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드 에어포트, 무라야마 사키

해피엔드 에어포트
무라야마 사키 지음, 이소담 옮김 / 열림원 / 2023년 4월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네 가지 이야기. 만화가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공항에 간 료지, 공항 서점 직원 유메코, 중학교 때의 절친이지만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다가 공항 서점에서 우연히 재회하게 된 마유리와 메구미, 세계적인 매지션이자 백 번에 한 번 정도는 마술 사이에 '마법'을 사용하기도 한다는 마녀 사치코가 각각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다.

[* 줄거리 스포일러 포함된 서평입니다*]

연재하던 만화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자신의 모습이 금의환향과는 거리가 멀다며 자조하는 료지는 연착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직업과 인간관계에서의 실패를 떠올려 시무룩해진 그는 공항 내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게 된다. 화가와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의 과거를 이어주는 우연한 인연들이 촘촘하게 잘 짜여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종국에는 몇 번이고 착륙과 이륙을 반복하는 비행기를 보며 희망을 되찾아가는 그야말로 해피엔딩을 그린 이야기다.

유메코의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꿈이 많은 아이였던 유메코의 캐릭터와 '공항은 넓고 역사가 있는 곳이며 마법과 매우 가까운 곳'이라는 떡밥을 던져주며 시작되고, 유메코가 어려서 공항에서 겪었던 미스터리한 일이 현재로 이어지는 전개가 흥미로웠다. 세번째 이야기는 여행 방송을 찍고 스태프들과 헤어져 공항 서점에 들른 여배우 마유리와 신인상 수상 작가로 시상식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메구미가 공항 서점에서 우연히 만나며 시작된다. 두 사람은 중학교 때의 절친으로 마지막 만남이 있었던 그 공항에서 벌어진 마유리가 한 "그런 일"이 무엇인지, 왜 그런 일을 한 건지에 대해 가벼운 미스터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간다. 마지막 사치코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 매지션으로 일하며 전 세계를 돌던 사치코가 종착역처럼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후, 마녀가 된 사연과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떠올리는 이야기다. 

이렇게 각자의 사연을 가진 주인공들이 공항이란 장소 특유의 특징을 바탕으로 각자의 회한이나 생각을 정리하며 더 나은 곳으로 날아가기 위해 재정비를 하는 느낌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는 평범한 특징부터 넓고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미스터리한 구석도 있을 법하다는 식의 의미심장한 특징들까지 각자의 이야기에 잘 녹여 담았다. 마법이라는 표현이 종종 사용되지만 어쩐지 동화에 가까운 분위기로 마법과 기적과 우연을 통해 마음속에서 바라던 무언가가 하나씩 이루어지는, 그래서 결국 제목처럼 해피엔딩으로 이끌어주는 이야기였다.

오후도 서점 시리즈를 통해 알게 된 작가님이라 이번 신작도 궁금했는데, 역시나 서점 직원이 등장해서 조금 웃었고 특유의 선한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분위기와 약간의 마법이 더해진 동화 같은 전개가 익숙하면서도 각각의 이야기는 뻔하지 않고 어색하지 않아 좋았다. 악당은 없지만 히어로와 착한 마녀가 등장하는 동화 같은 소설, 실수나 실패를 겪었던 사람도 몇 번이든 다시 해피엔딩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다고 은근한 응원을 보내주는 마음 따듯한 소설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나무 풍경화 컬러링북, 배영미

