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카르페디엠 34
수잔 크렐러 지음, 함미라 옮김 / 양철북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방 안의 코끼리
(the elephant in the room)

누구나 알고 있지만
두려워서 혹은 편안함을 침해당할까 봐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는 큰 문제.

 

가정폭력의 희생자들을 구해주지 못할 때 우리들이 가장 빈번하게 하는 핑계는 "가정사다. 남이 끼어들 일이 아니다. 부부들만의 사정이 있겠지...."가정이라는 이름 안에서 행해지는 폭력앞에 우리는 그렇게 말없는 방관자가 되곤 했습니다. 얼마전 뉴스를 통해 또 시사다큐를 통해 만난 12살 소리와 9살 소원이의 사연은 너무나 가슴아팠습니다. 아홉살 아이의 작고 마른 몸에 수없이 남겨졌던 검푸른 멍....게다가 그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던 아이는 겨우 12살의 친언니 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진실은 학대와 폭력을 피하기 위해 동생을 때리는 가해자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연약한 열두살 아이가 있었습니다.
<코끼리가 보이지 않아>책 속의 율리아와 막스 남매도 그렇게 아버지의 잔인한 폭력에 짓밟히고 있던 가엾은 아이들이었습니다. 놀이터에서 맴돌던 남매의 몸에 남은 상처와 멍을 보게 된 마샤는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 누구도 아이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율리아와 막스의 아버지, 브란트너는 자동차 대리점을 운영하는, 마을사람 모두가 점잖다고 칭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믿었던 마샤의 아빠마저 "누군가 이미 복지국 사람들에게 말을 했을 거야. 네가 봤을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도 본 적이 있겠지. 예를 들어 이웃 사람들도 있고 아니면 학교 선생님들도 있겠지. 소아과 의사들도 있고, 언젠가 누구의 입에서든 무슨 말이 나올 거야."
언젠가 누구의 입에서 나올거야 그 뒤에 숨겨진 말은 (나, 우리만 빼고)가 아닐지....
보리밭 가운데 버려진 푸른집으로 아이들을 도피시켰을 때 두 아이의 환한 미소와 율리아의 "나한테 이런 집이 있다면, 나는 하루 종일 여기에 있을 거야."라는 말은 마샤로 하여금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했을 겁니다.  '누구도 이젠 막스를 벽에 내동댕이치거나, 율리아의 배를 아프게 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마샤가 푸른집에 열쇠를 채울 때 처음에는 아이들을 가둔 거라는 생각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던 마샤는 바깥의 위협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싶었던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자비한 폭력의 아버지와 아이들의 보호막이 되지 못하는 무관심한 어른들로부터....
어릴적 이웃 아저씨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을 목격했던 나로서는 마샤의 용기가 참으로 크게 느껴졌습니다. 아저씨가 휘두르는 흉기앞에 서서 말리는 엄마가 혹시나 다칠까 너무나 무서웠고 술마시지 않았을때는 온순했지만 그럴때라도 아저씨와 마주치기라도 할때는 온몸이 경직되는 두려움을 느꼈었지요. 먼 발치서 보기만 했는데도 잊혀지지 않는 두려움이 남아있는데 직접 폭력을 당한 아이는 어땠을지.... 마을 공동체의 질서와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아 그 큰 상처와 비명을 듣고도 모른척 했던 어른들에 비해 마샤는 얼마나 큰 용기를 가졌는지, 또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아버지의 폭력을 숨기는 막스와 율리아는 얼마나 큰 용기를 내어야 했을지....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격언까지는 못 가더라도 최소한의 생명은 지켜주어야 하지 않을까....누군가 나서지 않는다면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 하겠지 나혼자 못 본 척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외면하는 동안 얼마나 상처입고 아팠을까요....처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 '엘제'와 함께 했었더라면 더 많은 상처와 폭력을 막아낼 수 있었을텐데....책을 보는 내내 공범이라는 틀에 갇히고 싶어하지 않는 이기적인 내가 계속 마을사람들을 원망하고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소원이 자매를 보호해주지 못했던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사람들이나 이웃사람들에게 비난을 했던 것처럼...마을사람들에게 꽃을 듬뿍 안겨주는 친절한 얀센아주머니도, 괜한 일에 끼어들지 말자고 했던 마샤의 할머니도 , 다른 사람도 침묵하게 만듦으로써 함께 공범자가 되어 죄책감을 1/n로 나누고 싶어하는....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저의 모습도 담겨있기 때문에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열세살 어린 미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팠던 만큼
퍼렇게 든 멍에 대해.
비명 소리에 대해.
보고도 또 마샤의 외침을 외면했던 어른들의 모습이 더욱 부끄럽습니다.
"마샤야, 그 아이들은 말이다. 내가 생각하건데, 태어나서 단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었을 거다. 모든 걸 참아 온 거지. 네 덕분에 이제 우리가 그걸 지켜볼 필요가 없게 되어 기뻤단다." 할아버지의 말처럼 마샤 덕분에 아이들의 고통을 더이상 외면하지 않아도 되어서 늦었지만 정말 다행입니다. 한 시간에 한 명꼴로 아동학대가 발생하고 심지어 한 달에 한 명 아동학대로 피지도 못한 생명이 목숨을 잃는 대한민국의 오늘. 우리 주변에도 율리아와 막스, 소리 자매처럼 가정속에서 부모의 폭력앞에 무방비로 내던져진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족과의 이별,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극복하는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거라고 합니다. 가족의 폭력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절망도 결국 익숙해지고 마는게 아닐까요...누군가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 손을 이제는 어린 마샤가 아닌 우리 어른들이 먼저 내밀어야겠지요.


율리아가 제안해서 마샤와 함께 했던 아름다운 것 이어말하기 게임에서 쏟아져나온 율리아의 말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아빠가 없을 때"

"누가 나를 꼭 안아 줄 때. 아주 꼬옥 안아 줄 때."

차마 울수 조차 없었던 여리고 작은 율리아를 꼭 안아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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