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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0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평점 :
떠난 이와 남은 이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에 대한 무게에 대하여
누군가는 지겨웠을 삶과 누군가는 간절히 원했을 죽음의 무게에 대하여
너와 나의 고통의 무게에 따른 고통 사용법
. 이 책은 2004년도에 초판이 나왔으니 꽤 오래된 책이다.출판계도 트랜드가 있고 10년이 지난 책의 리뉴얼이라는 건 지난 책이 어느정도 검증이 됐다는 의미 이기는 해도 이젠 오래된 스타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표제작인 첫 번째 작품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읽어 나갈 무렵 난 이미 이 책에 푹 빠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읽는 문장이 애닳고 애닳아 가슴 언저리 몽글거리기 시작했고,때로는 페이지를 넘길 수 없어 문장을 읽고 또 보기를 여러 번 이었는데 왜 이 때까지 정미경 작가의 책을 한번도 접할 수가 없었던 건지 의문이 들었다
절반을 읽어 나갈 무렵에는 이리 가슴 저미는 문장을 써내는 분의 글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팠다. 마지막까지 책을 읽었을 때 나에게서 차오르던 먹먹함이 며칠을 갔다. 아침에 눈을 떠서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줄곧 쏟아지는 비를 보며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목에서도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의 몸부림에도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그 느낌이 나는 너무 좋았다.이런 귀한 느낌을 갖게 해 준 그녀의 책을 더 찾아 읽어 보고 싶어졌다
작가인 남편이 사고로 죽은 후 발표하지 않은 작품을 유고집으로 남기고 싶다고 찾아온 출판사 관계자의 말에 남편의 컴퓨터에 남은 파일을 발견하다가 발견한 애절한 사랑의 대상인 M , 분명 유선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했었다는 불편한 진실.살아 남은 자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의 무게에 대한 <나의 피투성이 연인 >,시를 쓰고 싶지만 라디오 방송 대본을 쓰며 살아가는 그녀는 자신의 대본을 쓰는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유명 연예인인 윤미예의 그림자 같은 존재 .그녀가 살고자 하는 반짝이는 삶을 살고 있는 윤미예와 구청의 환경미화원을 근면과 성실한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온 엄마의 모습을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며 자본주의 사회의 한 켠에 비켜진 그녀의 불편한 속내는 이야기 하는 <호텔유로,1203> 치료해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의 아이와 의료기술로 아이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보험 조사관으로 밤에는 학원 강사로 밤낮없이 뛰어 다녀도 엄청난 빚을 감당할 수 없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아이의 아버지.말로 표현 할 수 있는 건 고통이 아니야 라고 말하는 이남자의 이야기 <성스러운 봄> 누군가의 죽음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듯한 여자.읽는 동안 서서히 소름이 돋았던 <비소여인> 헤어진 연인의 사진으로 인해 얽히고 설킨 두 남녀의 이야기 <나릿빛 사진의 추억> 동화 작가를 하고 있는 주인공은 결혼하기전 서너달을 살기 위해 이사를 한 집에서 이웃과 친해지기를 원치 않았지만 남편의 폭행을 피해 자신의 집으로 숨어 들어온 옆집 여자와 얽히게 되는 것을 시작으로 그 골목길의 사람들과 친해지게 되고 그날 그 골목길의 하나의 풍경으로 스며들게 된 여자의 이야기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 까지 그녀의 이야기들은 서늘하다.냉정하고 담담하다.아픔과 고통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동정이나 연민 따위는 없다 각 단편이 모두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난 <성스러운 봄>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이 유독 마음을 끌었다.
자살이라니. 천만에. 할 수만 있다면 일천번을 살아보고 싶었던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차라리 자살이었다면 내 머리속이 이토록 복잡하진 않겠어. “차 선생님은, 인생을 일천 번이라도 살아보고 싶었던 순간이 없었나요?” (p.74)
나는 누군가가 내 영혼의 자기장 깊숙이 들어오기를 바라지 않는다.사랑속에는 사람들이 흔히 기대하는 따스함,열정,몰입.기쁨,까닭 없이 터트리는 웃음소리 같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그 눈부심속으로 들어가 보면 마치 빙산의 아랫부분처럼 거짓과 권태와 차가움과 환멸 같은것들이 수면아래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이다.환멸조차 사랑의 일부분이라는 걸 사람들은 모르고 있거나 잊어버리거나 한다. (p.106)
아니다.사실을 말하자면,불안하게 흔들리는 심전도 모니터를 지켜보며,가망없이 꺼져가는 불에 풀무질을 하듯 점점 많은 분량의 아드레 날린을 링거 선에 퍼부어 대던 그날 밤,카테터를 뽑아버린 순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삶은 스스로 완벽하다는 것을 .어떤 흐트러진 무늬 일지라도 한사람의 생이 그려 낸 것은 저리게 아름답다는 것을 .살아 있다는 것은 제 스스로 빛을 내는 경이로움이라는 것을 (p.161)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