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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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아온 흔적을 더듬어 한 권의 책을 쓴다면 나는 나폴리 4부작처럼 디테일하고 생동감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 당시의 상황들을 엘레나 페란테와 비슷하게라도 묘사할 수 있을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를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책 한 권은 언감생심이다. 나는 A4 한 장에도 제대로 된 글을 쓸 수조차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이야기한다면 책 한 권도 모자란다고 말한다. 하지만 막상 언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인생을 반추하며 적어보라고 한다면 과연 책 한 권이 나올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에 이르러 그런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은, 나폴리 4부작은 소설이 아니라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까. 주인공인 레누의 이름은 엘레나 그레코이고 작가의 이름은 엘레나 페란테이다. 이름만 같다고 이 소설이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없겠지만 소설이라고 하기엔, 상상 속에서 빚어낸 이야기라고 하기엔 나폴리 4부작은 대단하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생생함과 느껴보지 않은 일이라면 묘사할 수 없는 감정 표현들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베일에 싸인 작가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느꼈다.

사실 자전적인 이야기든, 소설이든 혹은 적당히 섞여 있는 책이든 상관없다. 나폴리 4부작의 4권인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가 11월에 출간 예정이라 지금은, 앞선 두 권보다 더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의 마지막 장을 덮기가 아쉬울 뿐이다.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를 한 단어로 적어보라면 '휘몰아치다'라는 단어를 쓰고 싶다. 앞선 두 권과 전혀 다른 속도감과 긴장, 끊임없이 일어나는 릴라와 레누의 변화,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이탈리아의 격변하는 상황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물론 <나의 눈부신 친구>부터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까지 그녀들과 함께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들은 언제나 변화무쌍했고 다채로웠다. 그리고 3권인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에 이르러 그 변화는 회오리로 변했다. 페이지마다 작은 회오리가 끊임없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속에 말려 들어가는 글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점점 더 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그녀들의 중년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레누는 아이로타 집안의 피에트로와 결혼을 하고 릴라는 엔초와 함께 살며 햄공장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그녀 방식대로 견디며 살아간다. 서로 다른 쪽을 보며 걸어가는 표지처럼 이 책에서 그녀들은 점점 더 멀어지고 각자만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일 뿐 릴라와 레누는 무의식적으로 절대 서로를 잊지 않고 살아간다. 물론 그 연대감이라는 것이 항상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시기와 질투, 때로는 연민 그리고 때로는 우정과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그녀들의 끈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에서는 특히 그녀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혼란스러운 정세와 함께 변화해 가는 주변 사람들의 불안한 감성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허덕이며 따라가기에 바빴다.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2권의 마지막 장에 등장한 니노 사토라레와 레누가 결국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고 그녀는 남편에게 이혼을 말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남겨둔 채 니노를 따라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레누는 릴라뿐만 아니라 실비아라는 여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두고, 결혼은 또 다른 좋은 집안의 여자와 결혼을 한 니노에 대해 끊임없이 비난한다. 그녀는 릴라와 자신 둘 다 니노에게 굴욕당했다고 생각했다. 미친 멜라니가 니노를 보며 소리친 것은 니노를 그의 아버지와 혼동한 것이 아니라 니노 안에 숨겨진 부자 간의 유사성을 감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니노와 사랑에 빠진다. 서로의 아내와 남편에게 이혼을 말하고 아이들을 남겨둔 채 둘만의 세상을 위해 떠난다. 레누가 반복해서 말하는 니노에 대한 비판은 결국 그녀의 마음을 현실에 주저 앉히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것이었다. 착한 아이의 역할을 충실히 해온 레누는 그녀 인생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의 소리를 따라갔고 어렸을 때부터 그토록 원했던 니노의 사랑을 가졌다. 하지만 과연 그들의 사랑이 예쁜 동화의 아름다운 마무리처럼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이 날까?

