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 다시 마음에 담다.
-100년 후에도 읽고 싶은 한국명작 단편 을 읽고-
굳이 ‘한국명작’이라는 큰 글씨가 없어도 다시 읽으며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작품들이다. 1920년대 한국 현대 문학의 기초를 세우고 가난과 병에 시달리면서도 글에 대한 열정이 식을 줄 몰랐던 작가들에게 다시한번 마음의 찬사를 보낸다.
청소년기를 접어드는 아이들에게도 세계 명작을 읽기에 앞서 필독하기를 권하고 싶다. 물론 교과연계 작품이라는 점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그 뜻을 물어야 하기도 할 것이고 사전을 펼쳐야만 하는 단어들이 있지만 마음에 담아두고 후에 다시 손에 들어 마음으로 읽게 된다면 오늘의 내가 알게 된 것들을 아이들도 가지게 될 것이다.
총 15편의 주옥같은 작품들 그 깊이대로 맛대로 줄을 세울 수 없기에 읽는 재미가 더 하다. ‘배따라기’의 깊은 한과 후회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운수 좋은 날’ 김 첨지가 딱 맞아 떨어지는 운명의 장난으로 울음을 울 제 그의 운수가락에 손가락을 튕겼다. 이지러진 ‘동백꽃’ 아찔한 향기에 모르던 정까지 알게 된 소년이 풋풋하고, ‘메밀꽃 필 무렵’이면 달그림자를 이고 못난 인생 하루 정분을 평생 인연으로 삼고 사는 허생원의 삶에 희망이 보이기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벙어리 삼룡이’ 고난과 시련이 갈 곳 없는 그를 삶의 바깥으로 내몰 제 그 가슴에 한 맺힘이 가질 수 없는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무녀도’라는 그림의 사설로 시작해 그 속에 무녀 모화와 기독교 아들이 종교와 신․구문명의 갈림길에 서 있는 시대의 아픔이 액자 형식으로 들어 있다. ‘별’은 가질 수 없기에 아름답고 순수하다. 상상의 어머니 모습을 대신 할 수 없는 미웁게 생긴 누나를 진정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 소년 내면의 성장이 잘 그려져 있다. ‘사랑손님과 어머니’ 재혼을 용납하지 않는 시절에 흐르는 물처럼 생겨나는 남녀 간의 정은 어떠했으리라 짐작이 된다. 여섯 살 옥희 눈에 보이는 만큼 세상은 흔적을 남긴다. ‘수난이대’ 한국 근대사에 두 번의 수난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절단 난 팔과 다리로 이 땅의 상처를 보여주지만 결코 엎드려 있지 않고 침 한번 탁 뱉고 외나무다리를 건너 듯 의지해 살아간다. ‘창랑정기’는 외국 문물을 결사반대하는 대신이 말년을 보낸 정자 -창랑정-에서의 유년을 기억하며 가슴에 고향처럼 남아 있는 고택의 향수를 묘사한다. ‘표본실의 청개구리’ 사실적이며 심리묘사의 자잘함이 끈덕지게 글의 생명을 잡고 있다. ‘백치 아다다’를 볼 제 답답하다. 그녀의 말못함이, 뭇매를 견뎌냄이 천치같다. 물거품같은 부귀영화의 추악함을 아는 까닭이 아다다의 죄인것이 무거울 뿐이다. 잘 못 돌아온 ‘거스름’. 지전 한 장에 온몸이 저리도록 고민하고 그것이 큰일이 아닌 것이 아니라는 창수의 마지막 말이 끝맺지 않은 결말을 생각하게 한다. ‘목매이는 여자’ 충신, 절개에 목매는 것이 옳고 그름보다는 여덟 자식의 울음도 잡지 못한 신념에 저절로 머리가 조아려진다. 현대 단편중 역사 소설의 시초라는데 힘이 느껴진다. ‘요람기’ 물에 놀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동요 한가락이 절로 떠오른다. 춘돌이의 놀림도 오두막을 지키는 할아버지도 지금은 어찌됐을까 궁금해진다.
신문화가 자리를 잡고 문학에도 식민의 영향으로 암울하기만 했던 시대를 반영하듯 민족의식과 유교 관습 그리고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지금의 글과는 다른 느낌이다. 많은 작가들이 병과 가난과 검열에 그 열정을 작품으로 담기 힘들었음에도 지금까지 글의 행간마다 그들의 힘이 전해진다. 지방 사투리와 그 시절 화법이 그대로 있음에 재미와 공부가 더 하고 읽다 보면 한 세기 전 글방에 앉아 있는 듯하다.
한 권에 여러 편의 글이 실려 있다 보니 작가와 작품을 알기가 어지러울 수도 있다. 그러니 읽기 전 2․30년대의 관습이나 식민시대의 문학 활동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작가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 어떤 성향의 작가였는지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다. 읽은 후 작품마다 핵심단어나 중요 사건 등을 짚어보고 분석한다면 마음에 담은 감동이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