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GER
구시키 리우 지음, 곽범신 옮김 / 허밍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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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미노베군 여아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 두 사람 중 한 명이 옥사했다. 그리고 지금은 은퇴했지만 당시 형사였던 호시노 세이지는 그 당시 결정적 증거가 된 구식 DNA검사에 대한 신뢰성 문제, 그리고 체포된 용의자에 대한 억압적인 처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하고 싶어 한다. 손자 아사히와 손자 친구 데쓰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을 활용해 여론을 움직이기 시작하며 팀 호시노의 재조사가 시작되는데...


그 당시의 최선이자 최신이었던 방법으로 진행되었을 수사 과정이 현재에 이르러 다시 보기엔 여러 허점이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재수사에 있어 일반인들(손자와 손자 친구 등등)을 끌어들이는데 그들이 합류할 때 각자 나름의 확고한 이유와 기준을 가지고 수사에 임하는 것도 각 등장인물들을 꽤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충격적인 사건과 유연하게 진행되는 초반부부터 이야기는 술술 읽힌다.


회색 바닥만 밟고 가야지. 소녀는 생각했다.

회색은 안전해. 진한 초록색은 위험한 숲이라서 떨어지면 사람을 먹는 호랑이한테 잡아먹히고 말 거야.
- 끝까지 회색만 밟고 간다면 내일도 좋은 날.             (프롤로그, 4p)


여아 연쇄살인사건의 첫 피해자인 리카가 납치당하는 장면이 담긴 프롤로그부터 본문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먹는 '호랑이'와 관련된 암시가 스산하게 등장하고, 이내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호랑이'라 칭하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총 6장으로 나뉜 본문에서 대부분은 팀 호시노의 재수사 과정을 치밀하게 따라가는데 각 장의 이야기 끝에는 범인 시점의 이야기들이 짤막하게 등장한다. 피해자인 아이들에게 가한 끔찍한 행동들, 그리고 광기 어린 내면묘사가 정말 소름 끼친다.


범인을 쫓는 자들의 우여곡절과 범인의 잔혹함이 드러나는 짧은 서술의 반복은 독자가 범인에 대한 반감과 주인공들에 대한 이입을 강화시킨다. 거기에 범인이 누구인가, 범인을 잡을 수 있는가에 대한 조마조마한 마음까지 더해져 450페이지의 얇지 않은 분량인데 끊김 없이 단숨에 읽어버렸다.


개인적으로 관심도가 높지 않은 장르지만 주변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여름이면 하나 둘 찾아서 읽게 되는 장르가 추리, 범죄, 스릴러, 미스터리 쪽인데 보물을 찾아낸 것 같다. 범죄 수사 이야기의 진행이 풀려나가는 쾌감과 그럼에도 에필로그가 암시하는 불안한 스산함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책이다. 이런 장르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번 여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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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어 원더풀 월드
정진영 지음 / 북레시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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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직원에게 사준 로또가 당첨된 것 같다? 쪼잔함의 끝판왕 오 사장은 다른 직원들에게 일주일의 유급휴가를 주고 퇴사한 직원 문희주 과장을 찾아오는 사람에겐 천만 원의 연봉 인상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다. 이렇게 줄거리를 쓰자니 그저 흥미롭지만 그 과정과 오제일 사장의 마인드는 진짜 찌질하기 그지없다. 직장인으로서 악덕기업에 출근 중인 안쓰러운 직원들의 입장에 이입해 읽다 보면 후루룩 페이지가 넘어간다.



이런 조건이라면 난 무조건 고. 오 사장이 내민 조건에 퇴직자를 찾아 나선 사람은 이재유, 우희철, 박상익, 임정연 이렇게 총 네 명이다. 동갑이지만 서로 다른 직급에 이런저런 이유로 으르렁거리는 이재유와 우희철, 악덕기업의 말단 경리 직원으로 있기엔 너무나 똑똑하고 비범한 여성 임정연, 그리고 회사의 막내로 얼결에 우희철 대리를 따라 나서게 된 나 박상익까지. 개성 넘치는 인물들은 문희주 과장이 인스타에 남기는 흔적들을 보고 그를 뒤쫓는, 흡사 추노를 찍듯 자전거길 국토종주 길을 따라나서게 된다.