하늘 위에서 모든 것이 단순해진 것 같았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려고 했다. 가끔 니노에게 행복한지 물으면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 키스했다. 드높은 창공에서 두 발을 디딜 수 있는 유일한 표면인 비행기 바닥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도 같았다.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니노와 떠나는 레누의 불안한 감정으로 끝이 난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떠나간 자를 릴라라고 생각했었다. 떠난다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용기가 필요한 행위이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릴라의 삶에 또 다른 변화가 생겨 떠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의 이런 짐작을 보기 좋게 날아가 버렸다. 떠나간 자는 레누였다. 그것도 니노와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린 채 불안하게 흔들리는 비행기에 몸을 맡기며 떠난다. 몇 문장 만으로도 앞으로 레누에게 어떤 변화가 닥칠지 추측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그런 지레짐작은 하지 않겠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작은 마을의 작은 소녀들에서 출발한 이토록 방대하고 깊은 이야기를 저자는 어떻게 마무리해 줄지 기대하며 11월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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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책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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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책을 읽은 후 며칠이 지난 후에 리뷰를 쓴다. 출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일하는 중간중간에  읽었던 책의 한 부분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기억에 남는 구절을 되새겨본다. 며칠 동안 어떻게, 무엇을 써야 할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편인데 <무한의 책>은 책을 덮은 후에 당장 써야 할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책을 읽었을 때의 그 짜릿한 느낌과 곳곳에서 '대박~'이라고 나지막이 외쳤던 감정들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 후 30분을 산책 대신 <무한의 책>의 마지막 장을 읽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과 읽는 도중의 느낌,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느낀 감정들이 모두 판이하게 달랐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모니터와 책을 번갈아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지금도 무척 혼란스럽다. 이토록 엄청난 스토리를 가진 책을 몇 줄의 줄거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

타임워프가 등장하니 SF 과학 소설이라고 할까, 너무나도 생소한 신이 등장하니까 판타지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멸망 위기의 지구를 구하는 내용이니 어드벤처 소설이라고 불러야 할까. <무한의 책>은 '무한'이라는 제목처럼 어느 하나에 특정할 수 없는 소설이었다. 이 책에 담긴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을 이제부터 어떻게 적어야 할까.


<무한의 책>에는 수많은 현실과 공상의 세계가 등장한다. 책을 읽을수록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 알 수 없는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느 한 지점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수백 가지의 이야기로 퍼져만 가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나오고, 그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처럼 끝없이 포개지기만 하는 수십 개의 이야기들이 가득한 <무한의 책>은 일단 파악하려 하지 말고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 읽어야 한다.

한국계 미국인인 스티브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로버트 와인버그 로부터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는다. T 신부에게서 듣게 된 인류 멸망과 신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멸망을 막을 구원자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엔 믿기 힘든 황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신이 지구에 강림하고 스티브는 신으로부터 자신이 지구를 멸망에서 구할 구원자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갑자기 지구에 내려온 신은 수많은 회화에 등장하는 금발머리의 아름다운 신이 아니라 새인 것 같기도 하고, 티라노사우루스처럼 보이기도 하는 공룡의 후예였다. 신 또는 신들은 스티브에게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고 스티브는 오랜 고민 끝에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결심한 후 1958년의 용인이라는 시공간으로 들어간다.  


<무한의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상상력에 놀란 적이 많았는데 첫 번째는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표현이었다. T 신부의 미발표 원고에 등장하는 신의 형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절대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는 날 수 없다. 날기 위해서는 새처럼 비정상적으로 가슴근육이 발달해야 하고 다른 부분은 줄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치 새와 같았고 <무한의 책>에 등장하는 신 역시 새 또는 공룡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설명은 무천 신선했고 특히 지구에 멸망이 닥친다는 날짜를 설명하는 부분 역시 독창적이었다. 마야인들이 새긴 달력의 마지막은 2012년 12월 21일에 끝난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이 지구 멸망의 날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 달력이 잘못되었다면? 달력 석판을 새기던 마야인이 갑자기 죽어버리고 미완성으로 남겨진 달력을 침략자인 스페인 사람들이 가져갔고 그것이 진짜 달력이라고 믿은 것이다. 왜 사람들은 그 달력이 만들다 만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을까라는 구절은 허탈하면서도 무척 재미있었다.

책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무척 복잡하게 들어왔다가 나간다.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하고 중심되는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무한의 책>은 사람들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꽤 멋진 과학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뜬끔없는 망상에 불과한 이야기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어떤 결말에 도달하든 우리는 촘촘하게 짜여진 <무한의 책>이라는 상자 안에 갇혀 저자가 흔드는 대로 흔들릴 뿐이다.


요즘 타임워프에 관한 책이나 드라마, 영화가 많이 나온다. 비슷한 듯 다른, 시간이동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다른 세계의 오랜 시간이 이쪽에서는 단 몇 초일뿐이라는 것과 사람들의 선택에 따라 또 다른 현실세계가 존재하며 그 속에서는 그쪽의 시간이 흘러간다는 개념을 좋아하는데 <무한의 책>에 등장하는 시간의 개념이 바로 내가 좋아하고 믿는, 그것이었다.

