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대학 밖에서 꽃피는 인문학?

아침에 경향신문에서 읽은 칼럼은 '대학 밖에서 꽃피는 인문학'. 실제 대학 밖의 비공식 '강의'도 한두 가지 맡아서 하고 있는 처지라 눈길이 가는 제목이었다. 기사의 낙관적인 톤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교양 인문학의 향방과 관련한 자료로 스크랩해놓는다. 더불어, 대학가 교양 과목들의 폐강 현황을 다루고 있는 문화일보의 기사도 옮겨놓는다. 이 또한 호들갑을 떨 만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고, 은근히 '교양과목' 경시 풍조를 정당화하는 역효과를 낳기도 있지만 '데이터'로서의 가치는 있다(사실 교양 과목의 폐강에는 대학마다 최소 수강인원을 30명 이상 등으로 '과도하게' 설정하고 있는 것도 주된 이유로 작용한다. 비용 절감 차원이라지만 그로 인한 '과밀 강좌'가 교양과목 개설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문화일보(07. 03. 19) '교양’이 무너지는 상아탑

교양 인문학과 제2외국어 강좌들이 대학에서 대거 퇴출되고 있다. 취업 준비에 목을 매고 있는 학생들에게 역사·문화·민속 등 순수 인문학 교양 강좌는 ‘사치’가 됐기 때문이다. 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컴퓨터 교양 강좌도 대거 폐강됐다. 학생들의 관심이 ‘개발’보다는 ‘활용’으로 넘어간 세태 변화를 반영한 것이지만, 교양을 쌓아야 할 대학신입생들로부터 ‘교양’을 아예 배제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교양 인문학은 퇴출 1순위 = 역사와 문화 등 교양 인문학 강좌들은 대부분 대학의 폐강 리스트에서 발견된다. 성균관대에서는 ‘일본역사탐구’, ‘세계영화와 문화교류’ 등 10여개의 역사·문화 관련 강좌가 최소 수강인원을 못채워 폐강됐다. 중앙대에서는 ‘문화 이해와 수사학’ ‘현대사회와 민속’ 등이, 한양대는 ‘동아시아 문화’ 등이 폐강 명단에 포함됐다. 철학 관련 강좌도 인기가 없기는 마찬가지. 동국대에서는 ‘철학·과학·생명·가치’, ‘현대사회의 철학적 이해’ 등의 강좌가 폐강됐고, 서강대에서는 ‘신학적 인간학’ 등이 기준 수강생을 채우지 못했다.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수용자 중심의 교육으로 바뀌고 학생들이 취직 준비 등을 우선시하면서 실용적인 학문에 치우쳐 공부하는 현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 했다.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도 “최근 대학들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배출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지식의 변화속도 가 매우 빠른 현대 사회에서 대학은 오히려 기초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2외국어도 관심 밖으로 = 국내 기업의 중국 진출이 확대되면서 중국어 인기는 여전하지만 독일어나 프랑스어 등 전통적 제2 외국어는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중앙대에서는 ‘독일문화와 예술’, ‘독일 정치와 사회’ 등이 폐강됐고, 성균관 대에서도 ‘독어의미론’ 등의 강좌가 폐강됐다. 숙명여대의 ‘ 독일어1’ 강좌, 단국대의 ‘기초독일어’ 등의 강좌도 폐강됐다. 동국대에서는 ‘기초독일어’, ‘기초불어’ 등이 폐강됐다.

김영주 숭실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사실 우리나라에 진출한 독일 기업만도 300여개가 되는데 세계화가 미국화로 오인되면서 독일 관련 과목들이 폐강되고 있다”면서 “진정한 세계화를 위 해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컴퓨터 언어도 옛날 얘기 =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된 기초 강좌들도 쇠퇴 일로를 걷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인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학생들의 관심은 컴퓨터 활용에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대에서는 ‘자바(JAVA)프로그래밍’과 ‘웹 프로그래밍’ 강좌가, 단국대 ‘비주얼베이직(Visual Basic) 입문’, 동국대 ‘프로그래밍기초와실습’ 등의 강좌가 폐강됐다. 연세대의 ‘컴퓨터와 IT 기술의 발전과 활용’, 성신여대의 ‘IT와 지리정보’ 강좌 등도 폐강 리스트에 올랐다.(음성원 기자)

경향신문(07. 03. 19) 대학 밖에서 꽃피는 인문학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필자에게 최근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최근 한 단체의 초청을 받아 근현대사를 강의했는데, 수강생들의 자세가 대학과 달리 진지하고 열정적이어서 내심 놀랐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은 복지재단이나 장애인·아동생활시설 등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 그는 사회복지사들이 전공과 무관해 보이는 역사·철학 등에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인문학의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이동국 학예사도 지난 겨울 추사 학술강좌에 참여한 수강생들의 열기에서 인문학의 힘을 느꼈다고 전했다. 1월부터 두 달간 주말에 열린 특별 강좌에는 매번 200명 가까이가 몰렸다. 연 인원이 1000명에 달했다. ‘추사의 학문과 예술’ 등 모두 21개 강좌가 개설됐는데, 토요일 1시부터 7시까지 진행된 강좌를 빠짐없이 들은 사람도 상당수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 학예사는 “전시장에서 구체적인 작품을 놓고 강의한 게 관객들에게 어필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인문학이 꽃피고 있다. ‘인문학 위기 선언’이 나온 지가 불과 몇달 전인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이다. 만개하지는 않았어도 최소한 개화할 조짐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물론 대학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곳의 인문학은 여전히 ‘위기’이다. 문학, 역사학, 철학 관련 학과들은 학생수를 채우지 못해 폐과 대상 1순위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들이 대학원 중심 대학을 외치지만, 정작 진학자가 없어 공허한 울림이 되고 있다.



반면 캠퍼스 밖의 인문학 공부의 열기는 뜨겁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안 연구공동체를 표방하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이다. 이곳은 그간 단기적으로 운영해온 강좌를 올해부터 학기제로 바꿔 장기 강좌 중심으로 꾸렸다. 철학, 고전강독, 문화예술, 글쓰기를 강의한다. 수강료가 과목당 35만원씩 하는데도 접수를 받기 시작한 지 1주일도 안돼 정원을 다 채웠다. 강좌뿐 아니라 회원들의 공동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는 ‘수유+너머’는 지난주 ‘모더니티의 지층들’이라는 묵직한 사회학 개설서를 펴내 주목을 받고 있다.

부산의 ‘인디고서원’은 이제 꽤 이름을 얻었다. 인디고서원은 서점이다. 그러나 인디고는 책 판매에 그치지 않고 독서 프로그램 운영, 명사 초청 강연 등을 통해 청소년 대상의 인문학 교육장이 되고 있다. 이밖에 철학아카데미,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디지털문화예술아카데미 등에서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최근의 인문학 교육이 서민과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공회 노숙인다시서기 지원센터는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을 개설하고, 광명시는 ‘광명시민대학’에 인문학 과정을 포함시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 ‘경기광역 자활후견센터’와 ‘관악일터나눔 자활후견기관’ ‘노원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도 각각 지역민을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지난주에는 의정부교도소에서 국내 처음으로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가 열렸다. ‘빈자(貧者)의 인문학’을 내건 얼 쇼리스가 창안한 클레멘토 코스를 한국에 적용한 것이다. 10년 전 뉴욕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철학, 예술 등을 가르쳤던 얼 쇼리스는 “인문학이 가난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에게 정당한 힘을 갖게 해 준다”고 믿고 있다. 인문학(humanitas)을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학문’이라 한다면, 쇼리스의 ‘빈자의 인문학’은 인문학의 본령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쇼리스의 인문학 강좌는 이제 캐나다, 호주, 멕시코 등 4개 대륙으로 수출돼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의 인문학 위기는 학문 또는 인문학자의 위기라기보다는 인문적 지적 풍토의 허약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측면에서 교양을 쌓고, 자신을 성찰하며, 삶을 바꿔나가는 ‘장외의 인문학’ 열기는 분명 주목할 일이다.

