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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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우리는 이 책의 제목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자칫 착각하기 쉬울지 몰라도 절대 "우리 대 당신들"이 아니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전작 <베어타운>의 등장인물에 새로운 인물들 더해진다. 새로운 인물이라지만 그들은 거의 다 베어타운의 사람들이다. 인물들 간의 관계는 촘촘해지고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1에서 49개의 소제목으로 나뉜 이야기는 총 619페이지로 분량이 상당하다.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정말 많아보지만, '1. 이건 누군가의 책임이 될 것이다.'에서 단 3페이지로 <베어타운>의 줄거리를 요약하고 이 책에서 벌어질 일을 암시해둔 걸 보면 이 정도의 분량으로 이야기를 압축시킨 것도 정말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닐까 상상하게 된다.

 

이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 어느 해 여름에서 겨울까지의 이야기다. 베어타운과 그 옆 마을 헤드의 이야기, 두 하키팀 간의 경쟁이 돈과 권력과 생존을 둘러싼 광기 어린 다툼으로 번진 이야기다. 하키장과 그 주변에서 두근대는 모든 심장의 이야기, 인간과 스포츠와 그 둘이 어떤 식으로 번갈아가며 서로를 책임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의 이야기, 꿈을 꾸고 투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가장 아름다운 나무 아래에 묻을 것이다.      - 본문 중 15p

 

첫 장에서 알려준 이 이야기의 복선은 조금 무겁고 슬프기까지 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죽을까 봐, <베어타운>과 <우리와 당신들>을 통해 정이 붙은, 사랑할만한 등장인물을 잔뜩 만들어놓고 누군가의 죽음을 선고한 후 이야기를 진행하다니 참 독자에게 매몰찬 작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에서 몇몇 인물들은 여러 가지 사건과 이유로 거의 죽음에 가까운 상황을 맞이하고 모면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얼마나 숨을 참고 그 이야기를 읽었는지 모른다. 다시 그 인물의 이름이 나오면 그제야 숨을 뱉을 수 있었다. 미스터리도 공포소설도 아닌 책에서 이렇게 심장이 쪼이긴 처음이었다.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라는 현실적이고 마음을 후벼파는 표현들이 몇 번이나 등장해서 책 속의 인물들의 바람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을 거라는 불온한 기운을 조성했다. 그러다 책의 후반에 가서 아래에 적은 글귀를 발견하고 그나마 조금 마음을 풀었던 것 같다. 동화의 끝은 언제나 해피엔딩이 아닌가.  

 

 

모든 스포츠는 동화다. 우리가 거기에 빠져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이 동화를 끝낼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 본문 중 526p​

 

이 이야기가 과연 해피엔딩일지는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하지만 난 <베어타운>에서 사랑했던 아이들 아맛, 벤이, 마야, 아나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것으로도 너무 좋았고, 그 아이들이 큰일을 겪었고 앞으로도 행복한 어른이 되기까지 순탄치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결국 해낼 거라고 믿으며 벤이처럼 응원해주고 싶다. "개자식들 앞에서 울지 마!" 얼마 전에 우연히 본 '인간극장' 내레이션 중에 '어떤 슬픔을 극복하는 데 꼭 그 슬픔과 같은 크기의 기쁨이 필요하지는 않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야의 가족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이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마야라는 걸 알게 되어 조금 기뻤다.

그리고 그들 옆에서 어찌해야 할 줄 모르면서도 '웬수 같은 자식'들을 돌보며 어른으로서의 책임, 부모로서의 책임을 지기 위해 애쓴 가족들의 모습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페테르와 미라와 라모나와 수네같은 어른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인물 중에는 사켈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다. 현실에 정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사켈이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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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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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완서 선생님의 8주기를 추모하며 2종의 짧은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을 모은 <나의 아름다운 이웃>과 현재 활동 중인 한국작가 29인의 짧은 소설을 모은 <멜랑콜리 해피엔딩>이 바로 그 두 권이다. 내가 읽은 책은 두 번째 책으로, 참여 작가 중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름도 보였고 그 외에도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한 권에서 볼 수 있다는 점과 각자의 스타일로 써낸 '짧은 소설'이 궁금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끌렸다.