신들은 이야기한다. 네가 시간이동에 성공해 지구 멸망을 막는다면 멸망 직전의 세계가 아니라 그 세계와 99.999퍼센트 똑같은, 재생된 또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 일부 예민한 사람들만이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 뿐이지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지구가 멸망 직전에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 역시 또 다른 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앞선 '신'에 대한 이야기, T 신부를 통해 들려주는 수많은 공상들 그리고 스티브와 주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등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솜씨에 감탄했다. 그중에서도 시간과 공간, 현실과 현실 사이의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개념이 인상깊었다.

<무한의 책>과 같은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끝없이 얽히고 설키는 이야기에 뜬금없이 툭 튀어나오는 또 다른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무한의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반짝 눈에 띄는 길이 보일 것이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의 마지막 장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을 덮으며 다시 처음부터 꼼꼼하게 읽고 싶을 만큼 책의 재미를 뒤늦게 발견할 수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람들마다 보이는 길은 다르다. 누군가가 이야기한 결말과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무한의 책>은 그런 책이다. 내가 믿는 그것이 정답인 세계. 그것을 믿고 이야기를 즐기면 된다.

평범하지 않은 <무한의 책>을 읽는다면 우선 명심하길 바란다. <무한의 책>이라는 제목에 현혹되지 마시라. 그래도 혹시 제목에 책에 대한 힌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책'보다는 '무한'에 집중하시길. <무한의 책>은 현실과 현실 사이의 그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당신의 존재가 문득 궁금해지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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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7.7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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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7월호>의 표지가 눈에 띄었다. 지하수를 시원하게 뽑아 올리듯 '삶의 목마름을 풀어주는 한 권의 마중물 샘터'라는 글귀가 차디찬 물처럼 표현된 <샘터 7월호>는 지글거리는 여름에 무척 잘 어울렸다. 며칠 전에 대구에서 바나나가 자랐다는 기사를 봤다. 아직 여름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연일 폭염 경고 문자가 오는 걸 보니 이번 여름은 어떻게 보낼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하지만 더위도 언젠가는 지나갈 테니 지글거리는 태양 아래의 7월을 어떻게 시원하게 보낼지 그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 피서는 시원한 카페에서 얼음 가득 채운 아메리카노 한 잔과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이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책을 읽느냐이다. 이른 폭염에 다녀온 카페 피서에서는 표지부터 시원한 <샘터 7월호>와 함께 했다.

 

<샘터 7월호>에는 항상 샘터와 함께 하는 여러 가지 코너와 함께 달마다 새롭게 만나는 이야기가 가득했다. 언제나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이해인 수녀님의 흰구름 러브레터부터 동물, 과학, 옛사람, 근대건축에 관한 이야기는 늘 새로운 정보를 알려줘서 더욱 꼼꼼하게 읽는다. 그리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가득한 독자투고란은 나의 현재 상황을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고 잠시 잊어버렸던 옛 추억을 떠올리게도 해줘서 특히 더 좋아한다. 7월호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코너는 이메일로 좋은 글을 보내주는 것으로 유명한 고도원과 개그맨 박성광, 특집으로 구성된 독자들의 이야기이다. <샘터 7월호>의 표지의 글귀처럼 삶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샘터가 아닐까 싶다.

 

 

법정 스님의 말씀을 따라 적어보는 샘터의 필사책인 '행복은 간장밥'을 소개하는 페이지 옆에는 필사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 있다. 샘터에서 가장 먼저 읽게 되는 글이자, 가장 좋아하는 붉은 벽돌, 담쟁이 덩굴 코너는 이번 7월호에서도 역시 내가 딱 원하는 말을 들려줬다. 꾸준함이 없어서 늘 하다가 말았다가를 반복하지만 제대로 한 권이라도 써보고 싶은 필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을 읽으면서 역시 필사는 그냥 보고 베끼는 작업이 아니라 많은 효용이 있는, 자신만의 글을 쓰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행복은 간장밥' 이후로 또 잠시 느슨해졌던 필사를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접했던 사람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에 도서관에서 진행했던 사람책이라는 것이 조금은 낯설었는데 관심 있는 분야의 전문가들이 진행하는 사람책 모임을 보면서 생생한 정보를 얻고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아 꽤 유익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책이라는 단어를 듣기만 했지 정확하게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몰랐는데 이번 <샘터 7월호> 공유의 시대에서 들려주는 사람책에 관해 읽어본 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꼭 전문가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지혜를 나눌 수 있는 사람책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만약에 내가 사람책이 된다면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지혜를 전해 줄 수 있을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을 놓치지 않는다. <샘터 7월호> 군대가 가르쳐준 것들에서는 세상과 자신을 이어준 100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샘터처럼 얇은 잡지부터 시작해서 단편소설집이나 가벼운 에세이를 읽고 '이 소설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기분이 드는 책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어떤 책부터 시작해서 책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책 초보자들에게 따라 하기 쉬운 가이드라인을 정해주는 것 같았다. 뭐든 일단 시작은 가볍게 하는 것이 좋다.