처음엔 인물들 간의 삐걱거림과 각자의 진상 짓에 조금 피곤하다가도 사이다를 들이부어 주는 몇몇 인물들의 언행에 속이 풀리기를 반복한다.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문희주 과장과 그를 뒤쫓다가 5박 6일의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게 되고 그 와중에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자신이 가진 고민과 장래에 대한 문제들을 하나둘 풀어놓게 되는데...



일단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불같아서 유치한데 재미있고, 엉덩이와 다리 힘으로 하는 자전거길 국토종주의 도장(스탬프)이 하나둘 채워져가는 그 여정이 흥미롭다. 잘 정비되어 있지만 가끔은 말도 안 되는 오르막길과 마주하거나 야생동물에게 위협당할 수 있는 스펙터클한 자전거길 여행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책. 열심히 페달을 밟고 맛있는 밥을 사 먹고를 반복하며 그 여정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즐기게 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뻥 뚫린 자전거길처럼 시원시원한 전개와 결말까지 단숨에 읽히는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진짜 자전거 국토종주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더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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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지 마세요 Don’t be Fooled!
자이언제이(Zion.J) 지음 / 샘터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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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주인공의 이름은 작고 연약하다는 뜻의 '퓨니(Punny)' 부모와 환경을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퓨니는 태어나면서 '타고난' 색을 가지고 있다. 깊고 어두운 바다의 색처럼 자신이 가진 푸른색을 어두운색으로 바라보던 퓨니는 평생을 '바람'을 견디며 살아간다. 노란색, 빨간색, 더 밝은색을 가진 아이들을 만나 자신의 색을 바꿔보고자 노력하기도 하지만 그 결과 오히려 자신의 색을 잃어버리고 마는데...


제목에도 영어가 함께 쓰여있는데 본문에도 손글씨로 쓰인듯한 한글 본문 아래 영어 변역이 자리하고 있다. 그림책이지만 양장본에 1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이야기 자체도 아이들보다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 같다. 검고 진한 붓 선에 채색은 단 한 가지 색으로만 되어 있는 특징이 유지되는데 한 장 한 장 작품 같은 그림들이었다.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녹여 만든 자전적 그림책. 주인공은 이내 자신의 본래 색을 되찾고 그 색을 바라보는 다른 시야를 가지게 된다. 파란색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많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사실 그것들이 가진 파란색은 전부 '같은' 파란색일까? 같은 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것을 알아차리는 방법, 타고난 것, 본연의 나다움을 정의하는 스스로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 패션아티스트, 아트 디렉터, 디자이너 그리고 그림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 자이언제이는 이번 그림책 출간과 더불어 세빛섬 애니버셔리에서 무료 전시도 진행 중이라고 하니 참고하시길(2024년 6월 9일까지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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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ㅊㅊ 3 별ㅊㅊ 3
별ㅊㅊ 지음 / 이분의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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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자 지은이의 이름이 별ㅊㅊ. 표지에 제목이 보이지 않았는데 날리는 낙엽이 모여 만들어진 별 하나, 고양이 뒷모습에서 'ㅊ' 두 개(ㅊㅊ)를 찾아냈다. 제목을 쓰여 있는 그대로 읽었다가 ㅊ이라는 글자가 작은 별(*)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별별별, 혹은 별 셋으로 읽어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처음엔 예쁜 표지에 혹해서 이 책이 궁금했고, 찬찬히 뜯어보니 표지와 제목을 드러내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물 붓는 선, 핸드폰 충전단자, 네트워크 연결, 금니 등등 솔직히 시에서 자주 보기 어려운 단어들이지만 너무도 일상적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친숙한 단어들이 보인다. 말장난 같기도 한 시적 허용, 언어유희, 그리고 일상에서 발견하는 시적인 순간들을 적극 이용해 쓴 시들을 모아놓은 시집이다.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으니 시도할 수 있는 '보이는 것 뒤에 느껴지는 것(25p)'라는 독특한 시가 인상적이었다. 시와 사진을 함께 보여주거나, 자유로운 글자 배열을 이용하는 등 시라는 형식에서 선보일 수 있는 다양한 시도들이 은근히 많다. 그런 걸 하나하나 찾아보며 읽었더니 지루할 새 없이 읽히는 책이었다. 시 자체로서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일화와 감상을 담은 것이 많아 어렵지 않게 술술 읽을 수 있다. 저자의 이름을 시집의 이름으로 내걸고 나온 세 번째 책, 독립출판물 특유의 자유로움이 묻어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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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티네이션 아트 - 전 세계 505곳에서 보는 예술 작품
파이돈 프레스 지음, 이호숙.이기수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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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특정적 예술이라는 표현은 다소 생소하다. 책의 소개 글을 보면서 나는 내가 '설치 미술'이라고 알고 있던, 주로 야외에 설치된 거대한 조형 작품들을 떠올렸다. 실내 전시장을 벗어나 개성적이고 의도적인 방식으로 진열되고, 그 작품이 설치된 배경이 그 작품의 한 요소가 되어 의미나 상징을 더하기도 하는 그런 것. ​​​책의 서문에서는 이 책을 '장소 특정적 예술(site-specific art)'의 안내서라 칭하며 그 의미를 설명해 주고, 책에서 보여주는 '전 세계에 영구적으로 설치된 작품'을 현장에서 보기 위해 떠나는 여행의 가능성도 언급한다. 책의 구성이 전 세계를 지역별로 나누어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 것일 텐데, 개인적으로는 예술작품을 직접 경험하고 감상하는 것이 여행의 충분한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 꽤 공감하며 이 책을 읽었다.



