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시사저널 사태를 바라보는 어느 잡지노동자의 독백
사회/ No. 188. 시사저널 사태를 바라보는 어느 잡지노동자의 독백
오늘 오전에 들려온 반가운 소식으로 오전내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오후 들면서 갑자기 하중이 걸려오더니 결국 오늘을 무사히 넘기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기 전에 편집회의 끝나고 편집위원들과 약소하게 빼갈 한 잔 했습니다. 오늘 칼럼 마감이라... 아침 나절에 부랴부랴 완성시켜서 원고 보내주느라 기쁠 사이도 사실 없었습니다. 칼럼은 전에 얘기했던 대로 FTA관련한 글을 썼습니다. 사실 이 글은 오늘 공장(누구 닮아서 저도 제가 몸담고 있는 직장을 공장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에서 제 개인적인 이유인지, 잡지라는 공공재의 문제인지 몰라도 높으신 분과 아직 정리되지 못한 사안으로 분위기가 안 좋았습니다. 사실 이 글은 그런 개인적인 문제와 고민해서 싹을 튀워 좀더 공적인 분야로 생각이 가지를 치고 나간 내용입니다.
하여간 기자들이 그런 것처럼 저도 반쪽 끄트머리쯤은 기자 비슷한 거라 제쪽에도 나름대로의 소식통은 있습니다. 대충 제 통밥으로 보건대, Mr. President께서 FTA협상에 대해 최근에 철저히 장사꾼 마인드로 협상에 임하라는 말에 혹시나 하고 기대하는 분들은 큰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결렬되도록 해야 하겠지만...) 일종의 레토릭일 가능성이 크고, 대통령은 아마 이번 FTA를 자기 임기 내 가장 큰 치적으로 생각하는듯 하더군요. 결국 최종 빅딜 형태 없이도 진행될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1. 자본과 시장의 검열 사이에서
"시사저널"이란 잡지가 있습니다. 매주 나오는 주간지죠. 사실 "시사저널" 보고 진보적인 잡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적당한 균형감각을 갖춘 중도적 주간지라 할 수 있을 텐데, 예전에 이 잡지를 보면서 이중의 의미에서 참으로 현실적인 감각을 보여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사저널"의 기획 중에는 예를 들어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100인'이라든지 '경기도를 움직이는 인물과 단체' 같은 기획을 종종 합니다. 이런 기획이 주간지스러운 기획이긴 한데, 독자 혹은 비슷한 업종 종사자 입장에선 현실적인 감각과 기획이란 생각도 하게 만듭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잡지엔 명분도 있어야겠지만 궁극적으로 잡지에 지속성을 부여하는 건 '돈'입니다.)
중도적이지 않다고 느낄 때는 가끔 동북아 군비증강 문제나주변의 강국들, 중국이나 일본을 다루는 꼭지들이 종종 대단히 민족주의적인 관점과 논조를 보인다거나 우리도 국방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논조가 엿보이는 기획 기사를 다룰 때인데, 그럴 때는 마치 목젖의 가시처럼 불편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이념적 진보성의 유무와 상관없이 이번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좀더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느 사회이든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아젠다와 이슈는 있기 마련이고, 사안의 경중을 냉정하게 따질 때 최근의 "시사저널" 사태가 가장 시급한 이슈는 아닙니다. 그러나 심장이 손가락 하나도 소외시키지 않는 것처럼 작금의 "시사저널" 사태는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삼성과 결부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2. 사람들이 아는 계간지, 잘 모르는 잡지
제 밑으로 이제 1년도 안 된 경력의 부사수(이 세계의 은어)가 한 명 있습니다. 이 친구가 참 마음에 드는 것은 가끔 독일병정 같이 딱딱하고, 융통성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거나 기껏 융통성을 발휘한다손 치더라도 지켜보는 제가 안타까울 만큼 고지식한 것이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으며, 성실하다는 점일 겁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란 말은 요사이 제가 주워들은 말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인데 하여간 이 친구가 이전에 함께 했던 다른 어떤 친구들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그가 저와 고민하는 바가 비슷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은 많지만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를 찾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정치적인 지향점의 유사성은 젖혀두더라도 무엇보다 우리가 함께 만드는 잡지가 무엇이며 어때야 하는 지에 대해 우리가 같은 소명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선 우리 두 사람은 요새 말로 골통 브라더스일 겁니다.
