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미 구속이 없는 영원한 자유다. 그냥 당신 자신 그대로 머물면 된다. 어떤 인위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오히려 당신을 얽어메는 구속이다. 그러니 항상 행복해라.

1.16
이러한 모든 것이 그대에 의해서 채워져 있고 당신의 몸안에도 가득 차 있다. 당신은 순수한 자각(自覺)이다.
그러므로 너무 편협한 사람이 되지 말라.

◉이 순수의식이 당신 밖에도 가득 차 있고 당신 몸안에도 가득 차 있다. 이 광대한 우주는 단 하나의 순수의식으로 충만해 있다. 당신은 이러한 우주의 모든 것을 인식하고 있는 순수한 자각이다.
육체는 당신이 아니다. 전체 우주가 당신이다.오직 존재하는 것은 당신 혼자뿐이다. 혼자 전체(One-Whole)로 존재한다. 이런데 당신이 두려워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당신은 항상 자유롭고 행복하다.그러니 작은 마음을 갖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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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베아트리체에게 학자. 신학자 · 신비주의.
자의 지식을 부여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결국 작가인 단테의 지식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베아트리체에게 자기 학문의 정수, 즉 자신의 갈비뼈 하나를 빼준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즉단테가 자신의 표현처럼 "그녀 안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그는 신비주의적인 이성과 공상가적인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여성의 잠재력을 상상하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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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으로 제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한계를 설정하는 경계선을 긋고, 그 안에서만큼은 마음껏 표현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자체 검열 없이, 재능이 있든 없든, 제 글이 가진 장단점에 개의치 않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틈과 봉합선이 드러난 것도 무시한 채, 모호한 느낌과 감정들을 숨기지 않고 마음껏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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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글쓰기입니다. 제게 글쓰기는 우아하고, 철저하게 계산해서 움직이는행동이 아니라 충동적인 행위입니다.
제가 사뮈엘 베케트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삶을 글에 바친 사람이라면, 뇌 한구석에 틀어박힌 채 글을 쓰는 작가의
‘자아‘에 관한 글을 단 몇 문장이라도 쓰지 않을 수없습니다. 저는 그런 문장들이 단지 글쓰기를 향한 열정에 대한 오마주만을 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문장들은 작가로 하여금 자기 작품의 결점과 미덕을 포함한 의미를 바라보게 해주는 문 또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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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처해 있는 가난과 천함이 두려운 것은 그것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고난과 실패에 시달리다 보면 희망을 잃고 다시 일어설 힘조차 잃는다. 하지만 영원히 계속되는 고난은 없다. 맹자는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지치게 하고, 몸을 괴롭게 하고 생활을 빈곤하게 해 하는 일마다 어렵게만든다."라고 말한다. 고난을 통해 참을성을 키워 큰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큰 기회가 주어진다.
때를 안다는 것은 중용의 덕목이다. 《중용》에는 "군자는 중용을 따르나소인은 중용에 어긋난다. 군자의 중용은 때에 맞게 행동함이요, 소인이 중용에서 어긋나는 것은 그 언행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글이 실려있다. 정상에 오르면 내려와야 할 때가 있듯이 고난도 마찬가지다. 고난을견뎌내면 치고 올라갈 기회가 생긴다. 단 자신이 먼저 포기하면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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