교육부와 학술진흥재단은 올해 인문학 위기 타개를 위해 200억원을 투입할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 ‘위기에 처한 대학’을 지원하기 위해 쓰여질 터이지만, 대학 밖의 인문학 활동에 대해서도 지원 방안이 검토돼야 하지 않을까(*국가에서 지원하는 인문학은 여전히 '대학 밖'의 인문학일까?). 그간 많은 학술지원사업이 내실보다는 외형에 치우쳤다는 비난이 많았다. 이제는 인문학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는 공부와 연구 활동에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진정한 대학은 넓은 캠퍼스가 아니라 ‘나날이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지는’(‘大學’) 곳이기 때문이다.(조운찬 문화1부장)

07. 0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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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레닌과 포퍼

<혁명이 다가온다>(길, 2006)의 제2장 '유물론 다시 보기'에는 레닌과 포퍼에 관한 간략한 언급이 포함돼 있다. 레닌의 <유물론론과 경험비판론>에는 정작 변증법을 위한 자리가 빠져 있으며, 이때의 레닌은 반헤겔주의자로서 칼 포퍼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지적을 루치오 콜레티는 '레닌과 포퍼'에서 지적하고 있고, 콜레티가 인용하고 있는 포퍼의 사적인 편지를 지젝은 재인용하고 있는데, 1970년에 포퍼는 이렇게 말했다: "레닌의 경험비판론에 대한 책은, 내 견해로는 진짜로 뛰어납니다." 포퍼가 격찬하고 있는 레닌? 이건 어찌된 일인가? 내용의 자초지종을 따라가본다(국역본과 영역본을 가급적 같이 인용한다. 독어본에 따르는 국역본보다 확장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영역본이 이해에 더 용이하다). 

"레닌의 진실이란 궁극적으로 유물론의 진실이다. 그리고 실제로 현실의 뉴에이지 반계몽주의의 분위기에서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이 주는 교훈을 다시 한번 주장하는 것은 매력적이다. 오늘날의 양자역학에 대한 대중적인 독해는 레닌의 시기와 마찬가지로 과학 자체가 마침내 유물론을 넘어섰다는 '통념'으로 이어져, 물질은 '사라진' 것처럼, 즉 에너지의 비물질적 파동에서 용해됐다는 것으로 여겨진다."(51쪽)

Lenin's truth is ultimately that of materialism, and in fact, in the present climate of the New Age obscurantism, it may appear attractive to reassert the lesson of Lenin's Materialism and Empiriocriticism: in today's popular reading of quantum physics, as in Lenin's times, the doxa is that science itself finally overcame materialism - matter is supposed to "disappear," to dissolve in the immaterial waves of energy fields.(178쪽)

먼저,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은 아침(1989)과 돌베개(1992)에서 두 종의 국역본이 출간된 바 있다. 물론 모두가 품절된 책들이다(러시아에서조차 레닌의 책들을 구하는 건 발품을 팔아야 하는 일일 것이다). 지젝은 그 '레닌'을 우선을 다시 읽어보자고 제안한다. "레닌의 진실이란 궁극적으로 유물론의 진실이다."라는 단언에서 '진실'은 '진리'의 뜻으로 새기는 게 낫겠다. 지젝에게서 truth'는 대부분의 경우 '진실'보다는 '진리'의 뜻을 더 강하게 갖는다(국역본 1장의 제목이 '진실을 위한 권리'로 옮겨진 것은 그래서 유감스럽다).  

"(루치오 콜레티가 장조했듯이) 레닌은 물질을 철학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으로 구분함으로써 '자연(에서)의 변증법'이라는 개념을 사실상 없애버린다. 정신에 독립해 존재하는 실체로서 물질의 이 철학적 개념은 과학에 대한 철학의 개입을 배제한다. 그러나... 이 '그러나'는 <유몰론과 경험비판론>에 변증법을 위한 자리가 없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It is also true (as Lucio Colletti emphasized), that Lenin's distinction between the philosophical and the scientific notion of matter, according to which, since the philosophical notion of matter as reality existing independently of mind precludes any intervention of philosophy into sciences, the very notion of "dialectics in/of nature" is thoroughly undermined. However... the "however" concerns the fact that, in Materialism and Empiriocriticism, there is NO PLACE FOR DIALECTICS, FOR HEGEL."

같은 버전인 독어본/국역본과 러시아어본에는 빠져 있지만, 영역본에는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에 'FOR HEGEL'이 들어가 있다. 즉, 여기서의 변증법은 '헤겔' 혹은 '헤겔의 변증법'을 가리키며, 레닌의 물질 개념에는 그 변증법/헤겔이 끼여들 자리가 없다는 것. 왜? 그는 물질을 규정함에 있어서 철학과 과학을 구분했고, 이 경우 '자연변증법' 같은 철학적 개념이 과학적 개념으로서의 '물질'에는 대입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무엇이 레닌의 기본테제인가? 지식을 현상적 혹은 실용적 도구주의로 환원해버리는 데 대한 거부(즉 과학적인 지식을 통해서 우리는 사물이 우리의 정신과 독립적을 존재하는 방식을 알게 된다는 주장 - 악명 높은 반영이론)는 우리가 가진 지식의 불확정적 성질에 대한 강조(지식은 항상 제한적이고 상대적이며, 오직 무한한 근사의 과정에서 외부의 실체를 '반영'한다)와 짝을 이룬다."(52쪽)

" What are Lenin's basic theses? The rejection to reduce knowledge to phenomenalist or pragmatic instrumentalism (i.e., the assertion that, in scientific knowledge, we get to know the way things exist independently of our minds - the infamous "theory of reflection"), coupled with the insistence of the precarious nature of our knowledge (which is always limited, relative, and "reflects" external reality only in the infinite process of approximation)."

소위 '악명 높은 반영이론'을 고집하는 한 레닌의 "지식을 현상적 혹은 실용적 도구주의로 환원해버리는 데 대한 거부"는 불가불 "우리가 가진 지식의 불확정적 성질에 대한 강조"와 궁합이 맞아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지젝의 발빠른 지적이 뒤따른다.

"그런데 이 말들을 뭔가 익숙한 말이 아닌가? 이는 바로 분석철학의 앵글로색슨적 전통에서 볼 때, 전형적인 반헤겔주의자인 카를 포퍼의 기본 입장이 아닌가. 콜레티는 짦은 글인 '레닌과 포퍼'에서, <디차이트>를 통해 최초로 공개되었던 1970년의 사적인 편지에서 포퍼가 실제로 다음과 같이 적었음을 상기시킨다. '레닌의 경험비판론에 대한 책은, 내 견해로는 진짜로 뛰어납니다.'"(강조는 나의 것)

"Does this not sound familiar? Is this, in the Anglo-Saxon tradition of analytical philosophy, not the basic position of Karl Popper, the archetypal anti-Hegelian? In his short article "Lenin and Popper," Colletti recalls how, in a private letter from 1970, first published in Die Zeit, Popper effectively wrote: "Lenin's book on empiriocriticism is, in my opinion, truly excellent.""

 

 

 

 

조지 소로스의 스승이기도 한 포퍼가 플라톤과 헤겔, 마르크스를 '열린사회의 적들'로 규정하고 공박한 일은 잘 알려져 있다. 20세기를 대표할 만한 이 反헤겔주의자가 헤겔-마르크스주의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레닌의 주장에 어떻게 감복할 수 있을까? 그건 포퍼의 변덕보다는 레닌의 오류에 기인한다. 그 오류에 대해서 짚어보기 이전에 최근에 출간된 포퍼의 글모음집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부글북스, 2006)에 대한 리뷰를 따라가면서 포퍼주의적 입장이란 게 어떤 것인가를 정리해두도록 한다. 

참고로, 이번에 나온 책은 포퍼 입문서로서 몇년전에 출간된 <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생각의나무, 2000)와 짝지어 읽어볼 만하겠다(포퍼에겐 모든 일이 배우는 것이며 문제해결의 과정이다!). 그 이전까지 포퍼 입문서 역할을 했던 책은 브라이언 매기의 <칼 포퍼>(문학과지성사, 1982)였다.

