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년 전 중국의 일상을 거닐다
카키누마 요헤이 지음, 이원천 옮김 / 사계절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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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책 속의 인물, 배경, 사건과 어우러져 그 속으로 잠깐 여행을 다녀온다. 특히 역사책을 읽을 때에는 세계 여행으로는 느낄 수 없는 저 먼 시대의, 완전히 새로운 생각과 관습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온다.

이 책을 덮었을 때 나는 한나라로 들어가 유방, 번쾌와 함께 술잔을 기울인 듯, 돗자리장수 유비와 함께 장터를 떠돌다 온 듯한 생생함을 느꼈다. 노학자의 방대한 지식이 하나의 세계를 눈앞에 가져다 준 듯했다.

이 글을 읽다보면 마치 한나라의 현성이 우뚝 서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말소리가 들리고 심지어 그들이 품은 향낭에서 나는 냄새까지 생생히 느껴질 듯 했다.

이 책을 읽고 다시 삼국지와 초한지를 펼쳐 들었을 때 그 속의 인물들이 조금 더 그 시대의 모습을 한 채 생생히 그려졌다. 그동안 읽었던 삼국지 연의의 내용이나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한 만화의 그림체들은 한나라 당시가 아닌 송나라풍의 모습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조조가 동탁을 찌르기 위해 보검을 뽑았을 때 한나라 때로 묘사한다면 조조는 돌아가면서 이미 들켰을 것이다. 도주하기 위해 신발을 신는 과정에서 의심많은 동탁의 의심을 사거나 아니면 허둥지둥 도망가다 신발을 미처 제대로 못 신은 상태에서 여포를 마주친다면 여백사를 만나기 전에 이미 주살당했을 것이다.

- 반면 연의에서 손권이 술 마시고 횡포를 부리거나 여몽이 연회 중 술마시다 죽는 장면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격한 주령과 예의가 지배하는 그시절의 연회에서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억지로 술을 마시다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많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주령과 주도를 정해서 그동안은 자기와 격의 없이 내지 너나들이하며 술먹던 공신들이 엄격한 예절에 따라 술자리에 위계질서가 생기자

"이제야 황제 할 맛 나는구나." 하는 한 고조 유방의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 황제의 면복을 묘사한 장면에서는 종묘 제례 때의 구장복이 생각났다. 그렇게 오랜 세월 전으로부터 거의 변하지 않은 복장은 여전히 남아 지존의 지엄함을 상징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고대 중국의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그들의 생활양식이 오호 십육국 시대부터 서서히 입식으로 바뀌기 시작한 중국보다는 좌식생활의 흔적이 남아있는 한국과 일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삼국시대를 다룬 사극이나 소설을 쓰는 사람들도 한번 필독했으면 좋겠다.

이 책은 비록 이천년 전 중국을 담고 있지만 낯선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설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에 보이는 생생한 모습들을 보고 나서 삼국지 연의에 송나라의 모습이 묻어나듯 우리의 사극들에도 내심 조선시대의 모습들이 많이 묻어난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듯 생활사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너무 기쁘게 생각한다. 고대 중국의 생활에 대해 궁금하거나 삼국지, 초한지 등 한나라 시절을 다룬 책들을 알고 싶거나 고단한 현실에 지쳐 도저히 여행갈 짬이 없을 때 고대 중국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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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지정학 아틀라스
델핀 파팽 지음, 권지현 옮김 / 서해문집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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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왜? 라는 의문에 대해 훌륭히 답해준 책이었다. 왜 우크라이나를 다 점령하지 못했음에도 몰도바까지 양면전선을 펼치려 하는지, 푸틴의 생각을 다룬 책은 많았지만 러시아의 종합적 상황을 이렇듯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한 눈에 보여준 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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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위의 개척자, 황금 천막의 제국 - 세계를 뒤흔든 호르드의 역사
마리 파브로 지음, 김석환 옮김 / 까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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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의 연대기에서 분명 존재하고 강력하지만 그 정체를 알 수는 없는, 마치 코즈믹 호러를 방불케 하는 주치의 제국은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의 봉신이 되는 후예들을 남긴 채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원형조차 알지 못한 채 그저 흔적들을 통해 짐작되는 바만 남아있다. 그렇기에 분명 인식은 하고 있지만 알 수 없었던 주치의 제국의 본모습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역사를 연구하거나 취미를 가진 이들의 지평을 더욱 넓힐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너무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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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동남아 - 30개의 주제로 읽는 동남아시아의 역사, 문화, 정치
강희정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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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에 대해 각 국의 역사를 아는 것이 그 기둥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그 기둥 위를 크게 제국주의의 유산, 다양한 문화, 현대정치라는 큰 타이틀이 지붕처럼 그 위를 덮어주어 각 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이해한 동남아의 지식을 묶어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최근에 읽었던 비엣 타인 응우옌의 소설 동조자를 읽고 지금은 사라진 남베트남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였다.