나무 풍경화 컬러링북 ㅣ 두 번 그리는 컬러링북
배영미 지음 / EJONG(이종문화사) / 2023년 4월

<나무 풍경화 컬러링북>은 나무 그리기와 컬러링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챕터 1에서 나무 그리기의 기초와 이 책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고, 챕터 2,3에서 바로 나무 한 그루나 나무가 있는 풍경을 직접 그리고 채색할 수 있는 페이지를 제공한다. 같은 그림을 연필로 한번, 색연필로 한번 따라 그릴 수 있도록 반복해 제공하는데 연필용은 보라색으로, 색연필용은 옅은 회색으로 밑그림이 그려져 있다. 밑그림이 그려져있어 전체적인 형태나 외곽선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리기에 임할 수 있고 바로 옆에 완성본이 있으니 참고하며 그리기에도 좋다. 그래서 나무와 풍경 그리기에 자신이 없는 초보여도 그리 어렵지 않게 따라 그릴 수 있고 완성된 그림을 즐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연필이든 색연필이든 바로 실전에 들어가기 앞서 기초 연습에서 알려주는 나무 그리기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다양한 선 그리기 연습을 먼저 해보고 그리기 페이지로 넘어가는 걸 추천한다. 기초 드로잉 연습을 통해 단순한 형태의 나무를 다양한 선으로 그려보면 실전에서 어떤 식으로 형태를 그릴 수 있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가 더 수월해진다. 또 내가 그리는 나무가 아주 단순한 형태에서 점점 더 복잡하고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며 진화하는(?) 과정도 느낄 수 있어 재미있었다. 또 색연필 채색에 있어서도 기초적인 방법이나 팁을 알려주고, 초보자가 꼼꼼히 읽어보면 도움 될만한 유용한 내용이 많았다.

나는 색연필 컬러링에 자신이 없는 편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연필로 나무와 풍경화를 그려나가는 게 더 재미있었다. 신나게 밑그림을 따라 연필을 휘두르다 보면 어느새 나무가 하나씩 완성되는데 원작과는 다른 느낌으로 그려지는 것도 재미있고, 하다 보면 내가 어떤 느낌의 선 그리기를 좋아하는 지도 알게 된다. 명암 표현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단순한 선 그리기 연습을 한다는 생각으로 페이지를 채워나가는 것도 좋다. 밑그림을 따라 그리기는 동안 그림으로 그려진 다양한 나무의 형태를 눈으로 먼저 익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으니 나무 그리기나 풍경화를 잘 그리고 싶은 사람이 그림 실력을 키우는데도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연필로 한번, 색연필로 한번 멋진 나무 그림과 풍경화 그림을 마음껏 그리고 즐기라고 구성된 책이다. 색연필을 이용할 때도 나무 하나당 혹은 그림 하나당 6색 이하의 색연필만으로 채색을 완성하는데, 6가지 색만으로도 단조롭지 않고 멋진 풍경화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 책에서 사용한 색상을 알려주는 페이지도 있지만, 색을 복잡하게 사용하지 않아서 그냥 가지고 있는 색연필 중에 비슷한 색을 골라 사용해도 별문제는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종이의 질이 좋고 두께가 얇지 않은 만큼 볼펜이나 수성펜, 마카 등 다양한 채색 도구를 이용해 한 번 더 책을 활용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실제로 풍경화의 경우 색연필이 아닌 수성펜을 이용해 색다른 느낌을 즐겨보라고 추천하는 페이지도 들어있다.)

워크북이 분리된 책이 아니어서 이 책 한 권과 연필(또는 몇 가지 색의 색연필)만 챙기면 어디서든 그림을 그리고 컬러링을 즐길 수 있다. 180도 완전히 펼쳐지는 사철 제본으로 되어있어 채색할 때도 편리한데다 책의 판형도 작지 않아 따라 그릴 그림의 사이즈도 적당하다. 나무에서 시작해 풍경화로 진행되는 순서이다 보니 (특별히 먼저 그려보고 싶은 그림이 없다면) 순서대로 따라 그리다 보면 점점 더 멋진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만나본 색연필 컬러링북 중에 만족도가 제일 높았던 책. 차근차근 책에서 보여주는 나무를 잔뜩 그리고 후반에 나오는 나무가 들어간 멋진 풍경화도 얼른 완성해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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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나 혼자 인물 드로잉, 이일선·조혜림

나 혼자 인물 드로잉 - 기초 연필 스케치부터 고급 테크닉까지 ㅣ 나 혼자 드로잉
이일선.조혜림 지음 / 그림책방 / 2023년 4월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그리는 것이 바로 엄마 아빠의 얼굴인 것처럼, 우리는 자연스레 사람을 그리고 싶어 한다. 사람 또는 사람의 얼굴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그림의 소재가 되는데, 친숙한 만큼 조금만 형태가 틀려도 어색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물 드로잉을 그리고 싶어 하면서도 어렵다고 느낀다. 이 책은 완벽하게 똑같이 그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니 똑같이 그려내는 것에 부담감을 버리고 단계별로 차근차근 그림 실력을 키워나가는 것을 권장한다. 

