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지 못하고 어른으로 산다는 것
박수정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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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과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 년 전 일이다.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데, 그때 나는 다른 사람에게 투정 부리지 않고 혼자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고, 스스로 그렇지 않기에 어른이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다. 여전히 나는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앞뒤 안 재고 달겨드는 데다가 뭐든 도저히 숨길 줄 모른다. 현실과 타협할 줄 모르고, 억울한 일은 언니에게 이야기해야 직성이 풀린다. 키가 몇 센티 더 크고 소매가 몇 센티 짧아졌어도 그때의 기준으로 나는 여전히 어른이 못 된 셈이다.

  『어른이 되지 못하고 어른으로 산다는 것』의 저자는 나와 비슷하다. 나이로는 이미 어른인 것 같고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살고 있는 듯한 사람이다. 1장에서는 어른이 되는 것에 관한 고민을 이야기한다. 2장에서는 일상 속 보통의 행복을 쓴다. 3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 줄 필요성을 말한다. 모든 장에서 작가의 일상이 주 재료로 등장한다. 특히 어느 순간부터 어른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과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때면 문득 사랑이 두렵다”는 고백에 공감했다. 가치관 자체가 나와 달라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일부 존재했으나, 전체적으로는 크게 걸리는 부분 없이 쭉 읽을 수 있었다. 꼭 친구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사실은 위로가 되면서도 어쩐지 서글프다.

  어른이라는 말은 참 웃기다. 드라마틱한 전환점을 맞아 완벽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1학년이 몇 해 뒤 6학년이 되고, 신입생이 몇 년 학교 다니다 보니 막학기를 맞는 것처럼 대부분은 그냥 자기도 모르는 새에 나이가 든다. 그런데도 사회는 어른에게 많은 짐을 지운다. 사회보다도 생각해 보면 어른인 사람들 그 자신이. 책을 덮고 난 뒤에는 ‘과연 꼭 어른이 되어야만 하나?’ 하는 조금은 낙천적인 생각이 들었다. “어른”으로 한정하지 않고 그냥 좋은 사람으로 목표를 잡는다면 쉬워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어른이라는 단어에는 너무 무거운 책임감이 깃들어 있으니까.

  오랜만에 집에 있는 주말, 강아지와 거실에 드러누운 채 이 책을 읽었다. 책도 가볍고 내용도 가벼워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읽기 전에는 기분이 무거워질까 봐 조금 걱정하고, 책을 다 읽자마자 글을 쓰겠다며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독서를 마친 뒤에 기분 좋은 낮잠을 잤다. 그런 재충전의 시간이 한 톨 한 톨 쌓인 시간과 가르침 가운데에 숨구멍이 되어 주기를 바라며.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일은 나중으로 제쳐 두고, 자연히 어른이 되는 데에 다시금 기대를 걸어 본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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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심리학 콘서트 - 독자들이 선택한 대중심리학의 텍스트 심리학 콘서트
공공인문학포럼 지음 / 스타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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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키우는 강아지는 말을 못 하는 대신 행동으로 심리를 표현한다. 같이 앉아 있을 때 자리가 비좁으면 자는 척 은근슬쩍 나를 밀고, 간식을 원할 때 꼬리를 흔들면서 졸졸 따라다닌다. 자기를 다리 위에 앉혔으면 할 때는 내 다리를 사정없이 긁는다. 밥을 먹고 속이 더부룩하면 구두처럼 몸을 구부린다. 내가 하는 행위를 멈추길 바랄 때 하품을 하는 것은 심화된 버전이다. 강아지는 행동이 한정적이고 기본적으로 숨기지 않기에 이렇게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한데, 문제는 사람이다. 말을 할 줄 알아도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사람들.

  『New 심리학 콘서트』에서는 그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야기한다. 1부에서는 심리학이 과학이라는 설명과 함께 우리가 촉이나 직감이라고 믿는 것이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아이가 거짓말을 익히는 과정을 다룬다. 2부에서는 누군가와의 대화 도중 비집고 나오는 상대의 속마음을 언행에서 캐치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3부에서는 이 심리를 이용해 우위에 서는 “심리 테크닉”을 제시한다.