이 책의 베트남 커피와 콩 카페, 찐꽁썬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르포의 저자와 베트남의 거리를 함께 걸으며 즐기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였다. 이 책의 장점은 이러한 현장감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아까 말했듯 지식의 기둥들을 아우르는 이른바 지붕이다. 각국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기에 이 책들은 동남아시아의 역사에 대한 다양한 책(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라도)을 먼저 읽고 오는 것이 이 책의 설명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각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주 개략적인 설명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후반부의 현대정치에서는 무려 3파트를 태국 정치에 할애한다. 흔히 태국 왕실에 대해 언론이나 매체에서 말하듯 엄청난 절대군주로 믿고 있었지만 그것이 그의 어머니 상완이 소외계층에 대해 봉사하는 이미지로 이뤄낸 하나의 신화이고 그것은 또 시립톤 공주를 통해서 계승된다는 점에서 타이 왕실의 권위는 보이는 것과 달리 대단히 위태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얀마의 민주화 시위와 그에 연계한 태국의 민주화 시위가 세 손가락을 높이며 국왕 폐지까지 언급한다는 점까지 이 책은 대단히 넓으면서도 피상적이지 않았다. 말 그래도 동남아시아 총론을 한번 읽어보고 읽으면 동남아시아에 대한 개황 뿐 아니라 현재까지 알 수 있는 대단히 좋은 각론서였다.

그동안은 나시고랭이 태국음식이라 여기고 있었던 것처럼 대단히 흐릿하고 각각의 특징적 이미지로만 알고 있던 동남아시아에 대한 나의 지식이 좀더 명료하게 만들어주었던 책이었다. 동남아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한번쯤 읽어봤으면 좋겠다.

본 서평은 부흥카페 서평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216831)에 응모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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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50가지 범죄사건
김형민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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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역개루 카페와 믹스커피 출판사 간의 서평 이벤트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범죄들은 실로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범죄자들을 보여준다.

김형민 작가의 문체는 평이하면서도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게 하는 기묘한 맛이 있었다.(하지만 글 속에서 너무나 많이 들어간 가치판단들이 오히려 글 자체의 가치를 해치는 듯 하지만 이는 이 글이 칼럼을 재구성한 것이니 그냥 끄덕이고 넘어간다.)

모든 사건들은 딱 네 페이지 안에서 처음엔 배경이 나오고 범죄자들의 범행과 동기가 2페이지 정도, 그들의 말로와 작가의 덧붙이는 말까지 실로 깔끔한 구성 속에서 범죄자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였다가 명멸해간다, 쉽고 재미있는 문체로 쓰여 있지만 그래도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부분은 2부 한국사를 뒤흔든 범죄의 재구성이었다. 이 책의 모든 사건들은 다 흥미로웠지만 세계의 범죄들과 한국의 범죄들을 차라리 따로따로 두 권으로 출판했으면 오히려 더 깔끔하고 통일성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결국 범죄는 일상인들과는 다른 어느 괴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몸에 병이 들듯이 그 사회의 불합리나 모순들이 약한 부분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2부, 한국사 속의 범죄들이 더 눈길이 갔다.

주 배경이 되는 60, 70,80년대는 영화나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와는 다른, 부산에서 수리남이나 나르코스를 방불케 하는 마약왕들이 오히려 유지로 행세하고 수많은 식모들이 법의 테두리 밖에서 살아가는. 마치 요즈음 남미의 모습들이 불과 몇십년 전까지의 우리나라의 모습이었다는 것이 실로 놀라웠다.

하지만 내가 느낄 수 있는 이 놀라움이 우리 사회가 반대로 끊임없이 자정하고 또 자정해 온 결과라는 점에서 다행함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범죄는 계속 생성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이듯, 단순히 그 범죄 뿐 아니라 그 범죄 뒤의 이면들을 보는 눈을 다시한번 깨달았다는 점에서 김형민 작가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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