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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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완서 선생님의 8주기를 추모하며 2종의 짧은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을 모은 <나의 아름다운 이웃>과 현재 활동 중인 한국작가 29인의 짧은 소설을 모은 <멜랑콜리 해피엔딩>이 바로 그 두 권이다. 내가 읽은 책은 두 번째 책으로, 참여 작가 중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름도 보였고 그 외에도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한 권에서 볼 수 있다는 점과 각자의 스타일로 써낸 '짧은 소설'이 궁금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끌렸다.

 

 

콩트, 경단편, 초 단편소설이라고도 소개된 '짧은 소설'은 사실 그리 낯설진 않다. 문단에서의 반응은 어찌 됐든 한국문학을 딱딱하다 무겁다 하는 인상 때문에 기피하던 바쁜 현대인, 즉 독자 입장에서는 금방 읽어버릴 수 있는 분량은 큰 매력 포인트였기 때문에 간간이 그 모습을 보여왔고 이제 와서는 왕성히 활동하는 작가들 가운데서도 이런 장르의 짧은 소설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내 기억에서 '짧은 소설'하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일반적인 단편소설보다도 짧았던 단편들이 떠오르고, 일본 작가 호시 신이치가 미스터리, SF 장르에서 '쇼트쇼트 스토리'라 이름 붙인 짧은 소설들을 엮어 수십 권의 책을 내기도 했던 게 떠오른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박완서, 성석제 작가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한국 문단에서 발표되는 여느 단편 소설보다도 '짧은 소설'이라는 소개와 이름이 잘 어울리는 분량의 소설들. 뭐라 이름 붙였건 간에 이미 몇 번이고 접한 적이 있다는 건 사실이다.

 

 

이전에 읽었던 성석제 작가님의 짧은 소설집은 그야말로 '콩트'라는 단어가 주는 유쾌함을 가진 단편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한국작가의 콩트는 소재나 내용면에서 친숙한 일상의 단면과 익살을 담고 있어서 우리 소설의 향이 듬뿍 묻어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오래전에 읽었던 박완서 선생님의 책들로 비슷한 인상으로 남아있어 이번 책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으려나 하는 호기심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상이라는 커튼이 휙 젖혀질 때 번쩍, 비춰 보이는 짧고도 강렬한 '생의 맛!'

(띠지에서)

다 읽고 나니 그 감상을 어찌 쓸까 고민하다 띠지에 쓰여있는 문구에 정말 공감했다. 깊고 커다란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놓는 장황한 이야기도 아니고, 특별한 주인공이 특별한 사건을 맞이해 벌어지는 해프닝 같은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아니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 같고, 어제의 내가 이랬던 것 같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짧지만 강렬한 한순간들을 작가들이 각자의 스타일로 풀어놓았다. 반면 모든 이들의 일상을 다룬다기보다 조금은 특별한 작품들도 있다.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을 오마주 하거나 직접 등장시키기도 하는 몇몇 단편들은 이 책의 기획의도와 박완서라는 작가가 가진 특별함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좋아하는 작가를 먼저 찾아 읽어도 좋고, 순서대로 읽어도 읽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콩트'하면 왠지 코미디나 희극에서 쓰인 단어라는 인상 때문인지, 유쾌하거나 엉뚱하거나 혹은 가려운 부분을 조금은 얄밉게 꼬집어주는 그런 포인트를 기대하게 된다. 모든 작품들이 흥미로웠지만 이런 기대에 부합하는 작품으로는 오한기 작가님의 <상담>, 조남주 작가님의 <어떤 전형>을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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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쓴 글자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그녀는 힘없는 웃음을 터뜨린다. 등신, 안심. 그와 나는 둘도 없는 상등신들이고 우리는 화해가 이루어져 안심하고 있구나. 이것은 등신들이 안심하는 이야기구나.

      - <등신, 안심> 김성중, 본문 중 52p

그렇게,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으나 창이 없어 풍경의 변화를 짐작할 길 없는 과 사무실에 앉아 민주는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끝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다만 여기, 지금의 온기에 집중하기 위해 아직은 따뜻한 차를 마셨다.

​     - <언제나 해피엔딩> 백수린, 본문 중 12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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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콩트라 부른다면 나는 굳이 '한국식 콩트'라고 표현하고 싶다. 한국의 현재 모습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는 점과 길이가 짧아졌는데도 작가들의 개성과 한국문학 특유의 분위기랄까 감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으로는 김성중 작가의 <등신, 안심>과 백수린 작가의 <언제나 해피엔딩>을 꼽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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