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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 박찬일 셰프 음식 에세이
박찬일 지음 / 푸른숲 / 2012년 7월
평점 :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글쓰고 여행하는 요리사. 어울리지 않는 듯 하면서 묘하게 어울리는 조화다. 그는 셰프답게 모든 추억을 맛으로 기억하는 듯 했다. 통영에 사는 그의 지인이 계절을 맛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분위기는 다르지만 얼마 전 읽은 하루키의 에세이가 문득 떠올랐다. 하루키의 팬이라면 하루키 하면 굴튀김이 떠오르는 것처럼 나는 시간이 흘러 이 책을 떠올리면 토끼고기가 떠오를 것만 같다. 셰프로서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겠지만 미식가가 아닌 평범한 한국인으로서는 문화적 충격이었기 때문에.
시칠리아의 새해 음식 중에는 토끼고기가 있다고 한다. 사육된 토끼를 초콜릿을 녹여 만든 소스로 요리를 만드는 것이다. 돼지나 소, 닭처럼 토끼 또한 사육된 가축일 텐데 이 부분을 읽을 때 왜그리 놀랐었는지 모르겠다. 거죽이 벗겨져서 들여오는 토끼가 왠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 맛 또한 전혀. 주말 예능 중 정글의 법칙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고슴도치를 잡아먹는 장면이 여과없이 나왔다. 최근 주위에 고슴도치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친구들이 많아져서 그 방송을 보며 엄청난 멘탈붕괴를 일으켰는데 이 책의 토끼고기는 어릴 적 뽑기에서 뽑아서 잠시 키우다 하늘나라로 간 토끼와 얼마 전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하신 할머니가 계속 "토까이 밥주러 가야 되는데"라고 중얼중얼 거리시는 게 떠오르게 했다. 이때 할머니는 토까이 혼자 두고 와서 밥줘야 된다며 옷도 갈아입고 걱정을 하셨는데 토끼 집 문을 열어놔서 나와서 혼자 알아서 풀뜯고 있다고 하니 할머니는 해맑게 웃으시며 "그래? 잡아무라~ 뜨신 물에 푹 고아가. 물에 폭 담가 놓으면 알아서 죽는다" 라는 무서운 말씀을 하셨다. 그때의 멘붕이 토끼고기와 초콜릿 이 내용과 맞물려 살짝 현기증이 났다. 맛은 궁금하지도 않았다. 컬쳐쇼크란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토끼의 모든 다리에 칼집을 넣고 항문 쪽에서부터 칼을 넣어 배 쪽으로 갈라야 해. 가죽은 귀한 모자와 목도리를 만들 수 있거든. 가죽을 벗겨내면 기름이 있는데, 이것도 귀하게 쓴다네. 토끼 간을 저장하거나 요리를 할 때 쓰지. 아참, 토끼 간 얘기를 했던가. 그건 마늘과 허브를 넣어 쪄서 곱게 체에 내려야 하네. 빵에 발라먹거나 굳혀서 요리로 내지. 푸아그라보다 더 맛있는 게 토끼 간 파테라네."
가장 원초적인게 음식이고 요리겠지만, 가장 어려운 것 또한 요리인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이 비싼 고기 대신 먹던 동물의 내장, 머리, 뇌수 등도 시간이 흘러 지금은 문화가 되어 미식가들의 지갑을 열게 하고 있다. 추억의 절반이 맛이라면 문화의 절반도 맛인가 보다. 시각적인 것에 비위가 약해서 회나 해산물 등 날것을 잘 못 먹는 나는 추억을 맛으로 기억하되 정확한 재료와 레시피는 덮어두고 싶다. 그저 맛과 향과 분위기와 담소만 기억하고 싶은 바람. 어렵고 무서운 음식은 잠시 덮어두고 부산에 가서 짜장면이나 한 그릇 먹고 오고 싶다. 저자의 말처럼 흔하디 흔한 음식이지만 그 곳의 짜장면은 이곳과 어떻게 다를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