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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좋은 날 -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전망 없는 밤을 위한 명랑독서기
이다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좋은날 / 이다혜

 

 

 

책을 통해 책을 알게 되는 것만큼 미더운 것도 없다. 자극적인 문구만 쏙 뽑아서 과대광고를 아무렇지나 않게 하는 마케팅천국 대한민국에서 좋은 책(내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온라인에서 책을 고를 때는 목차와 표지, 출판사 책소개, 리뷰, 그리고 공개되어있는 짧은 몇 페이지를 살짝 들춰보고 책을 선택해야 한다. 서점에서도 썩 다르지 않다. 그렇게 고르게 되면 불편한 점이 바로 충동구매, 과다구매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점이나 북페스티벌에 가면 늘 양손 가득 묵직하게 들고 돌아오지만 결국 그 중의 대부분은 장식용 인테리어 소품이 된다. 그나마 이런 충동 소품구매를 막을 수 있는 게 책에서 언급한 책을 찾아 읽는 방법인데 그 꼬리를 물다 보면 장르의 다양성은 살짝 좁혀질 수 있겠지만, 첫 페이지에서 실망할 정도의 나와 맞지 않는 책을 고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책읽기 좋은날’ 이라는 제목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나지막이 어두운 저녁하늘과 포근해보이는 방 안을 보여주는 듯한 표지도 잠깐 쉬어가라는 듯한 손짓으로 보였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그리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은 정말 많은 책을 담고 있었다. 저자의 책 사랑, 혹은 책 중독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듯 했다. 좀비가 나오는 판타지부터 추리소설, 로맨스, 살랑거리는 시까지 책벌레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독서편력을 저자는 뛰어넘었나 보다. 물론 나는 아직 그 정도까지 책에 빠지지 못해 힘들게 읽히는 부분(예를 들면 지나치게 사회적인 소재)은 미련 없이 넘겨가며 읽었다.

 

 

탁자 위에 오렌지 한 개

양탄자 위에 너의 옷

그리고 내 침대 속의 너

지금의 달콤한 현재

밤의 신선함

내 삶의 따사로움.

-      프레베르, 알리칸테 中

 

 

추리소설과 에세이나 수필을 주로 많이 읽어서 그 분야의 책도 리스트에 많이 옮겨놨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는 건 이 짧고 말랑한 시였다. 최영미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시>에도 나온다는 프랑스 시인 프레베르의 ‘알리칸테’라는 시. 저자의 말처럼 정말 영상적인 느낌의 시다. 짧은 몇 줄의 글일 뿐인데 장면이 영상으로 그려지고 정말 따사로움이 느껴지는 듯하다.

 

 

p.67

프레베르의 시는 지극히 영상적이다(회화적이라는 말과는 다르다). 그러니까, 카메라가 팬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시에 빠져들게 된다. 때로는 줌인, 줌아웃하는 느낌도 받는다. 거기에 혀끝에서 미끄러지는 그 프랑스어만의 느낌이라니. 그의 시 중에도 나는 특히 ‘알리칸테’를 좋아했다. 얼마나 좋아했냐면 처음 썼던 블로그 주소가 알리칸테(Alicante)였다. 런던에 갔을 때 그곳에 취항한 항공사 광고가 빨간 이층버스에 붙은 걸 보고 굳이 찍어 오기도 했다. 알리칸테는 스페인의 동해안, 그러니까 지중해에 맞닿은 휴양도시의 이름이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라도 상관 없었고, 실존하지 않은 장소라도 좋았다. 알리칸테라는 말을 입 안에 굴리는 느낌부터를 사랑했으니. 

 

 

그리고 책의 초반부에 나왔던 나카가와 이사미의 <스트라토!> 중 “이제 노후는 필요 없다! 즐거운 일을 노후로 미루다니 난센스다!”라는 문구는 너무 마음에 들어 모니터에 붙어놓았다. (회사 컴퓨터..)

 

 

다양한 책들의 와닿는 구절들을 아끼지 않고 인용해줘서 참 고마운 책이었다. 하지만 틈틈이 살짝 졸리기도 했기 때문에 유머요소나 이미지 등의 시각적인 요소고 중간중간 끼워져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살짝 남는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인 가을은 어느새 흩어지고 난방 덕분에 졸리기 좋은 날이 되어버렸지만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며 이다혜 기자에게 마음에 드는 책을 추천 받는 것도 좋은 휴식이 될 것 같다.

 

 

 

p.92

‘예쁘다’는 것은 보는 이가 그다지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루하다는 것도 된다. 미술도 인간의 영위인 이상, 인간들의 삶이 고뇌로 가득할 때에는 그 고뇌가 미술에 투영되어야 마땅하다. 조선 민족이 살아온 근대는 결코 ‘예쁜’것이 아니었을 뿐더러, 현재도 우리의 삶은 ‘예쁘지’ 않다.

<고뇌의 원근법> 서경식

 

미의식은 예쁜 것을 좋아하는 의식이 아니고 무엇을 ‘미’라고 하고 무엇을 ‘추’라고 하는 의식이라는 말이다.

 

 

 

P.90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피로사회> 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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