샘터처럼 매달 발행되는 책을 보면 늘 존경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다양한 분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잔잔한 감동과 함께 전해준다는 것은 정말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나는 매달 샘터와 함께 조금 더 넓은 시야, 조금 더 깊은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덥지만 덥다고 스스로 불쾌지수를 높이고 있는 것보다 자신을 더위로부터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게는 그 방법이 책이고, 매달 새롭게 만나는 샘터이다. 시원한 글줄기를 뽑아내는 <샘터 7월호>와 함께 2017년 여름의 문턱을 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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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의 인생수업
장석주 지음 / 한빛비즈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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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에게 <그리스인 조르바>는 숙제다. 꼭 읽어보고 싶지만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한 책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라치면 바쁘거나 더 빨리 읽어야 할 책들이 불쑥 생겨버린다. 늘 눈에 잘 띄는 곳에 놔두지만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한 책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왜 그렇게 읽어보고 싶어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딱히 명확한 답은 없다. 그냥 읽어보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 인생 최고의 책이라고 꼽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어떤 책인지가 궁금했다.

아직 <그리스인 조르바>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의도치 않게 그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은 몇 권 읽었다. 처음엔 단지 왜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지가 궁금했는데 <그리스인 조르바>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은 후에는 더욱 궁금해졌다. 자유영혼인 조르바에 관해, 그가 생각하는 삶과 찬란한 인생의 명언들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직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보지 못했고 그 책을 빠르게 한번 훑어본 듯한 느낌이 드는 책을 만났다.

장석주 시인이 읽고 쓴 <조르바의 인생수업>에서 들려주는 조르바에 관한 이야기는 분명 내가 언젠가 읽을 <그리스인 조르바>와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조르바의 인생수업>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전에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처럼 <그리스인 조르바>를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스무 번도 더 넘게 읽어 본 <그리스인 조르바>가 저자 인생의 책 중의 한 권이라고 한다. 수없이 읽어 본 그 책의 수많은 문장에 대해 작가가 사유하고, 자신의 인생을 덧붙여 들려준다. 처음엔 저자의 이야기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멋진 구절들이 눈에 더 들어왔지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작가가 덧붙여 쓴 이야기들에 공감을 하고 더 집중하며 읽었다. <조르바의 인생수업>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요점만 뽑아놓은 요약집과 장석주 시인의 서평인 듯 에세이 같은 이야기, 마치 두 권의 책을 읽는 것 같았다.

'나는 왜 이 책을 쓰는가'라는 저자의 서문 중에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도무지 알지 못했다'라는 구절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누구나 이런 시절이 있었고 아직까지 이런 상황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산다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지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저자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깨달았다는 인생을 나도 찾을 수 있을까?
<그리스인 조르바>의 문장들 아래에 비여있는 여백을 보니 따라 적어 보고 싶어졌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필사해 보고 싶지만 두께 때문에 포기했다면 <조르바의 인생수업>에서 뽑아놓은 문장들을 따라 적어봐도 좋다. 친절하게 페이지까지 적어놓은 문장에 곁들어진 저자의 이야기는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조르바를 통해서 저자가 느낀 인생과 자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지만 곳곳에 숨겨진 구절들은 따로 적어놓고 싶을 만큼 좋았다.

사유하고 고뇌하는 것, 그게 인간이 제 안의 야만성을 넘어서는 것이다.
고독은 혼자 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립에 처했을 때 온다. 고독은 제 영혼을 우주로 삼는 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죽는다는 사실로 인해 삶은 의미로 충만하고, 단 한 번의 삶으로 찬연하게 빛난다.
진탕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면서도 한 줌의 흙에 대해 숙고하는 것을 잊지 마라! 이것이 살아있는 자의 숭고한 소명이다.

