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해도 굳이 표식까지 남긴 이유가 뭐죠?"
마루에는 대답을 망설이며 잠시 침묵했다. 곧 전방에 동서로 뻗은 현도와 교차하는 T자형 삼거리가 보였다. 왼쪽으로가면 도이 정의 시가지 방면, 오른쪽으로 가면 구네토 습원이 있는 이웃 마을로 이어진다. 그녀는 방향 지시등을 켜고왼쪽으로 꺾었다. 그대로 200미터쯤 달린 뒤, 차를 유턴하여 T자형 삼거리를 향해 차 머리를 돌리고 버스 정류장 앞에 멈췄다. 에리사와는 안전벨트를 풀고, 환한 얼굴로 종이한장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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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시력을 보유한 눈으로 얼마나 멀리 떨어진 집파리를 볼 수 있을까? 90미터? 그건 진짜로 불가능하다. 그렇다. 90미터 떨어진 집파리를 볼 수 없는 눈이라면 그 거리에 있는 일반 못대가리도 못 본다. 두 대상의 크기는 같으니까. 파리나 못대가리를 45미터 거리에서 보려고 해도예리한 시력이 필요하다. 독자들은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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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정상적이라 할 수는 없다. 유행이란 지배하고 왜곡하게 마련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당대의 생활양식에 얌전히 순응하니, 진정한 관찰자의 눈에는 그저 더 강고한 힘을 지닌 무의미함을 획득한 것으로보일 뿐이다. 이때 위험은 정상적인 것을 그려내보려다가공허한 것을 그려내고, 인간의 이야기 대신 풍속소설을쓰고 말지도 모른다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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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소설을 진지하게 여기려면 소설부터가 자기를진지하게 여겨야 한다. 소설이 ‘사악‘하다는 구태의연한미신적 사고는 확실히 영국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자기가하는 얘기가 그저 농담 따먹기에 불과하다고 많건 적건인정하지 않는 작품에 보내는 비딱한 시선에는 그 사고의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다. 심지어 정말 익살맞은 소설조차도 예전에 문학적 경박함에 가해졌던 배척의 영향력이어느 정도 느껴진다. 익살이 정론으로 통하는 데 늘 성공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아마 대놓고 말하기는 겸연쩍을지몰라도, 어쨌거나 ‘가공‘의 산물(그게 바로 ‘이야기‘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에 불과하다면 어느 정도 변명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다시 말해 삶을 진정으로 재현하는도를 하고 있다는 허세를 거둬야 한다는 바람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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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신만만하게 글을 삭제하던 젊은 편집자는 나중에《리더스 다이제스트》의 고위 인사가 되었습니다. 아닌가?
한번 확인해봐야겠네요. 그러니 여러분, 정말 모를 일입니다. 시카고에서 딴 걸 보스턴에서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에요. 그게 상징주의죠. 타액 검사로 확인할 수 있어요. 그게 현재 우리 집단이 상징주의를 탐지하는 방식이고, 지금까지는 제법 만족스러운 결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뭐,
완벽하지는 않지만요. 하지만 우리는 조금씩 길을 내는중입니다. 참 그러고 보니,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크리브너스 매거진》에서는 자기네 책의 뒷부분까지 이어지는 긴 단편 공모전을 열었더군요. 당선자에게는 250달러의 몇 배나 되는 상금도 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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