챕터 1. 인물 드로잉의 기초와 형태 표현법에서는 인물 드로잉의 기초와 준비물 안내, 다양한 선과 드로잉의 흐름, 형태 그리기의 과정 등을 알려준다. 연필과 찰필, 지우개 등 기본 도구와 교재이자 연습장이 되어줄 이 책이 준비되어 있다면 책에서 알려주는 다양한 기초 표현들을 바로바로 연습하며 배워나갈 수 있다. 드로잉 과정을 크게 대상 관찰과 진행 계획 세우기, 형태 그리기, 명암 넣기 이렇게 삼 단계로 설명하는데 이러한 기본 흐름을 알고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이 사실적인 그림을 완성하는 방법이라는 걸 배울 수 있었다. 

챕터 2. 얼굴 구조와 명암 표현에서는 보다 상세한 명암 표현, 머리뼈/머리근육의 구조와 표현 등을 배우는데, 눈코입 같은 세부 구조의 표현을 하나하나 다루어 연습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챕터 3. 깊이 있게 완성도를 높이는 표현법에서는 빠르게 그리기, 질감 표현, 강약 조절, 표정 표현과 분위기 표현 등 고급 테크닉들을 알려준다. 

이 책은 독특하게도 두 개의 목차를 가지고 있는데 평범한 내용 목차와 함께 '예시 그림' 목차가 하나 더 있다. 예시 그림들은 우리가 책을 보며 따라 그리는 (연한 선으로 밑그림이 그려진) 그림들과 이론 설명 시 이해를 돕기 위해 제시된 그림들까지 모두 표기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매우 사실적인 표현의 드로잉을 다루는데 그렇게 잘 그려진 그림들을 따라 그리며 연습하는 것이 빠르게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바로 그릴 수 있는 연습 페이지도 많지만 그 외에도 책에 수록된 모든 그림들을 모사해 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책에 바로 그려볼 수 있는 '여린 밑그림' 위에 다양한 선과 표현법을 연습하고 난 후 체크해야 할 부분도 꼼꼼히 적혀있어 좋았다. 챕터마다 연습할 수 있는 그림이 10가지 이상은 되고 책의 사이즈가 큼직해서 더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나 혼자 인물 드로잉>은 인물 드로잉에 대해 '기초 스케치부터 고급 테크닉까지' 차근차근 알려주는 책이다. 그리기 수업이 책 한 권에 몽땅 들어가 있는데 직접 따라 그리는 실전뿐만 아니라 그리기에 앞서 인물 드로잉에 필요한 기초적인 이론과 단계별 설명도 포함되어 있다. 기초적인 이론과 설명글이 친절해 드로잉 초보자들도 교재 삼기에 적합하고, 사실적인 표현의 그림들이다 보니 소묘나 인물 드로잉을 해본 중급 이상 실력자들에게도 좋은 자료집이 될 것 같다. 제목처럼 혼자 천천히 읽어가고 그려가며 인물 드로잉을 배우기 좋은 책. 특히 사진처럼 세밀한 인물 드로잉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고양이가 말했다 나처럼 살아보라고, 림행쉬 글 그림

고양이가 말했다 나처럼 살아보라고
림헹쉬 지음, 요조 (Yozoh)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4월

세상 모든 것의 고양이화를 볼 수 있는 책. 산과 호수, 해와 달, 구름과 파도, 풀잎, 선인장 등등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고양이가 그려진 사랑스러운 그림들, 그리고 그런 고양이가 말하는 '나'는 자신감이 넘치고 다채롭고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책에서의 나는 '고양이'지만, 여기에 고양이 대신 독자인 '나'를 대입해 보면 어떨까. 읽고 나면 자신감 넘치고 여유 있고 유연하고 매력적인 고양이에 감화되어 내 안에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조금은 충전되는 느낌이 든다. 그림과 글의 시너지가 꽤 좋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말레이시아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림헹쉬로 '지구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이 책의 그림들을 보면 저자는 낯설지 않은 일상의 풍경 속에 사랑스러움을 한 스푼 더해 보는 사람을 미소 짓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또 이 책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로도 제법 친숙한 요조가 번역을 맡았고, 서두에 '옮긴이의 말'도 남겼다. 자기집 고양이들을 털인간이라고 부르며 "혹시 털인간들은 정말로 현관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이따금씩 하면서도 꾹 참고 나와 살아주는 것은 아닐까."(옮긴이의 말 중) 하는 걱정을 하는 그 마음이 귀여우면서도 공감이 갔다. 이 책에서 고양이들은 정말 자유로워 보이니까. 그들이 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이 경이로운 만큼 그런 존재가 내 곁에 자리하고 있어주는 것도 경이로운 일이라는 걸 알아채는 역자의 섬세함도 좋았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 보아도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고양이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보면 조금 더 특별한 감상이 드는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기 쉽고, 고양이는 사랑스럽고, 감각적인 일러스트에 감탄하고, 짤막하지만 그 자신감과 뻔뻔함을 배우고 싶은 글에 응원을 받으며 기운을 충천할 수 있는 책. 고양이가 말해주는 인생의 순리(?)가 담긴 책. 금방 책을 덮고 나서도 자꾸만 손이 가고 정이 가는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밤을 걷는 여자아이, 델핀 베르톨롱