사실 잡지(계간지)라고는 하지만, 계간지는 다른 잡지처럼 기자가 직접 글을 쓰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그런 점에서 얼마 전 '권두언'까지 썼던 저는 좀 특별한 케이스이긴 합니다.) 편집부 기자라고 불리울 때도 있지만 대개는 단행본 편집자와 비슷한 동질로 취급받곤 합니다. 실제로도 제가 몸담고 있는 계간지를 제외하곤 그렇게 분류해도 거의 틀리진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출판사가 만드는 계간지의 경우엔 계간지 팀이 있더라도 그것에만 전념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어떤 경우엔 편집장 직책을 별도로 두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대개 계간지란 것이 월간지나 주간지처럼 특종을 쫓을 일이 없으므로 시대의 이슈를 쫓아가기 보다는 담론 생산에 주력하는 편이라서 대개는 당대의 톱클래스(?)에 속하는 지식인들 혹은 활동적인 중견 학자들이 편집주간을 비롯해 편집위원의 형태로 전체 기획이나 편집 방향을 주도하므로 편집자들은 실무 책임을 맡는 정도에서 그치는 편입니다.
계간지의 책무는 시대를 읽어내고, 그 안에 은폐되어있는 구조를 밝히고 드러내어 지식사회로부터 파급되는 이슈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계간지는 지식의 최전선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편집자란 직업을 가진 이들 자체가 직업군으로 보자면 소수인 탓도 있지만, 대중문화 속에서 표상되거나 재현되는 이미지와 달리 실제 세계에서는 전문직종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처우와 고된 일과에 노출되는 편입니다. 물론 여성의 섬세한 감수성이 요구되는 측면이 있어서 이 업종에 여성노동자가 많은 까닭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론 그만큼 비전이 없기 때문에 남성노동자가 적기도 합니다. 또다른 측면에서 10년 전 IMF 태풍 때 수많은 영세출판사들이 폐업하는 바람에 초급 편집자들의 신규 육성의 문호가 닫혀버려서 과거 육아와 가사 등의 이유로 상근편집자 생활을 접은 여성들이 일종의 교정교열알바로 비정규직 노동을 할 수 있다는 점 등도 여성들에게 이 직종이 결혼 후에도 가사노동과 더불어 병행할 수 있는 직업이란 점에서 선호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과거 <동아일보> 탄압 같은 시대적 사건들로 인해 해직된 많은 기자들이 편집자로 전업하거나 (예를 들어 한길사의 김언호 선생, 문학과지성사의 김병익 선생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 호구지책으로 출판사를 차리거나 번역업에 종사하면서 사실 우리 출판계는 질적인 도약을 하긴 했습니다.(이후 80년대 들어 학생운동으로 대학에서 퇴출당한 수많은 청년지식인들이 이런저런 경로로 출판계로 대량 유입되거나 이를 통해 운동을 지속시켜 나가기도 했습니다. 한울출판사를 거쳐간 조희연 선생 등이 그런 케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업종이 선망의 대상일 순 없지요. 하여간 이 분들이 기존의 언론이 탄압받아서 언론의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자 그에 대한 대안으로 모색한 것이 계간지 형태의 잡지 혹은 무크지 형태의 잡지들을 발간하기 시작하지요. 이 분야에서 가장 선구적인 잡지는 60년대의 "사상계", 50년대의 "청맥" 같은 잡지였습니다.
