혼을 못해 베트남이나 연변등에 신부를 구하러 가는 농촌총각 결혼시키기가 경쟁하듯 시행된적이 있다. 한국에 오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탈출구로 이용되기도 하는 결혼,실제로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아가고자 하는 여인들도 많다. 이젠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된 현실을 유머스러스하게 꼬집어 웃으면서 읽었지만 어쩌면 슬픈 이야기 <핏줄>
친일파의 딸이라 불리는 정치 고위 관직의 아내가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자신의 우아한 삶을 이야기하는 <나의 아름다운 날들>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노숙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다룬 <절정>을 연이어 배치 함으로써 느껴지는 극과 극의 삶이 비린내가 나더라
모든 단편이 좋아 몇개를 고르는게 힘들었다.사회 구석구석의 단면들을 잘 골라 묘하게 풍자한 느낌이 든다. 마치 풍문으로 들었소 라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때로는 서로 한 운명의 늪에서 아직도 빠져 나오지 못한 애잔함으로, 때로는 왜 이리도 잔혹할까 싶은 삶속에서도 지난한 삶을 포기하는 않는 짠함과 인생의 덧 없음과 그리고 때로는 한편의 시트콤인 듯 킥킥거리게 하는 그녀의 입담에 난 이번에도 홀리고 만다.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