 

 

 

 

동아일보(06. 10. 21) 진리는 열려 있다 -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이 책은 ‘열린사회를 꿈꾼 비판적 합리주의자’ 칼 포퍼(1902∼1994)가 1980년대 중반부터 세상을 뜨기 전까지 썼던 수필과 강연 원고 모음집이다. 포퍼의 대표 저작인 ‘열린사회와 그 적들’ ‘추측과 논박’을 이미 읽은 독자보다는 그의 저작을 접해본 적이 없는 독자에게 권한다. 일종의 ‘포퍼 입문서’로 제격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에 가장 맞춤한 독서법은 평생에 걸쳐 과학과 역사 이론을 검토하고 검증하며 진리에 다가가려 매진한 원로 철학자가 들려주는 삶의 태도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글 모음집이라 다루는 폭이 넓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꼽자면 ‘비판적 합리주의’와 ‘낙관주의’다. 포퍼가 말하는 합리주의자란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는 것보다 다른 이에게서 배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진정한 합리주의자는 “상대를 설득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이야기하는 내내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남의 마음을 사로잡기 바라는’ 지식인, ‘확실성 없이 살아갈 용기’가 없어 예언가를 기다리는 대중 모두 포퍼의 비판을 비켜가지 못한다. 시행착오와 오류의 수정은 생물의 진화에서도 거의 유일한 진보의 수단이었다.

포퍼는 “모든 생은 문제해결의 과정”이라고 단언한다. 동물의 생이 바로 그러하다(*그러니까 포퍼의 주장은 인간도 동물인 한에서 유효하다. 하지만, '병적인 동물'이라면 사정은 좀 달라지는 것 아닐까?) 동물의 눈이 물체와의 충돌을 피하도록 경고를 받기 위해 발달된 기관이듯, 우리의 감각기관은 특정한 생물학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형성된 도구에 불과하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도 ‘문제’가 관찰이나 감각 인식에 선행한다는 것이다.

어떤 도그마도 인정하지 말라고 거듭 말하는 포퍼의 경고 대상에는 ‘무제한의 자유에 대한 사랑’도 포함된다. 인류가 ‘공존’한다는 것에는 당연히 ‘모든 개인의 무제한적 자유가 불가능하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포퍼는 ‘자유시장을 절대적 가치로 추구하는 이념적 원리’를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을 경우 자유가 제한되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기오염 같은 문제는 특별법 제정을 필요로 하며, 빈곤 문제의 해결을 시류에서 벗어난 문제로 돌리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낙관주의’다. 포퍼는 낙관론자를 자임하면서 자신의 낙관주의는 “미래가 아니라 오직 현재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구분 짓는다. 포퍼는 평생에 걸쳐 비판했던 마르크스와 자신의 차이를 낙관주의를 기준으로 설명한다(*'낙관주의와 그 적들'?). 마르크시즘은 역사의 발전을 믿는 반면 ‘탐욕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바라보는 냉소주의적 역사관’이다. 반면 포퍼는 진보의 법칙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역사적으로 체험한 정치적 세계 중에서는 최고라고 믿는 낙관주의자다.

좌우대립의 양극화 시대에 포퍼의 낙관론은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 많다. 그는 ‘낙관주의는 의무’라고까지 주장한다. 미래가 열려 있고 우리 자신의 행동으로 미래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퍼는 ‘이데올로기라는 색안경을 버리고 현재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좌우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어느 한 정당이 나서서 이념 전쟁의 기계를 해체하고 공동의 인도주의적 노선을 채택하자고 제안하라’고도 조언한다.

포퍼가 ‘나는 어떻게 공부를 했는가’를 설명한 대목도 재미있다. ‘쓸모 있는 일’에 관심이 많아 가구제작자 자격증명서까지 획득한 그는 단 한 번도 철학자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학교 교사에서 전문 철학가로 ‘진화’했다. 그 비결을 포퍼는 “나의 것으로 간주한 ‘문제들’이 철학을 포함한 여러 분야의 공부를 할 수밖에 없도록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아마도 포퍼에게 세상은 '호기심천국'이었음에 틀림없다).

진정 사랑에 빠질 수 있고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바칠 멋진 ‘문제’ 하나를 찾아보기, 해법을 열심히 찾되 우리가 생각해내는 해법은 전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늘 잊지 말기,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므로 늘 겸손해야 하며 모를 때는 모른다고 인정할 줄 알기. 포퍼가 권하는 공부 방법론이다. 아니, 어쩌면 인생 방법론이다. 원제 ‘All Life is Problem Solving’(1994년).(김희경 기자)

다시 반복하자면, "마르크시즘은 역사의 발전을 믿는 반면 ‘탐욕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바라보는 냉소주의적 역사관’이다. 반면 포퍼는 진보의 법칙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역사적으로 체험한 정치적 세계 중에서는 최고라고 믿는 낙관주의자다." 그러한 낙관주의는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과학의 진보와 마찬가지로 현실정치 또한 끝임없는 문제해결의 과정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이 과정은 무한한 근사의 과정이기도 하다). 즉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답이 정답은 아니더라도 과거에 제시된 답들보다는 언제나 근사치에 가깝다. 이 어찌 만족하지 않을쏘냐? 그런데, 문제는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레닌의 입장이 이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

"이 <경험비판론>의 중요한 유물론적 핵심은 레닌이 헤겔을 재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1915년 <철학노트>에서도 견지된다. 왜일까? 레닌은 <노트>에서 아도르노가 그의 <부정변증법>에서 부딪혔던 것과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분투한다. 즉 직접성을 비판하고 주어진 객관성에 대한 주체적인 조정을 주장하는 헤겔의 유산을 아도르노가 '객체의 우월성'이라 부른 유물론의 최소 명제와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이것이 바로 레닌이 인간의 사고는 객관적 실체를 거울모사한다는 '반영이론'을 고수한 이유이다."(52-3쪽)

"This hard materialist core of Empiriocriticism persists in the Philosophical Note-Books from 1915, in spite of Lenin's rediscovery of Hegel - why? In his Note-Books, Lenin is struggling with the same problem as Adorno in his "negative dialectics": how to combine Hegel's legacy of the critique of every immediacy, of the subjective mediation of all given objectivity, with the minimum of materialism that Adorno calls the "predominance of the objective"; this is why Lenin still clings to the "theory of reflection" according to which the human thought mirrors objective reality."

<노트>에서도 견지되는 <경험비판론>에서의 유물론은 실상 유물론에 미달하는 유물론, 곧 유사-유물론이고 암묵적 관념론이다. 그것은 그가 인간의 사과 객관적 현실(objective reality)을 거울처럼 반영한다는 '반영이론'을 고수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반영론자로서의 레닌은 헤겔의 재발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물론에 미달하게 되는 것. 레닌은 무어라고 말하는가? "여기에 실제로, 객관적으로, 세 가지 구성요소가 있다. 10자연 2)인간의 인식=인간의 뇌, 그리고 3)자연이 인간의 인식에 반영된 형태, 그리고 이 형태는 정확하게 개념, 법칙, 범주 등으로 구성된다..."(53쪽)

영역본은 이 대목을 영역본 레닌 선집에서 가져오고 있다: "Here there are actually, objectively, three members: (1)nature; (2)human cognition=the human brain; and (3)the form of reflection of nature in human recognition, and this form consists precisely of concepts, laws, categories, etc..."(179쪽) 참고로,  러시아어본에 따르면 이 대목은 레닌 전집 29권 164쪽에 나온다. 

인용한 대목을 근거로 지젝은 아도르노와 레닌이 '인식주체 - 반영 - 자연/대상'이라는 반영론의 구도를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하는데, 각주3)에 밝혀진 대로 유스타체 쿠벨라키스와의 사적인 대화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그게 각주에서 "'Eustache Kouvelakis'(Paris)"가 뜻하는 바이다('유슈타슈 쿠벨라키'라고 읽어야 하나?). 찾아보니까 쿠벨라키스는 <철학과 혁명: 칸트에서 마르크스로>(2003)의 저자이다.  