한길사에서도 꽤 여러 종의 잡지를 내다가 폐간했고, 나남출판사에서도 그렇고,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은 지금까지 제호를 바꾸거나 그대로 온존시킨 채 현재에 이릅니다. 사실 잡지 중에서 가장 마이너한 매체가 계간지인데, 대개의 계간지들은 단행본 출판사에 종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년 전 김명인, 권성우, 이명원 등에 의해 잠시 촉발되었다가 잠잠해진 문화권력 논쟁에서 그 주된 도구로 주목받았던 것이 계간지였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실제 문화권력의 존재 유무, 작동 유무와는 별개로 이와 같은 시스템은 발행인이 교수이자, 비평가이고 출판사 사장이자, 편집인, 발행인이라는 현실적인 모습을 상기할 때 그 자체로 문화권력 논쟁이 촉발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이 순기능을 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역기능을 할 때 계간지는 소장학자이든, 이제 막 등단하려는, 등단한 작가, 시인, 비평가들에겐 일종의 문호이자 발판이며 동시에 폐쇄된 그들만의 리그일 수 있는 것이죠. 이런 기능 말고도 실제로 메이저 출판사들에 의한 계간지는 시스템적으로 이같이 필자관리용이거나 담론의 생산과 주도권(다른 말로 하자면 발표지면)을 유지하려는 용도라는 걸 전면적으로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3. 지역에서 생산되는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 잡지들
앞서 자본의 검열과 권력의 검열을 이야기하고, "시사저널" 이야기를 했고, 뒤이어 계간지의 역사와 역할, 계간지 편집자의 세계에 대해 짧게 라도 이야기한 것은 사실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듯 저는 지방에서 발간되는 한 계간지의 편집장이고, 라디오방송에 고정패널도 했었고, 여기저기 허락되는 매체에 청탁받은 글을 쓰거나 칼럼을 연재하는 편집자이자 잡지쟁이고, 글쟁이이며 동시에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때때로 어줍지 않은 문학비평도 하고, 문화비평도 쓰는, 그야말로 잡스러워서 어디 가서 나 시인이다, 나 작가다, 나 비평가다, 나 변호사다, 의사다 하고 단정 지어 말하기 스스로는 참 곤란해 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설명하기 위해서 구차해질 때가 있는데, 이 말은 제가 월급 받고 살아가는 일 말고도 제가 욕심내는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어딘가 글을 쓸 때는 제가 몸담고 있는 잡지의 이름과 편집장이란 직함을 명기하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일차적으로 저란 사람은 잡지편집쟁이란 말이죠. 몇 년 전에 제가 만드는 잡지가 창간 10년을 맞아 처음으로 광고란 걸 만들었습니다. 전직 카피라이터이기도 했던 제가 편집장인 죄로 그 카피를 만들었습니다. "자본과 시장의 검열과 싸우며 지켜 온 10년"이란 표현을 썼는데 그것이 몇 년이 채 흐르지 않아 지금 "시사저널" 사태에서 또다시 확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저런 말을 썼을 때는 그것이 제 자신에게도 그만큼 절박한 문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만드는 잡지 말고도 지역에서 발행되는 잡지는 참 많습니다. 가끔 저도 듣도 보도 못한 잡지들이 제 앞으로 우송되어오건 합니다. 물론 지방에서 나오는 잡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한 때 유명한 문학평론가였다가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문학이 아니라 운동이라는 소명의식으로 문학비평을 접은 김종철 선생이 펴내는 “녹색평론”(격월간)일 겁니다.
하지만 “녹색평론”이 대구에서 출판된다고 해서 이를 가리켜 대구잡지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사실 제가 만드는 잡지 역시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녹색평론”이 환경문제의 시급성, 자본주의가 파괴하는 지구 생태의 위기와 이에 대한 대안 체제를 모색하는 잡지로서 의미가 있다면, “황해문화”는 제국의 중심 혹은 국가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의 흡인력에 저항하는 힘을 지역의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찾고자 하는 잡지로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애초의 창간 의도가 확장되고 발전되어간 잡지사상 좀 드문 케이스에 속하기도 합니다. 애초에 인천이란 작지 않은 지방도시가 중앙인 서울에 인접하여 이에 따른 흡인력에 저항하며 세계를 바라보며 지역적으로 실천가능한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하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때 지역이 의미하는 것이 반드시 인천이란 특정한 도시와 지역을 의미하기 보다는 그보다 좀더 확장된 지역성(regionality), 세계체제나 국가와 타협하거나 저항하며 형성된 공통의 이해이면서 동시에 민족이나 부족 단위와는 다른 생활의 공동체, 삶의 공동체에서 주체성을 찾고, 확인하여 체제의 안과 밖을 해체하는 다른 형태의 움직임을 생각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잡지 전체의 공통된 이해라기보다는 제 나름의 이해이자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서울도 하나의 지역이며, 대한민국도 지역이고, 동북아시아, 아시아도 지역이라 할 수 있겠지요. 어쨌든 이와 같은 지역 간 연대와 공동의 이해를 기반으로 실천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고 이를 현장에 접목시켜보자는 취지가 강하게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그 지역성에 발목을 잡히곤 합니다.