 

 

콩트, 경단편, 초 단편소설이라고도 소개된 '짧은 소설'은 사실 그리 낯설진 않다. 문단에서의 반응은 어찌 됐든 한국문학을 딱딱하다 무겁다 하는 인상 때문에 기피하던 바쁜 현대인, 즉 독자 입장에서는 금방 읽어버릴 수 있는 분량은 큰 매력 포인트였기 때문에 간간이 그 모습을 보여왔고 이제 와서는 왕성히 활동하는 작가들 가운데서도 이런 장르의 짧은 소설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내 기억에서 '짧은 소설'하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일반적인 단편소설보다도 짧았던 단편들이 떠오르고, 일본 작가 호시 신이치가 미스터리, SF 장르에서 '쇼트쇼트 스토리'라 이름 붙인 짧은 소설들을 엮어 수십 권의 책을 내기도 했던 게 떠오른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박완서, 성석제 작가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한국 문단에서 발표되는 여느 단편 소설보다도 '짧은 소설'이라는 소개와 이름이 잘 어울리는 분량의 소설들. 뭐라 이름 붙였건 간에 이미 몇 번이고 접한 적이 있다는 건 사실이다.

 

 

이전에 읽었던 성석제 작가님의 짧은 소설집은 그야말로 '콩트'라는 단어가 주는 유쾌함을 가진 단편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한국작가의 콩트는 소재나 내용면에서 친숙한 일상의 단면과 익살을 담고 있어서 우리 소설의 향이 듬뿍 묻어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오래전에 읽었던 박완서 선생님의 책들로 비슷한 인상으로 남아있어 이번 책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으려나 하는 호기심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상이라는 커튼이 휙 젖혀질 때 번쩍, 비춰 보이는 짧고도 강렬한 '생의 맛!'

(띠지에서)

다 읽고 나니 그 감상을 어찌 쓸까 고민하다 띠지에 쓰여있는 문구에 정말 공감했다. 깊고 커다란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놓는 장황한 이야기도 아니고, 특별한 주인공이 특별한 사건을 맞이해 벌어지는 해프닝 같은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아니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 같고, 어제의 내가 이랬던 것 같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짧지만 강렬한 한순간들을 작가들이 각자의 스타일로 풀어놓았다. 반면 모든 이들의 일상을 다룬다기보다 조금은 특별한 작품들도 있다.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을 오마주 하거나 직접 등장시키기도 하는 몇몇 단편들은 이 책의 기획의도와 박완서라는 작가가 가진 특별함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좋아하는 작가를 먼저 찾아 읽어도 좋고, 순서대로 읽어도 읽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콩트'하면 왠지 코미디나 희극에서 쓰인 단어라는 인상 때문인지, 유쾌하거나 엉뚱하거나 혹은 가려운 부분을 조금은 얄밉게 꼬집어주는 그런 포인트를 기대하게 된다. 모든 작품들이 흥미로웠지만 이런 기대에 부합하는 작품으로는 오한기 작가님의 <상담>, 조남주 작가님의 <어떤 전형>을 꼽고 싶다.

​​

 

자기가 쓴 글자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그녀는 힘없는 웃음을 터뜨린다. 등신, 안심. 그와 나는 둘도 없는 상등신들이고 우리는 화해가 이루어져 안심하고 있구나. 이것은 등신들이 안심하는 이야기구나.

      - <등신, 안심> 김성중, 본문 중 52p

그렇게,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으나 창이 없어 풍경의 변화를 짐작할 길 없는 과 사무실에 앉아 민주는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끝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다만 여기, 지금의 온기에 집중하기 위해 아직은 따뜻한 차를 마셨다.

​     - <언제나 해피엔딩> 백수린, 본문 중 121-2p

​​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콩트라 부른다면 나는 굳이 '한국식 콩트'라고 표현하고 싶다. 한국의 현재 모습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는 점과 길이가 짧아졌는데도 작가들의 개성과 한국문학 특유의 분위기랄까 감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으로는 김성중 작가의 <등신, 안심>과 백수린 작가의 <언제나 해피엔딩>을 꼽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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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심해요 철학하는 아이 12
엘로디 페로탱 지음, 박정연 옮김, 이정화 해설 / 이마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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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소심하고 소극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소심하다'라는 표현은 대개 칭찬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곤 하며, 흔히 학교나 사회에서도 소심함과 반대되는 대범함이나 적극성 같은 성향을 권장하고 우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소심하다는 게 과연 나쁜 걸까? 이 책의 주인공은 자신의 그런 소심함의 원인을 찾거나 극복하고자 결심하기도 하지만 소심함은 '우연히 내 안으로 파고든 것 같'은 타고난 천성일지도 모르고, 극복하거나 없애야 할 병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