"하지만 아도르노도레닌도 여기에서 잘못된 방식을 취한다. 유물론은 사고의 주체적 조정의 바깥에 있는 객관적인 실체라는 최소 명제를 고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고가 스스로와 완전한 동일체를 얻는 것을 방해하는 외적 장애물의 절대적인 내재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주장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 점을 양보하고 장애물로 외부화하는 순간 사이비 문제 살정, 즉 우리는 영원히 파악불가능한 '객관적 실체'에 점근(漸近)할 뿐 절대로 이를 그 문한한 복합체에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고로 되돌아간다."(53-4쪽)

"However, both Adorno and Lenin take here the wrong path: the way to assert materialism is not by way of clinging to the minimum of objective reality OUTSIDE the thought's subjective mediation, but by insisting on the absolute INHERENCE of the external obstacle which prevents thought from attaining full identity with itself. The moment we concede on this point and externalize the obstacle, we regress to the pseudo-problematic of the thought asymptotically approaching the ever-elusive "objective reality," never being able to grasp it in it infinite complexity."

 

 

 

 

참고로, 국역본에는 표시돼 있지 않지만 영역본의 인용문에 붙은 각주에서 지젝은 아도르노의 '객체의 우월성'론에 대한 자세한 비판은 <믿음에 대하여> 2장을 참조하라고 적어놓았다. 이럴 때마다 믿을 수 없는 국역본 번역은 유감스럽다. 지젝이 이해못할 헛소리들을 늘어놓는 것도 아니잖는가?  

'사고의 주체적 조정(thought's subjective mediation)이라고 옮겨진 것은 '사고의 주관적 매개'라고 옮기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싶다. 이 '사고'의 바깥에 객관적 현실/실체가 존재한다고 하는 반영론적 전제를 고수하는 한 지젝이 보기에 '유물론은 없다!'. 인식의 장애물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장애물을 외부화하는 순간, '객관적 현실'을 그 무한한 복합성 속에서 포착하지 못하고 다만 점근해갈 뿐리는 사이비 문제틀, 혹은 포퍼주의적 문제틀로 후퇴하게 된다. 포퍼와 헤겔 사이의 레닌?

"레닌이 주장하는 '반영이론'의 문제점은 그 이론이 가진 암묵적 관념론에 있다. 물적인 실체가 의식 바깥에 독립적을 존재한다는 강박적인 주장은 징후적 전치로 읽혀야 한다. 왜냐하면 '의식 그 자체'가 암묵적으로 그것이 '반영하는' 실체으 외부에 있게 되는 중요한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질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방식, 그 객관적 진실에 무한히 접근한다는 은유가 이러한 관념론을 폭로한다."(강조는 나의 것)

"The problem with Lenin's "theory of reflection" resides in its implicit idealism: its very compulsive insistence on the independent existence of the material reality outside consciousness is to be read as a symptomatic displacement, destined to conceal the key fact that the consciousness itself is implicitly posited as EXTERNAL to the reality it "reflects." The very metaphor of the infinite approaching to the way things really are, to the objective truth, betrays this idealism:"(179-80쪽)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사이비 관념론, '암묵적 관념론'에서 벗어난 '진짜' 유물론인가? 내용이 좀 길어져서 다른 자리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06. 10. 21-22.

P.S. 문제해결의 연속 혹은 진화라는 말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벼락도끼와 돌도끼에서 원자탄으로의 연속/진화이다. 과연 인류사의 분쟁과 불화를 제거하는 방법도 진화돼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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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고시엔, 일본의 국민축제

<고시엔, 일본의 국민축제>

 

 올해도 어김없이 고시엔의 열풍이 불고 있다. NHK 위성방송을 통해 본 고시엔 풍경. 그건 차라리 두려움이었다. 올림픽에 버금가는 화려한 개막식. 빼곡히 들어찬 스탠드. 재학생과 동문들의 요란하지만 질서있는 응원. 잘 정돈된 새파란 잔디. 하얀 유니폼의 선수들을 돋보이게 하는 흑토. 거의 대부분의 팀이 등번호판만 새로 달아 조금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유니폼들. 그리고 중계방송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 어느덧 치열한 전투와도 같은 경기가 끝나면서 승리팀의 교가가 울려퍼진다.

 일본은 야구의 나라다. 야구로 날이 밝고 야구로 날이 샌다. 스포츠 분야에서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톱뉴스도 야구고,한해를 마감하는 톱뉴스 역시 야구다. 가판대의 스포츠신문은 예외없이 프로야구를 톱기사로 다루고 있다. 어찌보면 전체 국민이 야구라는 거대한 시나리오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일본 야구에는 이렇듯 무언가 '정제된 힘'이 느껴진다. 프로야구는 프로야구대로, 고교야구는 고교야구대로 수많은 팬들을 동원하는 이면에는 이런 정제된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프로와 고교만이 아니다. 대학야구와 사회인야구에도 관중석은 가득하다. 앞서의 두려움은 바로 이것이다. 분명 억지로 동원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해서 경기가 열리는 스탠드에는 관중으로 가득할까?

 일본의 고교야구팀수는 99년 현재 4200여팀에 달한다. 간토지방의 경우 840여팀이 있고, 북부의 홋카이도에도 300여팀이 있다. 등록된 선수수는 약 15만명에 이른다. 흔히 고시엔이라는 것은 오사카에 소재한 한신고시엔(阪神甲子園)구장에서 전국 규모의 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붙여진 것. 대회의 공식 명칭은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와 「선발고교야구대회」이다. 전자는 7~8월중에 벌어지는 관계로 "여름고시엔"이라 부르고,후자는 3~4월중에 열려 "봄고시엔" 또는 선발(選拔)의 일본식 발음을 따 "센바츠"라고도 부른다. 일본 고교야구에선 이 두 대회말고는 이렇다할 전국 대회는 없다. 우리나라의 전국체전에 해당하는 "국민체육대회"에 고교야구 경기가 포함돼 있지만 크게 주목받는 입장은 아니다.

 1915년에 창설된 선수권대회는 올해로 82회째. 대회방식은 전국 49개 지구에서 지역대회를 거친 최정예팀이 참가한다. 일제시대에는 조선 예선을 거쳐 부산상,휘문고보,선린상 등이 참가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선발대회는 1924년 창설되었다. 올해 대회가 72회다. 홋카이도등 10개 지역의 추계대회에서 선발된 36개교가 다음해 봄에 고시엔에 모여 결전을 치르는 방식이다. 시점을 놓고 볼 때 가을철에 지역대회→이듬해 봄 선발고교대회→49개지구 예선대회→여름 선수권대회→가을철 지역대회...연중 경기를 갖는 셈이다. 흔한 말로 일본의 고교야구선수들의 목표는 '고시엔' 땅을 밟아 보는 것. 따라서 3년내내 고시엔 그림자도 밟아보지 못한 선수들이 허다한 실정이다. 고교선수들에 있어 고시엔 무대는 바로 '꿈의 무대'인 셈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일단 고시엔 무대에 서면 언론이며 각 프로팀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프로선수 프로필에도 일단 고시엔 출장 경험 유무가 중요한 경력으로 등재된다.

 고시엔 출전 자체가 중요한 경력일진대 그 무대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면 '고시엔의 영원한 스타'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프로 진출시 상당한 몸값을 보장받는다. 1949년 나카니시(中西太)는 호타준족의 "괴동"으로 3차례의 고시엔서 2번이나 그라운드 홈런을 기록하였고,니시테쓰 라이온즈에 입단해 그해 신인왕이 되었다. 60년 강속구 투수 오자키(尾崎行雄)는 고교 2년의 약관 16세 나이로 팀을 고시엔 정상에 올려놓고선 학교를 중퇴하고 도에이 플라이어즈에 입단. 역시 신인왕에 올랐다.
 57년 봄 고시엔에선 고시엔 첫 "괴물'이 등장해 화제를 낳았다. 와세다실업학교고등부의 오(王貞治)는 대회 준결승까지 3경기를 완봉하고 결승에서 8회에 실점하기까지 34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오는 프로에선 타자로서의 재능을 발휘하며 '세계의 홈런왕'으로 이름을 떨쳤다. 73년은 "괴물투수" 에가와(江川卓)의 해. 에가와는 고교통산(현 대회 포함) 퍼펙트 2번, 노히트노런 12번에 통산 방어율은 0.50. 또 3학년 선발대회에서 기록한 4경기 60탈삼진은 불멸의 대기록으로 꼽히고 있다. 85년 여름은 PL가쿠엔의 구와타(桑田眞澄)와 기요하라(淸原和博)가 고시엔 열풍에 불을 붙였다. 고시엔 통산 20승3패 방어율 1.55의 구와타와 통산 13홈런의 기요하라는 고시엔 사상 최강의 명콤비였다. 92년 언론의 집중 취재 대상이었던 마쓰이 히데키(松井秀喜)는 그로선 최후의 고시엔이었던 여름대회 2회전 경기에서 5연타석 경원 사구(四球)로 걸어나가는 진기록을 낳았다. 고교 통산 60홈런을 친 그의 방망이가 두려워 상대팀들은 가급적 그와의 정면대결을 피했다. 고시엔 우승 경험은 없었지만 마쓰이는 그해 요미우리에 드래프트 1위로 지명되었다. 98년에는 "괴물"의 계보를 잇는 요코하마고의 마쓰자카(松坂大輔)가 최고구속 150Km를 넘나드는 광속구를 뽐내며 봄,여름 고시엔을 휩쓸었다. 특히 여름 고시엔에서는 결승전서 사상 두번째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해 "괴물"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고시엔의 별"들이 팬들의 열기를 이끌어 내며 전설을 만들어 나갔다.