4. 지역을 넘어선 보편성과 엄밀성
잘 아시겠지만 대한민국엔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 따온 박사는 많아도 정작 미국을 연구한 학자를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영문학자는 많아도 미국학자, 영국학자는 드물고, 중국학부는 있어도 정작 중국을 연구한 학자는 몇 손에 꼽아야 합니다. 물론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국제적으로 우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열강들에 대한 연구가 이럴진대, 지역, 예를 들어 부산을 연구하는 학자, 대구를 연구하는 학자, 광주를 연구하는 학자를 구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향토사학자의 품격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여러분들이 TV에 등장하는 이른바 향토사학자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처럼 향토에 대한 애정이 넘쳐서 학문적 고증의 엄밀성, 지역을 넘어선 보편성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아무리 좋은 기획이 있어도 이것을 실현해줄 필자를 만나지 못하면 잡지쟁이의 기획은 가볍게 무화되어 날아가 버립니다. 거기에 더해 아무리 대도시라고는 해도 지역이란 판은 매우 좁아서 말도 금방 돌고, 어딘가 발표한 글도 내일이면 회자되곤 합니다. 올해부터 제가 지역신문에 칼럼을 게재하곤 있지만, 여기에 글을 쓰는 것이 서울에서 발행되는 잡지에 글 쓰는 것보다 더 어렵고 난감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곳에 실리는 글을 읽어주는 독자는 직접 대면할 일이 거의 없지만, 지역사회에선 언젠가 대면하게 된다는 겁니다. 게다가 대개 지역신문을 열독하는 이들은 지역사회에선 힘 꽤나 쓰는 이들일 때가 많고, 고려시대 지역토호들이 만들어낸 철제불상들이 통일신라시대 귀족들이 만들어낸 청동불상이나 금동불상에 비해 양식적인 측면에서 높이 평가받지 못하는 것처럼 세련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근대 자본주의가 예술가들 혹은 작가들을 해방시켜준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이들은 대개 자신의 생산품에 대한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거나 고용되진 않기 때문에 익명의 독자라는 가상의 주체를 설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어쨌거나 직접 이해관계가 달려 있는 이들 혹은 자신의 이해관계와 상반되더라도 그쪽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사고하는 이들을 만나는 일, 거기에 더해 무대뽀식 대응과 마주치는 일은 참 피곤합니다. 아무리 진보적인 학자,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정작 자기 집안 어른들이나 친척들은 설득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입니다. 그건 제가 쓰는 글만 그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고, 잡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전국적으로 유통되므로 전국잡지이긴 하지만 지역적으로는 특정 지역에서 가장 많이 읽기 마련이니까요. 녹색평론이 대구에서 나오지만 아무도 대구잡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제가 만드는 잡지는 지역 단위에서도 워낙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고, 발행처 자체가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 바라보는 시선이 참 많습니다.
5. 일상의 전장에서 양심을 지키며 산다는 어려움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는 대개의 잡지는 중앙지에서곁다리로 걸쳐있거나 아니면 절반이 광고로 채워지는 여성지, 패션지를 제외하곤 거의대부분이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는 편입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지속적으로 발행되는 잡지가 드문 이유입니다. 정기독자가 많으면 그래도 견딜 만하겠지만, 잡지의 중요도가 언제나 대중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즐겨 읽었을 법한 “당대비평”이나 “지오”, “키노” 같은 잡지들이 버텨내지 못한 것도 따지고 보면 시장에서의 경쟁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가 만드는 잡지가 수익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건, 잡지쟁이로서 대단히 편리하고 매력적인 혜택이지만 그만큼 발행인의 완고한 의지가 뒷받침되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돈을 대는 발행인과 그 안에 콘텐츠를 채우는 잡지쟁이 혹은 편집위원회의 관계는 종종 조선시대의 왕과 사림과의 관계와 흡사합니다.
제가 만드는 잡지 역시 그와 같은 긴장관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왕은 왕대로, 사림은 사림대로 뜻하는 바가 있고, 어느 한 사람도 말할 권리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제가 만드는 잡지의 왕이 폭군이란 뜻은 아니며, 만약 그런 사람이었다면 제가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 신뢰하며 일해오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도리어 어떤 측면에선 그만큼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고, 상대의 입장 또한 이해되기에 간혹 어느 순간의 고개 숙임이, 혹은 타협이 참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 혹은 조직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이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의 일상을 월급이라는 생계수단에 차압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때때로 자신이 원치 않는 일, 그냥 눈 감고 지나쳐도 좋을 법한 사소한 일에 직업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겠죠.
