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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주택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평점 :
집이 자가인지 아닌지로 갈라지는 요즘의 행복.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허리띠 졸라매고 저축을 한다손치더라도 집을 사는 것조차 엄두도 못내는 이들이 대한민국 땅덩어리 아래 너무나도 많다.
어디 집만 있다고 해서 끝인가?
그 집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안 따질 수가 없다. 마치 어디에 사는지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전반을 말해주는 듯하고, 어른들 시선으로 만들어진 아이들 편가르기도 공공연하게 존재한다.
이런 것으로 웃고 우는 우리들의 삶이,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다.

순례 주택에 가면 정겨운 이웃들을 만나볼 수 있다. 거북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오 분 거리에 위치한 순례 주택은 나름 역세권에 자리 잡고 있다. 필로티 구조의 4층 건물로 건물주는 이른 다섯의 김순례 여사다. 그녀는 젊은 날 남편과 이혼 후 때밀이로 돈을 모아 지금의 순례 주택의 건물주가 되었다. 시세를 따르지 않는 착한 임대료로 입주하고픈 세입자가 많다. 5년 대기자가 있을 만큼.
순례 씨는 개명을 했다. 순하고 예의 바르다는 뜻의 순례에서 순례자에서 따온 순례로. 나머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p.13)
고리대금업자였던 남편이 나쁘게 번 돈이 싫어서 이혼을 하고, 그녀는 세신사로 일해서 돈을 모았다. 운수 좋게 지하철역이 생겨서 그녀 소유의 주택은 집값 상승이라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렇게 얻은 이득이 제 것이 아닌 듯해서 싫다.
순례 씨에겐 오래된 연인이 있었으나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이 이야기는 순례 씨의 연인이었던 박승갑씨의 손녀가 화자가 되어 이끌어진다.
열여섯의 오수림 양은 어린 시절 연이은 출산으로 우울증에 걸린 엄마의 손을 벗어나 순례 씨가 업어 키웠다. 그래서 순례 씨가 가족 같고, 엄마 아빠 그리고 한 살 많은 언니는 남 같다. 수림은 그런 그들을 1군들이라 칭한다.
수림의 할아버지는 거북 마을에서 오랫동안 전파사를 했다. 그리고 전파사 문을 닫고는 인테리어 현장에서 전기 공사일을 했다. 할아버지 수중에는 39평의 아파트가 있었지만, 결혼하고서도 제 앞길 못 찾는 딸이 칩거해 들어와살자 할아버지는 순례 주택으로 나가 살게 된 것이다.
"빌라촌이랑 섞여서 집값이 더디게 올라. 섞이지만 않으면 딱인데."
수림의 엄마는 한동네 안에 순례 주택과 같은 빌라가 섞여있는 게 싫다. 집값 상승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아파트 높이 마냥 콧대가 높아 빌라에 사는 이들을 내려다보는 인물이다. 그랬던 집에 문제가 생겼다.
글쎄 수림의 할아버지가 살아생전 태양광 사기를 당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대학교 시간강사인 아빠, 전업주부 엄마는 공부 잘하는 수림의 언니 오미림양을 위해 비싼 과외도 마다하지 않은 상태라 수중에 돈이 있을 리 없다. 빚만이 있을 뿐.
커서도 자기 앞가림하지 못하는 인물들이 바로 수림이 엄마와 아빠다. 가족들에게 빨대 꽂아 먹을 궁리를 미처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뒤봐주던 가족들은 이번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언제까지 다 큰 어른을 갓난아기 돌보듯 품어줄 수 있으랴.
그런 그들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준 건 순례 주택 건물주 김순례 여사 되시겠다. 옛 연인에 대한 정, 수림이에 대한 사랑이 작용했던 것일까? 박승갑 할아버지가 쓰셨던 201호를 선뜻 빌려주기로 하셨다.
"순례 주택 201호, 할아버지가 살던 집. 14평 투룸이야. 그 동네 시세로 보증금 6,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쯤 해. 보증금 없이 월세 30만 원에 이 년간 빌려주신대."
그렇게 깔보던 거북 마을 빌라촌에 살 군번도 되지 못하던 수림이네는 김순례 씨 덕분에 살아갈 한줄기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39평의 살림을 14평에 맞추려니 쉽지만은 않다.
순례 주택에는 좌충우돌 각양각색의 다양한 이웃들이 한데 어우러 산다. 직업의 귀천이 없고, 자신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사는 따뜻한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곳에 수림이네 가족이 정을 붙이고 살 수 있을까? 가만히 물들 수 있을까? 과연 이 가족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순례 씨, 있잖아. 나는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꼭 태어난 게 기쁜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왜?"
"태어난 게 기쁘니까, 사람으로 사는 게 고마우니까, 찝찝하고 불안한 통쾌함 같은 거 불편해할 거야. 진짜 행복해지려고 할 거야. 지금 나처럼."
요즘 연예 기사 면에는 개그맨 박수홍 씨의 기사가 핫하다. 그가 열심히 일한 대가로 일한 돈이 가장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형과 형수의 소유임을 최근에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왜 자기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내는 것일까? 가족이기에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가족애, 형제애, 전우애.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그런 것들을 최고 가치인 양 포장해 온 삶을 살았다. 그래서 좋은 게 좋은 것인 양 내 안위보다 상대방을 살피고 때로는 눈치 보는 삶을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든 건 아닐까?
지금 우리들에게는 마음속 '거리 두기' 역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