밤을 걷는 여자아이 ㅣ 푸르른 숲 38
델핀 베르톨롱 지음, 권지현 옮김 / 씨드북(주) / 2023년 3월

기타 선생님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음악학교의 정식 교수가 되면서 가족과 함께 파리에서 님으로, 그것도 '시내에서 6킬로미터나 떨어진 외딴 집'으로 이사하게 된 열여섯 살 말로. 학교도 가지 않는 여름방학 동안 말로는 새집에 적응하려 애쓰며 집과 주변을 열심히 탐험하는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이사 후 여섯 살짜리 동생 잔은 이상행동을 보이고 그를 눈치챈 말로는 불안해하지만 둘의 부모는 새로운 집을 수리하고 꾸미고 적응하기에 바빠 아이들의 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잔이 자신에게만 보이는 친구 폴린의 이름을 말로에게 알려주고, 말로는 그 마을에 실제로 폴린이라는 사람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밤을 걷는 여자아이>는 프랑스 청소년들이 직접 투표해 뽑는 앵코륍티블상과 토론을 거쳐 선정하는 세잠상을 모두 수상한 작품이다. 청소년들은 이 책의 어떤 점을 마음에 들어 했을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여러모로 감정이입하기 좋은 주인공의 다채로운 매력과 청소년들이 흥미로워할 미스터리&추리 장르의 결합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말로는 참 매력적인 주인공이다. 잔과 말로가 겪게 되는 미스터리한 심령현상은 오싹오싹한데, 그에 대한 반응은 잔은 해맑고 말로는 겁먹었지만 진심으로 자신의 동생을 위해줄 뿐이다. 낯선 환경에 불안해하면서도 새로운 사람에 호감을 가지기도 하고, 가끔 불만이 생기기도 하지만,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는 성실함도 갖고 있다. 

이 책은 말로가 이모에게 선물 받은 일기장에 남긴 일기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그 안에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과 상상력, 불안함과 희열, 그리고 말로가 겪은 일들의 증거로 삼기에 충분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정보도 담겨있다. 불안해하거나 자신이 상상하고 걱정하는 일을 늘어놓기도 하고, 폴린에 대한 이야기를 증거수집하듯 꼼꼼히 남겨두기도 한다. 말로는 문학적 소양도 갖춘 남자아이라서 상상력과 작명 센스가 남다르기도 한데, 남들이 자신을 '미치광이 허벅지 왕자'라고 부르는 상상을 할 땐 정말 빵 터졌다.

말로는 폴린이라는 여자아이(30년 전 기준)의 미스터리한 사건에 휘말리고, 릴리라는 우편배달부 누나(현실 인물)에게 호감을 느낀다. 열여섯 살 소년이 30년 전 실종사건을 알게 되는 경로는 폴린의 (심령적인?) 메시지와 우편배달부 릴리와의 대화, 이렇게 두 가지인데 정작 사건을 해결해 내는 과정은 매우 현실적이라 더 재미있었다. 이야기의 엔딩 후에 폴린이 잔에게 주고 간 선물은 왠지 다음 시즌을 예고하는 드라마 엔딩 같아서 은근히 속편이 나올 것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문학은 이제 제법 익숙해졌는데, 이 책을 통해 프랑스의 청소년 소설의 원탑을 엿본 기분이다. 청소년 소설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도,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도 흥미진진하게 푹 빠져 읽을만한 책이었다. ​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