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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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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하면 어쩐지 어둡거나 진지한 글이 떠올랐다. 편견일지 모르지만 유머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미지였다. 나에겐. 그의 능청스러운 감성을 잘 담은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는 하루키를 좋아하는 매니아에겐 너무 가벼울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한 걸음 더 그에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드는 발판이 되었다.

 

 

 

p.188 슈트를 입어야지

 

 

"한편, 슈트를 사러 갈 때는 슈트를 입고 간다.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가게에 들어가서 슈트를 고르는 건 결코 쉽지 않으니까. 일단 슈트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고, 머릿속을 슈트 모드로 바꾼 뒤 슈트를 사러간다. "

 

 

이 부분에서 나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마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옷을 사러 가거나 구두를 사러 갈 때, 화장품을 사러 갈 때에도 마찬가지다. 특히 바가지를 쓰거나 무시를 당해봤다면 더 그럴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바꾸고 싶었다. 쇼핑을 하러 갈 때는 풀메이크업, 풀패션을 장착하고 간다. 일단 하이힐을 신고, 아이라인을 그리고 머릿속을 도도한 쇼퍼 모드로 바꾼 뒤 쇼핑을 하러 간다. 여자들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 하루키의 위트에 감사를 표한다.

 

 

 

p.200 결투와 버찌

 

고교시절 푸슈킨을 읽고 버찌를 잘 먹게 되었다는 하루키. 목숨을 건 결투에서 버찌를 먹으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나타난 상대를 보고 몹시 자존심이 상한 실비오의 이야기였다. 결국 실비오는 공포를 느끼지 않는 상대에게 한 발을 쏠 권리를 보류한다. 그 뒤의 이야기는 궁금해서 찾아보았지만 하루키가 책 속에서 결말을 밝히지 않고 직접 읽어보길 권하니 나도 밝히지 않겠다. 어쨌든 하루키는 그 뒤로 버찌를 잘 먹게 되었다고 한다. 버찌를 먹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이의 기분을 낼 수 있다고. 두려움이 하나 씩 늘어나는 요즘, 나도 내일은 버찌를 사서 버찌가 담긴 종이봉투를 손에 들고 늦여름 거리를 걸어 볼까 한다. 나 또한 하루키처럼 '무서운 게 없는' 기분은 들지 않겠지만, 아주 잠시라도 푸슈킨의 겁없는 젊은이의 기분을 흉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에.

 

 

하루키 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는 '굴튀김'.

 

잡문집이 나왔을 때 인터넷에는 온통 굴튀김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했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이 책에서도 하루키의 굴튀김 사랑은 빠지지 않았다. 아직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굴튀김을 이번엔 꼭 시도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박사박 실처럼 가늘게 썰은 양배추와 갓 튀긴 따끈따끈한 굴튀김. 두부와 쪽파를 넣은 된장국에 따뜻한 흰밥. 문장과 단어에서 맛있는 그림이 그려져 야심한 새벽에 침을 삼키게 만든다.

 

나처럼 여유로운 가을 휴가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저없이 권하고 싶다. 사박사박 실처럼 가늘게 썰은 양배추와 갓 튀긴 따끈따근한 굴튀김과 기호에 맞는 술을 한 모금 홀짝이며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어보라고. 분명 마음에 약간의 엔돌핀과 함께 평온함이 느껴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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