 

 

 이렇듯 고시엔은 단순히 야구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일본의 영웅"들을 탄생시켰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언론의 역할. 지역대회부터 밀착 취재해 쓸만한 선수들을 일찌감치 발굴,포장해 간다. 본선대회가 열리기 직전엔 유망주들을 사진과 함께 대거 소개하고, 역대 고시엔 스타들의 당시 활약상을 회고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특별히 주연과 엑스트라가 구분된 것도 아니다. 모두가 주연이다. 여기서 교묘히 지역 정서와 애교심을 자극한다.  일본 특유의 온갖 분석을 총동원하여 지역별·학교별 우승회수,지역별·학교별 프로선수 배출 현황,지역별 고교팀 현황 등을 집중 보도한다. 대회중에는 경기 전적이 프로야구 이상으로 상세히 보도된다. 대회가 끝나면 대회를 총결산하는 야구 전문지의 특집호가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대회전의 전망호와 대회후의 결산호는 미리 예약해 놓지 않으면 구하기가 힘들 정도다.  일본은 야구전문지가 잘팔린다.  한국말로 주간야구인 "슈칸베스보루"는 1947년 창간되어 올해로 53년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이 책을 발행하는 베스보루마가진(Baseball Magazine)사는 주간지 뿐만아니라 월간지(메이저리그),계간지(주요 이슈 특집호) 및 각종 야구 관련 단행본을 내어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국영방송인 NHK는 고시엔 전경기를 방송한다. 연장전에 들어간다 해서 방송을 중단하는 법이 없다. 오래전 얘기지만 88년 여론조사에선 가장 보고싶은 스포츠로 고교야구가 58%, 프로야구가 54%를 기록한바 있고, 현재도 고교야구 시청율은 프로야구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게임업체인 아트딩크는 고시엔을 목표로 고교야구 선수를 육성하는 게임을 만들어 붐조성에 일조하기도 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일본에는 야구장이 많다. 가장 부러운 점이 이것이다. 거대한 돔구장에서부터 동네 야구장에 이르기까지 야구장의 수가 축구장만큼 많다. 동네 야구장도 그냥 말만 야구장이 아니라 잔디도 깔려있는 제대로된 야구장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어린 선수들은 1차적으로 고시엔을 꿈꾼다.
 또한가지 중요한 것은 일본의 국민성이다.  야구에 대해 편식을 하지 않는다. 프로야구는 프로야구대로 아마야구는 아마야구대로의 멋을 즐긴다. 도쿄  네리마에 거주하는 가와무라(川村倫世.여)씨는 일본 고교야구가 프로 못지 않게 활발하게 전개되는데 대해 "고교야구는 '순수' 그 자체이며,팬들은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경기장을 찾는다"고  말한다. 프로측도 고교야구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너는 너 나는 나"의 개념이 아니다. 관심을 갖고 키우려 노력한다. 잘알다시피 한신 타이거즈의 본거지인 고시엔구장은 내야 흑토와 외야 천연잔디를 고수하고 있다. 12개 프로 구단 가운데 흑토-천연잔디 구장은 고시엔과 히로시마시민구장 두곳 뿐이다. 히로시마구장의 경우와는 다르게 고시엔 구장은 고시엔에 참가하는 고교 선수들이 기념으로 구장의 흙을 퍼갈 수 있게끔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대회후 구장을 다시 보수하는데 꽤 비용이 들어가고, 고시엔 기간 동안 홈팀 한신은 장기간 방랑길에 오르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고교야구가 있음으로서 프로야구가 존재함을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또 어떤 "고시엔 괴물"이 출현할까? 어찌보면 이웃 나라의 단순한 고교야구 대회로 치부해 버릴수 있도 있겠지만 그것은 분명 매력적인 축제이다.
<2000.4/
이 글은 2000년 중앙일보 주최 대통령배야구대회 팜플렛에 게재된 기사임>

 

박성호의 야구이야기에서 발췌한 내용임. <http://www.npb.co.kr/>

출처 : http://www.np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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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출판사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출판사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책뿐만 아니라 그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 대해서도 우리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렌덤하우스'란 곳이 어떤데인지?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의 답글이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kabbala :: 많은 출판사 중에서 왜 외국의 랜덤하우스부터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61.111.95.xxx)  
봄비 :: 누가 대한민국 최강 출판사라고 하길래...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저로서는 막연한 존경의 꿈틀거림을 조속한 시간내에 처리하기 위해서요..
더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222.110.181.xxx)
삭제
행인 :: 랜덤하우스는 세계 최대의 출판사며 한국에서는 처음에는 중앙M&B와 합병하는 형태로 들어왔으나(그때의 명칭이 랜덤하우스중앙입니다) 지금은 랜덤하우스가 모든 지분을 회수하여 랜덤하우스코리아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봄비님께 랜덤하우스에 대해 알려주신 분이 어떤 의미에서 '최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랜덤하우스에는 최강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립니다.