제가 “시사저널” 사태를 남의 일처럼 바라볼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저 멀리 남에게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서 언제나 일어나고 있으며, 제가 때때로 타협해야 하고, 때때로 저 역시 사직서를 써놓고 다퉈가며 지켜내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때때로 선비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건달스럽고, 제 자신이 지식인, 학문하는 사람들을 자주 곁에서 보아오지만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할 만큼 치열하게 학문하는 사람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그와 같은 규정을 싫어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제가 잘 나갈 수도 있었던 광고회사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척박한 환경인 이 바닥에서 버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과분하게 지식인 대접을 해주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 바닥에서 버티고 있는 이유는 그나마 이 판이 무엇보다 돈이 아닌 다른 무엇에 희망을 걸 수 있고, 그 안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다는 개인적인 기쁨 때문입니다.
지식의 최전선이랄 수 있는 계간지의 논조를 사수하는 일차적인 게이트키퍼gatekeeper 역할에서 보람을 찾고, 나름의 명분을 찾고 있는 것이지요. “황해문화”가 최근 다소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기존에 튼튼하게 영역을 구축해온 잡지들에 비하면 아직 미약한 잡지입니다. 그나마 이 잡지가 쌓은 명성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비교적 사욕 없이 재정적인 뒷받침을 해주고 있는 재단과 린 마음을 지닌 편집주간 이하 편집위원들 덕이라 할 겁니다. 물론 이 분들과 나름대로 동지적 연대를 맺고 있지만, 이 분들은 외부에도 또 다른 진지를 구축하고 있고, 어쨌든 이곳이 일차적인 밥벌이 장소인 저나 부사수의 입장과 같을 수는 없겠죠. 그래서 지금의 제가 누리는 개인적인 보람과 명분도 때로 과분할 때가 있습니다.
6. 당장의 끼니를 잇는 일과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일은 동시에 시급하다
지난 해 10월 무렵, 여러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전태일문학상’ 수상자 중에 한국철도공사 홍보실에 근무하는 분이 수상하여 내부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KTX 여승무원들을 해고하고, 탄압하는 한국철도공사와 이철(사장)을 옹호하는 위치에 있고, 이런 사람이 쓴 글을 ‘전태일문학상’ 수상자로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제기였습니다. 이에 대해 ‘전태일문학상운영위원회’에서는 수상을 취소하지 않겠다는 고심에 찬 결정을 내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이 투쟁만이 아니라 수많은 패배와 유혹, 크고 작은 타협과 굴절로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점, 하지만 끝내 노동자의 길을 찾아가게 만드는 힘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진지한 성찰에서 나온다….
일상에 좌우되는 인간의 감정,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들, 무엇보다 한 순간에 삶의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될지도 모르는 순간들이 일상이란 시공간엔 지뢰밭처럼 포진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큰 창조는 용서이고, 포용이란 말을 수긍할 수 있습니다. 한 순간 순교를 택할 순 있어도 일상을 한결같이 지켜가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물론 이것이 타협이나 변절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온갖 유혹과 손쉬운 타협이 우리의 일상과 삶, 정신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훼손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독기가 참으로 마음 아프게, 참으로 민감한 상처들로 다가옵니다.
저란 사람은 어쩌면 남들 보기엔 참 별것도 아닌 일일지 모르는, 정말 사소한 것들에 매일매일 목을 매고 살아가나 봅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기쁜 순간은 내 새끼 입에 밥 숟가락 들어가는 것이고, 가장 두렵고 비참한 일은 내 새끼 배곯는 것 지켜보는 일이라고 했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당장 오늘의 끼니를 위해 내 새끼들에게 좀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어야 하는 걸, 온통 밥그릇에 정신을 빼앗긴 채 잊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우리가 "시사저널" 투쟁을 남다르게 보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혹시 거기에 있는 건 아닐까요? 그들이 지금 벌이고 있는 투쟁이 지금껏 수많은 언론들이 비난해 마지 않던 단순한 밥그릇 싸움이거나 임금인상 투쟁이 아님에도 온사회가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그들을 지켜보고, 그들의 처진 어깨에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건 아닌지요. 당장의 끼니를 잇는 일과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일은 동시에 시급한 일이며,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도 무시되거나 과소평가되어선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위해 함께 싸워주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