  표정 변화에 관한 부분은 이미 배운 내용이기에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고, 특히 보디 존에 관한 논의는 워낙 자주 거론되는 부분이라 반가웠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싸움을 걸 때 폭력배가 얼굴을 들이대는 장면을 보고 늘 궁금했는데, 보디 존을 침범해 불안감을 조성하려는 의도라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애완동물이 자기 과시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은 의아하면서도 참신했으며,  「일의 능률을 높이는 심리술」파트에서는 유독 집중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음 이 책의 큰 장점이다. 흔히 심리학은 흥미로우면서도 ‘학’이라는 어절로 끝나는 대개의 것들이 그렇듯 무겁고 어려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New 심리학 콘서트』는 그런 부분에 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실 속에서 자주 마주치는 상황들이며, 한 번쯤 들어 본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것들을 한 번 더 점검하고 전문 용어를 익힐 수 있는 기회였다. 심리학을 전혀 모른다면 입문용으로 좋고, “감정이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풀어서 말할 수는 있어도 “정동”이라는 말을 단박에 떠올릴 수는 없는 사람들에게도 괜찮을 책이다.




경악스러운 여성관




  그러나 초반부에 심리학은 “심적 활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굳이 언급한 것치고 근거가 뚜렷이 제시되어 있지 않아 아쉬웠다. 또한 이전에 나온 책을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재출간해서인지 구시대적 발상이 기저에 깔려 있어 불쾌했다. 책의 곳곳에서 여성의 경우에 예외를 두고 설명하는데, 그 차이가 만들어지는 근거를 간략하게라도 설명했다면 그런 인상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가령 여성이 다리를 꼬았다 풀었다 하는 버릇에 “성적인 의미”가 더해진다거나 이야기할 때 입을 가리는 버릇은 “여성임을 강조하면서” “상대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숨겨진 욕구”라는 부분은 단정적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 근거가 없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여성은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것은 천박하다는 얘길 흔히 들어 왔을 것”이기에 입에 손을 대는 버릇이 많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로 과학적 근거가 아니라 추정에 그치는 선입견이었다. “된장녀”와 “화려한 창부형의 여성”이라는 철 지난 혐오 표현을 발견했을 때는 눈이 피곤해서 잘못 읽은 것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곱씹어 보면 전부 마땅한 내용이라, 나는 매번 읽고도 심리학 책을 읽는 것은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사람과 마주앉으면 그 사람을 말 없이 응시하기보다는 쉴 새 없이 소통하는 경우가 많기에 시그널의 의미를 알더라도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도 호감을 얻고 싶을 때 보통 눈을 맞추며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을까 고민하느라 바쁘지, 상대가 어느 각도로 얼마큼 다리를 벌리고 앉았는지를 관찰하며 호감도를 측정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심리학은 알아 두면 일단 재미있고 나아가 체화되면 도움이 될 법한 이야기들이다. 이번에도 이 책을 독파한 뒤 내 인생 마지막 심리학 도서라고 생각했으나, 다음에 또 이 분야의 책을 찾아 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말이지 재미의 유혹은 저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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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2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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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처음 읽고 난 뒤로 인생을 떠올릴 때마다 해변에 홀로 앉아 있는 기분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오도카니 앉은 나는 모래사장에 글씨를 쓰기도 하며 사색에 잠겨 있다. 모래 위에 쓴 글씨가 인생이라면 허무하지만 파도가 인생이라면 그건 조금 무섭네. 그런 생각을 한다.

『파도』에는 버나드, 수잔, 로우다, 네빌, 루이스 그리고 지니가 등장한다. 소설은 각자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첫 장면에서 질투하고 상처받던 아이들은 기숙학교에 들어간다. 시간이 흘러 퍼서벌이 인도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한 자리에 모인다. 또 다시 시간이 흐르고, 퍼서벌이 낙마로 사망했다는 전보가 도착한다. 이후 그의 죽음에 슬퍼하면서도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중년이 되어 햄프턴 궁전에서 만나지만 열의로 가득했던 과거와는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마지막 장에서는 버나드가 홀로 등장해 갈무리한다.