대표적인 예로 랜덤하우스는 '임프린트'제도를 도입하여 한국에도 M&A 트렌드를 유행시키면서 한국출판계의 지반자체를 흔들어놓았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유능한 편집자들을 자본으로 영입하여 편집자들에게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고 출판사는 브랜드를 확장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은게 아니냐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죠. 이는 마치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러하듯 유능한 인재들을 자본으로 포섭하여 창의성과 개성을 존중한다는 명목하에서 혹독한 경쟁을 통해 가장 우수한 결과만을 취사하고 그에 따르는 리스크는 개별 편집자들이 감당하게 하는 아웃소싱 형태와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형태를 통해 1인 편집자들이 명성을 얻기도 합니다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랜덤하우스는 한국 출판계에 신자유주의적인 트렌드를 몰고온 대표적인 거대 출판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랜덤하우스가 운영하는 브랜드만도 북박스, 드림하우스, 키즈랜덤 등 9개에 달합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상이할 수 있겠으나 이윤의 창출이라는 의미에서는 긍정적으로 최강이지만, 동시에 성과로만 판단하며 리스크를 자신이 감당해야하는 혹독한 경쟁체제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의미에서 최강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219.255.20.xxx)
삭제
지나가다 :: 행인/ 질문한 사람은 아닙니다만, 상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저도 궁금했던 정보입니다.    (218.50.84.xxx) 삭제
:: 회사 규모와 결과물의 수준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주의한다면 막연한 존경의 꿈틀거림을 조속히 처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59.6.245.xxx) 삭제
강유원 :: 제가 썩 좋아하는 소설가 이문구 전집을 펴낸 곳이기도 합니다. 구입하진 않았지만요.    (211.210.218.xxx)  
질문 :: 행인님, 명쾌하게 요약된 설명 감사합니다. 그런데 '개별 편집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요? 기획과 출판에 성공하지 못했을 때 '임프린트 제도'를 통한 것이 아닌 경우에 비했을 때 특히 더 부담/감당해야 하는 계약내용 같은 것이 있는지요?    (219.253.80.xxx) 삭제
지나가다4 :: '랜덤하우스'는 세계적인 미디어그룹인 베텔스만의 출판 부문 계열사입니다. 베텔스만 그룹은 독일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유럽, 북미, 아시아 등 전세계에 TV, 음반, 출판 등의 부문 계열사를 두고 있습니다. 세계 미디어그룹 순위에는 3위 안에 들어가며, 포천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안에 속하는 그룹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삼성 그룹 안에 금융, 전자, 건설 정도 되는 부문으로 출판 부문이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출판물의 기획, 제작에 있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내 시장에 진출합니다. (* 베텔스만은 '대교베텔스만'이라는 이름으로 램덤하우스보다 먼저 국내에 들어와있습니다. )
저는 출판 쪽에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이름이 꽤나 알려진 국내 출판사들이 알짜 부자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 출판사 직원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월급이 적다는 사실 때문에 출판사는 어쩔 수 없이 영세성을 면치못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출판사 직원들에 대한 급여나 복지에 대해선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으면서 출판사 소유주들에게 부가 몰리는 상황을 보면서 한참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저는 '랜덤하우스'의 국내 진출이 국내 출판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보이긴 하지만. ㅡㅡ.    (59.10.223.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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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4 :: 중요한 걸 빠뜨렸군요. '출판저작물의 시장/고객 우선'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척 좋은 책이지만,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는다면 (되도록이면) 출판하지 않는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59.10.223.xxx) 삭제
행인 :: 질문/ 지나가다4님이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랜덤하우스의 임프린트 정책은 형식상으로는 전문적인 개별 편집자에게 별도의 브랜드를 주고 경영권과 출판권을 맡기는 형태를 취합니다. 그러나 임프린트는 대개 3년 정도의 계약기간을 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랜덤하우스의 입장에서는 자회사가 한번 설립하면 끝까지 책임져야하는 것에 비해, 임프린트는 성과가 좋으면 그대로 계약을 유지하지만 아니면 부담없이 계약을 끝내도 되지요. 임프린트는 일명 소(小)사장 제도라고도 불리는데 한마디로 철저한 성과급, 계약직 형태의 출판계 제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말한 리스크는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를 통해 마치 도요다즘을 출판계에 도입한 것과 같은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철저하게 시장과 고객에 맞추어 '기획'한 책들이 범람하게 되는 것이죠. 매출을 높일 수 있는 책이 아니라면 팔지 않고, 매출을 높일 수 있는 책만 기획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임프린트가 모두 매출에 의해서만 평가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성과에 의한 경쟁체제라는 것은 변함없습니다. 이제 훌륭한 컨텐츠를 보유하고 있지만 알려져 있지 못한 작가가 이의 가치를 알아보는 편집자에게 발굴되어 유명세를 타게 되는 '신화' 같은건 있을 수 없는 일이 됩니다. 모든 것은 기획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보시면 되겠죠(최근 한젬마나 마시멜로 사태는 단순히 대필과 부도덕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러한 출판사의 생존전략과도 결부되어 있는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책이 고객에 맞추어 기획된다는 자체가 부정적인 현상이라기 보다는 이런 과정 전체가 철저하게 자본의 효율성에 바탕해서 평가받는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219.255.20.xxx)
삭제
봄비 :: 행인님,지나가다님.. 친절한 설명에 모두 감사드립니다.
막연한 존경의 꿈틀거림을 님들에게 바칩니다!    (222.110.181.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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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시사저널 사태를 바라보는 어느 잡지노동자의 독백

사회/ No. 188. 시사저널 사태를 바라보는 어느 잡지노동자의 독백


오늘 오전에 들려온 반가운 소식으로 오전내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오후 들면서 갑자기 하중이 걸려오더니 결국 오늘을 무사히 넘기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기 전에 편집회의 끝나고 편집위원들과 약소하게 빼갈 한 잔 했습니다. 오늘 칼럼 마감이라... 아침 나절에 부랴부랴 완성시켜서 원고 보내주느라 기쁠 사이도 사실 없었습니다. 칼럼은 전에 얘기했던 대로 FTA관련한 글을 썼습니다. 사실 이 글은 오늘 공장(누구 닮아서 저도 제가 몸담고 있는 직장을 공장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에서 제 개인적인 이유인지, 잡지라는 공공재의 문제인지 몰라도 높으신 분과 아직 정리되지 못한 사안으로 분위기가 안 좋았습니다. 사실 이 글은 그런 개인적인 문제와 고민해서 싹을 튀워 좀더 공적인 분야로 생각이 가지를 치고 나간 내용입니다.

하여간 기자들이 그런 것처럼 저도 반쪽 끄트머리쯤은 기자 비슷한 거라 제쪽에도 나름대로의 소식통은 있습니다. 대충 제 통밥으로 보건대, Mr. President께서 FTA협상에 대해 최근에 철저히 장사꾼 마인드로 협상에 임하라는 말에 혹시나 하고 기대하는 분들은 큰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결렬되도록 해야 하겠지만...) 일종의 레토릭일 가능성이 크고, 대통령은 아마 이번 FTA를 자기 임기 내 가장 큰 치적으로 생각하는듯 하더군요. 결국 최종 빅딜 형태 없이도 진행될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1. 자본과 시장의 검열 사이에서

"시사저널"이란 잡지가 있습니다. 매주 나오는 주간지죠. 사실 "시사저널" 보고 진보적인 잡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적당한 균형감각을 갖춘 중도적 주간지라 할 수 있을 텐데, 예전에 이 잡지를 보면서 이중의 의미에서 참으로 현실적인 감각을 보여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사저널"의 기획 중에는 예를 들어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100인'이라든지 '경기도를 움직이는 인물과 단체' 같은 기획을 종종 합니다. 이런 기획이 주간지스러운 기획이긴 한데, 독자 혹은 비슷한 업종 종사자 입장에선 현실적인 감각과 기획이란 생각도 하게 만듭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잡지엔 명분도 있어야겠지만 궁극적으로 잡지에 지속성을 부여하는 건 '돈'입니다.)

중도적이지 않다고 느낄 때는 가끔 동북아 군비증강 문제나주변의 강국들, 중국이나 일본을 다루는 꼭지들이 종종 대단히 민족주의적인 관점과 논조를 보인다거나 우리도 국방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논조가 엿보이는 기획 기사를 다룰 때인데, 그럴 때는 마치 목젖의 가시처럼 불편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이념적 진보성의 유무와 상관없이 이번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좀더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느 사회이든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아젠다와 이슈는 있기 마련이고, 사안의 경중을 냉정하게 따질 때 최근의 "시사저널" 사태가 가장 시급한 이슈는 아닙니다. 그러나 심장이 손가락 하나도 소외시키지 않는 것처럼 작금의 "시사저널" 사태는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삼성과 결부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2. 사람들이 아는 계간지, 잘 모르는 잡지

제 밑으로 이제 1년도 안 된 경력의 부사수(이 세계의 은어)가 한 명 있습니다. 이 친구가 참 마음에 드는 것은 가끔 독일병정 같이 딱딱하고, 융통성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거나 기껏 융통성을 발휘한다손 치더라도 지켜보는 제가 안타까울 만큼 고지식한 것이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으며, 성실하다는 점일 겁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란 말은 요사이 제가 주워들은 말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인데 하여간 이 친구가 이전에 함께 했던 다른 어떤 친구들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그가 저와 고민하는 바가 비슷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은 많지만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를 찾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정치적인 지향점의 유사성은 젖혀두더라도 무엇보다 우리가 함께 만드는 잡지가 무엇이며 어때야 하는 지에 대해 우리가 같은 소명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선 우리 두 사람은 요새 말로 골통 브라더스일 겁니다.

사실 잡지(계간지)라고는 하지만, 계간지는 다른 잡지처럼 기자가 직접 글을 쓰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그런 점에서 얼마 전 '권두언'까지 썼던 저는 좀 특별한 케이스이긴 합니다.) 편집부 기자라고 불리울 때도 있지만 대개는 단행본 편집자와 비슷한 동질로 취급받곤 합니다. 실제로도 제가 몸담고 있는 계간지를 제외하곤 그렇게 분류해도 거의 틀리진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출판사가 만드는 계간지의 경우엔 계간지 팀이 있더라도 그것에만 전념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어떤 경우엔 편집장 직책을 별도로 두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대개 계간지란 것이 월간지나 주간지처럼 특종을 쫓을 일이 없으므로 시대의 이슈를 쫓아가기 보다는 담론 생산에 주력하는 편이라서 대개는 당대의 톱클래스(?)에 속하는 지식인들 혹은 활동적인 중견 학자들이 편집주간을 비롯해 편집위원의 형태로 전체 기획이나 편집 방향을 주도하므로 편집자들은 실무 책임을 맡는 정도에서 그치는 편입니다.