제목부터 많이 공감했던 책. 화려한 색이 쓰이지도 않았고 그림도 간결하고 커다랗다. 글밥도 많지 않아 순식간에 읽어내린 이 그림책의 제목을 자꾸만 입에 되뇌게 된다. 책의 뒷면을 보니 시리즈명 옆에 작은 부제가 보인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소심하다는 것도 다양한 성격의 한 종류이고, 그저 그 사람이 가진 성향이라는 걸 인정하고 내버려 두는 것. 글로 써보면 이렇게 간단명료한 사실인데 왜 실제에선 어려울까.

책 속의 주인공은 몸을 움츠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눈만 마주쳐도 얼굴을 붉히며 겸연쩍은 미소를 짓고 만다. 늘 자신만만하거나 큰 소리로 웃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해서 노래를 부르며 소심함을 극복해보려 하지만 결국 부끄러워 1절을 채 부르지도 못한다. 그저 부끄러워하는 거면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더 크게 말해봐, 똑바로 이야기해봐' 하며 압박을 주는 사람들의 모습에 '왜 그래야 하는데?' 하고 대신 반박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주변에서 쉬이 긍정해주지 않는 부분을 스스로 먼저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모르는 타인들의 눈을 신경 쓰느라 소심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 나에게 가까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해주는 한마디에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 책의 주인공은 어느 날 그런 누군가의 한마디를 듣고 자기 자신의 소심함을 인정한다.

 

책에서 이야기해주는 소심함의 장점,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능력, 깊이 생각하는 능력, 편안함을 주기에 함께하길 좋아'하게 만든다는 것.(본문 中) 이에 더불어 작가의 말을 남긴다. 만약 스스로가 소심해서 고민이라는 사람은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소심함을 장점으로 바꿔 생각해보길 권한다. 책 속에서 내내 내리고 있던 앞머리를 쓸어넘기고 바람을 맞으며 씩씩하게 걸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참 유쾌, 통쾌하다.

 

 

소심한 성격은 종종 타인에게 다가갈 때 장애물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상대는 종종 그 소심함에서 섬세함이나 배려심을 발견하기도 하지요.(...)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이세요. 수줍어 빨개지는 얼굴도, 앞에 나서기 망설이는 모습도요.

- 엘로디 페로탱(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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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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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황정은의 소설은 여전히 매혹적이었고, 한층 더 가까운 현실을 담아내고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 외에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2014년 이후, 작가는 자신의 단편 소설<디디의 우산>을 파괴해 <d>를 쓰고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썼다고 한다(작가의 말 中). 이렇게 쓰인 두 중편을 모아 이번 소설집 《디디의 우산》이 출간되었다. 두 소설의 전신이 되었던 작품에서 동창이자 연인이었던 디디와 도도는 dd와 d가 되었고, <d>에서는 이제 혼자 남은 d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d>

​d는 dd를 잃고 조금 차가워진 자신 때문에 미적지근한 온도를 띠고 있는 사물들에 진저리를 친다. 이런 묘한 증상과 더불어 누군가를 잃은 한 사람이 겪을 법한 모든 일을 겪어내는 d의 모습에 순간순간 함께 울컥하고 울적해지기도 했다. 단호하고 시니컬한 d의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고 공감하며 읽었다. 내동댕이쳐졌다고 표현한 dd의 죽음처럼 2014년 세월호 사건으로 우리는 그 누구도 도와주지 못한 커다란 죽음을 목격했다. 이 소설에서 이 사건은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관련되거나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장면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d와 박조배가 명동에서 만나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1주기 추모와 시위로 인해 시위대와 경찰들에 길이 막혀 서울 일대를 빙빙 돌게 된다. dd의 죽음과 세월호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dd의 짐에서 나온 REVOLUTION이라 적힌 책과 시위 행렬 같은  단서들이 보이지 않는 점선으로 이어진 것 같았다.