‘갑자기 난이도가 확 높아진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 읽힌다. 버지니아 울프의 표현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실험적인 서술 방법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도』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다. 다 같이 모여서 초등학교에서 곧잘 주최하는 릴레이 소설 같다는 느낌을 주었던 대화는 몇 장을 읽고 나서야 집단적 독백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이 소설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따옴표 안에 인생을 가둔다. 그 안에서도 문어체와 구어체를 넘나들고, 화자도 자주 바뀐다. 등장인물 모두가 고루 이야기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버나드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후반부로 들어서며 점점 확고해졌다. 버나드에게 유일한 활기가 부여되어 있다는 사실은 퍼서벌이 낙마로 사망한 직후에 특히 단적으로 드러난다. 전보가 도착했을 때 버나드는 아들을 얻고 희비를 뚜렷이 구분하지 못하며 삶과 죽음의 고리를 체감하는 반면, 그의 친구들은 오로지 상실만의 영향을 받고 허우적거린다. 이 지점에서 문득 버나드의 이야기에 특히 주의하며 읽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본의 아니게 인생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사실은 쓸 때마다 스스로 굉장한 부담감과 무게를 느낀다. ‘정말로 이것보다 나은 단어는 없을까’ 한참 생각하고 별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택하는, 쓰고도 찝찝한 단어이다. 인생이라는 데에 이상한 환상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그것도 사소한 1초와 사소한 대화, 사소한 장면이 쌓인 탑이라는 사실을 자꾸만 잊어버린다. 『파도』는 그 정곡을 찌르는 소설이다. 묘연했던 인상은 퍼서벌의 송별회에서 친구들이 모여 모두의 기억에서 한 줄씩 뽑아내는 장면을 거치며 또렷해진다. 의미 없어 보이는 대화를 읽다 보면 어느새 인물들의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를 함께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모두 친구이지만 생을 대하는 태도는 비슷하면서도 저마다 다르다. 네빌에게 인생은 계속 물음표처럼 남아 있지만 버나드는 타인 덕분에 “다면체”가 된다고 말한다. 수잔이 오로지 “평범한 행복”밖에 모를 것이라는 비교적 진부한 결말을 상상하는 반면, 루이스는 바로 그 “평범한 행복”은 거의 알지 못한다. 지니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자신의 매력으로 남성들을 압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로우다에게 인생은 무섭고 인간은 증오스럽다. 서글픈 것은 중간쯤 와서 각각의 모습이 결국 “일상의 노예”로 동일하게 귀결된다는 점이다. 꼭 저마다의 속도로, 저마다의 방향으로 내달리던 여러 줄기의 강이 결국에는 바다에서 만나는 것처럼. 




그러나 당신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나의 인생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하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야기는 정말로 많다, 실로 무수히 많다-유년 시절의 이야기, 학교, 사랑, 결혼, 죽음 이야기 등,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사실은 아니다.

p.254

확실히 인생은 꿈이다. 우리의 불꽃, 몇 사람의 눈에서 춤을 추는 도깨비불은 곧 꺼지고 모두가 사라질 거다.

p.290


  ‘틀딱’, ‘급식충’, ‘맘충’ 등 너무나도 쉽게 어떤 사람의 인생을 폄하하는 단어들이 싫다. 어떤 물결을 타고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면서 일격으로 상대를 정의 내려 버리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내용들이라고 해도 그것들은 결국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과 이야기는 판이하다. 어떤 사람이 “판사”라거나, 어떤 사람이 “백만장자”라거나, 어떤 사람이 “몇 개의 혁명에 참가”했다는 사실은 누구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오른손이 조막손”이라는 사실은 말할 수 있어도, 그렇게 된 이유는 모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 사실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야기는 자기 자신을 장식하기 위해 종종 미화되지만, 역시 그 사람의 일부이다. 때로 나는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온전히 나의 것인지 생각한다. 음악 취향은 어디에서 왔고, 내가 생각하는 미의 기준은 누구의 영향을 받았으며, 나의 가치관은 무엇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놀랍게도 처음부터 내가 타고났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준 나의 일부이고 나의 이야기들이다. 친구들이 자신을 다면체로 만들고, 자신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다시 만들어진다”는 버나드의 발언도 이와 일맥상통하다. 사람은 혼자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깊다.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이 그러하듯이.



  그와 동시에 버지니아 울프는 또 다시 변하지 않는 본질을 말한다. 어떤 변화가 있든 ‘그 시절’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파편 가운데서 부서지지 않은 무언가”를. 욕구와 평범한 행복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형체조차 찾을 수 없게 되는 자아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많은 쓰레기, 그렇게나 많은 미완성과 분리”로 이루어진 삶을 살면서 합리화 속에 잊히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한 구석에서 갈망하는 부분이다. 용기도 열의도 없이 책임감을 가진 존재로 붙박여 살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요지부동으로 고정된 것”은 육체일 뿐이라고 “믿고 싶은” 모습이 퍽 안쓰럽다. 선택을 후회하는 모습은 더욱 짠하다. 어차피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거라면 치열히 살 필요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이런 삶들은 전부 무의미한 것인가? “정사각형을 들어서 직사각형 위에다” 정확히 쌓는 이들에게만 인생은 의미 있는 것인가. 답은 당연하게도 ‘아니’다. 주어졌으니 우리는 서툴러도 쌓아야 한다. “직사각형을 만들어서 정사각형 위에” 세워놓더라도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는 나름대로 “살 만”하다. 누구를 좇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주시하는 것이 나의 인생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버나드가 막바지에 자기 자신이 “바이런도, 셸리도, 도스토옙스키도 아니고” 그들의 “후계자” 버나드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이야기라는 게 존재하긴 하느냐’고 몇 번이나 묻지만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인생은 꿈결처럼 무상하기에 이야기는 계속 진행되고 기억되어야만 한다.