계간지의 책무는 시대를 읽어내고, 그 안에 은폐되어있는 구조를 밝히고 드러내어 지식사회로부터 파급되는 이슈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계간지는 지식의 최전선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편집자란 직업을 가진 이들 자체가 직업군으로 보자면 소수인 탓도 있지만, 대중문화 속에서 표상되거나 재현되는 이미지와 달리 실제 세계에서는 전문직종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처우와 고된 일과에 노출되는 편입니다. 물론 여성의 섬세한 감수성이 요구되는 측면이 있어서 이 업종에 여성노동자가 많은 까닭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론 그만큼 비전이 없기 때문에 남성노동자가 적기도 합니다. 또다른 측면에서 10년 전 IMF 태풍 때 수많은 영세출판사들이 폐업하는 바람에 초급 편집자들의 신규 육성의 문호가 닫혀버려서 과거 육아와 가사 등의 이유로 상근편집자 생활을 접은 여성들이 일종의 교정교열알바로 비정규직 노동을 할 수 있다는 점 등도 여성들에게 이 직종이 결혼 후에도 가사노동과 더불어 병행할 수 있는 직업이란 점에서 선호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과거 <동아일보> 탄압 같은 시대적 사건들로 인해 해직된 많은 기자들이 편집자로 전업하거나 (예를 들어 한길사의 김언호 선생, 문학과지성사의 김병익 선생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 호구지책으로 출판사를 차리거나 번역업에 종사하면서 사실 우리 출판계는 질적인 도약을 하긴 했습니다.(이후 80년대 들어 학생운동으로 대학에서 퇴출당한 수많은 청년지식인들이 이런저런 경로로 출판계로 대량 유입되거나 이를 통해 운동을 지속시켜 나가기도 했습니다. 한울출판사를 거쳐간 조희연 선생 등이 그런 케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업종이 선망의 대상일 순 없지요. 하여간 이 분들이 기존의 언론이 탄압받아서 언론의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자 그에 대한 대안으로 모색한 것이 계간지 형태의 잡지 혹은 무크지 형태의 잡지들을 발간하기 시작하지요. 이 분야에서 가장 선구적인 잡지는 60년대의 "사상계", 50년대의 "청맥" 같은 잡지였습니다.

한길사에서도 꽤 여러 종의 잡지를 내다가 폐간했고, 나남출판사에서도 그렇고,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은 지금까지 제호를 바꾸거나 그대로 온존시킨 채 현재에 이릅니다. 사실 잡지 중에서 가장 마이너한 매체가 계간지인데, 대개의 계간지들은 단행본 출판사에 종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년 전 김명인, 권성우, 이명원 등에 의해 잠시 촉발되었다가 잠잠해진 문화권력 논쟁에서 그 주된 도구로 주목받았던 것이 계간지였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실제 문화권력의 존재 유무, 작동 유무와는 별개로 이와 같은 시스템은 발행인이 교수이자, 비평가이고 출판사 사장이자, 편집인, 발행인이라는 현실적인 모습을 상기할 때 그 자체로 문화권력 논쟁이 촉발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이 순기능을 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역기능을 할 때 계간지는 소장학자이든, 이제 막 등단하려는, 등단한 작가, 시인, 비평가들에겐 일종의 문호이자 발판이며 동시에 폐쇄된 그들만의 리그일 수 있는 것이죠. 이런 기능 말고도 실제로 메이저 출판사들에 의한 계간지는 시스템적으로 이같이 필자관리용이거나 담론의 생산과 주도권(다른 말로 하자면 발표지면)을 유지하려는 용도라는 걸 전면적으로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3. 지역에서 생산되는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 잡지들

앞서 자본의 검열과 권력의 검열을 이야기하고, "시사저널" 이야기를 했고, 뒤이어 계간지의 역사와 역할,  계간지 편집자의 세계에 대해 짧게 라도 이야기한 것은 사실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듯 저는 지방에서 발간되는 한 계간지의 편집장이고, 라디오방송에 고정패널도 했었고, 여기저기 허락되는 매체에 청탁받은 글을 쓰거나 칼럼을 연재하는 편집자이자 잡지쟁이고, 글쟁이이며 동시에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때때로 어줍지 않은 문학비평도 하고, 문화비평도 쓰는, 그야말로 잡스러워서 어디 가서 나 시인이다, 나 작가다, 나 비평가다, 나 변호사다, 의사다 하고 단정 지어 말하기 스스로는 참 곤란해 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설명하기 위해서 구차해질 때가 있는데, 이 말은 제가 월급 받고 살아가는 일 말고도 제가 욕심내는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어딘가 글을 쓸 때는 제가 몸담고 있는 잡지의 이름과 편집장이란 직함을 명기하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일차적으로 저란 사람은 잡지편집쟁이란 말이죠. 몇 년 전에 제가 만드는 잡지가 창간 10년을 맞아 처음으로 광고란 걸 만들었습니다. 전직 카피라이터이기도 했던 제가 편집장인 죄로 그 카피를 만들었습니다. "자본과 시장의 검열과 싸우며 지켜 온 10년"이란 표현을 썼는데 그것이 몇 년이 채 흐르지 않아 지금 "시사저널" 사태에서 또다시 확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저런 말을 썼을 때는 그것이 제 자신에게도 그만큼 절박한 문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만드는 잡지 말고도 지역에서 발행되는 잡지는 참 많습니다. 가끔 저도 듣도 보도 못한 잡지들이 제 앞으로 우송되어오건 합니다. 물론 지방에서 나오는 잡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한 때 유명한 문학평론가였다가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문학이 아니라 운동이라는 소명의식으로 문학비평을 접은 김종철 선생이 펴내는 “녹색평론”(격월간)일 겁니다.

하지만 “녹색평론”이 대구에서 출판된다고 해서 이를 가리켜 대구잡지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사실 제가 만드는 잡지 역시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녹색평론”이 환경문제의 시급성, 자본주의가 파괴하는 지구 생태의 위기와 이에 대한 대안 체제를 모색하는 잡지로서 의미가 있다면, “황해문화”는 제국의 중심 혹은 국가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의 흡인력에 저항하는 힘을 지역의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찾고자 하는 잡지로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애초의 창간 의도가 확장되고 발전되어간 잡지사상 좀 드문 케이스에 속하기도 합니다. 애초에 인천이란 작지 않은 지방도시가 중앙인 서울에 인접하여 이에 따른 흡인력에 저항하며 세계를 바라보며 지역적으로 실천가능한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하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때 지역이 의미하는 것이 반드시 인천이란 특정한 도시와 지역을 의미하기 보다는 그보다 좀더 확장된 지역성(regionality), 세계체제나 국가와 타협하거나 저항하며 형성된 공통의 이해이면서 동시에 민족이나 부족 단위와는 다른 생활의 공동체, 삶의 공동체에서 주체성을 찾고, 확인하여 체제의 안과 밖을 해체하는 다른 형태의 움직임을 생각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잡지 전체의 공통된 이해라기보다는 제 나름의 이해이자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서울도 하나의 지역이며, 대한민국도 지역이고, 동북아시아, 아시아도 지역이라 할 수 있겠지요. 어쨌든 이와 같은 지역 간 연대와 공동의 이해를 기반으로 실천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고 이를 현장에 접목시켜보자는 취지가 강하게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그 지역성에 발목을 잡히곤 합니다.

