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콧노래를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마침 봄도 되었고 비가내리기 시작했다. 아파트 화단에 쌓여 있던 눈이 이제야 녹는 곳도 있다. 나는 그 색깔들을 눈여겨 볼 것이다. 그리고 그 색깔들과 모양들을 내 재봉틀 아래에서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밤이되면 지금처럼, 원고를 펼치고 소설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나의밤은 콧노래 없이도 온전히 내 것일 수 있으니까.
희망이 없는 삶, 그것만큼 또 암담한 일이 있을까. 누군들 희망의 끈을 붙잡고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고 싶지 않은 이가 있을까마는 어디 삶이 그러고 싶다고 해서 계획대로 따라주는 것이던가. 알게 모르게 다들 지난한 삶의 문제들을 안고서 전전긍긍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 라고 나의 어머니인 당신에게 말하렵니다. 이 말은 마음이 젊은 당신의 가슴을 꽃처럼 붉게물들일 것입니다. 금혼식 즈음에는 황금빛 개나리도 하나둘 봉오리를 터뜨리겠지요. 선물처럼 당도할 남은 세월이 당신을 더많이 웃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 문화 특유의 음성을 듣고 소리를 느낄 때 음악적인 경외심을 경험한다. 집단 정체성, 장소, 사람들처럼 보다 거대한존재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깨닫고 이해한다. 흔히 멀게만 느껴지던 집이라는 존재를 발견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굉장한행복감을 찾는다. 이는 문화적인 뿌리가 깊거나 의미가 즉시 이해되지 않는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숲속에서 우리는 이성과 신앙을 되찾는다. 그곳에서는자연이 바로잡을 수 없는 그 어떤 불명예나 재앙도 (눈만 멀지 않는다면) 내 인생에 닥쳐오지 못하리라는 느낌이 든다.머리가 그 태평한 공기에 젖어 무한한 공간 속으로 충천하는 가운데 맨땅을 딛고 섰노라면 모든 천박한 자기중심성은 사라진다. 나는 투명한 눈알이 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존재다. 나는 모든 것을 본다. 우주적 존재의 흐름이 내안을 순환한다. 나는 하느님의 일부요 그를 구성하는 티끌이다. 그러고 나면 가장 가까운 친구의 이름도 낯설고 비본질적인 것처럼 들린다. 누군가의 형제가 되고 지인이 되고 주인 혹은 하인이 되는 것이 하찮고 거추장스러워진다. 나는조건틀에 갇히지 않은 불멸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