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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편이 흩날리는 저 눈송이처럼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十二月 ㅣ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칼 라르손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좋아하는 겨울, 스웨덴의 화가 칼 라르손의 평화롭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지닌 그림들과 친숙한 시인들의 시가 모였다. 지금까지 중에 가장 취향 저격 당했다고 해야 하나, 좋아하는 시와 시인과 화가까지 모여있으니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소박하고 평화로운 전원생활과 가정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는 칼 라르손의 그림은 워낙에 좋아했다. 그림 속에는 책이나 책상을 가까이하고 있는 인물들이 많고, 멍 때리거나 혹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소녀나 소년의 뒷모습과 옆모습이 그렇게나 좋더라. 윤동주, 노천명, 김영랑 등 친숙한 시인은 물론, 특히나 애정 하는 <이런 시>를 쓴 이상, 지난달 시화집에서 <백지 편지>로 인상에 남았던 장정심, 대학생 때 우연히 읽었던 시집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용악, 하이쿠의 대가로 꼽히는 바쇼 등등 이번 달 시화집에서는 낯선 시인들을 거의 못 본 것 같다. 그만큼 이미 있던 애정에 새롭게 애정을 더한 느낌이라고 할까 알고 있던 시도 처음 읽게 된 시도 하나하나 다 마음에 들었다.

지난달들에 비해 두 페이지를 가득 채운 장시들도 꽤 있었는데 그 내용이 갑자기 내리는 눈에 밖을 걷고 싶은 유혹에 빠지거나(노천명<설야 산책>), 명절 전날 겨울밤의 집안 풍경을 담거나(백석<고야>), 두만강을 건너와 북간도에서 겨울을 마주한 전라도 여인과 함경도 사내의 사연을 담는 등(이용악<전라도 가시내>) 소설이나 에세이 느낌을 가득 담은 겨울이야기라 읽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표제인 '편편이 흩날리는 저 눈송이처럼'은 이번 달 8일의 시로 소개된 심훈의 <눈 밤>의 한 구절이다. 시의 내용이나 분위기가 그림과 찰떡같이 어우러지는 페이지가 너무 많아서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잔뜩인데, 심훈의 <눈 밤>도 그중 하나이다. 전체적으로 좋았지만 12월 초의 시들이 특히 그림과 궁합이 좋았던 것 같다. 3일부터 8일까지의 시와 그림들이 특히 그렇다. 23일 릴케의 시는 원문이 실린 페이지가 정말 멋지고, 29일 김영랑의 시에는 커다란 분홍 꽃이 가득 핀 나무가 중심에 놓인 그림이 함께 실려있는데 그 꽃이 마치 모란꽃 같아 보여 김영랑 시인의 대표작인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연상되었다.(모란이 맞을까 궁금해져서 도록에서 그림의 제목을 찾아보니 <azalea>였다. 아젤리아는 진달래꽃을 뜻한다.)

시화집의 그림은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지도 않고 비교적 작은 사이즈로 실려있는데, 그대로 잘라내어 뒷면에 그날의 시를 적어두고 책갈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책으로도 너무 예쁘기 때문에 차마 하진 못하겠지만, 작고 빳빳한 책갈피로 만들어 가지고 다니면서 시와 그림을 잔뜩 감상하고 싶었다. 애정 하는 시와 그림이 잔뜩이라 행복했던 책. 개인적으로 내 생일 시와 생일 명화를 애타게 기다렸던지라 이번 달의 시화집이 너무나도 반갑고 예쁘다. 아직 나오지 않은 1, 2월의 시화집을 기대하며 앞서 나온 시화집을 하나하나 먼저 모아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