4. 지역을 넘어선 보편성과 엄밀성

잘 아시겠지만 대한민국엔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 따온 박사는 많아도 정작 미국을 연구한 학자를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영문학자는 많아도 미국학자, 영국학자는 드물고, 중국학부는 있어도 정작 중국을 연구한 학자는 몇 손에 꼽아야 합니다. 물론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국제적으로 우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열강들에 대한 연구가 이럴진대, 지역, 예를 들어 부산을 연구하는 학자, 대구를 연구하는 학자, 광주를 연구하는 학자를 구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향토사학자의 품격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여러분들이 TV에 등장하는 이른바 향토사학자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처럼 향토에 대한 애정이 넘쳐서 학문적 고증의 엄밀성, 지역을 넘어선 보편성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아무리 좋은 기획이 있어도 이것을 실현해줄 필자를 만나지 못하면 잡지쟁이의 기획은 가볍게 무화되어 날아가 버립니다. 거기에 더해 아무리 대도시라고는 해도 지역이란 판은 매우 좁아서 말도 금방 돌고, 어딘가 발표한 글도 내일이면 회자되곤 합니다. 올해부터 제가 지역신문에 칼럼을 게재하곤 있지만, 여기에 글을 쓰는 것이 서울에서 발행되는 잡지에 글 쓰는 것보다 더 어렵고 난감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곳에 실리는 글을 읽어주는 독자는 직접 대면할 일이 거의 없지만, 지역사회에선 언젠가 대면하게 된다는 겁니다. 게다가 대개 지역신문을 열독하는 이들은 지역사회에선 힘 꽤나 쓰는 이들일 때가 많고, 고려시대 지역토호들이 만들어낸 철제불상들이 통일신라시대 귀족들이 만들어낸 청동불상이나 금동불상에 비해 양식적인 측면에서 높이 평가받지 못하는 것처럼 세련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근대 자본주의가 예술가들 혹은 작가들을 해방시켜준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이들은 대개 자신의 생산품에 대한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거나 고용되진 않기 때문에 익명의 독자라는 가상의 주체를 설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어쨌거나 직접 이해관계가 달려 있는 이들 혹은 자신의 이해관계와 상반되더라도 그쪽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사고하는 이들을 만나는 일, 거기에 더해 무대뽀식 대응과 마주치는 일은 참 피곤합니다. 아무리 진보적인 학자,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정작 자기 집안 어른들이나 친척들은 설득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입니다. 그건 제가 쓰는 글만 그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고, 잡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전국적으로 유통되므로 전국잡지이긴 하지만 지역적으로는 특정 지역에서 가장 많이 읽기 마련이니까요. 녹색평론이 대구에서 나오지만 아무도 대구잡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제가 만드는 잡지는 지역 단위에서도 워낙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고, 발행처 자체가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 바라보는 시선이 참 많습니다.

5. 일상의 전장에서 양심을 지키며 산다는 어려움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는 대개의 잡지는 중앙지에서곁다리로 걸쳐있거나 아니면 절반이 광고로 채워지는 여성지, 패션지를 제외하곤 거의대부분이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는 편입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지속적으로 발행되는 잡지가 드문 이유입니다. 정기독자가 많으면 그래도 견딜 만하겠지만, 잡지의 중요도가 언제나 대중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즐겨 읽었을 법한 “당대비평”이나 “지오”, “키노” 같은 잡지들이 버텨내지 못한 것도 따지고 보면 시장에서의 경쟁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가 만드는 잡지가 수익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건, 잡지쟁이로서 대단히 편리하고 매력적인 혜택이지만 그만큼 발행인의 완고한 의지가 뒷받침되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돈을 대는 발행인과 그 안에 콘텐츠를 채우는 잡지쟁이 혹은 편집위원회의 관계는 종종 조선시대의 왕과 사림과의 관계와 흡사합니다.

제가 만드는 잡지 역시 그와 같은 긴장관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왕은 왕대로, 사림은 사림대로 뜻하는 바가 있고, 어느 한 사람도 말할 권리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제가 만드는 잡지의 왕이 폭군이란 뜻은 아니며, 만약 그런 사람이었다면 제가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 신뢰하며 일해오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도리어 어떤 측면에선 그만큼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고, 상대의 입장 또한 이해되기에 간혹 어느 순간의 고개 숙임이, 혹은 타협이 참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 혹은 조직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이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의 일상을 월급이라는 생계수단에 차압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때때로 자신이 원치 않는 일, 그냥 눈 감고 지나쳐도 좋을 법한 사소한 일에 직업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겠죠.

제가 “시사저널” 사태를 남의 일처럼 바라볼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저 멀리 남에게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서 언제나 일어나고 있으며, 제가 때때로 타협해야 하고, 때때로 저 역시 사직서를 써놓고 다퉈가며 지켜내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때때로 선비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건달스럽고, 제 자신이 지식인, 학문하는 사람들을 자주 곁에서 보아오지만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할 만큼 치열하게 학문하는 사람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그와 같은 규정을 싫어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제가 잘 나갈 수도 있었던 광고회사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척박한 환경인 이 바닥에서 버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과분하게 지식인 대접을 해주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 바닥에서 버티고 있는 이유는 그나마 이 판이 무엇보다 돈이 아닌 다른 무엇에 희망을 걸 수 있고, 그 안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다는 개인적인 기쁨 때문입니다.

지식의 최전선이랄 수 있는 계간지의 논조를 사수하는 일차적인 게이트키퍼gatekeeper 역할에서 보람을 찾고, 나름의 명분을 찾고 있는 것이지요. “황해문화”가 최근 다소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기존에 튼튼하게 영역을 구축해온 잡지들에 비하면 아직 미약한 잡지입니다. 그나마 이 잡지가 쌓은 명성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비교적 사욕 없이 재정적인 뒷받침을 해주고 있는 재단과  린 마음을 지닌 편집주간 이하 편집위원들 덕이라 할 겁니다. 물론 이 분들과 나름대로 동지적 연대를 맺고 있지만, 이 분들은 외부에도 또 다른 진지를 구축하고 있고, 어쨌든 이곳이 일차적인 밥벌이 장소인 저나 부사수의 입장과 같을 수는 없겠죠. 그래서 지금의 제가 누리는 개인적인 보람과 명분도 때로 과분할 때가 있습니다.

6. 당장의 끼니를 잇는 일과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일은 동시에 시급하다

지난 해 10월 무렵, 여러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전태일문학상’ 수상자 중에 한국철도공사 홍보실에 근무하는 분이 수상하여 내부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KTX 여승무원들을 해고하고, 탄압하는 한국철도공사와 이철(사장)을 옹호하는 위치에 있고, 이런 사람이 쓴 글을 ‘전태일문학상’ 수상자로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제기였습니다. 이에 대해 ‘전태일문학상운영위원회’에서는 수상을 취소하지 않겠다는 고심에 찬 결정을 내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이 투쟁만이 아니라 수많은 패배와 유혹, 크고 작은 타협과 굴절로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점, 하지만 끝내 노동자의 길을 찾아가게 만드는 힘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진지한 성찰에서 나온다….

일상에 좌우되는 인간의 감정,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들, 무엇보다 한 순간에 삶의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될지도 모르는 순간들이 일상이란 시공간엔 지뢰밭처럼 포진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큰 창조는 용서이고, 포용이란 말을 수긍할 수 있습니다. 한 순간 순교를 택할 순 있어도 일상을 한결같이 지켜가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물론 이것이 타협이나 변절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온갖 유혹과 손쉬운 타협이 우리의 일상과 삶, 정신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훼손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독기가 참으로 마음 아프게, 참으로 민감한 상처들로 다가옵니다.

저란 사람은 어쩌면 남들 보기엔 참 별것도 아닌 일일지 모르는, 정말 사소한 것들에 매일매일 목을 매고 살아가나 봅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기쁜 순간은 내 새끼 입에 밥 숟가락 들어가는 것이고, 가장 두렵고 비참한 일은 내 새끼 배곯는 것 지켜보는 일이라고 했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당장 오늘의 끼니를 위해 내 새끼들에게 좀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어야 하는 걸, 온통 밥그릇에 정신을 빼앗긴 채 잊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우리가 "시사저널" 투쟁을 남다르게 보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혹시 거기에 있는 건 아닐까요? 그들이 지금 벌이고 있는 투쟁이 지금껏 수많은 언론들이 비난해 마지 않던 단순한 밥그릇 싸움이거나  임금인상 투쟁이 아님에도 온사회가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그들을 지켜보고, 그들의 처진 어깨에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건 아닌지요. 당장의 끼니를 잇는 일과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일은 동시에 시급한 일이며,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도 무시되거나 과소평가되어선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위해 함께 싸워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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