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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생활자의 수기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2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동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2월
평점 :
일단 그들이 복수심에 사로잡히기만 하면, 그 순간 그들의 온 존재에는 그 감정 이외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 p17
복수란 모름지기 정의나 선을 위한 다는 명분을 달아도 어쨋든 영혼을 갉아먹는 송충이다. 결국 누구를 위한 복수였던가...가 된단 말이지. 그에 대한 좋은 글이 또 여기 나온다.
또한 복수를 시도한다손 치더라도 상대방보다는 오히려 자기 쪽이 1백 배나 고민할 것이며,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으리라는 것을 미리부터 잘 알고 있는 것이다. - p19
가슴이 뜨끔하게 찔린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옹졸함 속에 유치한 복수를 계획하며 밤잠을 설쳤는지 아마 나의 적들은 모른다는 것이 다행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 복수의 칼날에 찔리고도 아픈 줄 모를 때 난 혼자 얼마나 멍청하게도 위안을 하며 무뎌진 칼날을 다시 갈아야 했다니 ...
머리로만 가끔 공상하다 그 생각의 끈이 길어지면 놓치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하고 무슨 생각으로 그 생각을 시작했는지 잘 모르겠어서 잊어버리던 생각들이 여기 글로 쓰여진 걸 보는 느낌이다. 내 뇌의 어딘가 무의식 지하실에 있던 실오라기가 여기 있다.
다시 읽고 또 되집어 읽을 때 마다 느낌이 달라지고 또 다른 생각들이 글 안에 꽉 찬다. 좋다. 외롭지 않다. 소외되지 않는다. 외곬수였던 제멋대로 세상을 등졌던 내가 여기 이렇게 있어서 부끄럽지 않다.
여러분, 이런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위, 즉 제멋대로의 변덕이야말로 우리 같은 인간에겐 이 지상의 무엇보다도 가장 귀중하고 유익한 것일는지 모른다.... (중략)
그것은 온갖 이익을 한데 묶는 것보다 더욱 유익할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것, 즉 우리의 인격과 개성을 보존해 주기 때문이다.-p43
어느 덧 3분의 2를 읽어 가는 시점에서 이 지하인 참 구질하다 못해 안쓰럽고 처참하다. 물론 본인의 평가절하에 대해 나에게 러시아술 쳐먹고 주사와 객기를 부릴 지도 모르겠지만(러시아랑 한국이랑 멀어서 다행... )
몸만 지하에 사는게 아니라 마음까지 점점 지하 동굴로 사라지고 있는 이 인간이 내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위안을 주는게 매력이랄까. 나 또한 반지하 정도에 머무른 학창시절을 볼 때 왕따 아닌 왕따- 나랑 안친한 애들은 내가 왕따 시키는 거라고 생각했지롱...그래서 지금도 동창 얼굴을 기억 못하는...ㅋ- 짓을 하며 얼마나 처절했는가.
단체생활과 누군가에게 통제 받아야 하는 학교생활을 벗어나서 얼마나 나에게 자유와 개성존중이 활력이 되었는지 .....지하인에게 그렇게 삐딱하게 질풍노도처럼 유치하게 살지 말라고 해주고 싶으나 너나 잘하세요... 그럴까봐 그냥 생각만 해본다.
도스토옙따의 주인공이니 만큼 지성하나는 철철 넘치겠지만 미친짓도 정도는 넘으니 내가 천재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드니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나에게 감사할 일이 최소 세 가지는 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