디디와 살던 방의 세를 받던 김귀자, 디의 부모님인 이승근과 고경자, 디디의 형제 곽정은, 세운상가에서 스피커와 램프를 수리하는 여소녀, 디디에게 책을 빌려주었던 동창 박조배처럼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구체적인 이름을 갖는다.(다만 이름보단 마치 이니셜 같은 d와 dd만이 예외다.) dd의 죽음을 겪고 한 사람의 생명과 죽음이 하찮다고 읊조리는 d지만, 그렇다 해도 개인과 개인이 가진 생명은 그들이 각자 가진 이름과 삶처럼 하나하나가 특별하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여소녀와 d의 대화 중 너의 오디오가 이제는좀 특별해졌느냐는 여소녀의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언제 사라질지 모를 하찮은 생이라도 서로의 시간과 애정을 겹치면서 특별해질 수 있기에.

잘 가.

어두컴컴한 목공소 앞에서 d는 말했다.

dd는 d의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갔다.    - <d>, 본문 중 10p

잘 가.

배웅하는 dd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d는 dd의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갔다.     -<d>, 본문 중 16p

책의 절반, 이 한 편의 중편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잠시 다른 책들을 꺼내 읽었다. 《웃는 남자》(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아무도 아닌》,《파씨의 입문》을 꺼내 디디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과 작품들을 소소히 비교해 보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dd를 잃은 d의 마음에 쭉 빠져있었기 때문인지, 《파씨의 입문》에 수록된 <디디의 우산>에서 아직 무사했던 디디의 시점을 읽을 땐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해야 할지, 조금 행복해졌다. 《아무도 아닌》에 수록된 <웃는 남자>에서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임으로 스스로 나가야 할 것을 생각'만' 하고 있던 도도가 d가 되어 드디어 발을 떼었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조금 다행이라 여겨졌다.   ​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오늘은 어떻게 기억될까. -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 본문 중 310P

주인공은 서수경, 김소리, 정진원과 함께 '오늘' 한 집에 모여있다.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 서로 다른 성을 가진, 관계를 알 수 없는 이들이 각각 어떤 인물들인지 궁금했다. 그들이 모인 그 하루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과 끝을 맺지만, 주인공의 회상으로 '오늘'에 다다르기까지 과거의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사건들을 굵직하게 다루고 있다. 서로에게 분명 좋은 화자이며, 성실한 수신자이자 답신자였을 주인공과 서수경의 많은 대화와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도입 부분을 읽으면서 앞에 실린 소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 느꼈고, 다양한 문학작품과 문인들을 언급하는 주인공의 성격이 낯설었다. 그런데다가 주인공이 살았던 배경이자 현실에서도 실제 있었던 다양한 사건들을 이야기할 때는 중간중간 직접 삽입된 글(주로 기사의 직접인용)의 존재가 그 내용은 물론 글의 형식까지 더 파격적으로 만들었다. 

소설 속 '오늘'이 가장 큰 사건들이 이어졌던 2014년부터 2017년을 배경으로 가진다는 점에서 <d>와 같은 시간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주인공이 각 사건을 직접 겪었거나 가까이서 보았고 시위에 직접 참여하는 등 정치, 사회적인 이슈에 더 적극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 언급과 의견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커다란 사건뿐 아니라 개인이 겪었던, 사회가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불쾌하고 불편한 단면들도 보여주는 터라 읽으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론 이 정도까지 이야기해주니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 

- <디디의 우산>( 《파씨의 입문》, 2012 )

 

 

