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어주는 인문학
안용태 지음 / 생각의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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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인문학'이라는 단어만 넣으면 웬만큼 팔린다는 어느 출판사측의 말처럼 요즘의 화두는 인문학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스펙의 연장선상 수단으로서의 인문학이 아닌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순수 인문학은 솔직히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팟캐스터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작가는 영화와 인문학, 이 두 영역을 매력적인 남녀가 연애를 하듯 만나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작가의 의도대로 그 달콤한 만남은 독자인 나에게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영화야 놀자>중 강풀작가는 "...영화는 하나지만 보는 눈이 만 개라면 만 개의 새로운 영화가 나온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똑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 다른 감동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현실의 연장, 현실을 보는 또다른 창으로 생각되는 영화, 스무편의 영화에 작가의 인문학적 성찰이 담겨서인지 영화만 봤을 때는 결코 하지 못했던 생각과 시선을 만날 수 있었다.

 

<쇼생크탈출>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던 많은 죄수들과 앤디를 통해 불합리한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재를 말해준다.

"이 철책은 웃기지. 처음엔 싫지만 차츰 익숙해지지.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벗어날 수 없어. 그게 길들여지는 거야." 길들여진 삶만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레드의 고백이, 어쩔 수없다고 바뀌지 않을거라고 체념하는 무기력한 우리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듯하다.
p.50 "니체는 일상적으로 같은 것을 반복하며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것을 두고 영원회귀에 빠져버린  삶이라고 말했다....만약 우리의 삶이 절대적 절망의 상태에 빠져 그 어떤 목적도 의미도 없이 루프만 무한히 반복한다면 어떠할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지옥일지도 모르겠다."
끝끝내 자유를 찾아가는 앤디를 통해 니체가 말하고 있는 고귀한 인간의 삶을 다시금 일러준다.
p.55 "니체는 절대적 절망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써 주인의식이 있는 고귀한 인간의 삶을 말한다. 고귀한 인간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인 것이다. 니체<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동독시대의 감시, 도청을 담은 <타인의 삶> 통일이전 독일사회를 보여주는 영화지만 민주주의 사회인 미국은 물론 한국도 결코 사찰, 도청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실에서 공감이 많이 되는 이야기였다. 감시가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올 수 밖에 없고 감시당하는 드라이만보다 감시의 권력을 행사하는 비슬러의 외로움과 갈등, 그리고 크리스타의 결단을 통해 그 모든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삶을 지속적으로 창조해나갈 수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임을 이야기한다.

p.109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존재의 사라짐 때문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그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절박함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에 나에게로 환원할 수 없는 인식. 지식. 존재 모든 영역을 넘어서는, 나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아무르>를 통해서는 어쩔 수 없이 누구나 겪는 죽음에 관한 성찰,
인상적인 반전결말로만 기억되던 영화 <식스센스>였지만 책을 통해 소통이 막혀있는 오늘날, 소통의 가능성과 시작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됐다.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일본제국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전투기 제로센을 설계한 호리코시 지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바람이 분다>를 통해 들려주는 악의 평범성.
p.268 "온갖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고 그로 인해 수많은 이가 고통받아도 각 개인은 상상력을 상실한 채, 자신의 꿈 속에 숨어서 자신의 안녕을 위해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 즉 지로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인문과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우리사회의 현실을 반추하고 조명해내는 그의 열린 사고와 인문학적 철학을 통해 좁은 편견으로 바라보던 시선에서 좀 더 열린 시선으로 사회를 보게 되는 것 같다. 영화와 신화, 철학 고전을 넘나들며 들려주는 지적 교류에 짧은 지식의 나도 책읽는 즐거움이 더해졌다. 오창은 교수는 <절망의 인문학>에서 "인문학은 개인이 스스로 본원적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는 가운데 자유롭게 향유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를 통해 인문학을 바라보는 문을 작가가 열어주었다면 삶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 되었다.

 

사춘기 딸아이와 어쩔 수 없는 갈등이 생길 때 함께 본 영화는 정말 즐거운 연결고리가 되어주는데 딸도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영화 제목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빨리 읽고 자신에게 달라고 성화이다. 영화 속 철학과 언급되는 책들 또한 결코 가볍고 만만한 책들이 아니지만 가장 큰 방황의 시기인 청소년 아이들에게 책과 영화의 만남을 통해 인문학으로의 접근을 도와주는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앞으로 더 많은 영화와 교차해서 보여주는 인문학을 만나고 싶다. 책이 좋아서 팟캐스트도 들어봤는데 솔직히 말보다는 글이 더 끌리는 것 같다. 굳이 옥에 티를 꼽자면 가끔 영화의 핵심결말을 말해주는 스포일러가 이 책의 유일한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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