  제목이기도 한 “파도”는 소설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슬픔으로 가라앉은 이들을 건져 올려 줄 수 있는 구원으로도, 참을 수 없이 쌀쌀맞게 치는 채찍으로도, 거센 돌풍으로더, “정기적으로 멈췄다가 출발하는” 존재로도, 그저 존재하는 잔잔한 물결로도. 그야말로 인생과 사람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비유가 있을까 싶다. 부가적으로 퍼서벌의 의미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퍼서벌은 소설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이 여섯 인물의 말 속에만 존재하는데, 지도자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는 이로 그려진다. 인도로 떠날 때에도 사망한 뒤에도 여섯 명이 모이는 계기가 되어 준다. 처음에는 퍼서벌이 이들이 추구해야 하는 인간상이나 정신적 지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을수록 어쩌면 그 퍼서벌조차도 계속 삶을 이어나갔다면 실망스러운 패턴으로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퍼서벌의 존재는 그대로 끝나서 더 아름다운 것, 끊임없이 부서지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자연은 너무도 생기가 없어. 자연에는 장엄함과 거대함, 그리고 물과 잎들이 있을 뿐이야. 불빛, 사생활, 그리고 한 사람의 사지가 그리워지기 시작해.

p.56

  내가 기억하는 시절들을 떠올린다. 어떤 시절이 어떤 색으로 칠해져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다 같은 칠월인데 어떤 칠월은 먹먹한 솜처럼 무겁고, 어떤 칠월은 쨍쨍 내리쬐듯 따갑다. 어떤 칠월은 풀내 가득하고, 어떤 칠월은 아무 향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야 “자연은 너무도 생기가 없다”는 말에 비로소 납득이 갔다. 『파도』는 중간중간 자연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간주로 들려 주며 인간의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의 구조처럼, 침묵하는 사실들 속에서 유일한 이야기로서 우리는 살아간다. 버나드는 시간이 방울이라고 말했다. 습관성은 바로 그 방울이 고이는 순간이라고. 물방울은 고일 뿐 아니라 파이게도 한다. 습관이 고인 물이라면, 파인 자국은 시간들이 만들어낸 최종적인 삶의 모습일 것이다. 세상은 이미 비워져 있고 내가 채워 나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릇’에 관한 버지니아 울프의 비유에 확신이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버지니아 울프를 시작하려고 한다며 입문작 추천을 부탁한다면 분명히 『파도』는 가장 먼저 제외될 작품이다. 그러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딱 한 권만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이 책을 떠올릴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다 보면 삶이 공허히 느껴지고, 이토록 다채롭고 생생한 방식으로 인생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에 찬탄한다. 하지만 두려움이나 박탈감에 뒷걸음질치기보다는 욕심이 생겨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지니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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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살 빠지는 고단백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레시피
미니 박지우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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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가루만 덜 먹어도 피부가 눈에 띄게 좋아진다고들 하지만 내 인생에서 밀가루를 끊은 시기는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한때 컵라면에 꽂혀서 종류별로 섭렵하겠다며 열 끼니 중 여덟 끼니를 컵라면으로 때우던 시기였는데, 기분 탓인지 급격히 피부 트러블이 많아져 울며 겨자 먹기로 선언했었다. 하지만 일단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왠지 더 생각나는 데다가, 실제로도 밀가루 음식을 굉장히 좋아해서 트러블이 가라앉자마자 신나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밀가루만 빠져도 전혀 먹을 게 없을 것 같은 기분인데 쌀까지 빠진다면... 도대체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뭐가 있을까? 저탄수화물 레시피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든 의문이다. 그러니 사실 나는 다이어트 식단보다는 ‘그 외의’ 건강식을 알고 싶었던 셈이다.