두 작품 모두 주인공 커플이 참 사랑스러웠고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참 무거웠다. 황정은의 소설이 늘 내게 그랬듯이 잘 설명하지 못했지만 어떤 대사나 문장에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기도 했고 여러 번 읽으면서 부분 혹은 전체가 주는 여러 가지 해석에 공감하고 골치 아파하기도 하며 이 책을 읽었다. 기대했던 만큼 그저 좋았고, 지난 책들을 들쳐보며 그녀의 문체나 이야기가 점점 더 능숙하게 다듬어졌다는 것도 느꼈다. 작가의 솜씨도, 이야기도, 이야기 속 인물들의 매력도 농도가 진해졌다고 해야 하나, 정말 헤어 나오질 못하겠다. 서평을 쓰면서 부러 여러 번 책을 읽었는데도, 아직도 황정은의 소설이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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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지구와 우주를 기록하다 NASA, 기록하다
빌 나이.Nirmala Nataraj 지음, 박성래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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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하늘 위의 우주를 궁금해하고, 밤하늘만 봐도 두근두근하며 꿈을 꾸는 걸까. 눈에는 분명 보이는데 우리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그 거리감이 주는 신비함 때문일까. 그저 맨눈으로 관찰하는 것으로도 아름답다 표현하기에 충분한 밤하늘을 한 걸음, 아니 몇 걸음 더 가까이서 관찰하고 사진으로 남긴 사람들과 기관이 있다. 우주에 관련해서는 아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커다란 존재, NASA. NASA에서 그들이 기록한 지구와 우주의 모습을 이제는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NASA에서 공식 인증한 유일한 책이라고 하니 사진의 출처는 확실히 믿고 볼만한 것 같다.

 

 

이 뒤에 나오는 페이지부터는 가장 화려한 SF 영화보다 더 화려한 천문학적 현상을 보게 될 것이다. 사진은 지구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정렬되어 있다. 우리에게 친근한 지구와 태양계에서 시작하여 우주 본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특별한 시간을 제공하는 은하계 이미지로 이동한다. 이 사진 컬렉션을 통해 우리은하와 태양계, 과거의 태양 플레어와 별을 만드는 성운 그리고 별이 죽는 극적인 순간과 지구로부터 수십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암흑물질의 신비한 고리가 있는 숨 막힐 듯한 풍경을 볼 수 있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Nirmala Nataraj의 서문 중 13p)

<NASA 기록하다>라는 시리즈 <행성을 기록하다>, <지구와 우주를 기록하다> 이렇게 두 권의 책이 동시에 나왔는데 내가 읽게 된 책은 후자이다. 내가 직접 가보지는 못할 공간의 모습을 사진과 글로 간접경험하게 해주는 책이라는 존재가 너무나도 고마워졌다. <지구와 우주를 기록하다>는 서문의 내용을 따르면 지구로부터의 거리 순으로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지구를 '푸른 구슬'이라 말하게 된 상징적인 사진부터 지구와 태양계 행성이나 성운 등을 거쳐 더 멀고 커다란 다른 은하의 모습들까지 정말 여행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지구를 먼저 바라보고 뒤돌아 그 뒤에 펼쳐져 있는 더 넓고 커다란 공간에 있는 아름다운 존재들을 바라보는 여정은 몇 번을 반복해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책에 함께 따라온 대형 엽서는 책에 실린 몇몇 사진들을 담고 있는데, 사이즈가 큰 만큼 그대로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 싶은 욕구를 들게 만든다. 나처럼 욕심 많은 사람은 이 엽서를 절대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는 못할 것 같다. 언제까지 진행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이 발간된 지 얼마 안 된 지금은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매 시 우주 엽서 세트를 증정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릴 때 흔히 배우는 '작은 별'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반짝반짝 작은 별~'로 시작하는 노래 가사처럼 우주의 사진들은 정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커다란 사진 위주의 책이라 책 한 권을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사진 옆에 작게 붙은 낯선 우주의 이름과 해설보다 그저 사진에 시선을 빼앗겨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감탄하고를 반복한 것 같다. 우주과학, 천문학 분야의 사진집인 이 책은 서문에서의 우주 사진의 역사 같은 해설을 제외하곤 그리 말이 많지 않은 책이었다. 그저 사진 속에 포착된 우주의 이름이나 현상을 가볍게 알려주고 어디에서 어떤 장비로 촬영, 기록했는지를 말할 뿐이다. 어렵고 자세한 해설이 없는 책의 구성은 낯선 이름들을 한 번씩 인지하고 그저 사진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책을 고르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마 '사진'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의외로 남녀노소 누구나 보기에 좋은 책이었다. 나는 거실에 이 책을 가지고 나왔다가 부모님이 합세해서 셋이 함께 책을 봤는데(아주 어릴 때를 빼고 함께 책을 본 게 얼마만인지ㅋㅋ) 어떤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이 사진은 무얼 찍은 건지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며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린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봐도 반짝반짝 현란하고 아름다운 사진에 눈이 가서 우주와 과학에 쉽게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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