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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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와의 인연이 있는 사람이 따로 있듯이 책을 읽다 보면 책이라는 것 또한 책을 읽는 이와 인연이 닿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지금의 내가 아니었으면 그때는 어떻게 읽혔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 말이다. 요 며칠 감정선의 기복이 심해지고 예민해져 있었던 날에 이 책은 나에게 왔다. 몇 페이지 읽지 않아 이 소설속에 주인공에게 내가 덧입혀졌다. 그녀가 마주하는 현실이, 진저리 나는 이 상황이 나의 일기를 열어본 듯한 느낌과 벗어나고자 발버둥 칠수록 더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끈적거리는 그 무엇에 급격한 피로감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 결국 눈물을 보이고만 책이다

 

 

어릴 적 공부 잘하고 예쁜 언제나 부모님의 눈에 차고 넘치던 동생과 달리 그 무엇도 하고자 하는 욕심이 없던 주인공 (). 동생의 이른 결혼, 남편의 기만과 폭력에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오게 되고 자신의 삶을 찾고자,아이들을 키우고자 동생은 직장을 나가게 된다.아이들을 키워야 하니 일을 다니게 되는 엄마 .자연스레  직장을 잡지 못한 주인공이 가정일과 아이 둘을 맡게 되면서 시를 쓰고자 하는 주인공은 가정일과 육아에 지쳐 흰 종이만 쳐다보고 시를 쓰지 못하는 시간을 보낸다. 자신의 상황 때문에 오랜 기간을 함께한 사랑하는 이에게도 헤어짐을 통보하고 가정을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이 없으면 안될 것처럼 살아가는 주인공이 너는 아직 피지 못한 꽃이라고 말을 해주고 자신을 안타까워하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자신의 길을 찾고자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발을 내미는 이야기다

 

 

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의 인생에도 인생 신호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나의 길 앞에 힘든 일이 있으면 빨간 신호등이, 나의 앞길에 밝은 길에는 초록 신호등 불이 켜져서 위험 신호를 미리 감지할수 있는 그런 삶이었으면 너무 좋겠다고. 나를 세상 밖으로 보낸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로또의 룰렛 돌리듯 돌려서 나오는 공처럼 한 명의 인간을 왜 이리 부족하게 만들어 흠집나고 상처받은 인생을 살게 하는 거냐고 따져 묻고자 싶은 날도 있었다. 어느 누군가에게 다 나눠주고 남은 복의 부스러기라도 나에게는 던져준 적이 있었던가 하는 원망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희망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 한가운데서 맴돌기만 하고 있다고 느낄만큼 무력하고 절망적일때.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어제와 다를바 없는 나의 일상이 지겹도록 싫을 때, 상실과 절망으로 나의 살이 깍여지는 느낌일 때  책속으로 숨어들었던 나의 일기장을 편 채로 거울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나에게 오는 인생의 순간들을 인생의 종착역이 아닌 정류장으로 때론 지나치거나 때론 환승하거나 언제고 오래 머물지 않는 시간들속에 내 자신을 몰아치지 말기를 , 그 잠시라도 나 자신을 잊지 말기를 원하고 또 원한다

 

 

소설 향 시리즈의 3번째 책으로 2번째인 붕대감기를 읽을 떄도 그 느낌과 여운이 강렬했었는데 김이설 작가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인데 이 책 또한 긴 여운을 준다. 향시리즈 첫번째 것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이무래도 계속 모으게 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든다 .

 

 

잘 깎은 연필을 쥐었다. 오늘은 쓸수 있을까. 저 창문에 흔들리는 목련 가지에 대하여, 멀리서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대하여, 늦은 밤 귀가하는 이의 가난한 발걸음 소리에 대해서,갓 시작한 봄의 서늘한 그늘에 대해서 쓰고 싶었으나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누워 버렸다 (p.23)

 

 

살면서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애초에 보통의 삶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처럼, 어쩌면 이제야 나와 잘 어울리는 상황에 놓인것 같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p.92)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주저 앉지마. 엄마가 하란대로 하지도 말고. 그러곤 뚝 ,통화가 끊겼다.. 피지 못한꽃. 이라는 말을 들은 날에도 나는 시를 쓰지 못했다. 필사노트만 두꺼워지고 있었다. 낙선자로만 평생을 살아가면 어쩌나 싶은 마음,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 되어,패배자가 되어, 이대로 무용한 인간이 돼버리면 어떡하나 매일 두려웠다. 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연둣빛 싹이라도 될수 있다면, 아니 새하얀 뿌리 한 쪽 될수 있다면. (p.117)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아 읽은 책이며 지극히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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