  앞부분에는 다이어트를 하게 된 경위와 스트레칭 방법이 부록처럼 조금 첨부되어 있고, 그 뒤에는 본격적인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다. 사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작가의 사진들을 보고 조금 당황하고, 더 넘겼을 때에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 사진들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내가 생각하는 건강식은 파릇파릇하면서도 어쩐지 퍽퍽한 인상을 남기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불가할 것 같은 식재료에서 과감하게 탄수화물을 빼고 말 그대로 단백질로 채웠다는 점이 새롭게 느껴졌다. 사실 완전히 탄수화물이 없다고 할 수는 없고, 쌀과 밀가루를 이용한 메뉴가 몇몇 눈에 띄었지만 그래도 많이 줄인다거나 탄수화물을 사용하되 단백질도 많이 넣는다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 같다. 몇 가지 따라 해 보고 싶은 것들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것이 많고 조리 방법이 복잡한 탓에 다음 기회로 미뤄 두기로 했다. 받고 나서 검색해 보니 이전에도 흡사한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미 검증되었다면 다이어터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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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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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세상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을 한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중요한 것은 그냥 그대로 사라지게 두면서 사소한 것에 집착한다는 생각이다. 대표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례를 접할 때 그런 생각들을 한다. 나와 비슷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꽤 많아 보인다. 영화 감독들이 그렇게나 자주 죽은 가족의 복수를 하러 처벌을 불사하고 직접 나서는 유족 이야기를 찍어 낸다는 데에서, “사이다”라는 사람들의 댓글에서 이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죽여 버리는 게 나은 걸까? 만약 현실에서 살인범을 발견했는데, 그 사람이 여자에게 나쁜 짓을 하는 남자만 골라 죽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헨리에타와 로이드는 이웃 미라와 매슈에게 초대를 받는다. 식사를 하고 집을 둘러보던 도중 헨은 펜싱 대회 트로피를 발견한다. 그 트로피가 자신이 몇 년 전 매달려 있었던 ‘더스틴 밀러 살인 사건’의 현장에서 사라진 물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후로 이웃집 남자 매슈를 주시한다. 한편 매슈는 여자를 괴롭히는 남자만 골라 죽이는 살인범이다. 이번에는 동료 교사 미셸 브라인의 남자 친구 스콧을 타깃으로 정한다. 헨은 매슈를, 매슈는 스콧을 추적하는 구조로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서로 가장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가 된다. 소설은 헨과 매슈의 시점에서 번갈아 전개되며, 후반부에는 매슈의 동생이라는 리처드의 심리도 표현된다.






처음부터 어떤 사건의 범인을 밝혀 두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최근 들어 꽤 자주 보인다. 하지만 목격자와 범인이 묘하게 공조하는 서사는 드물다.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나의 비밀이나 약점을 아는 사람이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뒤집고, 가장 큰 벗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을 글로 옮긴 소설이다. 웬만해서는 잘 흔들리지 않는 헨리에타라는 주인공을 앞세워 공모자가 된 기분을 느끼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한 번쯤 하는 생각이지만 현실에서는 상황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을뿐더러, 불안감에 일을 그르치고 마니까. 큰 줄기 안에서 여러 변화구를 던진다는 것도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 중 하나이다.

결말에 이르기까지 도덕적 딜레마에 시달렸다. 실은 지금도 시달리고 있다. 매슈는 여성을 괴롭히는 남자만을 죽인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이 살인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는지, 그가 활개치게 두어도 괜찮은지에 관해서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구제 불능인 사람을 대신 처치해 준다면 고맙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의로운 살인자든 졸렬한 살인자든 다 똑같은 살인자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만약 의로운 살인이 괜찮다면 그런 권한은 누가 그에게 주는가? 결정적으로 매슈라는 캐릭터를 긍정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가 지나치게 영웅 심리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술 더 떠 “나는 다른 남자와 다르다”고 생각하고, 주변 여자들까지 그를 “연쇄 살인범”이 아닌 “자경단”으로 포장하려는 듯한 모양새를 보여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다. 본인이 강자라고 생각하며 마음껏 휘두르는 그 폭력은 언제든 다른 쪽으로 날아올 수 있다. 처음부터 이런 기시감을 느꼈기 때문인지 반전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범죄 스릴러 장르에는 억지스러운 반전도 더러 존재하지만, 이 책의 반전은 찝찝함을 덜어준 케이스라 고마웠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해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다만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즐거웠다는 사실은 확언할 수 있다. 부담 없이 읽으면서도 ‘학대의 폐해’와 ‘살인의 면죄부’로 둘러싸인 생각의 샘에 빠지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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