한페이지당 작품 하나씩, 총 505점의 작품이 실려있다. 작품 당 한 페이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과 길어야 다섯 줄 정도의 설명글이 전부이지만 그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서로는 손색없는 것 같다. 아시아 지역의 작품 중에는 한국에 있는 작품도 실려있고, 그 외에도 내가 가보았던 나라나 도시에 있는 작품들을 특히 눈여겨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직접 보았던 작품을 찾아내는 것도 재밌고, 가보았던 곳인데 알지 못하고 스쳤거나 아예 만나지 못한 작품들은 무엇이 있나 열심히 찾아보게 된다.



책에서 소개하는 장소 특정적 예술의 범주는 참 다양하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어떤 도시나 장소의 상징 혹은 랜드마크가 되곤 하는 커다란 조형작품은 물론이고 회화나 건축, 글자, 혹은 자연을 이용한 대지미술 작품도 있다. 빛이나 음향, 기록물, 심지어는 쓰레기까지 작품의 소재나 구성에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작품이 자리한 '장소'는 어떤 건물 내외의 벽이나 바닥, 천장은 물론이고 도심 한가운데부터 공원, 외딴 숲속, 사막, 허공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하다. 그 장소가 가진 특징과 의미가 작품의 해설에 한 줄을 더 얹어준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예술안에서도 많이 낯선 분야일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아는 이름들이 많이 보였다.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키스 해링, 오노 요코, 백남준, 마르셸 뒤샹, 데미안 허스트 등등. 그리고 처음 보는 이름이지만 대규모(혹은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주 이름이 등장하는 예술가들도 알게 된다.(아니쉬 카푸어, 안토니 곰리 등등) 또 규모가 크다 보니 작품을 한 사람의 예술가가 홀로 하는 것이 아닌 예술가(혹의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집단이 함께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팀랩, 잉어스 이데 등)

어떤 작품들은 직관적이거나 그 의미를 추측하기 쉬운 것도 있었고, 가끔은 그 장소에서 일어난 특정 사건을 알아야만 그 작품의 상징성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작품의 외형 자체가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고, 의미는 모르지만 그 장소를 찾는 이들에게 훌륭한 포토존이 되어줄 만한 작품도 있다. 정말 다양한 장소와 예술 작품, 예술가를 다루는 책이어서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꽤 두꺼운 책이고 많은 작품을 다루지만, 각 본문의 분량이 짧아서(그리고 내가 예술 분야 관심도가 높아서?) 개인적으론 별 피로감 없이 한 번에 독파할 만한 책이었다.



일상생활의 반경에서도 우리가 무심코 지나갔을 뿐 많은 예술 작품들이 숨어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재미있다. 개인적으론 그런 작품들을 마주하면 작품의 이름표나 해설 표지를 찾아보는 편인데 사실 없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다. 그 작품이 미술관이 아닌 특정 장소에 있다는 건 어떤 의미나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며 한 번 더 내 나름의 감상을 내어놓는 게 예술을 즐기는 한 방법이지 않을까. 이 책을 안내서 삼아 예술 감상을 목적으로 여행을 계획해 보는 것도 좋겠다. <데스티네이션 아트>를 읽다 보면 제목 그대로 ​내가 목적지로 삼을 만한 예술 작품이 있는 곳 하나쯤은 자연스레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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