조르바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 뒤에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생애와 문학에 대해 만날 수 있다. 뛰어난 작가인 카잔차키스에 대한 이야기는 한 사람의 전기라기보다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아서 앞선 이야기만큼이나 재미있게 읽었다. <조르바의 인생수업>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명문을 따라서 적어보고, 조르바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저자의 에세이를 읽어보며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킨 최고의 책을 쓴 작가의 인생까지 만날 수 있었다.

<조르바의 인생수업>을 읽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봤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책은 <그리스인 조르바>보다 그 책을 읽은 작가가 생각하는 조르바의 삶과 자유로운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만약에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해 분석하고 판단을 내렸다면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을 것이다. 나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 그가 느낀 조르바의 자유, 삶에 대한 진지함을 나도 찾는다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내 삶에도 변화할 수 있을까. 자유가 있지만 자유에 얽매인 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그리스인 조르바>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졌다. <조르바의 인생수업>을 덮고 이제 <그리스인 조르바>를 펼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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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 - 관계에 서툴고 쉽게 상처받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 처방
다장쥔궈 지음, 오수현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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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전부인 책이 있고 제목보다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있다.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라는 제목을 보고 부제처럼 관계에 서툴고 쉽게 상처받는 사람들만을 위한 책, 그들을 위로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 안에는 제목 이상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분명 남들보다 더 쉽게 상처받는 사람도 있고,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을 단 하나로 특정지울 수 없는 것처럼 각자가 가진 아픔의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는 작은 일 이상의 여러 가지 상처를 가진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와 어떻게 그런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중국에서 10여 년간 전문 심리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상처받지 않고 성장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다. 누구나 상처는 수없이 받지만 중요한 것은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나의 상처에 휘둘리지 않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를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 그들과의 관계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간과한 채 살아가고 있다. 결국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에서 왜 상처를 받는 이유를 말하기에 앞서 나를 다시 되돌아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위로와 조언을 준다는 심리학 장르의 책이지만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는 두루뭉술하고 어설픈 위로 따위는 하지 않는다. 저자는 직설적으로 아픔을 드러내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설픈 토닥임도 하지 않는다. 지금의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은 피해자로 남으려는 사람들을 피해자 증후군이라고 일컫는데,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첫째, 둘째 등으로 분류해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알려준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다들 그렇다는 식의 위로와 읽은 후에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책이 아니라서 좋았다. 심리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중적인 심리학 책과 처방전이 적절하게 잘 어우러진 책이었다.

 

 

환심증, 거절 공포증,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사회공포증 등 일상에서 누구나 겪을법한 상처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연애에 대한 조언,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나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까지 누구나 읽어도 현재 자신의 아픔을 찾을 수 있고 그 상처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 수 있다.

왜 나는 늘 연애에 실패하는지, 나쁜 남자만 만나는지, 나에게는 어떤 짝이 잘 어울리는지 등에 대해 알고 싶다면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는 최근에 읽은 어떤 책보다 무척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원인과 해결에 대해 조언한다. 그리고 특히 공감하면서 읽었던 부분은 바로 '내성적'이라는 성격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판단하는 부분이었다. 인간의 성격을 내성적, 외향적 등의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없다. 그리고 내성적인 사람들은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뒤처진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에서는 내성적인 사람에 대해 소통 능력이 부족하고 외향적이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 내면의 세계에 집중하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즐거움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자리가 불편하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관계를 싫어한다. 그럼에도 나는 누구보다 많은 경험과 도전을 했고 자극을 즐긴다. 절대적인 성격이란 없다. 그동안 자신을 단 하나의 성격에 가둬서 판단했다면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를 통해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지길 바란다.

 

 

매 순간이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살아간다는 건, 살아낸다는 것과 같다. 누구나 처음 살아보는 삶이기 때문에 늘 불안함과 걱정을 바닥에 깔아둔 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걱정 위에 또 다른 두려움이 쌓이고 상처가 나고, 아픔을 더하게 된다. 누구나 그렇다. 오직 이 세상에 나만이 가진 상처는 없다. 다른 사람도 겪는 아픔이 왜 유독 나에게만 이렇게 큰 고통을 주는 건지는 생채기를 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를 제대로 바라봐야만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를 통해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살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의 각본이 나에게도 잘 맞을 거라는 착각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거의 내 상처를 제대로 마주하고 극복했는지 등 책 속의 수많은 문장들이 끊임없이 질문으로 다가왔다. 이제 책이 하는 질문들을 적어보면서 나만의 답을 적어볼까 한다. 저자가 알려주는 조언과 구체적인 방법을 실천해 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모든 문제의 결론은 '나'이기 때문에 나는 나만의 답을 찾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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