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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0년 5월
평점 :

종종 세상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을 한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중요한 것은 그냥 그대로 사라지게 두면서 사소한 것에 집착한다는 생각이다. 대표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례를 접할 때 그런 생각들을 한다. 나와 비슷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꽤 많아 보인다. 영화 감독들이 그렇게나 자주 죽은 가족의 복수를 하러 처벌을 불사하고 직접 나서는 유족 이야기를 찍어 낸다는 데에서, “사이다”라는 사람들의 댓글에서 이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죽여 버리는 게 나은 걸까? 만약 현실에서 살인범을 발견했는데, 그 사람이 여자에게 나쁜 짓을 하는 남자만 골라 죽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헨리에타와 로이드는 이웃 미라와 매슈에게 초대를 받는다. 식사를 하고 집을 둘러보던 도중 헨은 펜싱 대회 트로피를 발견한다. 그 트로피가 자신이 몇 년 전 매달려 있었던 ‘더스틴 밀러 살인 사건’의 현장에서 사라진 물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후로 이웃집 남자 매슈를 주시한다. 한편 매슈는 여자를 괴롭히는 남자만 골라 죽이는 살인범이다. 이번에는 동료 교사 미셸 브라인의 남자 친구 스콧을 타깃으로 정한다. 헨은 매슈를, 매슈는 스콧을 추적하는 구조로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서로 가장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가 된다. 소설은 헨과 매슈의 시점에서 번갈아 전개되며, 후반부에는 매슈의 동생이라는 리처드의 심리도 표현된다.


처음부터 어떤 사건의 범인을 밝혀 두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최근 들어 꽤 자주 보인다. 하지만 목격자와 범인이 묘하게 공조하는 서사는 드물다.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나의 비밀이나 약점을 아는 사람이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뒤집고, 가장 큰 벗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을 글로 옮긴 소설이다. 웬만해서는 잘 흔들리지 않는 헨리에타라는 주인공을 앞세워 공모자가 된 기분을 느끼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한 번쯤 하는 생각이지만 현실에서는 상황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을뿐더러, 불안감에 일을 그르치고 마니까. 큰 줄기 안에서 여러 변화구를 던진다는 것도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 중 하나이다.
결말에 이르기까지 도덕적 딜레마에 시달렸다. 실은 지금도 시달리고 있다. 매슈는 여성을 괴롭히는 남자만을 죽인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이 살인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는지, 그가 활개치게 두어도 괜찮은지에 관해서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구제 불능인 사람을 대신 처치해 준다면 고맙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의로운 살인자든 졸렬한 살인자든 다 똑같은 살인자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만약 의로운 살인이 괜찮다면 그런 권한은 누가 그에게 주는가? 결정적으로 매슈라는 캐릭터를 긍정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가 지나치게 영웅 심리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술 더 떠 “나는 다른 남자와 다르다”고 생각하고, 주변 여자들까지 그를 “연쇄 살인범”이 아닌 “자경단”으로 포장하려는 듯한 모양새를 보여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다. 본인이 강자라고 생각하며 마음껏 휘두르는 그 폭력은 언제든 다른 쪽으로 날아올 수 있다. 처음부터 이런 기시감을 느꼈기 때문인지 반전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범죄 스릴러 장르에는 억지스러운 반전도 더러 존재하지만, 이 책의 반전은 찝찝함을 덜어준 케이스라 고마웠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해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다만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즐거웠다는 사실은 확언할 수 있다. 부담 없이 읽으면서도 ‘학대의 폐해’와 ‘살인의 면죄부’로 둘러싸인 생각의 샘에 빠지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